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추적(2)
* * *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군부에서 포격이라도 한 건가?’
산이 없어야 할 곳에 산이 생기고, 숲이 있어야 할 곳은 흙먼지 뿐, 사방이 초토화가 된 현장.
전투가 아닌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이도경, 이만성, 양하연 이 세 명의 랭커가 협회에서 출발한 시간을 계산하면, 분명 전투가 끝난 지 3시간은 지났을 터인데, 전투의 잔흔은 여전히 이 공간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곳이에요”
셋은 양하연의 정령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윈드네스 주변의 먼지를 걷어가 줘”
휘이이잉~
“이게 대체...”
“으음...”
“허...”
먼지가 걷히고, 보인 흔적은 어느 때나 침착함을 유지하던 양하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
“네임드가 한 건 아니에요. 마기가 그렇게 짙지는 않아요.”
“하이랭커라도 온 겁니까?”
“그 오만한 자들이 굳이 그들이 우리 몰래 와서 네임드를 토벌하고 갔겠나? 왔으면 주인 행세를 하며 자기 수발이나 들라고 했겠지, 그러다 기분이 좋으면 네임드를 사냥했을 거고”
“흠... 그러면 도대체 누굴지...?”
이만성과 이도경은 여전히 대기를 타고 흐르는 압박감에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땅을 부수기만 한 게 아냐 동시에 밀어냈어 공간계 대마법이라도 쓴 건? 아니야 이 정도 규모를 관측하지 못할 리가 없어 마력 잔흔도 없고, 주술...? 그것도 아니야...강림의 여파도 없어 그렇다면......”
“ 몇 번 봤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구만 도경이 자네는 알았나?”
“......아니요 저도 처음 봅니다.”
“일단 지켜보지 뭔가를 알아낼 거 같아 보이니까”
평소와 다른 약간 활기를 띈 모습.
이도경은 평소 양하연이 자신의 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눈빛, 일자로 꾹 다문 입술 별 일 없으면 항상 저런 표정을 고집했기에.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카페에 앉아 부모가 건네준 스도쿠를 푸는 아이와 같은 열의가 보이는 분위기를 띄었다.
저게 본래의 모습인가?
‘누구에게나 다 사연은 있는 법이지...’
아름다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이도경은 평소 그녀의 몸을 부풀린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 알거 같네요.”
말투도 표정도 차갑지만, 이도경은 아까 상상 속 아이가 다 풀었다고 자랑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만성이 물었다.
“......뭘 좀 알아냈는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응? 자세히 설명해주게”
“말 그대로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법, 주술, 신성, 사이킥 여기에는 그 어떠한 흔적이 없어요.”
“음...그럼 예상가는 다른 건 있는가?”
“......아마 물리력”
“응...?”
“어떠한 외부의 힘을 쓰지 않은 순수한 힘이라면 가능합니다.”
이만성은 저 말이 사실이라면, 양하연이 저리 흥분하는 것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리력이라니 육체계열 하이랭커도 그건 불가능하다.
“음 하연양 어째서 흥분했는지 알겠지만 그건 하이랭커라도...”
“여기 이거를 보시죠”
“뭐,뭘 말인가?”
양하연은 이만성의 팔을 끌고 어느 지점으로 갔다.
“이게 뭔가...?”
그녀가 가리킨 자리에서는 구겨진 종이가 펴지는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간입니다.”
“공간이라...”
“여기 일그러진 부분을 보시면, 어떠한 힘의 흔적도 안 느껴지시죠? 무언가가 이곳을 억지로 쥐어짰어요. 마치 캔을 구기듯이”
그 흔적은 유천이 킬리언에게 마지막으로 전력의 일격의 날리려 힘을 준 손아귀가 위치한 곳이었다.
“마법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마법이면, 규칙성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거기에 잔흔 마력도 없고요. 이건 억지로 구긴 거예요.”
“허...그게 말이 되는가?”
그 말에 경악한 이만성과 이도경은 근심이 깊어져갔다.
“그 말은 이런 괴물이 지구에 있다는 거 아닌가?”
“아...네... 그렇습니다.”
이만성의 그 말에 양하연은 부끄러운 짓을 하다 걸린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는 거지?’
이도경은 당황한 듯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이럴 때는 모른 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응? 하연양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그...저 혼자 너무 신나 있었던 게 부끄러워서...”
“......아 신나 있었던 겐가?”
그러나 눈치 없는 형님의 말에 그녀의 볼은 노을 같이 붉어졌고, 하프엘프 답게 길쭉한 귀는 파닥파닥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런 거였군.’
겉으로 티는 안 났지만, 심각한 상황에 자신만 신나한 거 같아서 괜히 미안했던 거 같다 그녀는.
‘참 착한 처자야’
새롭게 알 게 된 그녀의 모습에 자신의 딸과 잘 맞을 거란 생각이 들어 상황에 안 맞게 이도경은 흐뭇했다.
*
평강 어딘가
어떻게 된 게 마력감지도 쓸 줄 모르는가?
“닥쳐”
유천은 서울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위해서는 빌런이 필요했다.
근데 문제는 마력감지를 쓸 줄 알아야 찾을 건데, 마력을 느낀지 4시간,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결국 킬리언에게 부탁한 후 이 근처에 각성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후, 확인하러 온 것이다.
그런 쓰레기들을 찾아서 뭐 어쩔 셈인가?
“가만히 있어봐 다 생각이 있으니까”
유천의 머리에는 아주 심플하지만 완벽한 플랜이 짜져 있었다.
빌런을 찾는다.
놈들을 죽인다.
그 후 분명히 조사를 하러 나왔을 각성자가 관심을 갖도록 엄청 큰소리를 낸다.
마지막으로 거지꼴이 된 모습으로 빌런들에게 잡혀 있었던 연기한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게 찝찝했지만, 이 세계에서 빌런의 위상이 대강 물건이하라는 걸 알았기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분명히 저쪽에 있다고 했지”
그렇다 우리가 있던 곳에 각성자들이 와 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지금 찾는 놈들이 빌런이기만 하면 만사형통! 모든 일이 완벽하게 해결된다.
“거기에 이런 곳에 숨어 있는 놈들이 정상일 리가 없지”
거의 백 프로 빌런임을 확신한 유천은 킬리언에게 물었다.
“어디쯤이야?”
다 왔다 저쪽 땅 밑에 있다.
밑으로 들어가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보이지 않게 덮어놨겠지.
“그 놈들 뭐하고 있어?”
생식 활동 중이다.
“뭐?”
생식 활동이라고 했다. 멀쩡히 큼지막한 걸 달고 다니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유천은 좋지 않은 상상에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 상태는?”
묶여있다.
“이런 씨발...”
예상이 맞아 떨어진 상황에 유천의 기분은 더러워졌다.
‘씨발...좆같네’
나름 스스로 올바른 성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유천은 처음 맞닥뜨린 성범죄 현장에 속이 끓었다.
“킬리언”
응 무슨 일인가? 내 이름을 다 부르고
“시끄럽고, 밑에서 생식활동 하고 있다는 놈 내 앞으로 데려와”
누구를 말인가?
‘저 눈치없는 주둥이를 아주 그냥’
역시 태생 괴수였던 만큼 눈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킬리언이었다.
“좆 달린 놈 데려와 이 눈치 없는 것아!”
성질머리하고는...
콰앙!
유천의 구박에 투덜거린 킬리언은 다리를 들어 땅을 내려찍었다. 거기에 드러난 공동의 입구. 인위적인 가림막이 사라지자 사람 두셋은 들어갈 구멍이 나왔다.
‘일이 끝난 후 바지 좀 입혀야 겠군.’
남자용 군복을 입혔지만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인 킬리언의 순산형의 둔부가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고 유천은 생각했다.
무슨 일이야?!
뭐야 저년은?!
아아악! 내 팔!
이, 이거 놔 아악!
킬리언이 들어가고 나서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곧, 킬리언이 뭔가를 질질 끌고 나오면서 올라왔다.
“...저게 다 뭐야?”
뭐가 또 문젠가? 그대가 생식 활동하던 남성체들은 끌고 올라오라고 하지 않았나?
“한명 아니었어...?”
난 한명이라고 말한 적 없다만?
킬리언이 끌고 올라온 남자들의 수는 총 17명 내려가서 어느 사이에 묶었는지 굴비꿰듯 묶인 그놈들은 온갖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 뭐하는 새끼들이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아냐고?! 이거 풀어?!!”
“아아악!! 내 팔!! 내 팔 부러진 것 같다고?!!”
놈들은 생각보다 깔끔해 보이는 상의를 입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하체를 들어낸 채 좆을 덜렁덜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유천은 킬리언에게 물었다.
“거기에 여자는 몇 명이 있었어?”
수태를 한 여성체가 하나 있었다. 팔다리가 사슬에 묶인 채로 매달려 있더군.
빠드드득!!
유천의 혈관을 사나운 것이 타고 흘렀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이세계로 왔다는 걸.
‘하긴 그러니까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지’
‘사실 이곳이 꿈이 아닐까’라는 도피적 망상을 하던 유천의 귀에 끌려온 돼지새끼들중 하나의 말이 귀에 들렸다.
“시발 니들 다 뒤졌어!! 우리 사장님이 누군지 알아?!! S급 각성자분이다!! S급! 그분이 곧 오실 거다!!
”S급?“
”낄낄! 그래 이 병신새끼야 왜 쫄았냐? 늦었어 이 씹새끼야 곧 너는 죽고, 니 여자는... 하하! 말 안 해도 알겠지?!!“
유천은 그 말은 무시하고 킬리언에게 물었다”
“지금 오고 있는 놈이 있어?”
어 벌레 하나와 쓰레기 여럿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래...? 알았어.”
그때까지도 놈들은 니 손으로 여자를 바치면 노예로라도 살려주겠다는 등, 귀를 씻고 싶은 더러운 소리를 해댔다.
“킬리언”
왜 그러나?
“저놈 빼고 나머지 놈들 다 찢어 죽여.”
그러지
이들 중에 원치 않았던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집단의 강요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유천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다. 아마 사람을 죽인다는 결정을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큰 금기를 행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유천은 선택했다. 아까 S급이 온다는 말을 하던 녀석을 빼고 모조리 죽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겼다는 듯 낄낄거리며 온갖 더러운 말을 하던 놈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 무슨!! 그랬다가는 너도 멀쩡하지는!”
“야 너 병신이냐? 풀어주면 노예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풀어줘? 어?”
“이,이익!! 이, 이거 빨리 풀!”
빠드드드득!!
끼으아아아아악!! 사,사,살,살려주어에에엑!!!!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퀴벌레를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만배로 키우면 이럴까?
S급이 온다며 개소리를 하며 나대던 놈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던 놈의 왼팔을 킬리언은 잠자리 날개 떼듯 뽑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 오른다리, 왼다리까지
오른쪽 다리를 떼어낼 때까지만 해도 소리를 지르던 놈은 쇼크로 부들부들 떨다가 왼쪽다리를 뽑을 때는 죽은 듯 보였다.
킬리언은 분명 죽었음에도 시체의 머리와 척추를 같이 뽑아버렸다.
역시나 융통성 없는 킬리언은 유천이 흥분해서 ‘찢어죽여라’했던 말을 그대로 실해에 옮겼다.
‘우웁! 시발...!!’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라지만 저렇게 동족이 저렇게 잔인하게 죽는 모습에 토가 나왔지만, 다시 삼켰다.
“킬리언!”
응? 왜 그러나?
피를 뒤집어쓴 채 똥오줌을 질질 싸며 살려달라는 놈의 왼팔을 잡은 채 유천을 돌아봤다.
“...찢어죽이지말고 그냥 숨통만 끊어”
요구사항이 많군, 그러도록 하지
으득!
쥐고 있던 팔을 두고 계속 살려달라는 놈의 목을 비틀어 죽였다.
‘나도 죽음에 익숙해져야해’
유천은 사람들이 하찮게 죽어나가는 장면을 직접 보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세상에 떨어졌는지 실감했다.
너무도 끔찍한 장면에 감은 눈을 뜨고 킬리언이 사람을 도축하는 장면을 보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으득!
아, 안돼 죽기 싫어!
으득!
제발, 다신 나쁜 짓 안 할게요 제발!
으득!
“우웁!”
독이 혈관을 타고 올라 식도로 나오는 느낌이었다.
‘토하지마 삼켜, 이 장면을 담아, 이곳이 내가 살아갈 곳이야 고유천!’
뱉으면 안 된다. 이건 내가 선택한 결과. 벌써부터 외면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꿀꺽!
그렇게 고개 숙인 채 토를 삼키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킬리언은 남겨두라고 한 한 놈을 빼고 모조리 죽인 상태였다.
“히,히이이익!!”
역시 뭣도 없는 조무래기답게, 아까 잘 난 듯 지껄인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앞의 놈들과 다를 바 없이 똥오줌을 지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한심한 새끼’
유천은 그 모습을 보다가, 주변의 참혹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시발 디지겠군’
그래도 때마침 발동한 [사고가속]이 면역 없이 접한 그 끔찍한 장면을 흘려보내주었다.
터벅터벅
괜찮나?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킬리언 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현재 기분이 최악인 유천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혹시 그대는 동족을 죽여본 적이 없나?
“.....그래”
흠...그렇군.
“그 반응 뭔데? 내가 꼭 누군가를 죽여 봤어야 했냐?”
아무것도 아니다
미묘하게 유천을 쳐다보던 킬리언은 유천이 남기라고 했던 놈 하나를 쳐다봤다.
저놈은 왜 살려놨나?
“......”
이제 그놈들이 거의 다 왔다.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뚜벅뚜벅
킬리언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은 유천에게는 최후의 선을 넘기를 종용하는 듯 들렸다.
...터벅터벅
킬리언도 유천도 알고 있었다.
...터벅터벅
그 선을 넘는 순간 다시는 못 돌아간다는 것을.
...터벅터벅
유천은 천천히 걸어서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녀석 앞에 섰다.
“사,사,사,살려줘... 내가 대장님한테 자,잘 말해줄게 응? 여,여기도 나쁘지 않다고! 여자도 마음대로 안을 수 있고, 야,약도 마음껏 공급받는다고! 그,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 제발!!”
유쳔은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는 녀석의 머리에 살짝 손을 올렸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 녀석을 무시하고 돌아본 킬리언은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인상을 썼다.
‘시발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유천은 선택했다.
콰드드득!
선을 넘기로.
삼류 엑스트라 놈의 머리를 문고리 돌리듯 돌려버린 유천은 손에 남은 역겨운 감각에 머리가 어질했지만, 참고 킬리언을 노려봤다.
유천은 그 모습이 마치 첫 사냥에 성공한 자식을 흐뭇이 보는 사자의 모습 같아서 짜증이 났다.
수고했다.
“됐어”
놈을 처리하고 킬리언이 있는 위치로 돌아간 유천은 놈들이 어딨냐고 물었다.
저기 있다.
한 500m 앞 온갖 무기를 들고 있는 놈들이 이곳을 노려보고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