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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오크-794화 (793/800)

〈 792화 〉 0부 솔로몬 가라사대 #006

* * *

무엇을 숨기랴.

저는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크들이 조금 원망어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들이 저를 원망한다고 해서 제가 이들을 꼭 보살펴줘야하는 건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마세요. 당신들은 나를 강간했잖아?"

오크들은 침묵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저는 오크들에게 갇혀 한 달 동안 강간당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저를 원망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애초에 저를 강간하지 않고 처음부터 저를 떠받들거나 힘을 빌렸다면, 몰살당하는 일도 없었겠죠.

"이건 당신들의 업보입니다."

저는 손을 앞으로 뻗었습니다. 마침 저를 향해 날아오는 불화살은 저를, 그리고 저를 노리는 오크들을 정확히 맞췄습니다.

퍼억, 퍼억.

오크들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보스 오크가 부하들을 살려달라고 외쳤든 말든, 이들은 제 목적을 생각하면 살려두는 게 좋지 않습니다.

악의 화신, 자지마라의 희생자를 늘릴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죠. 제가 붙잡혔으니 망정이지, 제가 아니었으면 이들은 아무 여자나 붙잡아서 강간을 하여 악의 에너지를 늘렸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간의 떡정(?)이 있는데.

"...흥."

일단 위협이 되는 엘프들부터 처리하고 난 뒤에 생각해도록 하겠습니다. 엘프들은 멀리서 저를 상대로 정확히 '조준'사격을 하고 있고, 저는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누가봐도 오크들에게 강간을 당해서 피해를 당한 사람인데, 그 사람을 향해 화살을 쏜다? 오인사격도 정도가 있지, 이건 싸우자는 신호입니다.

전투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죠. 저는 단숨에 앞으로 뛰었습니다.

"뭣?!"

엘프 하나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법 나이가 지긋한 엘프부터 젊은 엘프까지, 모두가 제 몸으로 시선이 오는 게 보입니다.

하긴 엘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외모의 마법소녀가 알몸으로 뛰쳐나왔으니 놀랍기야 하겠죠.

하지만 전장에서 잠깐의 방심은 곧 죽음입니다.

퍼­억!

저는 가장 앞에 있는 장로의 얼굴을 발등으로 후려쳤습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장로의 목은 돌아갔습니다.

뒤에 있던 청년 엘프들의 시선은 두 개.

하나는 목이 꺾인 장로에 놀라고, 하나는 오크의 정액이 흐르는 제 보지에 놀라고.

'그럼 죽는다니까.'

서걱!

알몸임에도 수치심 따위는 없습니다.

제 알몸을 이용하여 적의 목을 쉽게 날릴 수 있다면, 저지르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를 상대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니 뭐니 이야기를 해봐야, 제 알몸을 본 이 엘프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니까요.

"너희들은 이미 죽어있다."

저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습니다. 엘프 청년들은 자신이 무엇에 당한지도 모른 채,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당황했습니다.

투둑.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목이 몸통과 분리되어 옆으로 떨어졌습니다.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고, 저는 엘프들이 뿌리는 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클리어.

일단 엘프들은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의 빠른 움직임으로 무려 1%나 되는 마력을 사용했습니다. 한 달 동안 모은 마력의 무려 1%가!

"흑."

일단 죽이지 말고 제압을 한 다음 정기를 짜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엘프의 아래에서 느껴지는 정기에 저는 가차없이 죽이기로 했습니다.

"실좆…."

엘프가 오크를 습격한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부족한 자존심 때문이 아닐까요.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엘프들이 오크들에 비해 정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음."

저는 동굴 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안에는 아직 살아있는 오크들이 일곱 명 정도 있습니다. 이들은 전부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불과 5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엘프들을 학살한 제가 무섭겠지요.

'어쩐다.'

이제와서 뭔가 제 정체를 밝히고 오크들을 수하로 다스리는 건 조금 그렇습니다. 오크들이 도움이 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오크들을 이용해 세력을 늘리기에는 이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크들을 데리고 매일매일 마력 공급을 받아봐야 육체를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양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이는 건 또 그렇고.'

생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군요.

"......."

저는 다시 구멍에 들어갔습니다. 이전처럼 다리를 벌리는 게 아니라, 후배위 자세로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일단 생각 좀.'

오크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오크들은….

"크어어어!!"

오크 하나가 분노하며 제게 달려왔습니다. 오크 보스의 오른팔로, 오크 보스 다음으로 가장 자지가 큰 녀석이었습니다.

찌걱.

"...왔다♡"

진심의 분노가 담긴 자지 때려박기. 보스가, 동료가, 부하가 몰살당하고 추하게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원망, 진작 자기들을 구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추악한 원망이 허리 놀림으로 가득합니다.

"아으, 새, 생각을 해야하는데…."

엘프 습격자들은 더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이들을 조용히 보내주는 것 뿐.

"헤흐, 흐으으…. 그래, 그렇게 더 박으세요...강하게."

이 동굴을 떠나기 전.

"크어어어!!"

"아으읏…!"

저는 오크들을 전부 죽이고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뭐.

엘프들의 화살에 머리에 구멍이 난다거나 목이 뎅겅 날아가는 것보다는, 여자랑 섹스를 하다가 복상사로 죽는 게 훨씬 더 행복한 죽음이겠죠.

저는 이들로부터 마지막 정기와 마력을 짜내구요.

일석이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 동굴은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 * *

"모두 모였습니까."

붉은 머리칼에 날개가 13장이 달린 대천사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원탁에는 붉은 대천사를 포함한 다섯 천사가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 미카엘, 감히 여러분께 청합니다."

스스로를 미카엘이라고 칭한 적발의 대천사는 원탁 가운데에 빛을 펼쳤다. 그러자 빛의 속에서 한 천사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석판 위에 놓여있었다.

"모브리엘을 향해 애도를."

미카엘이 가장 먼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다른 천사들도 함께 죽은 천사를 위해 기도했다.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모브리엘의 죽음을 알림과 동시에, 용사를 소환하고자 한 시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드리고자 함입니다."

미카엘이 자신의 책상을 두드렸다. 각 천사들의 앞에는 넓은 빛의 판이 펼쳐졌고, 그곳에는 각기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모브리엘, 아스모데우스,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영.

"모브리엘은 용사를 소환했습니다. 하지만 용사를 소환한 직후, 아스모데우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색욕의 마왕이 아닌가?"

"그 자는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 그렇습니다. 문제는 아스모데우스의 죽음 이후, 새로운 색욕의 마왕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카엘은 아스모데우스로부터 검은 인영을 향해 화살표를 그었다. 화살표의 위에는 천사들로서는 역겹기 짝이 없는 '그것'이 있었다.

"마왕의 인장…!"

"그렇습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용사에게 색욕의 인장을 넘긴 겁니다. 모브리엘은 분명 용사의 저주를 벗겨내려다가 사망한 것이구요."

"그건 이상한 걸."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천사가 손을 들었다. 미카엘과 같이 13장의 날개를 단 천사는 중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모브리엘의 옷은 누가 벗겼나?"

"그건…."

"모브리엘은 분명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사라졌다고 했지. 나를 속이려고 하지 마라, 미카엘."

"대천사 메타트론."

미카엘은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제가 어찌 당신을 속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실을 밝혀라. 무엇을 숨기고 있지? 내가 생각하는 그거라면, 네가 밝히는 게 우리가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저는…."

미카엘은 파르르 눈썹을 떨며 말을 이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용사에 빙의하여, 모브리엘의 옷을 탈취하여 도망을 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간단하군."

메타트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사는, 천계의 적이다."

* * *

"아으, 삭신이야."

동굴의 정리가 끝났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 결과, 동굴은 이제 저 혼자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안락한 마이홈이 되었습니다.

"다 당신 덕분이랍니다."

저는 제 어깨에 올린 작은 덩어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보라색의 덩어리는 제 칭찬에 기쁜 듯 머리를 부비적거렸습니다.

슬라임이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슬라임을 소환해, 엘프와 오크들의 시체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기를 먹고사는 존재로서, 본격적으로 이 동굴에서 힘을 늘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서큐버스'로서.

펄럭, 펄럭.

"...흐흥."

이곳은 색욕의 마왕, 사도닉스 아스모데우스의 던전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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