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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784화 (783/800)

784회

46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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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생텀을 무너뜨렸다.

성녀를 제압했고, 마왕 솔로몬이 천계를 제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현재 나는 누구보다도 레벨적으로 앞서있다.

파후우 라스푸틴, Lv.105.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확장된 레벨을 높였다. 아크 생텀은 경험치 노다지였고, 그곳에서 죽인 수많은 여신교단의 잔당들은 나의 피와 살이 되었다.

압도적 1위.

군단이 가진 힘, 군단이 모은 인장의 수, 군단 내의 전력, 군단장의 외모, 그리고 군단장이 가진 모든 것들이 다른 던전의 주인들을 상대로 압도하고 있다.

더욱이 아크 생텀을 점령했다는 '업적'자체만으로 나는 이미 마왕으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원래는 네게 마왕의 자리를 넘기고 떠나려고했어."

에스투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탄했다.

"지금이라면 누구나 인정할만한 업적이니까. 누구도 아크 생텀을 점령하지 못했고, 인류연합과의 전쟁에서 방점을 찍었으니 전쟁은 끝났지. 그래, 이대로 끝내면 모든게 문제가 없어."

"내가 마왕의 자리를 이어받은 셈이 되겠지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왜?"

"나를 위해 죽은, 마왕군을 위해 죽은 형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지금은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으니 내가 트랄을 부활시킬 수 있다. 포르네우스 던전에 등록되어있었던 트랄의 정보를 바탕으로, 포르네라스 던전에서 부활시키면 된다.

혼이 어디를 떠돌고 있을지는 몰라도, 육체를 준비하고 혼을 집어넣으면 만사형통이리라.

육체는 내가 준비할 수 있다.

포르네우스가 데스트랄을 만들었던 것처럼, 나도 얼마든지 트랄의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트랄을 온전히 부활시킬 수 있다. 비록 그가 던전을 나간 뒤에 얻은 힘-용사의 자격-은 잃어버릴지 몰라도, 그의 영혼은 시스템의 인도에 따라 던전을 떠나기 전의 육신으로 돌아가게 될 터.

운이 좋다면, 아마 죽기 전의 육체가 될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트랄의 부활'은 가능하다.

시스템의, 인연소환의 힘으로.

포-스가 죽은 트랄을 부활시켰을 때는 영혼이 깃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곡히 바란다면?

여신의 힘과 마신의 힘을 동시에 이어받은 내가, 이 땅에 새롭게 뜻을 펼칠 유일신-라스신인 내가 트랄을 부른다면?

트랄의 혼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리라.

단.

내가 파후우 라스푸틴 마르바스로서 존재를 유지한다면.

모든 마족들의 우두머리인 파후우 라스푸틴 솔로몬이 아니라, 시스템을 다루는 관리자가 아닌 시스템을 이용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포르네라스 던전에서 트랄을 부활시킬 수 있다.

"나는 그를 부활시킬 겁니다."

"설령 마왕의 자리를 놓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물론."

마왕의 자리는 언젠가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트랄은 지금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터.

"마왕이 바뀌면 레메게톤의 던전 주인들이 모두 초기화 될 거 아닙니까."

"맞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솔로몬의 72악마가 아니라, 라스푸틴의 74악마가 될 수도 있지. 아래에 얼마나 많은 부하를 두는 지는 새로운 마왕님에게 달려있으니."

시스템의 주인이 바뀌면 인수인계가 이루어질 터.

던전 자체는 남아있더라도, 시스템을 통해 묶어두고 있는 존재들은 사라진다.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들은 남을지라도, 시스템의 데이터는 모두 증발한다.

즉, 인연소환에 등록된 모든 이들의 혼이 증발한다. 결국 마왕의 자리에 오르면 트랄은 영영 볼 수 없게되는 것이다.

인연소환은 레메게톤 2.0에 등록된 자료이며, 내가 시스템을 가지게 된다면 이름이 새롭게 변하며 시스템이 또다시 바뀔테니까.

"절대 아니되오."

"그래, 그래. 형제애도 결국 사랑이라 이거지. 누구는 엄청 좋아하겠네."

"누구?"

"그런 게 있어. 하아."

에스투는 한숨을 쉬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분명 정장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어떻게 결재판이 튀어나오는가에 대한 의문은 무시하고, 나는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레메게톤 2.0의 남은 마족들 자료야."

"...생각보다 제법 많군."

20위권 위로는 빼곡히 차있다. 특히 1위 바알부터 4위 가미긴까지 이어진 이름은 이름표의 빛이 꺼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걸 받으면 이들을 네 부하로 만들 수 있어. 갓 슬라임도, 뱀파이어 로드도, 심지어 아직 네가 취하지 않은 인장들도 마찬가지야."

"......."

결재판 뒤에는 계약서가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솔로몬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계약 내용이 적혀있었다.

엄지에 피를 묻혀 지장만 찍으면 마왕의 자리는 내 것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정말 좋은 계약이지만...지금은 때가 아닌듯 하군."

"후회할텐데. 엄청."

"후회하겠지."

나같은 존재를 최소 네 명, 아니 그보다 더한 자들을 말 한 마디로 죽일 수 있는 절대명령권을 포기하는 셈이니까. 마계 전체, 전세계에 퍼진 던전 전체의 자원을 모두 포기하고 제대로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의 부활에 거는 셈이니까.

"심지어 자원도 엄청 들잖아."

"그래. 더럽게 비싸더군."

포르네라스의 보고에 따르면, 트랄의 인연소환을 위해서는 딱 11개의 재료가 필요했다.

최상급 마석, 11개.

트랄의 부활을 위해서는 일반 상급도 아니고 최상급이 11개나 필요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없다. 전부 여신교단과의 전면전에 써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최상급 마석을 아크 생텀에서 찾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마기가 담긴 마석을 어떻게 신성력 가득한 아크 생텀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결국 마석을 얻으려면 두 가지 길 뿐이다.

하나는 인장으로부터 마석을 뽑아내거나.

아니면 다른 마족으로부터 마석을 뜯어내거나.

즉, 쟁탈전을 아직 끝내면 안 된다.

"미안합니다, 에스투. 조금만 나를 위해 시간을 써주시오."

"...흐음. 그런 길을 선택했단 말이지. 좋아."

사아악.

계약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마왕이 되기를 포기했고, 그렇다고 에스투도 다른 이들에게 마왕의 자리를 제안하지는 않았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지 뭐. 지금 돌아간다고 늦는 것도 아니고."

"...고맙군. 그런데 하나 질문해도 됩니까?"

"뭔데?"

"돌아간다니, 어디로?"

"......."

에스투는 침묵했다. 그녀는 자신의 '돌아갈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다소 꺼려했다.

"좋습니다. 묻지 않겠습니다. 뭐, 고향이 어디든 그걸 딱히 신경쓸 것도 아니고."

"엄청 신경쓰고 있는 것 같은데.... 흐흐, 좋아. 그럼 대신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소원을 들어주도록 할게."

"소원?"

에스투는 붉은 입술을 핥으며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녀를 따라 침대로 가면서도 잠시 생각했다.

'정말로 가능해?'

이미 속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해야한다고 한다면-

"아, 나 엄밀히 따지면 솔로몬이랑 같은 존재 아니다?"

"......뭐라고?"

"네가 알고 있는 솔로몬은 이계에서 소환된 용사. 그리고 나는 솔로몬의 여러 분신 중 하나지만, 인격은 다르다 이 말이야.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다른 존재라고 해야하나...?"

"......무슨 소리냐?"

"후후, 놀라긴. 무슨 말이냐면."

에스투는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며 넥타이를 슬쩍 잡아당겼다.

"이계의 용사님과 융합된 블랙 드래곤. 그게 나야. 솔로몬의 힘은 가지고 있지만, 솔로몬 본인은 아니라는 거지."

솔로몬이되, 솔로몬이 아닌 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사실은 말이야. 드래곤 로드가 나야."

"...헐."

"솔로몬은 나를 제압하고 자신의 영혼을 나눈 분신에다가 나를 집어넣었지. 나라는 존재가 자신의 복수에 상당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를 죽이기에는 아깝다는 이유로."

"자, 잠깐만. 그럼 샤이탄은? 샤이탄의 어머니는 네가 아니었나…?"

"아, 그거…."

에스투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솔로몬의 또다른 분신이 서큐버스 여황제로서 낳은 자식이 바로 샤이탄이야. 지금은 없어. 내가 그녀 대신 샤이탄의 엄마 겸 스승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정보의 폭격에 나는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마왕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지금 들은 내용이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마왕은 도대체…?"

"뭐,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과거에 엄청난 일들이 가득했다는 거지. 물론 네 앞에 나타날 때, 항상 내가 나타난 건 아냐. 그가 나인척 나타났던 때도 있지. 근데 그런 건 중요한게 아니고…."

짝!

에스투가 손뼉을 치자, 옆에 검은 안개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침대 위에는 서류를 든 정장 OL이 보라색 눈을 반짝이며 멀뚱멀뚱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안녕, 샤이탄."

"...에스투 님? 침대는 왜, 히익?!"

에스투는 샤이탄을 위에서 덮쳤다. 그리고 엉덩이를 내쪽으로 보이며, 샤이탄과 똑같은 얼굴로 혀를 낼름 삼켰다.

"솔로몬이 그러더라. 만약에 마왕의 계약을 거절하면 누가 '나'를 억제해야하지 않겠냐고."

"...미친 드래곤 로드를 나보고 제압하라? 어떻게?"

"그야 당연하지. 자-지 아니겠어?"

"........"

설마 저 소리를 저 입에서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언제나 범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기회가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너는 과연...솔로몬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

나는 옷을 벗어던졌다.

"솔로몬에게 전해!"

나중에, 괜히 NTR 당했다고 울지 말라고.

나는 정장 모녀 덮밥을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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