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회
45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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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가레스는 부하들이 전한 소식에 기겁을 했다.
“아크생텀이...함락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제 2지구의 용사들을 상대로 이제 넘어서기 직전인데, 이미 본진이나 다름없는 아크생텀이 무너지다니?
“바알은...분명 아직 아니지 않느냐! 갑자기 부재하는 바람에 1지구도 아직 용사들에게 막혔다고 하지 않았느냐!”
“...라스푸틴이 해냈습니다.”
아가레스는 부하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가, 해냈다고?”
“라스푸틴이...성녀를 붙잡았습니다.”
털썩.
아가레스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허탈하고 충격적인 말에 그만 의지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니...어째서…?”
아가레스는 한탄했다.
“마신이시여. 어찌 제가 아니라…?”
“주군! 낭보입니다! 2지구를 지키던 용사들이 후퇴를...주군?”
서걱.
아가레스는 소식을 들고온 흡혈귀를 단칼에 목을 베었다. 곁에있던 부하들은 급히 부복을 하며 아가레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틀렸던 것인가?”
아가레스의 한탄은 하늘로 향했다.
“마신이시여. 어찌...저를 선택하지 않으신 겁니까…?”
[전 인류는 들으라----!]
하늘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크 생텀은 무너졌다! 성기사단은 항복했고, 더이상 여신 교단은 적이 아니다! 왜냐! 이미 패배했기 때문이다!]
아가레스는 급히 원견의 마법을 펼쳤다.
수정구 너머에는 아크 생텀의 꼭대기에 오른 오크가 여인 하나를 쇠꼬챙이에 끼워두고-어디에 끼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불을 붙여 연기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들으라! 인류여! 마왕군은, 여신교단으로부터 승리했으니!]
오크는 천명했다.
[이 자리에서 여신의 진정한 뜻을 알리겠다! 여신은, 인간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뭐…?”
아가레스는 충격을 받았다.
[여신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자애의 어머니이며, 누구에게도 공정하고 평등한 존재일 뿐이다! 그걸 신성력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한 존재가 누구냐! 천족이다! 천족은 인간을 편애하여, 여신의 뜻을 참칭하고 오직 여신의 사랑이 인간만을 향하게 만든 것이다!]
사아아.
오크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그 어떤 검보다도 성스러운 기운이 넘쳐흘렀다.
[나, 여신과 마신의 뜻을 이어받은 용사 라스푸틴이 말하노니! 여신의 뜻을 참칭한 자, 영원히 불에 타 죽으리라!]
철컥.
용사는 성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크 생텀에 있는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용사의 위용에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아….”
아가레스는 직감했다.
끝났다.
차기 마왕의 자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의 것이 되고 말았다.
* * *
“전 세계에 선언했다. 나의 승리다.”
보고있나, 트랄.
나는 승리했다.
더러운 여신 교단의 참칭자들을 없애고, 지금까지 미혹에 빠진 이들을 모두 각성시켰다.
이제 마왕군과 인류는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싸우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치고박고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성녀여. 나는 조디악 왕국의 땅에 라스토피아를 세웠다. 지상에서 마족들이 살 수 있는 땅을 말이지.”
인간들은 참으로 간사하게도 자신의 것이 빼앗기지 않는다면, 바로 옆에 적이 있어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
“라스토피아의 마족들이 인간 세계를 침공하지 않는 이상, 인간들도 라스토피아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거지.”
즉, 라스토피아와 인간 세상 사이에는 표면적인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 군단 내에서도 급발진하여 인간들을 범하러 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인간들 중에서도 명예를 위해 라스토피아로 모험을 들어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처럼 신성력이라는 힘 앞에서 서로 반반으로 나뉘어 일방적으로 마족들이 학살당하는 일이 이제는 없을 거라는 점.
“어떠냐, 성녀여. 듣고는 있느냐?”
활활.
성녀는 아주 활활 불타고 있었다. 나는 아래에서 건네받은 쇠사슬에 할레오를 깃들게 한 다음, 성녀의 목에 목줄을 움켜쥐었다.
“가자.”
“크, 허억…!”
나는 불타는 성녀를 잡아 끌었다. 마치 몸에 타이어를 묶고 달리는 것처럼, 성녀를 쇠사슬로 묶고 그녀를 짐짝처럼 바닥에 끌었다.
불?
화르륵.
주변에 다 옮겨붙었다. 중간에 불이 꺼진다 싶으면 다시 불을 붙였다.
“마액은 잘 타지.”
화르르륵.
마기로 붙인 불꽃은 마액을 끼얹으면 더 활활 타오르게 되어있다. 마기는 신성력을 더 빠르게 불태웠고, 그만큼 회복에 소모되는 양이 많았다.
“우욱…!”
신전 아래에 있던 이들이 불에 타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는 성녀를 보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벅, 저벅.
나는 성녀를 붙잡고 앞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를 향해?
아몬던전.
나는 여전히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성녀를 데리고 아크 생텀에서 아몬던전까지 그녀를 끌고 왔다.
불에 타지 않는 목줄로 그녀의 목을 잡아끌며, 중간에 불이 꺼진다 싶으면 즉시 마액을 끼얹어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성녀가 지나온, 끌려온 길에는 모든 것이 불타 그을렸다.
잡초에 붙은 불은 평원 전체를 불태웠고, 숲을 지나며 숲은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민가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성녀가 걸어가는 길은 모두 지옥불이 지나간 듯한 연옥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생살이 불타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성녀는 신성력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치료하며 회복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아으, 아으아…!”
머리카락이 전부 불타버리고 목 속으로 열기가 새어들어감에도, 그녀는 끝까지 버텼다.
이쯤되면 포기하겠지.
이쯤되면 그만두겠지.
그런 치킨게임은 이 여자에게 통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굴복시켜왔으나, 성녀를 상대로는 도저히 굴복시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가진 힘의 원천을 없애야했다.
그녀에게 닿는 신성력의 힘 자체를 없애야했다.
끼릭, 끼릭.
“도착했다.”
나는 성녀의 목에 휘감긴 할레오 체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걸 풀어 성녀의 발목에 묶은 뒤, 천장에 걸어둔 도르래에 걸었다.
푸쉬이이이.
“.......”
더이상 마액을 끼얹지 않자, 성녀의 몸에 붙어있던 불꽃은 전부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몸은 화상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단.
전신의 털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
신성력으로도 수많은 사제들의 머리칼을 되돌릴 수 없었던 것처럼, 성녀 또한 전신의 털이 불타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 너를 불의 마녀라고.”
“.......”
성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대화를 원하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너는 생각하겠지. 무한한 신성력의 힘이 있다면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지금의 고통은 한순간일 뿐이라고.”
절그럭. 나는 쇠사슬을 살짝 내려놓았다.
“그래서 너를 위해 준비했다. 언제까지 아깝게 마액을 끼얹을 수 없으니, 자연의 힘으로 너를 없애버리겠다.”
“...그게.”
성녀는 쉰 목소리로 답했다.
“가능할…것 같아?”
성녀는 이 지경이 되고서도 나를 비웃었다.
“용암 속에 떨어진다고 해서...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마…. 나는, 반드시 살아돌아온다.”
성녀는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네가 일군 모든 것들을 부수고 파괴하고 지울 거야. 너를...파멸시킬 거라고!”
“그러시든지.”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네가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용암 아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래에서 열기가 솟구친다.
마액에 붙였던 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근처에 있는 것 만으로도 몸이 전부 타오를 것 같은 뜨거운 기운에 절로 땀이 흘러내린다.
“용암에 떨어지면 모두 죽어.”
“그건 네 생각이고….”
성녀는 나를 향해 중지를 날렸다.
“주인공은...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글쎄.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 걸.”
절그럭.
나는 마지막으로 쇠사슬의 끝을 잡았다.
“이 세계의 해피엔딩은, 거대한 악의 소멸이라고.”
“뭐-”
절그럭.
나는 쇠사슬에 깃든 할레오를 회수했다. 그리고 쇠사슬을 바로 놓았다.
“너---!”
성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나는 그래서 그녀를 향해 똑같이-
“엿이나 먹어라.”
중지를 올렸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렸다.
풍덩--!!
아아아아아아악!!
지옥의 마귀가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지역의 지배자, 라인을 불렀다.
절레절레.
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통은 용암 속에 처박으면 녹아내리기 마련인데.”
시간축을 넘나드는 기계거인조차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렸고, 절대적인 반지조차 화산 용암에 처박히며 파괴되었건만, 성녀는 버텼다.
용암 속에서 녹아내리는 즉시 신성력을 사용해 몸을 회복했고, 그 덕분에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세상에 무한한 힘이란 건 없단다.”
힘이 사용되었다는 건 누군가의 신성력이 줄어들었다는 뜻.
신성력 또한 무한이 아니다.
“언제까지 가짜 여신이 네게 신성력을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늘 위에서의 싸움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 뿐.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잘가라, 성녀. 추악한 성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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