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8화 〉 0부 솔로몬 가라사대 #002
* * *
그렇습니다.
하와와.
본인쟝 지구 최강의 마법소녀 사도닉스=블랙 마크투 인 것이에요.
왜 마크투냐하면, 제가 분신 중 2호기이기 때문이죠.
분신으로 열심히 악에 물든 이들을 처단하고 본체에게 돌아가는 와중에 이게 뭐람.
본체 대신에 이계로 소환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문제는 차라리 본체가 이 세계로 소환되는 편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곳에서 행복해야해요, 본체.'
아아, 불쌍한 사람.
인류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결국 받는 건 호국영령의 부름이라니.
차라리 갓세계 전생을 해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거였다면 몰랐겠지만, 아쉽게도 넘어온 건 와타시였습니다.
그래요.
분신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녀!
다른 분신들보다 가장 암컷다운 사도닉스 블랙, 2호기!
이제 이곳에는 저 혼자만 있으니까 제가 오리지널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힘을 분신인 제게 맡겼고, 이계로 넘어왔으니 이제 이 힘은 제 겁니다.
언젠가 지구로 돌아가서 이 힘을 다시 고스란히 전해주야겠지만,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아스모데우스, 그러니까 서큐버스 릴리스가 가지고 있던 '자지마라'의 힘.
지구에서 한 번 격퇴를 했던 그 악마의 힘이 이 세계에도 뻗어있는 이상, 저는 악에 대항하는 마법소녀로서 이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해야할 일이 있다면....
"여신 어디있어요?"
퍼억.
늙은 천사의 멱살을 붙잡고 들었습니다.
노인 공경?
"커, 커흑...! 말할 수 없다, 이 악마년...!"
비겁하게 노인의 모습을 하고 쌍욕을 하는데 어떻게 노인이라고 공경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경을 받아도 되는 노인을 우리는 어르신이라고 하며....
"당신은 어르신이 아니죠."
빠각.
주먹으로 천사, 모브리엘의 명치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천사는 피를 토하며 붕 날아갔고, 저는 손에 흐르는 힘을 갈무리하고 크게 호흡을 골랐습니다.
'위험한데요.'
마력은 릴리스를 통해 조금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성력은 다릅니다.
본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성력이든 마력이든 보급을 받아야하는 분신인 이상, 저는 힘이 다 닳게 되면....
'소멸 확정!'
HP도 아니고 MP가 다 닳으면 죽는 게임이라니, 이런 똥겜이 있나.
하지만 그런 똥겜이 바로 현실입니다.
성력도 마력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무리하게 힘을 사용하는 건 바로 소멸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니까 싸우면 안 되는데.'
"이...저주받을 용사! 여신의 저주가 내릴 것이다!!"
모브리엘의 몸에서 금색 빛이 터져나왔습니다.
전신을 황금색 갑옷으로 둘둘 두르고, 등 뒤로는 무려 8장이나 되는 날개를 펼치며 성력을 마구 뿜어냅니다.
"여신의 이름으로!!"
"그게 기술명? 아니, 이게 무슨...!"
순간, 모브리엘의 황금 갑옷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닿기만 해도 마력이 사그라들 것 같은 그 빛은 정확히 저를 향해
'실드.'
닿기 직전, 저는 전방에 남은 성력을 짜내 보호막을 펼쳤습니다.
다행히 보호막은 깨지지 않았고, 저를 향해 쇄도하는 성력은 전신을 가리는 보호막에 흘려져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소용없다! 이 한 몸 희생해서라도, 너를 없애버리겠다!"
사라락.
모브리엘의 날개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희생이라는 말 그대로, 천사의 날개를 잃으면서까지 황금 갑옷의 빛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쪽은 여력을 남기면서 싸워야 한다고!'
전력을 내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이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그 뒤의 보급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죠?
저 천사의 성력은 '흡수'할 수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으로 해결해야겠군요.'
저런 적은 수도 없이 많이 상대해봤습니다.
차라리 성력이 양반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하얗고 끈적끈적한 마력을 뿜어내는 적도 있었는데 성력 정도야!
"에잇."
공간을 엽니다.
보호막을 펼쳐둔 채, 몸을 뒤로 던집니다.
순식간에 시야는 변하고, 제 몸의 위치도 변했습니다.
"뭣?!"
모브리엘은 제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순간이동?!"
"블링크라고 하는 것이에요."
최강의 마법소녀 쯤 되면 이 정도는 기본.
모브리엘은 급히 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신성력을 방출하려고 했지만....
"느려요."
저는 손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성력을 가득 실어
"뚝배기 브레이커!"
모브리엘의 대가리를, 아니 머리를 향해 망치처럼 후려쳤습니다.
퍼억!
붉은 피가 흩날리고, 모브리엘은 비틀거리며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뒤를 쫓아, 등판을 발로 걷어차며 모브리엘을 땅바닥에 처박았습니다.
쿵!
신전 한 가운데 모브리엘이 대자로 박혔고, 저는 모브리엘의 등판 위로 무릎을 꿇으며 남은 여섯 장의 날개를 눌렀습니다.
본능적으로 날개를 꿈틀거리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뒤를 잡힌 이상 끝.
"일격필살로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단단하군요."
모브리엘의 머리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앞에 실드를 펼쳐둔 뒤....
"그럼 죽을 때까지 때리면 되겠네요."
퍽, 퍽퍽.
모브리엘의 머리가 형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주먹으로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한 건 해결★
"아무리 천사라고 해도 사람을 납치한 빌런은 용서할 수 없어요."
후환은 남겨두지 않습니다.
설령 모브리엘로 인해 제가 쫓기는 신세가 되더라도, 당장은 모브리엘을 죽여버리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야 지금 당장 저를 쫓아오는 존재가 없으니까요!
'빨리 도망쳐야하는데.'
이곳은 위험합니다.
릴리스가 이곳을 습격하고 지금까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천사든 악마든 누군가는 이곳으로 올 게 분명합니다.
앗, 모브리엘 님이 돌아가셨다! 저 악마를 죽여!
앗, 릴리스가 죽었다! 저 타락천사를 죽여!
예스, 양쪽으로 아웃.
그러니까 도망이 답입니다.
신전 밖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도 있고, 빨리 도망쳐야 할 때입니다.
어쩌면 여신이 모브리엘의 죽음에 분노하여 모브리엘보다 강한 천사를 보낸 걸지도.
아니면 7대 마왕 중 한 명이 죽었으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 또다른 마왕이 달려오는 걸지도.
당장 떠나지 않으면 양쪽에 샌드위치로 협공을 당할 수 있는 상황.
'그래도 루팅은 못 참죠.'
사락, 사락, 휘릭.
"옷 좋은 거 입네요."
저는 모브리엘에게서 옷을 벗겼습니다.
천사의 로브는 담요든 이불이든 뭐로든 쓰기에 적합했고, 어차피 모브리엘은 죽었으니 수의로 갈아입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건 제 겁니다.
제 전리품으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옷도 적당히 입었겠다, 이제 남은 건 이곳을 탈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변신."
저는 머리를 터뜨려 죽인 천사, 모브리엘로 변신했습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었고, 겉에 입은 로브 덕분에 누가봐도 모브리엘이라고 생각할 외형이었습니다.
"에잇."
저는 높이 뛰어올랐습니다.
높이, 높이, 아주 높이.
콰앙!!
신전의 천장에 구멍을 뚫고, 로브를 뒤집어쓰고 사방을 빠르게 파악했습니다.
"와."
주변 광경은 그야말로 전쟁 한 가운데.
신전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천사와 천사들을 뚫으려고 하는 악마들의 전투가 한창이었습니다.
"모브리엘!"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13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저를 향해 활짝 웃었습니다.
그녀의 맞은 편에는 전신을 검은 로브로 두른 또다른 악마가 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용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네놈이 나올 수가 없을텐데?!"
아무리봐도 싸우는 중이로군요.
서로 다른 말을 하며 놀라는 것으로 보아,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대천사로 보이는 적발 미녀는 모브리엘에게 용사 소환의 의식을 맡긴 것 같고.
마왕 중 한 사람으로 보이는 로브의 악마는 '아스모데우스가 습격을 했는데 어떻게 모브리엘이 나온 거지?!'하는 눈빛이군요. 눈은 보이지 않지만.
'어쩐다.'
이래서야 모브리엘로 변장해서 나온 게 의미가 큰 의미가 없어지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제 제게 남은 방법은 하나.
"......."
"아앗, 뭐하는 겁니까?! 모브리엘?!"
"모브리엘...? 천사가 맞, 크윽! 일단 지금이다! 뚫어라!!"
36계, 줄행랑.
혼란을 틈타 도망치기 딱 좋은 시간.
싸우는 건 님들끼리 싸우고, 저는 이곳을 떠나는
파지직!!
"?!"
순간.
전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빛의 십자가가 저를 습격했습니다.
"아, 아아!!"
"여신이시여?!"
천사들은 비명을.
"여신이 직접 왔다고?! 젠장, 후퇴!!"
"여신이 왜 천사를...?!"
악마들은 경악을.
그리고 여신은 아무 말 없이 저를 향해 공격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짜증납니다.
만약 모브리엘을 죽인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멋대로 남을 불러낸 자가 먼저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닐까요!
사아아.
온몸에 가득하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분명 성력과 맞닿은 순간 서로 사멸해버리는 마력의 특징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지금 얼음이 뙤약볕에 녹아내리듯, 제 목숨이 녹아내리는 겁니다아아아아
'여신 죽인다.'
멋대로 사람을 납치해놓고 지구의 수호자를 감히 소멸시키려고 한 죄.
반드시 여신을 죽여서 이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
그래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남자가 되어 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화르륵!!
끼아아아아악!!
몸이, 몸이 녹아내린다!
꼴까닥.
* * *
어느 늦은 밤.
밤하늘에는 붉고 검은 혜성이 지상에 떨어졌다.
그리고 혜성이 떨어진 곳에는....
크레이더 위, 알몸의 여인이 옆으로 엎어져있었다.
"암컷이다, 크르륵."
"데리고 가자. 쿠훕."
여인의 옆으로, 녹색의 덩어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