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킬리언(2)
* * *
처음에는 기뻤다.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라고, 놈은 강자가 맞다고.
킬리언은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유천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콰앙!
그러나, 몇 번을 더 부딪쳐 본 킬리언은 다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킬리언의 눈에 그는 강인한 육체를 지녔지만 그에 비해 다른 건 형편없었다. 어째서 이 자를 강자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인지 다시 한 번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몇 번을 더 공격했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아무렇지 않지?’
저 자는 내 공격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고 자신은 그것을 비웃으며 전혀 방비를 하지 않은 치명적인 곳을 두들겼다.
그러나 주변 지형과 그가 입고 있던 옷만이 찢겨져 나갔고, 그의 육신에서는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킬리언이 인상을 찌푸리는데 유천이 눈을 감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군 눈을 뜨고도 나를 붙잡지 못했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눈을 감는 거지’
어이가 없다가 단단하기만 할 뿐 뭣도 아닌 놈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분노한 킬리언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키에에에엑!
‘그냥 맞다가 죽어라 쓰레기!’
콰앙!콰앙!콰앙!콰앙!콰앙!콰앙!콰앙!콰앙!콰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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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에에...
20여 분간 유천을 두드린 킬리언은 이제는 불길함을 느꼈다.
‘저게 말이 되는가?’
킬리언은 지금까지 싸우면서 육체가 단단한 자들과도 많이 싸워봤다. 그들과 싸우며 느낀 것은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계속해서 때리면 부서진다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그런 놈들을 부수기 위해 외차원에서도 손꼽히는 내구도를 지닌 무기를 애용했다.
그러나
‘저런 불합리한 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킬리언은 매끄러운 육각형 형태였던 둔기가 찌그러져 망신창이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사기를 당한 건가’
괴수들이 모든 이너들을 죽이는 건 아니었다. 금속을 가공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난쟁이들 같은 경우에는 납치해서 노예로 부려 먹기도 하고, 강인한 여성체의 경우에는 잡아와서 외차원의 부족한 마인을 낳게 하는 모체로 사용하기도 한다.
킬리언은 과거 난쟁이 노예들에게 데랴듐으로 둔기를 만들라고 시켰다. 그리고 완성된 둔기는 킬리언을 마족 중 자작의 자리에 오르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허나, 외차원에서 열 손안에 들어가는 금속, 단단함으로는 한 손에 꼽는 데라듐으로 만든 자신의 무구가 피륙에 의해 찌그러진 모습은 킬리언 자신이 노예놈들에게 속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에 부글부글 타오르는 속을 참고 냉정히 몸을 움츠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저 육체는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두들겨도 미동도 없는 자세에 분노한 킬리언은 전사로서 부끄러운 공격을 감행했다.
움츠리고 있다고 해도 엉성하기 그지없기에 틈이 있었고, 분노한 킬리언은
콰아아앙!!
마력을 담아 자지를 전력으로 걷어찼다.
그러나
‘저긴 마족, 괴수, 이너 가리지 않고 남성체라면 누구라도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어떻게 멀쩡할 수 있지?’
여전히 멀쩡한 자지를 보며 킬리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과 처음 느껴보는 불가해한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킬리언이 혼란스러워 하며 유천을 바라보는 사이 그가 눈을 뜨고 킬리언을 쳐다봤다.
“솜 주먹이냐? 감질 맛 난다 야”
자신이 힘들어서 숨을 가다듬는 줄 알고 비웃는 모습에 킬리언은 분노했다.
‘전사도 아닌 버러지가’
빠드득...
놈은 분명 불가해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사는 아니다. 엉성한 자세, 부족한 전투 감각, 형편없는 주먹질 등
녀석은 분명 전투를 해본 적이 없는 놈이다.
‘그런 놈이 감히! 나 킬리언을! 무시하는가?!!’
키에에에에에엑!
킬리언은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찌그러진 자신의 둔기를 들고 유천을 향해 덤볐다.
*
분노한 놈이 땅을 걷어찼다.
‘여전히 안 보이네’
여전히 유천의 감각으로는 녀석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다.
‘애초에 저 속도를 감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유천은 애초에 킬리언의 속도를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천이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5cm 킬리언이 유천의 몸에서 딱 5cm정도의 영역에 들어오길 바랐다.
‘녀석이 아무리 빨라도 나랑은 비교할 수 없지’
킬리언을 감지하지 못하는 건 유천이 느려서가 아니라 낮은 감각이 그 속도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인지할 수 있고 공격이 닿는 범위에만 있다면 내 공격이 놈 보다 더 빠르다.
한마디로 유천의 계획은 ‘너도 때려라 나도 때릴테니’였다.
‘일단은 감지가 되는지 알아야겠지’
[공간안]으로 압축한 5cm의 감각과 공간을 제압한다는 이름의 스킬 [제공(??)]으로 녀석을 감지할 수 없다면 엿 된다.
유천은 긴장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녀석을 감지하려고 애썼다.
콰앙!!
지금까지보다 더 강력한 공격, 그래봤자 안마기계 세기를 1에서 2로 올린 수준이지만 이것만 봐도 녀석이 얼마나 빡쳤는지 알 수 있었다.
‘느껴진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녀석의 공격이 몸에 닿기 전에 분명히 느껴졌다.
‘이제 기회를 기다린다.’
그저 느껴졌다고 반격하면 안 된다. 만약 반격이 실패한다면 놈은 경계할 거고 분노로 인해 발생한 아주 약간의 흐트러짐을 가다듬을 것이다. 그럼 다시 일방적으로 얻어맞게 되겠지.
그리고 잘못해서 남쪽으로 공격해서도 안 된다. 내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량 학살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괜히 힘 조절하다가 녀석을 죽이지 못하고 놓쳐서 놈이 도망치면 한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고, 그것만큼 고구마가 없으니 유천은 전력으로 녀석을 후려칠 생각이었다.
본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유천은 게임 세계관 내에 이미 멸망하고 괴수들의 천국이 된 북한이 있는 방향으로 공격을 할 생각이었다.
‘왼쪽이 북쪽이니 녀석이 왼쪽에서 공격하기를 기다린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버티던 그때 드디어 유천은 왼쪽 어깨로 내려쳐지는 공격을 감지했다.
‘기회다!’
음속보다 빠른 공격을 그것도 닿기 5cm의 거리를 남기고 인지한 유천은 이곳에 소환되고 나서 처음으로 ‘약간 강하게’ 왼쪽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다.
삐이이이이...
소리보다 빠른 공격과 폭력의 화신과도 같은 거력이 정면으로 부딪히자, 그곳에서 발생한 파동이 공간을 넘어 소리마저 찢어 버렸다.
불길한 찰나의 침묵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금까지 들리던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굉음이 공간을 울렸고, 땅이 찢겨나갔다.
튀어 오르는 땅의 파편을 무시하고 유천은 오른손의 주먹에 힘을 주며 왼쪽으로 돌았다. 전력으로 힘을 준 오른손의 손가락과 손바닥을 중심으로 공간이 아지랑이마냥 일렁거리고 있는 것을 무시하고 쳐다본 놈의 모습은 처참했다.
쿨럭!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무기는 깨진 거울마냥 갈라졌고 그곳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파동에 몸을 덮고 있던 갑각마저 부스러진 채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단 한번, 단 한번이었다.
킬리언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시작된 싸움은 처음에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때리고 맞는다.
놈의 육체가 아무리 단단해도 내 움직임을 읽을 수 없으면 놈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것이 킬리언의 생각이었고, 처음에는 문제없이 일방적인 폭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반격, 놈이 어떻게 내 공격을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놈의 왼쪽 팔꿈치가 말도 안 되는 속도와 힘을 지닌 채 뒤로 날아왔고, 킬리언은 순간 느낌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을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필사(必死)
그 공격에 죽을 운명이었어야 할 킬리언은 수많은 전투로 다듬어진 직감, 이성을 넘어 육체에 새겨진 킬리언의 전투기술, 그리고 그 전투기술이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한계를 넘어 한 단계 상승한 것까지 그 모든 것들이 죽음의 파동에서 살아남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쿨럭!
대부분을 흘렸음에도 남은 파동이 킬리언을 빈사 상태에 빠트렸다.
‘말도 안 되는 군’
피를 토하던 킬리언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적을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자를 쳐다보던 킬리언은 이너들이 우리들을 괴수로 칭하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저거야 말로 괴수 아닌가’
‘힘’ 그 자체를 결집해 놓은 존재
단순 물리력만큼은 군주들에 필적하는 폭력의 화신
경이로울 정도로 단단한 육신은 그저 저 힘의 부가적인 산물일 뿐이다. 주먹을 쥔 오른손을 보라 악력만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저 불합리한 힘을 저 주먹이 휘둘러지면 이 땅에는 재앙이 도래하겠지.
자신의 죽음이 공간을 일렁이며 걸어오는 모습을 본 킬리언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
괴물이여 그대의 이름은 뭔가?
“엥 괴수가 말도 해?”
유천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면 라스트 레거시 10년 겜창 생활 동안 한 번도 괴수와 의사소통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천이 놀라는 모습에 킬리언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들을 그런 덜떨어진 것들과 같은 취급하지 쿨럭! 마라
“뭐야? 너희들도 그런 구분이 있어?”
당연하다 그런 의사소통도 못하는 짐승놈들과 우리가 같을 리가 없지 않나?
“아니 솔직히 그르르릉 소리나 끼에에엑 소리나 거기서 거기거든”
흥! 하등한 언어를 쓰는 너희 이너 놈들이 고차원적 의사소통 체계를 이해할 리가 없지
한방에 뻗은 놈이 기분 참 드릅게 말하네
‘그냥 죽일까?’
그냥 죽일지 고민하던 유천은 의사소통이 되는 괴수라는 게임하면서도 처음 들어본 설정에 흥미가 생겨 일단 더 얘기해 보기로 하였다.
“야 내가 뭐 묻고 싶은 게 좀 있거든?”
대답해주면 살려주는가?
“...의외네...”
뭐가 말인가?
“막 ‘큭! 그냥 죽여라!’ ‘네놈 따위에게 해 줄 말 같은 건 없다!’ 뭐 그런 말을 할 줄 알았거든”
멍청하군 뭘 해도 살아야지 할 수 있다. 죽으면 그냥 끝이다.
지금은 마족이지만 탈피 전 괴수로서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킬리언은 말투와는 다르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살고 싶다면서 이 새끼가 계속 내 속을 긁네?
‘뒤지고 싶으신가?’
유천은 그런 속마음을 내뿜으며 놈을 노려봤다.
움찔! 그에 약간 겁먹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킬리언을 보며 유천은 어이없어 했다.
‘나 참... 괴수놈이 쪼는 것도 다 보고 이놈이 특이한 거야? 아니면 게임이 잘못된 거야?’
정확히는 게임이 잘못된 게 아니라 유저들이 정보를 얻지 못한 거에 가까울 거다. 결말은커녕 시나리오 진행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뿐더러,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위상은 거의 대부분 판타지 세계 속 마을 용사와 같은 위치라 힘은 강해도 정보력에는 항상 뒤처졌다.
“그래 일단 다 넘어가고 이름은 뭐냐?”
킬리언이다
“나는 고유천”
안 물었다.
“......”
아니! 왜 주먹을 드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 새끼 싸울때는 뭔가 진중한 전사 같은 이미지였는데, 이제보니 선천적으로 주먹을 부르는 주둥아리의 소유자에 얼빵하기까지 하다.
‘이 새끼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알까?’
유천은 아직 마족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킬리언 같은 괴수 태생 마족들은 강하지만, 대화예절이 부족했다.
팔을 들어 막는 포즈를 취하는 이 얼빵이를 때릴까 말까 하다가 뒤지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며 속을 꾹 누른 후 부들거리는 주먹을 내렸다.
“야...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이름을 얘기하면 자기도 이름을 얘기하는 거야 알았어?”
이너는 원래 그러는 건가? 상당히 비효율적이군
“......”
저 입부터 찢어 놓을까?
유쳔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