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게임 속으로(3)
* * *
퍼엉!
“우웨에엑...”
이걸로 두 마리째
최대한 약하게, 죽지 않고 행동 불능으로만 만들겠다는 유천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 달려든 첫 번째 괴수는 살포시 머리를 누르려고 했지만 그대로 머리가 뭉개져버렸고
두 번째 녀석은 유천이 손에 뭍은 회색이 섞인 붉은 찌꺼기를 보고 구토를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덮쳐서 놀라며 휘두른 팔꿈치에 박살이 나 버렸다.
“아 미치겠다...”
아무리 초월적인 육신을 가졌더라도, 한 시간 전에는 바퀴벌레 사체만 봐도 놀라서 뒷걸음질 치는 일반적인 게임 폐인에 불과했던 유천에게 이런 스너프 필름 직관하는 듯한 상황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르르르...
구토를 하고 나서 본 녀석들은 동족을 으깨버린 유천을 경계하지만, 도망갈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후우우우우...
심호흡을 한 후 사고가속의 흐름에 정신을 맡겨 정신 속 혐오감과 역겨움을 흘려버리고 어떻게 녀석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지 고민했다.
‘답은 공간안이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내게 오륜성은 지금 의미 없고, 철신 또한 마찬가지다.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간안과 육신이 가진 물리력으로 무엇이 가능할지 10년 겜창 인생의 역사를 되짚어봤을 때, 딱 한 가지가 나왔다.
‘가능하려나...’
공간안은 실제로는 공간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 공간을 느끼는 것에 가깝다.
유천은 복싱 자세를 취한 채 살짝 몸을 숙인 채로 녀석들 주위의 공간에 집중했다.
크르르르~
몸을 움츠린 채 가만히 있는 것을 본 놈들은 짐승새끼답게 좀 만만해 보이자, 서서히 다가왔다.
하지만 상관없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이 몸에는 생채기도 낼 수 없기에 그저 공간에만 집중했다.
크앙! 퍽!
체고가 2m, 체장이 5m는 넘어 보이는 늑대형 괴수가 뒷발을 차고 달려와 내 팔뚝을 후려갈겼다.
‘역시 3차 초월’
옷이 찢겨지기만 했을 뿐 몸에는 솜털만한 생채기도 남지 않았고, 맞은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부드러운 깃털로 살짝 간질인 느낌?
움찔!
그 멀쩡한 모습에 놀란 놈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경계하는 모습을 한 번 쳐다본 후 놈들이 뭘 하든 신경 끄고 오로지 공간을 느끼기 위해 모든 감각을 동원했다.
지금 유천이 하고자 하는 건 스킬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중앙세계에서도 먹힐 중위급 스킬 [공파]를
공파는 원래 압도적인 마나 운용력과 감각을 가지고 얇디 얇은 공간을 타격하는 침투경의 일종으로 수많은 상위 스킬의 뿌리가 되는 만큼 난이도 높은 스킬이다.
‘근데 뭐 어쩌라고’
마나? 아직 느끼지도 못한다.
감각? 초기 스탯치고는 높지만, 기준선에서는 한없이 낮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몸뚱아리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마나? 내 물리력이 대마법보다 세다.
감각? 얇은 공간을 때리기 위해 필요한 만큼 높은 스탯을 요구하지만 굳이 얇은 걸 때릴 필요가 있는가? 그냥 더 두꺼운 걸 타격하면 된다.
내가 느끼고자 하는 것은 놈들 정면의 공간, 그리고 그것을 가벼운 잽으로 타격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머지 셋은 무시한다’
일단 목표는 아까 달려들었던 정면의 괴수, 그 놈을 향해 여전히 상체를 낮춘 상태로 천천히 걸어간다.
퍽! 퍼억!
무언가가 등을 후려갈기지만 현재의 하찮은 감각 스탯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몸으로는 뒤로 돌며 반격하는 고급(?)기술은 불가능하기에 무시하고, 신중히 한 발자국씩 걷는다.
크르르르...
공간안의 감각으로 녀석의 공격 범위가 발끝에 닿은 것을 느끼고, 거기서 한발자국 들어서자,
크아아!!
놈이 덤벼들었다.
잽
콰아아아앙!!
아까 파헤쳐진 숲이 다시 한 번 뒤집혔다.
“젠장... 실패했나?”
빠르게 내지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세를 취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내지른 잽으로 인해 숲은 자연재해가 덮치고 지나간 모습이 되었다.
놈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유천은 한숨을 쉬고 덜덜 떨고 있는 나머지 녀석들을 보려고 한 그때,
끼이이이이잉....
뿌연 먼지 사이로 미약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먼지가 걷히고 나서 본 녀석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성공했다!”
놈이 널브러진 채로 살아있는 모습에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유천은 확신했다.
다리 네 짝이 이상한 각도로 돌아가고 눈 한쪽이 없어 보였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괴수 놈들이야 원래 막돼먹게 생겨먹은 놈들이지 않은가?
사고가속으로 그 모습을 흘려보내고 살아있다는 정보만 취득한 후, 뒤를 돌아 덜덜 떨고 있는 세 놈들을 웃으며 쳐다봤다.
“자 이제 니들 차례다”
끼이이이이잉....
시도는 반만 성공했다.
공파 스킬을 만드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스킬이 만들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게 왜 지금 떠?”
유천 상태창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름: 고유천
종족: 인간
재능: 공간안(F+), 오륜성(E), 철신(A), 사고 가속(F+)
가호: 없음
스킬: 요새 부수기(F)
스탯
육신: 0.00초월(3차)
감각: 33.34
정신: 28.14
마나: 19.87
마일리지: 13,237,564p
공파의 습득은 실패로 돌아갔다. 대신 다른 스킬을 얻었는데, 문제는
“요새 부수기... 저거... 공파 상위 스킬인데?”
솔직히 공파를 익히지 못한 건... 그래...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공파는 침투경의 일종이지 저기 간신히 원래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괴수놈들처럼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 저렇게 부서지지는 않는다.
“근데 왜 공파 상위스킬이 떡하니 내 스킬창에 뜨냐고?”
요새 부수기는 내 기억으로는 라스트 레거시 설정 상 중앙세계 기준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년 전 용병군주가 창안하여 시스템에 등록된 걸로 안다.
그는 생긴 것과 다르게 섬세한 마나 운용의 대가였고, 공파를 잘 다루기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요새 부수기 기술의 첫 등장은 어떤 왕국의 2왕자가 빌런과 손을 잡고 왕과 왕세자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그를 피해 도망친 공주가 자기 자신과 가진 모든 것을 대가로 그에게 복수를 해주기를 의뢰했다.
그에 그는 홀로 왕국을 찾아가 한 번의 주먹질로 성을 부수는데 그때 그 주먹질이 요새 부수기란 스킬로 등록된 것이다.
그런 스킬이 스킬창에 등록된 것이다. 결론만 보면 아주 좋아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파도 이해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쓰라고 주는 거야?”
스킬은 원래 기술이해도가 일정수준에 도달하였을 때 시스템이 제공한다.
그렇게 습득한 스킬은 각성자를 더 나은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보정해 주는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일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유천은 지금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의미심장한 스킬에 대한 정보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글도 모르는데, 법 용어를 설명한다고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하지만, 이 스킬을 습득한 이유 정도는 대충 예상이 간다.
유천이 내지른 주먹질로 인해 발생한 현상과 결과가 요새 부수기 스킬과 같거나 유사하기에 시스템이 부여한 것일 거다.
허나 그렇게 따지면 바람 계열 중위 스킬인 템페스트도 얻었어야 한다. 손짓 한 번으로 태풍을 부르고 땅을 뒤집었는데, 다를 게 있나?
“휴... 모르겠는 건 일단 넘어가... 아니 시발 잠깐만 지금 내가 아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는데?”
그렇게 한숨을 쉬고 유천은 나머지 상태창 정보도 확인했다.
“공간안이랑 사고가속은 F+등급에 도달했고, 감각이랑 정신도 3가량 올랐네 음 아직 낮다고 하지만 너무 빠른데?”
아마 타고난 재능과 경이로운 육체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시너지일 것이다.
육신 스탯을 빼고 오른 것은 확실히 호재다.
“상태창은 이정도만 확인하고 계획부터 짜자”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하는 것이 뭐가 있나?
[사고가속]으로 빠르게 고민한 끝에 유천은 결론을 냈다.
첫째 현재 내 신분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신분이 없으면 빌런 취급을 받으므로 암시장을 통해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필수다.
둘째 지금이 중앙세계 기준으로 몇 년인가?
라스트 레거시의 캐릭터 생성 년도는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확한 년도를 알아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있다.
셋째 중앙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은?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중앙세계에서 비롯된다.
지구는 세계관 기준으로 시나리오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차원이다.
흐름에 직접 들어가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기에 진입 수단을 최대한 빨리 얻어야 한다.
“근데 이것들을 알아보려면 그 전에 가장 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하지만 일반적인 캐릭이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아주 그것도 정말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 무식한 힘을 통제해야 도시로 들어가든 말든 하지 시발...”
앞으로의 고난과 역경을 재밌게 플레이하기 위해 만든 유천의 캐릭, 아니 빙의인지 소환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갖게 된 육신이 문제가 되어버렸다.
지금 도시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젠가 터질 랜덤 타이머가 작동 중인 핵폭탄을 들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천은 사람들하고 함께 살고 싶지 재앙급 빌런이 되어서 배척당하고 싶지 않다.
“혹시... 마일리지 상점에 스탯을 봉인하는 아티펙트가 존재하지 않을까?”
별에 별거를 다 파는 마일리지 상점에서 유천은 스탯 봉인과 관련된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일리지 상점은 재능 감별기 같은 특별한 것들도 파니 3차 초월한 내 육신 스탯을 봉인해 주는 그런 물건도 분명히 있을 수도 있다!’
한 시간 후...
“씨발...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그딴 형편 좋은 물건이 있을 리가 있나?”
애초에 그런 물건이 있었으면 게임에서 진작에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갔지 등급 외 상위 괴수놈들(네임드)을 봉인하고 줘 패면 되니까
“아니 그럼 감각이랑 정신을 최소한 1차 초월을 달성해야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고?”
3차 초월인 육신을 아슬아슬하게라도 통제하기 위해선 그 정도의 스탯은 필수다.
본캐가 스킬 3차 초월을 달성하자마자 이곳에 끌려왔지만 이론상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스탯이 2차 초월에 도달해야 했다.
아니 스킬은 차라리 낫다. 그래도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이런 씨발!! 욕을 안 하려야 안할 수가 없네!”
난동을 부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몸을 누일 곳도 없어질 거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꾹 참고 방법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며 마일리지 상점을 눈으로 훑고 있을 때
“어?”
내 눈에 스킬 하나가 들어왔다.
[오행기관(오륜성 전용), (심법)]
과거 뛰어난 재능과 마나를 지녔지만 그에 비해 나약한 자신의 육신에 분노한 검객이 몸을 강제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만든 심법.
하지만 결국 그는 육체의 한계를 넘지 못해 자멸했다.
미완성된 심법입니다.
“음... 이거 잘하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경고는 굉장히 위험한 심법이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도 아주 위험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동귀어진식 필살기 같은 느낌의 심법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육신을 붕괴시키는 심법이라니...
“좋은데?”
좋아 예상이 맞다면 이걸로 어느 정도는 몸을 통제할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