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8화 (8/116)

〈 8화 〉 함정

* * *

7화(함정)

“후, 야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자”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이렇게 난동을 피웠으니까 사람들이 몰려올거다.”

­흥! 내가 왜 그런 약해빠진 버러지들을 신경써야하지

‘아 짜증난다. 이러니 수만 년간 전쟁을 벌이면서 한 번도 휴전이 없지, 시발 아주 그냥 말이 안통해요’

유천은 아까부터 죽고 싶다는 듯 삐딱선을 타는 킬리언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칠까 손을 들었다.

­자,잠깐! 지금 네놈한테 맞으면 나는 죽는다!

아, 맞다.

안 그래도 빈사상태인 녀석이다. 괴수 놈들 특유의 회복력이 아니었으면, 골골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유천은 움찔거리며 겁을 먹은 킬리언을 보며 다시 한 번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겼다.

“하아... 야 내가 이곳으로 올 사람들에게 걸리면 안 돼서 그래요 알아 들으셨어요?”

­아, 알겠다

정보고 뭐고 이번에도 삐딱선을 타면 그대로 죽이고 떠나려고 했는데, 녀석의 생존본능이 살기 위해 일하는 지 얌전히 유천의 말에 따랐다.

“그래 일단 너 움직일 수는 있냐?”

­그래, 아까 전투 상황과 같은 움직임은 불가능해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회복됐다.

“그래? 그럼... 저쪽으로 가자”

유천은 북쪽을 가리키며 킬리언에게 말했다.

*

­각성자 협회­

“쓰벌...”

비번인 날에 갑작스럽게 소집된 황금새 길드 소속 AA급 각성자 한성태는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소집시킨 협회 때문에 저기압이었다.

“아니 선배님 이게 말이 됩니까? 아니 지들이 협회면 답니까? 이렇게 막 오라가라하게”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후배놈 또한 그 저기압의 원인 중 하나였다.

“야”

“예?”

“협회면 다냐고 했지?”

“아, 네”

“협회면 다야”

“네? 그게 무슨...?”

“협회면 다라고 임마”

계속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후배 때문에 짜증이 난 한성태는 담배를 바닥에 지져서 끄고 후배를 노려봤다.

“야, 너 아카데미 출신 아니지?”

“아, 네 저는 그, 각성 하자마자, 돈이 벌고 싶어서...”

“지랄 안간 척하기는, 안 간 게 아니라 못 들어 간 거겠지 임마”

한성태의 직설적인 발언에 후배는 무안한 척 고개를 숙이고, ‘시발 지는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꿍얼꿍얼 거렸다.

‘어휴... 다 티 난다 병신아’

한성태는 각성자가 되기 위해 쓰는 서류에 몇 줄 안 되는 의무사항중 하나인 협회의 소집권도 모르는 한심한 후배놈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재능도 보잘 것 없고, 그렇다고 그 재능을 갈고 닦거나 스킬을 얻을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본인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망상을 하며 살아가는 놈이다.

거기에 눈치도 없고 사회에 불만만 많다.

‘저런 놈이 힘을 얻으면 세상 모든 기득권이 악이라며 설치고 다니겠지’

한심한 후배놈을 보고 한성태는 어제 심심해서 본 삼류 이고깽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길드장이 덩치를 키우겠다고 어중이 떠중이 다 받아주다보니 저런 병신도 들어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집이라...’

한성태는 옆에서 궁시렁대는 놈을 무시하고, 현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각성자 등록을 할 때 서류작성 동의 란에 협회의 소집 시 명시된 특별한 사안이 없을 경우 거부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한마디로 옆에서 꿍얼대는 병신이 했던 말은 개소리다. 협회는 각성자들에게 오라가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각성자 소집권은 쉽게 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5년 베테랑인 한성태도 소집권 발동을 받은 적은 8년전에 딱 한번 뿐이었다.

‘각시탈 사태’

중앙세계의 빌런단체의 지원을 받아 국가 전복을 계획하고 실제로 실행한 미친놈들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그때뿐이었다.

그때의 끔찍한 상황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소집된 상황이 영 불안하기만 하다.

거기에 각시탈 사태 때는 서울의 길드만 소집되었지, 부산의 해원, 대구의 여명은 소집하지 않고 경계 및 대기 명령을 내렸었다.

허나, 지금은 그들도 최소 인원을 제외한 길드장을 포함한 전원이 서울에 모였다.

심상치 않은 상황과 15년 동안 들어온 ‘현’ 대표길드장들이 어떤 자들인 잘 아는 한성태는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제발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원래 내일 한성태는 여자친구와 약혼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에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집에 결국 약속은 취소됐다.

‘시발 이거 클리셰 같은데’

나름 중진 각성자인 주제에 웹소설을 읽는 게 취미인 한성태는 판타지 단골 클리셰가 떠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서 그녀에게 고백하겠어!

­여기 사진 봐 예쁘지? 내 약혼녀야 하하하, 내가 전역하면 나와 결혼해 주기로 했지. 살아서 그녀에게 돌아가겠어!

한성태는 귀에서 맴도는 그 불길한 느낌에 평소에 믿지 않았던 신에게 기도했다 살아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

­그 시각 협회 회의장 내부­

“저희는 안 갑니다! 아니! 못 갑니다!”

“명령일세”

“우린 길드입니다! 아무리 협회라고 하더라도 저희 보고 죽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회의장 내부는 대표길드중 하나인 황금새 길드 길드장 안건수와 각성자 협회장 이만성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3대 길드를 대표한 안건수와 협회를 대표한 이만성의 다툼이었다.

‘저 빌어먹을 보신주의자 새끼들이’

돈 되는 일에는 누구보다 빠르고, 조금의 손해를 보는 상황이 오면, 몸부터 사리고 못하겠다며 거품을 물며 배 째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저들의 행태에 이만성은 진절머리가 났다.

던전이 나타나면 보이지도 않다가 국가기관 소속 각성자들이 A급 이상의 고위험 괴수들을 처리하면 그때서야 슬금슬금 기어나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는 우리 땅인데 멋대로 들어와서 던전을 토벌하냐고, 재산권 침해라며, 언론에 고소하겠다며, 안에서 나온 부산물들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하지를 않나

자기들 기준 고위험 저수익 괴수가 나타나면, 발견하지 못한 척하다가 처리하고 나면 나타나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자기들에게도 배분이 떨어져야 한다지 않나

이만성은 저 가증스런 아가리를 찢어 놓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걸로 분노를 표출하기에는 오랫동안 너무 많은 걸 봐왔고, 저들의 협조가 없으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네임드를 상대하라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상대하라는 게 아닐세 그저 공격범위 밖에서 녀석의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 걸세”

“그게 그 말이지 않습니까?! 놈이 미쳐서 일반 길드원들을 공격하면 떼 몰살당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그대들은 무슨 역할을 맡겠다는 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이 나라를 버리겠다는 건가?”

“협회장님! 함부로 저희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언제 이 나라를 버리겠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그대들은 뭘 할 거지?”

“크흠... 사실 저희가 준비한 협의문이 있습니다.”

진짜 위험한 곳에서 싸우는 건 국가 소속 각성자들인데 귀를 닫고, 눈에 핏줄을 세운 채로, 침을 튀기면서, 본인들의 안전만 주장하던 놈이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자마자 태도를 바꾸고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웃으며 서류를 내미는 모습에 이만성은 궁금했다.

‘저 친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친히 두개골을 열어 확인해 보고 싶었군.’

속으로 놈의 머리통을 가르는 상상을 한 이만성은 빠르게 이 자리를 정리하고 길드를 이끌고 이도경, 양하연과 합류하여야 했다.

강원도에 있는 네임드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이 안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이권 다툼을 해야하는 상황이 진절머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길드가 없으면 네임드 토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 채 아무 말 없이 협의서를 받은 이만성은 안건수가 준비한 서류를 한 장 한 장 빠르게 읽어나갔다.

흥분하여 붉게 물든 이만성의 얼굴이 다시 냉정한 협회장으로 돌아온 것을 본 안건수는 협의서의 내용의 본의를 이만성이 안다면 절대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3대 길드의 후원그룹인 만호, 영산, 동양그룹에서 개발한 마도구를 이번 작전에서 원가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대신 수송 중에 괴수가 나타날 수 있으니 3대 길드는 그걸 지키겠다는 거군’

어이가 없었다.

지구에 들어온 지 20년, 산업에 적용한지는 고작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기술력으로 만든 마도구가 정말 네임드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웠다.

거기에 더해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들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올 뻔했다.

그래놓고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안건수의 모습을 보니 심장을 통해 검은 살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이만성은 안건수에게서 눈을 돌려 나머지 대표길드 길드장 둘을 쳐다봤다.

부산의 해원길드장 도갑수, 대구의 여명길드장 문혜미

전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다.

‘도갑수, 저 늙은이는 주제도 모르고 지 멋대로 나와 도경이 녀석한테 열등감을 느끼면서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지’

자신이 곤란해 하는 모습이 재밌는지 놈은 실실 쪼개고 있었고

‘문혜미, 사갈 같은 년’

자신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고 있는 여명길드장을 보고 과거의 어떤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저건 심증으로는 확실히 빌런으로 집어 처넣어야 할 년인데 물증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처단‘하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핏줄을 타고 살의가 전부 죽이라고 소리쳤지만, 이만성은 다시 한 번 이 협의서의 본의를 냉정하게 생각했다.

‘놈들은 멍청하지 않다. 우물 안 개구리 일뿐이지, 그 말은 우물 안에서 만큼은 최고의 권력자라는 말이고’

이 협의서의 내용은 단순히 보면 각성자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기업이 스스로의 이득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투에서 죽어나갈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마도구를 원가에 대량 제공하겠다.

정말 아름답고 온정 넘치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자신들이 만든 마도구 따위가 네임드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도구 따위는 연막에 불과하다.

이 빌어먹게도 감동적인 협의문의 핵심은 3대 길드가 전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협의대로 3대 길드가 참여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길드들도 참여하지 않으려 할 거다.

‘3대 길드는 참여 안 하는데 왜 우리만 참여하냐며 들고 일어나겠지’

그렇다면 길드 뒤에 있는 그룹들의 본목적은 뭔가?

‘협회의 권한을 뜯어 가는 게 목적이군’

길드들이 협조하기를 바라면, 협회에서 독차지하고 있는 권한을 양보하라는 거다.

직접 권한을 달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길드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협회와 거래했다는 여론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거고.

‘그게 끝이 아니다’

네임드와의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분명 수많은 각성자들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 3대 길드와 그룹들은 언론을 통해 우리는 협의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을 사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 할거다.

그들은 ‘우린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 했으며 이를 협회에서 거절하고 강행한 것’이라고 말할 명분이 생긴다.

일반 대중은 알 수 없다.

그 마도구들이 네임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 죽고 말해봤자 뒤늦은 궤변이 될 거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 기자회견을 하고 싶어도 시간도 장소도 없다.

거기에 눈앞에 있는 놈들이 보내줄지도 의문이고.

‘능력 많고 인류애 넘치는 기업들을 억압하는 적폐 협회라’

결국 그러한 수많은 여론의 지탄과 네임드 토벌 후 커다란 무력을 잃은 협회는 가지고 있는 권한을 하나씩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부스러기만 남은 협회는 3대 길드와 그 후원그룹들의 나눠서 먹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목적은

‘나에게 목줄을 씌우는 게 진짜 목적이었군’

원래라면 손도 못 댈 랭커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드는 것.

그게 이 계획의 마침표다.

그러면 그냥 한국을 떠나면 되는 거 아닌가?

허나 이만성은 그럴 수 없다.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손녀딸아이가 이 땅에 있는 이상, 가족이라고는 자신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날 수 없다는 걸 놈들은 잘 알고 있고 말이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참 대단해’

네임드가 나타나고 고작 8시간 지난 상황, 그 사이에 이런 치밀하고 악의 넘치는 수를 쓴 놈을 향해 이만성은 한탄에 가까운 감탄을 내뱉었다.

‘그 머리를 국가를 위해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이만성은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안건수를 보며 말을 건넸다.

“뭘 원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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