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추적
* * *
각성자 협회 정문 앞 광장
웅성...웅성...웅성...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한성태는 뭔 일 났나 생각했다.
“어? 선배 저기 저거 관측기구 애들 아니에요?”
“?”
아까까지 꿍한 채 중얼거리던 놈이 쿨한 척이라도 하고 싶은지 멀쩡한 척 다가와 말을 걸며 광장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한성태는 후배놈이 가리킨 정문을 쳐다보니 200여명의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하지만 이들이 시끄러운 건 새로이 들어온 200여명의 인원 때문이 아니었다.
“와... 저 사람이 그 이도경이에요?”
이도경, 마나 관측기구의 국장으로 있는 그는 대한민국의 3명의 랭커 중 한명이자 저 회의장에서 3대 길드의 길드장들과 회의 중인 각성자 협회장 이만성과 형 동생 하는 절친한 사이다.
‘저 사람까지 왔다고?’
최소 인원을 제외한 전국의 각성자들을 다 데려와 놓고, 거기에 마나 관측기구까지 온다고?
‘이번 일 명확히 이상하다’
웅성웅성웅성!!!
갑자기 이도경이 등장했을 때보다 족히 두 배는 시끄러워진 소리에 한성태는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시끄러운 곳을 쳐다봤다.
야 저거 양하연 아냐?!
뭐?! 야! 나와봐 나도 좀 보자
와씨 존나 예쁘다 시발...
‘뭐 양하연?’
한성태는 깜짝 놀라 휙하고 그곳으로 돌렸다.
화사한 분위기, 윤기 흐르는 금빛 머리칼과 머리색과 녹색 눈동자, 신이 직접 빚은 듯 완벽한 비율의 몸매를
세상에 몇 없을 절세의 미녀가 정문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는 이도경에게 다가갔다.
한성태는 그런 미인을 보고도 인상을 썼다.
‘한국의 3대 랭커가 모두 모인다고...?’
3대 길드를 포함한 전국의 모든 길드
대한민국 최고의 무력 집단 협회
던전이나 포탈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고 대처하는 최정예 소수 전투 집단 마나 관측기구
거기에 양하연까지
대한민국 각성자 전력의 90%가 지금 이곳에 몰려있다.
‘이정도의 무력이 동원될 사안이 있다는 말인가?’
“와...예쁘네요.”
“뭐라고?”
“양하연이요 졸라 예쁘지 않습니까? 선배”
하아...
‘내 꼴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냐?’
본래 한성태는 전대 길드장 때부터 지금까지 15년, 15년간 황금새 길드에서 활동해오며 간부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전대 길드장 사후 그 동생인 안건수가 자리에 오르고 그에게 밉보인 일이 있은 후 길드 내 교육부서로 밀려났다.
그것도 이런 멍청한 예비길드원 한명만 존재하는 부서로 말이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
또다시 궁시렁거리는 놈을 무시하고 생각을 이어갔다.
‘북쪽의 괴수들이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나?’
현재 괴수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 옛 북한은 지금 이순간도 포탈이나 던전을 통해서 괴수들이 유입되는 마굴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북쪽이 포화상태가 되면 괴수들이 밀려 내려올 거라고 주의해야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최소 5년 후라고 했다.
‘그것도 아니면 설마 중앙세계에서 빌런이 넘어왔나?’
중앙세계 출신 빌런들이 간혹 넘어 게이트를 타고 넘어올 때가 있는데, 과연 중앙세계 출신인지, 그들이 치는 사고는 사이즈가 달랐다.
도시 하나를 날려버린 빌런단체 멸망숭배자의 재앙강림 사태
지구 전체를 괴수 사육장으로 만들어 그들의 생태를 알고자 했던 미치광이 마법사 적색지팡이 파르쿤달,
‘이 세상의 신은 오로지 창조주뿐이다’를 외치며 떠나간 신만을 울부짖으며 바티칸을 습격한 빌런단체 ‘검은 선자들’
역사에 흑점으로 남을 사건들이었고, 이걸 해결한 것 또한 중앙세계에서 파견 온 랭커로만 이루어진 13위원회 직속 부대 ‘집행자’였다.
‘아니 그런 놈들이 넘어 온 거라면 우리끼리 해결하려고 할 리가 없다. 당장 정보 통제하고, 집행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나는 시기가 안 맞아서, 하나는 가능성이 없어서고 그럼 뭐가 있지?’
“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한성태는 전화를 하다 경악하는 이도경과 그 옆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양하연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
“다들 비키십시오!”
방금 들어온 전화를 받고 이도경과 양하연은 관측기구의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협회 회의장으로 뛰어갔다.
‘아까 느껴진 불길한 느낌과 관련이 있다’
각성자들이 몰려있는 협회 광장 입구에 도달했을 때 느꼈던 불길한 감각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다.
이도경은 옆에서 인상을 쓴 채 함께 뛰고 있는 양하연을 쳐다봤다.
‘착각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는 정령들 또한 불길한 감각을 느끼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온 전화
‘분명 네임드가 사라졌다고 했었지’
마나 관측기구 관측소에서 온 전화에 따르면, 철원에 있던 네임드의 마력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각은 나와 양하연이 그것을 느꼈을 때와 동일하다.’
이도경과 양하연이 슬슬 수만명이 모인 광장을 벗어난 그때
“저건 무슨”
회의장에서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에서도 당황해 하는 기색을 보이는 걸 보면 저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판단됐다.
‘형님과 3대 길드가 이야기가 잘 안됐나?’
저 거대하고 강대한 마력은 분명 협회장 이만성의 마력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연양 빨리 가세나”
“네... 그러시죠”
팡!
다리에 마력까지 실어 순식간에 회의장 입구에 도착한 이도경은 회의장의 문을 쾅하고 걷어차서 들어갔다.
“형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놈들이 형님을 이길 수 없지만 무슨 더러운 수를 썼을 지도 몰라 그러니 가장 가까운 길드장부터...’
“형님...?”
“어? 도경이 빨리 왔구만 허허”
“이게 무슨...?”
상황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끄아악!! 이거 놓으십시오!”
“꺄아아악! 이 빌어먹을 노친네가 감히 내 머리를 잡아 이거 놔!! 죽여버릴거야!”
해원의 도갑수는 옆에서 한숨을 쉬며 앉아있었고, 나머지 길드장 둘은 이만성에 의해 각각 한 손씩 머리가 잡힌 채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게...무슨 일입니까?”
“음...상황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빠악!
이만성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두 길드장의 머리통을 부딪쳐 기절시켰다.
“어이 도갑수”
“뭔가...?”
“랭커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이 두 머저리 데리고 나가있게, 저 밖에서 오해하고 무기 꺼내드는 놈들한테 상황 설명 좀 하고”
이도경과 양하연을 따라 들어온 각 길드 소속 각성자들이 황금새와 여명의 길드장이 협회장의 공격을 받는 줄 알고 무기를 든 채 둘을 내려놓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같이 들으면 안 되는 이유는?”
“넌 자격이 없으니까”
“랭커가 아니어서...?”
“어 그러니까 나가”
빠득!
안 그래도 한국의 랭커들에게 혼자 열폭하고 있던 도갑수에게 이만성은 팩폭을 날렸다.
“이봐...이만성이 나이를 먹으면 말이야 남는 거는 자존심밖에 없네...”
“아 알았으니까 나가시게”
충혈된 채 이만성을 노려보던 도갑수는 살기를 뿌리며 회의장을 벗어났다.
“저리 내버려둬도 됩니까?”
“뭐가 말인가?”
“도갑수, 저러다 사고 한 번 크게 칠지 모릅니다.”
이도경은 지 말대로 자존심뿐인 영감탱이를 크게 도발한 이만성을 걱정했다.
남은 게 자존심뿐이라는 건 그 자존심이 뭉개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 아닌가?
“뭐...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반쯤 부서진 거대한 원목테이블에 걸터앉은 채 깍지를 낀 이만성은 진지하게 두 명의 랭커들을 쳐다봤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들끼리 비밀리에 철원에 가서 확인해봐야 한다는 거군”
“네 아마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그들은 아까 전에 느꼈던 불길한 기운, 그리고 사라진 네임드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 랭커들끼리 비밀리에 철원으로 확인을 하러 떠나기로 했다.
“하연양 아까 그 말은 확실한 이야기인가?”
“네 아까 그 힘, 아이들 말로는 괴수는 절대 아니라고 했어요.”
그들이 직접 그 위험한 곳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하연의 정령들의 말 때문이다. 저 말대로라면 네임드가 아닌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이니까
“자칫 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도경과 이만성은 적인지 아군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또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 제 3의 존재, 그것도 네임드와 동급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자가 새로이 등장한 것에 머리가 아팠다.
“지금 당장 가도록 하지”
“정부에는 알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됐다네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네 그럼 밑에 애들한테만 얘기해 놓고 가지요”
이도경과 이만성은 자신들의 측근들만 불러 얘기했다.
“그럼 이제 출발하지”
그렇게 랭커 세 명은 협회를 몰래 빠져나와 강원도로 향했다.
*
황해북도 어딘가의 동굴
본인 때문에 서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유천은 옛 휴전선을 넘어 지금은 괴수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황해북도의 동굴에 킬리언과 들어와 있었다.
거기에서 유천은 킬리언에게 대체적인 외차원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의 마계랑 비슷하군’
27명의 군주, 그 밑의 마족들, 그들과 공생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경쟁을 하는 야생의 괴수들. 독특한 건 마족의 근원이 괴수라는 것 정도?
외차원은 대략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도 스스로를 마족이라고 칭하기도 하였고 말이다.
‘여전히 의문점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해결하고’
도시로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 사안인 만큼 다른 궁금한 것들은 다음에 묻기로 했다.
‘문제는...’
“이제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뭣?! 살려주기로 했지 않았나?!
“아니 죽인다는 게 아니라, 너 지금 모습 누가 봐도 괴순데 어떻게 하려고?”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철컥!
봐라 이 모습이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 킬리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고 있던 갑각이 몸안으로 흡수되고 거기서 나온 모습은 유천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건강한 갈색피부와 고르게 발달한 근육은 최고의 명마와 같았고, 찬란한 은빛머리는 어두운 동굴을 우주로 한 홀로 고고한 별을 보는 듯했다.
아마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크엘프다! 라고 소리칠 미녀가 튀어나온 것에 유천은 멍하니 쳐다봤다.
스스로 마족이라고 칭해도 괴수와 크게 다를 바 없던 외형에서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이 튀어나온 것도 놀라운데 문제는 그녀가 마치 변신하다가 중간에 멈춘 마법소녀와 같은 꼴이었다는 거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숨겼을까 싶은 가슴과 탐스러운 빛을 뿜는 유두, 그리고 털 한 점 없는 도끼...
“야이씨!!”
음 왜 그러는가?
“좀 가려라!”
인간과 차이점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누구나 돌아볼 미녀의 야외노출은 아직 평범한 유천에게는 너무 수위가 높았다.
뭐가 문젠지 모르겠군 애초에 그대도 아까까지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있지 않았나?
“그건 새꺄! 니가 다 찢어먹은 거잖아!”
킬리언과의 싸움 이후 옷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지만, 유천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킬리언의 ‘그거 덜렁덜렁 흔들리는데 안 불편한가?’라는 말에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자신의 상태에 경악을 느낀 유천은 간신히 찾은 버려진 창고에 있던 낡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가리지 않은 채로 당당히 거대한 흉부를 내밀고 있는 킬리언에게 입고 있던 상의를 던졌다.
“이거라도 입어라”
음...꺼칠꺼칠한게 불편할 거 같다만...
“쳐 맞고 강제로 입혀지기 전에 니 손으로 입어라”
아,알았다
킬리언에게 들을 게 많이 남은 유천은 그녀를 도시로 데려가야 했다.
‘저 꼴로 데려가면 나를 감옥에 집어넣으려 하겠지’
벌거벗은 여자를 데리고 온 남자라... 바로 빌런 취급당할 것이다.
“후, 너한테 물어볼게 참 많은데 일단 저 남쪽의 도시로 들어가야 하니까 계획을 말해줄게”
그냥 들어가면 아, 알았다
“얌전히 들으세요~ 네?”
한 마디 한 마디 일일이 토를 다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마족 특유의 회복력에 의해 외부는 멀쩡해 보였지만 아직 낫지 않았기에 그랬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천은 꾹 참고 말했다.
“일단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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