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9화 (9/116)

〈 9화 〉 함정(2)

* * *

참아보자고 했음에도 검게 물든 살의가 이만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안건수와 나머지 길드장들은 움찔했다. 앞에 있는 덩치 좋은 노인이 어떤 인물인지 알았기에.

마나 관리기구 국장 이도경과 함께 중앙세계에서 용병생활을 하며 전위를 책임진 랭커.

안건수는 그의 전투망치 앞에서 어지간한 괴수들은 한 방에 다진 고기가 되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손이 축축해졌다.

‘저 자는 지금 길드가 필요해’

스스로 족쇄를 찬 사자를 무서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안건수는 그 사실을 떠올리곤 진정했다.

“하하...충분히 합리적인 조건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헛소리 말고 본론을 얘기하게”

안건수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금방, 동물원 사자에게 또다시 겁을 먹었다는 것에 이가 갈렸다.

‘어차피 우리 의도대로 끌려올 수밖에 없는 빌어먹을 노친네가...’

손발 끊긴 병신주제에 여전히 고고한 척하는 눈앞의 노인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진짜로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협회를 집어삼킬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는 아주 노예처럼 부려 먹어주마...’

쉴 시간 없이 계속된 임무로 놈은 자신의 손녀를 직접 볼 수 없을 거다. 기껏해야 살아있는 지 확인하는 것 정도겠지.

‘그때 니놈 손녀년을 돌려먹어주지’ 안건수는 병약하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이만성의 손녀딸을 떠올렸다.

고작 딸뻘인 그 아이가 자신과 길드원들에게 돌려 먹히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찾아 울부짖을 모습을 생각하니 아랫도리가 불룩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기에, 안건수는 3대 길드의 수장답게 더러운 속마음을 숨기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음... 여러 그룹분들이 아주 큰 손해를 자처하면서 소중한 길드의 각성자분들의 목숨을 지키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협회장님께서 기어코 그들을 전장에 끌고 가시겠다고 하면 저희가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참 괴롭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저 놈이 아까 전까지만 해도 갈 수 없다고 소리 지르던 놈과 동일인이라는 것이 이만성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

“...마지막으로 묻지 뭘 원하나?”

구구구구궁....

이만성은 한 번만 더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모든 걸 뒤집어 버리겠다는 듯 참지 못하고 살의를 담은 마력을 퍼트렸다.

만약 그가 모든 걸 포기하고 손녀를 데리고 중앙세계로 돌아간다면 자신들도 곤란해지기에 안건수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협회의 괴부권, 저희에게 넘기시죠 저희가 협회보다 훨씬 높고 합리적인 가격에 각성자분들을 상대로 매입하겠습니다.”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알 텐데?”

“각성자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건데 그게 어째서 말이 안 되는지 저는 잘 이해가 안 갑니다만? 여기 있는 저희를 포함해 각성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협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

괴부권, 정식 명칭은 괴수 부산물 매입권이다. 각성자들이 괴수를 사냥하면, 그것을 오로지 협회에만 팔 수 있도록 하는 협회의 독점권한이다.

분명히 의도를 떠나서 저 말에는 틀린 게 없다.

예를 들어 실제 가치 120만 원정도 하는 부산물을 각성자가 얻으면 협회는 90만원에 그것을 산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협회의 괴부권은 조세법이 아닌 각성자관리법에 포함되어있어, 각성자들은 조세법에 따라 이중과세를 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각성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걸 빼앗기면 안 된다’

협회는 독립된 국가기관이고 통제기관인 만큼 생산력이 있는 기관이 아니다.

협회는 괴부권을 통해 소속 각성자들의 전력을 강화하고, 운영자금을 얻는다.

경제권이 없으면 종속될 수밖에 없다.

즉, 괴부권을 잃은 협회는 결국 어딘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결국 빌런이나 악성 각성자들에게서 국가를 지킬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놈들은 각시탈 사태로 얻은 게 없는 것인가?’

“협회장님께서는 돈이 많이 아까우신가본데~ 맘에 안 드시면 협의서대로 하시면 되요~”

그때 지금까지 아무 말 않고 있던 여명 길드장 문혜미가 입을 연 것을 보고 안건수와 지금까지 조용히 이만성을 비웃기만 했던 도갑수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본래의 이야기 된 대로라면 안건수가 협상을 진행하고, 도갑수는 중간 중간에 견제를 넣고 문혜미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아! 대신 기사로 참 재밌는 게 나올 거 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 음...”

‘쟤 갑자기 뭘 하는 거야?’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가는 행태에 멍하니 그녀를 봤다.

안건수의 눈에는 아까 한계였던 이만성의 몸으로부터 섬뜩한 살의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젠장! 막아야해!’

서로 협의한 대로 행동하지 않고 돌발 행동하는 문혜미를 속을 씹으며 그녀를 불렀다.

“저... 여명 길드장?”

“아 뭔데요? 지금 나 생각하는 거 안 보여요?!”

“아...알겠습니다.”

“아 씨발 까먹었잖아”

‘미친년...’

같은 3대 길드로 묶여 있지만 황금새와 여명은 활동 영역이 달랐던 만큼 안건수는 그녀와 엮일 일이 별로 없었다.

이번 협의문의 경우도 그룹들끼리 만든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 받은 것이다.

하지만 소문들은 종종 들어와서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단순히 소문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스컴에서는 제법 겸손한 모습을 보이길래 설마 그런 소문들이 사실일까 했는데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미쳐도 보통 미친년이 아니었다.

같은 3대 길드 길드장임에도 거침없는 욕설, 그 외의 소문들의 정보를 조합해보면 저 년은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다.

‘그러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저렇게 앉아있겠지’

그녀는 도저히 회의장에 온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새틴 소재의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길쭉한 다리를 꼰 채로 앉아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는 레이스 팬티가 고스란히 보였다.

‘알겠군 저 년이 갑자기 계획에 없던 짓을 저지르는 이유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그녀는 아까 으르렁댄 이만성에게 겁을 먹었다는 거에 지금 눈이 돌아간 거다.

자신보다 아래인 상대가 감히 자신을 협박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나간 년 상대가 누군데’

어느 누구의 생각도 중요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예절관념 따윈 없는 태도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오만함

안건수는 회의가 끝난 후 어지간하면 저년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 생각났어요! 기사 제목!”

‘맞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이만성에게서 나오는 피 냄새가 짙어가는 것을 느끼며, 안건수의 손은 축축해졌다.

‘저 말이 입밖으로 나오게 하면 안 된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주둥이에서 나올 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협회를 집어삼키기 위해 3대 길드와 그 후원 그룹들이 짠 판이 모두 뭉개질 거라는 것을

‘시발!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여명길드장!”

“?”

“하하...일단은 할 일부터 하시는 게...”

“......”

“저희가...그 해야 할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시발 좆만 한 게 일은 좀 잘 하는 거 같아 보여서 내버려 뒀더니 아까부터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네?”

“......예?”

“기어오르지 마시라고요~ 병신새끼님아~ 어디서 감히 아까부터 내 말을 끊어쳐먹으시냐고요? 네?”

“......”

빠드득­!!

*

‘일이 재밌어졌군’

3대 길드와 그 후원 그룹의 계략에 의해 외통수에 몰렸던 협회장 이만성에게 여명 길드장 문혜미의 뜬금없는 트롤짓 때문에 활로가 생겨났다.

‘갑자기 왜 저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맙군’

황금새 길드장 안건수의 표정은 회의 초반 거짓으로 분노하고 소리 지를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외통수에 몰린 상황을 비웃기만 하던 해원 길드장 도갑수 또한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계획이 일그러지자 당혹을 금치 못했다.

‘좀 더 흔들어 볼까?’

“뭘 계속 야리니~ 병신새끼야”

!!!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의 각성자들을 가장 앞에서 이끌어가는 사람 넷이 모인 자리에서 문혜미는 안건수를 대놓고 모욕했다.

처음에는 모욕을 듣고도 참는 안건수를 흔들어보려던 이만성이었지만, 스스로 폭탄을 지고 뛰어드는 문혜미의 행태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저런 년이 그 거대한 길드를 유지할 수 있던 거지?’

항상 그렇듯 증거는 없었지만, 문혜미의 패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온 이만수는 그녀가 어지간한 빌런보다 더 악독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길드장의 자리에 오른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문혜미는 다른 두 길드장과는 항상 협회에 대리인만을 보냈다.

한 마디로 이 자리가 이만성이 그녀를 처음으로 대면한 건데 저런 미친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만수는 수상함을 느꼈다.

‘영산그룹이 저런 미친년이 이끄는 길드를 후원한다고?’

저 년은 힘세고 덩치만 큰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었다.

기분이 좋으면 웃고, 나쁘면 화낸다. 이성적 판단이 없는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누군가 뒤에 있다...’

이만성은 저런 년이 그런 패악들을 저질렀으면서 아무 문제없이 그 거대한 길드를 운영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실질적으로 여명을 움직이는 누군가가 있다’

‘누구지?’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남과 그에 따른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은 이만성은 일단 상황을 수습하려고 하는 찰나,

“이 좆만한 년이...!!”

파지지직­!

결국 안건수는 참지 못하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랭커만은 못하지만 S+랭크의 각성자인 만큼 마력의 밀도는 상당했다.

“뭐?! 좆만 한?! 감히 나한테!!”

우우우우웅...

미친년이라고 해도 역시 이지연과 함께 양하연의 뒤를 이어 다음 랭커가 될 거라고 불리는 만큼 훨씬 어린 나이였음에도, 문혜미는 안건수의 마력에 밀리지 않았다.

‘지연이랑 비교하기에도 미안한 년이지만’

콰드드득...

안건수의 청색빛 마력과 문혜미의 자색빛 마력이 충돌하여 거슬리는 소음을 발산했다.

“그만­!! 그만하게!!”

‘드디어 입을 여는군’

회의가 시작하고 지금까지 뒤에서 되도 안 하는 폼을 잡으며 자신을 비웃던 해원 길드장 도갑수가 당황하며, 싸우는 두 길드장을 막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둘 중 먼저 공격하는 사람을 공격할 거니까 둘 모두 가만히 있게!”

도갑수가 보라빛 마력을 끓어 올리고, 달려들려고 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해원길드장님!! 보셨지 않습니까? 저 개년이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말입니다!!”

“개년~?!! 이 씨발새끼가 개년이라고?!!”

“그만­!! 그만하게!!”

길드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모욕에 눈이 돌아간 안건수

감히 이 세상의 주인공인 자신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서 눈이 돌아간 문혜미

그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둘을 말리는 도갑수

‘놀고들 있군’

한국 최고의 길드라는 곳의 수장들의 모습을 본 이만성은 가슴이 웅장해졌다.

“이만성­! 각성자 협회장이라는 자가 왜 가만히 있는 겐가?!”

그렇게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이만성은 도갑수의 외침을 듣고 코웃음쳤다.

‘웃기는 새끼, 언제부터 협회의 역할을 존중해줬다고 저딴 말을 지껄이나’

그리고

“씨발놈이 언제부터 친했다고 반말이야 반말이...”

“이만성­!! 빨리!”

안건수의 주변으로는 10여개의 청색창들이 살벌한 전류를 뿌리며 나열하고 있었고, 문혜미의 등 뒤로는 공간을 찢고 자색 거인이 나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맘 같아서는 저 둘이 싸우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뒀다가는 끝장이다. 하나로 합쳐야 할 힘들이 모조리 분산 될테니까.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 이만성은 저 둘을 말리기 위해 거구를 일으키고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때

오싹­!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자취? 흔적? 아니 잔여물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만성!! 이 둘이 싸우면 다 죽어! 북쪽의 네임드를 길드의 도움 없이 막을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저놈들은 모른다. 이만성의 랭커로서의 뛰어난 감각은 감지했다 어떠한 파괴적인 힘의 잔여물이 자신의 몸을 통과해 공간을 타고 퍼져나가는 것을.

‘이정도로 강한 놈이라고?’

이게 네임드로부터 나온 힘이라면 계산했던 승산은 더 떨어진다.

으득­!

절망에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킬 게 남은 이만성은 의지를 세웠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일단’

콰앙!

그 사이 결국 둘은 참지 못하고 부딪혔고, 그 충돌에 거대한 회의실이 부서져갔다.

‘저 철없는 것들부터 막고 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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