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13화 (13/116)

〈 13화 〉 전투, 오해

* * *

콰아앙!

반 토막 난 킬리언의 둔기와 이만성의 전투망치가 충돌하며, 굉음을 터트렸다.

킬리언은 이 결과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덜 나은 육체, 마족으로서 탈피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체갑주’까지 쓰지 못하는 상황이 둘 중 어느 누구도 밀리지 않는 동등한 결과를 만들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가?”

­닥쳐라 늙은이

“허허...... 살다보니 괴수가 말하는 것도 다 보는군.”

양하연의 정령 덕분에 처음부터 그녀가 괴수인 걸 안 이만성이었지만,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처음 본 광경에는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콰앙­! 콰앙­!

킬리언은 괴수시절부터 마족이 된 지금까지의 경험이 만든 특유의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이만성을 공격했다.

콰앙­! 콰앙­!

이만성은 그녀의 공격을 따라가지 못 했다.

오른쪽에서 오는 것 같으면 왼쪽에서 들어오고, 위에서 들어온다 싶으면 아래로부터 날아오는 매섭고 무거운 공격들은 이만성을 곧 만신창이로 만드는 가 했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네. 괴수여”

그의 스킬 [일인 요새]와 가호[아뮬렌 산의 기운] 등,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스킬과 가호가 중앙세계에서 이도경과 함께 하며, 든든한 전위를 도맡아 온 이만성을 보호했다.

­쯧...

‘생체 장갑만 쓰면 되는데 짜증나는군.’

유천과 처음 만나 싸울 때 겉을 덮고 있는 갑각이 킬리언의 생체 장갑이다. 유천의 말이 없었고, 한번 박살이 나 회복 중이었다..

‘거기에...’

핏­! 핏­!

‘저 정령년도 거슬리는군.’

양하연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킬리언의 움직임을 막는 제약하려는 상급 땅의 정령 노우렌.

드러난 틈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상급 바람의 정령 윈드네스.

이만성에게 버프를 부여하고 있는 상급 빛의 정령 라이엘.

후위를 먼저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면, 상급 그림자 정령 윌러스가 그녀를 대피시켰다.

공격, 교란, 버프, 회피까지 홀로 수행하는 그녀는 후위로서 완벽했다.

킬리언에게 걸린 제약과 이만성과 양하연의 조합.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지금의 대등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온갖 공격이 난무하는 전투상황에서 킬리언은 의문이 들었다.

‘한명은 어딨지?’

분명 힘을 합쳐 자신을 공격하면 지금의 균형은 깨지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었음에도 놈은 공격해오지 않았다.

팟­!

킬리언은 뒤로 뛰어 잠시 거리를 두고, 마력감지를 펼쳐서 남은 한 놈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냈다.

­하­!

“왜 웃나 괴수”

­아까부터 한 놈이 안 보이 길래 뭐 하나 했더니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군.

초장거리 저격이 주특기인 이도경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자리에서 벗어나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의 활이 향한 곳은 멍하니 이쪽의 전투를 보고 있는 유천이었다.

­그를 건들면 후회하게 될 거다.

“호... 괴수 주제에 뭔가를 지키고 싶어 하는 건가 흥미롭군.”

­음? 아, 하하하­! 그렇게 받아 들이 수도 있나? 오해했나보군. 나는 그를 걱정한 게 아니다.

“음? 아니었나?”

킬리언의 표정에는 걱정이라고는 일말도 없었다. 저 청년이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겠지.

‘조금 더 쉽게 풀릴 뻔했는데 아쉽게 됐군.’

이만성은 순식간에 ‘킬리언이 유천을 지키려고 한다면?’ 이라는 전재로 여러 가지의 작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저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 연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도박을 하자니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안전하게 한 명은 배제하고 간다.’

이만성은 그를 이용해 보고자, 이도경에게 전음을 보내는 건 포기했다. 원래 작전대로 이도경이 저 청년을 죽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쇠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화살이 유천의 머리에 꽂혔다.

동시에 강렬한 폭발음이 강풍과 함께 그 주변을 쓸어버렸다.

족히 100m는 넘게 떨어져 있음에도 불어오는 바람.

“하나는 이걸로 치웠군. 이제 그대만 남았다네. 괴수”

이만성은 더 이상 저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했다.

­글쎄...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그 자리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네임드의 얼굴. 이만성은 불길함을 느꼈다.

눈앞의 괴수의 표정은 살아있을 거라는 믿음, 희망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종이는 하얗다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이만성과 양하연이 전투에 들어간 직후 이도경은 자리를 벗어나 고지대로 향했다.

끼이이익...

적당한 장소를 잡은 후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 시위를 매겼다.

“괴수를 지키려고 한 스스로의 행동을 원망해라...”

괴수가 나타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12시간도 안 됐다.

그런데 놈은 며칠 동안 이곳을 같이 헤맸다고 했다. 괴수와 함께 한다니...들어본 적도 없는 내용이다. 이는 명백한 종족배반행위.

그리 생각하며 화살에 마력을 결집시켰다.

이도경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스킬 [압축]을 발동시켰다.

이 주문제작한 화염계통 화살에 자신의 마력을 압축시킨 후 발사했을 때의 공격력은 맞기만 한다면, 하이랭커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그는 자부했다.

[압축] [압축] [압축] [압축] [압축]...

이도경은 상대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 자신의 마력 3분의 2를 화살 하나에 압축시켰다. 횟수는 총 26회, 터질 거 같이 부들거리는 화살을 당긴 상태로 유지한 채 다른 스킬들과 가호를 발동 했다.

명중률을 보조하는 스킬 [사격안].

화살을 파괴력을 집중시켜주는 [궁귀].

거기에 마지막으로 압축과 함께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가호, 거리에 비례해 최종 데미지를 증가시켜주는 [낙일]을 발동시켰다.

5km, 계산상 이 거리면 최종 데미지가 2배까지 폭증한다.

이제 남은 마력의 반을 사용하여 화살이 나아갈 통로를 구축한다.

치치치칙...

터질 듯 극한까지 압축된 마력이 이제 놓아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말에 거부하지 않고 이도경은 시위를 놓았다.

피이이잉­!!!

[낙일]의 증폭효과로 총 8번의 소닉붐을 터트리며 날아간 화살은 5km의 거리를 1초 만에 단축시켜 목표지점인 놈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콰과과광­!! 이곳까지 들리는 굉음을 듣고도, 일류 저격수 답게 습관적으로 이도경은 녀석의 죽음을 확인...

“저게 무슨...”

...하지 못했다.

*

‘조합이 뛰어나네.’

‘라스트 레거시’ 게임의 고인물의 눈은 그렇게 평가했다.

전투망치 영감의 뛰어난 탱킹능력, 거기에 미래의 하이랭커답게, 공격부터 보조와 교란까지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양하연까지 대단했다.

‘킬리언이 지금 약해졌어도 랭커 둘이서 네임드를 막다니 고작 한국에 있을 레벨은 아닌데?’

네임드는 기본적으로 랭커 10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

아직 하급 랭커일 양하연과 그와 비슷한 한명으로 약해졌다고 하지만 네임드와 대등함을 이루는 건 분명히 대단한 일이었다.

‘만약 저기에 뛰어난 딜러가 있었다면, 킬리언이 불리해졌겠지.’

“어?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는 어디 갔대?”

활을 든 딜러로 추정되는 미중년 아저씨가 돕지 않고 사라진 것에 의아해 하던 유천은 갑자기 킬리언이 물러나며, 전투가 중단된 것을 봤다.

‘쟤 갑자기 왜 날 쳐다봐’

킬리언이 자신을 보더니 전투망치 영감님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콰과과광­!!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유천의 머리를 강타했다.

*

“하연양...”

“네...”

“정말 괴수는 저 여자 하나뿐인가...?”

“믿기 힘들지만... 맞습니다...”

이도경이 쏜 화살이 뒤에 있던 청년의 이마를 뚫었을 때, 이제 눈앞의 인간형 괴수만 신경 쓰면 된다고 이만성은 안심했었다.

‘그래...뚫었다면 말이지...’

그의 동료가 쏜 화살은 분명 중앙세계에서 활동을 중단하고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그때 보다 더욱 빠르고, 날카롭고, 강력했다.

“아오...이건 또 뭔 일이야?”

폭발력을 꿰뚫음으로서 소모했어야 할 화살은 바위에 던져진 계란처럼 박살이 나서 흩뿌려져 있고, 화살에 담긴 힘에 땅은 쩍쩍 갈라졌다.

이만성은 자신이라도 막을 수 없을 필살의 공격에 죽었어야 할 청년이 고개만 뒤로 젖혀진 채 멀쩡히 서 있는 모습에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경악했다.

양하연으로부터 인간이라는 확증을 들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말 했을 텐데? 후회할 거라고

그때 괴수가 팔짱을 낀 채로 헛수고 한다는 듯 비웃었다.

정적에 휩싸인 공터. 킬리언이 자신들에게 등을 돌려 유천이 있는 곳으로 방심한 채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이 등 뒤를 노릴 수 있는 기회. 허나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질적인 공포. 이치를 벗어나는 무언가에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유천

“응? 뭐야 이름을 다 부르고”

유천은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익숙지 않은 킬리언의 모습에 움찔했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생체장갑을 써도 되나? 대신 이 자들, 죽을 수도 있다.

“안 돼 임마...”

저들이 죽었다가는 정말 많은 게 꼬인다는 생각에 유천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쾅­!

“감히!! 우리를 무시하는 겐가?!!”

이만성은 태연하게 자신들의 목숨을 논하는 것에 몸을 억죄는, 도망치라는 이성과 본능을 분노로 누르고 그들에게 달려들어 전투망치를 휘둘렀다.

그걸 옆으로 뛰는 것으로 피한 킬리언은 유천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유천

“어우씨 깜짝이야... 어,어 왜...?”

갑자기 앞에서 휘둘려진 전투망치에 깜짝 놀라 투덜대는 사이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익숙해지지 않는 미모의 얼굴에 유천은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저격수는 내가 잡아오지. 그대가 저들을 상대해라

“저격수...”

자신이 갑자기 날아온 공격을 맞은 걸 깨달은 유천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분명히 죽이기 위한 공격.

죽지 않는 다는 걸 알아도,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에 얼굴은 불쾌하게 굳어졌다.

“하... 그래 알았어. 절대로 죽이면 안 돼? 알았어?”

‘그래...이해한다...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았다. 냉정히 생각하면 저들은 도시를 지키는 입장이고 자신은 시민을 위협하는 괴수와 함께 다니는 빌런이랑 다르게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말인가?

“헛소리하지 말고 잡아와 임마.”

­그래... 다녀오지.

유천은 갑자기 묘한 얼굴로 헛소리하는 킬리언을 보내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둘을 쳐다봤다.

“하아......”

유천은 하늘을 쳐다보며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해할 수는 있어, 저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괴수와 동조하는 종족배신자니까... 그래도...’

고개를 내려 쳐다본 전투망치 영감님이 자신을 인간이 아닌 괴수를 보는 눈빛에 와락 인상을 썼다.

‘그래도 시발 얘기는 좀 나눠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다짜고짜 화살에 맞고, 괴수랑 그것도 네임드와 같은 것을 보는 시선에 유천의 인내심은 점점 간당간당해져갔다.

*

“조심하세요... 협회장님”

“그러겠네.”

이만성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부드러워진 목소리를 들으며, 굳어진 얼굴을 살짝 풀고 대답했다.

아까 그 괴수는 군복 상의만 입고 있던 것과 반대로, 지금 손을 늘어뜨린 채 걸어오는 괴수의 동료는 하의만을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할 샤프한 얼굴, 크지는 않지만 쩍쩍 갈라져 있는 근육과 도드라진 핏줄까지 누가 봐도 호감을 가질 외형이었다.

뒤에서 양하연이 자신의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눈 앞의 괴물을 신경 쓰느라 이만성은 듣지 못했다.

‘떨지마라...’

저 안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그 편린을 본 이만성은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킨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놈에게 무기는 없다. 간격을 유지한 채로 싸운다.’

타이밍을 맞췄다.

대략 5초, 그 안에 망치가 닿을 간격에 들어온다.

‘5...4...3...2...1!!’

콰앙­!

타이밍에 맞춰 스킬과 가호 그리고 양하연의 버프까지 실려있는 망치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이걸로 놈을 죽일 수 없다.’

초장거리가 전문인 원거리 딜러, 이도경의 전력으로도 상처 하나 못낸 괴물을 자신의 망치로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계속 거리를 띄우면서 천천히 후퇴를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거리를 띄운다. 하연양의 정령들이 공격하고, 견제한다. 천천히 물러나 통신범위에 들어간다면 협회에 대기하고 있던 각성자들을 전부 부른다.’

이 전투에서 최소한의 승리 가능성을 가져오려면 현재 대기하고 있는 수만 명의 각성자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꽤 오래도록 싸우겠...’

“이봐요 영감님, 우리 싸우지 말고 얘기 좀 나눕시다! 예? 아니 저도 사정이 있다고요!”

계속 일정 거리를 두면서 뒤로 물러나겠다는 이만성의 전략은 시작부터 끝이 났다.

“큭­! 이게 무슨!”

맞았다. 분명히 제대로 타격이 들어갔다. 그런데 녀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망치자루부분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로 있었다.

“큭­!”

꼼짝도 안한다. 아무리 빼보려고 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자신의 무구. 하지만 산전수전 온갖 경험을 해온 그는 노련하게 자신의 무기에서 손을 떼고 유천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에이씨 진짜!”

팍­!

유천은 주먹을 얼굴로 받으며 밀고 들어와 이만성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아 거참! 제발! 얘기 좀 하자고요!”

쿵­!

그대로 내리 눌렀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버티려고 한 이만성의 무릎은 그대로 꿇려버렸다.

빠드득­!

“크악­!”

세상을 짊어진 아틀라스의 심정이 이러할까? 이만성은 간신히 무릎 꿇고 온몸의 근육을 부풀린 채 유천의 팔을 잡고 버티는 것만이 가능한 상황에 아득해져갔다.

으드득­!

“네놈­!”

이를 갈며 그의 팔을 꺾어보려는 이만성.

“잠시만요! 협회장님!”

현명한 양하연이라면, 이 상황에서 도망쳐 지원군을 부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왜 이곳으로 오시는가?! 도망치시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뭐 하시는가?!”

자신이 말렸음에도 여전히 다가오는 양하연의 모습에 분통이 터질 거 같았다. 어느새 이만성의 옆에까지 온 양하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노련한 경험으로 어지간한 일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한 이만성. 하지만 오늘 하루 무엇 하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그가 모르는 사이 쌓아왔던 오만함이 하나 둘 무너지고 있었다.

“얘기를 하자고요?”

결국 이 청년과 대화를 시작하는 그녀를 보고 눈을 감은 채 빌었다. 부디 얘기가 잘 되기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