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회
45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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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어두운 숲속을 비추는 밤.
공터에는 작은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두 명의 오크가 모닥불에 고깃덩이를 구워 먹고 있었다.
"아, 술 마렵다."
"술이 마렵다니?"
"이런 고기에는 맥주가 딱인데. 크으...."
"맥주라."
오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피식 웃었다.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승을 거두었을 때."
"그래서 내가 준비했지."
오크는 나무통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건...뭔가?"
"얼마전에 인간 마을을 털었을 때 몰래 챙겨왔다."
"...뭐? 그럴 리가. 언제?"
"네가 다른 곳에 원정 나갔을 때. 자, 한 잔 하지."
"형제여!"
오크는 목소리를 낮추며 다른 오크를 나무랐다.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짓을 저지른 건가? 보고는 없었어!”
“그래서 밀고라도 할 셈이냐? 자, 자. 마셔. 한 모금만 입가심으로 마시는 거다. 그래, 이거 맥주 아니다. 귀족들이 평민들로부터 짜낸 고혈이지. 그저 조금 톡쏘는 느낌이 날 뿐이다.”
오크의 논리에 오크는 고개를 떨구었다. 조잡하게 만든 나무 컵 안에서 보글거리는 거품 소리는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형제여.”
“왜?”
“걸리면 함께 죽으세.”
“크하하!”
오크는 광소하며 나무컵을 넘겼다. 그리고 둘은 나무컵을 가볍게 부딪혔다.
“빌어쳐먹을 포르네우스를 위하여.”
“오크들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서로 말하는 것은 다르며, 서로가 바라는 것도 다르다.
한 명은 자신과 오크들이 번영할 수 있는 곳을.
한 명은 오크들의 영광 그 자체를.
같은 술을 마시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나, 둘은 서로를 향해 씩 웃으며 잔을 한 번 더 부딪혔다.
“한 잔 더?”
“음? 저게 한 잔이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렇게 나오셔야지.”
오크 둘은 연신 술을 들이키며 씩 웃었다. 둘은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혈색이 상당히 붉어져있었다.
“크아, 좋다. 이게 섹스지.”
“섹스라니?”
“맛있는 고기와 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먹는 자가 있는데 이게 섹스가 아니고 뭐겠냐?”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나도. 크하하!”
오크 둘은 광소했다.
포르네우스 던전에서 성행위가 허락된 존재는 던전의 주인 포르네우스에게 허락된 존재들 뿐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도 성행위가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한다면, 던전밖에서 하는 것 뿐.
포르네우스는 오크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오크는 한탄했다.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죽다가 끝나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형제여. 마음을 다잡게.”
“아니야, 나는 충분히 마음을 다잡고 있어. 그래. 포르네우스가 나를 쓰기로 마음먹는다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등에 입맞춤할 생각도 있지.”
“형제여....”
술 잔이 한 번 더 부딪혔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쓰이지 않아. 계속 이곳에서 묵묵히 시간만 보내는게 내 삶의 전부인가? 씨발, 군대도 이것보다는 더 시간이 잘 갔겠다.”
“...인간들의 군대를 보면 확실히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기는 하지. 우리는 그에 비해 매일같이 투쟁이 반복되고. 하지만.”
오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이렇게 내가 형제와 함께 하는 것으로, 그나마 무료한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생각하지 않나?”
“...흐흐흐.”
오크는 실실 웃으며 한 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너 없었으면 나 진작에 자살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를 하지 말게. 형제여.”
“아니야, 진짜야. 이런 거지같은 곳에서 몰래 고기나 처먹고 혼자 궁상떨다가 분명 대가리 바위에 처박고 자살했을 걸? 야, 죽음이 별 거냐? 그냥 찔렸을 때 내장 꼬이고, 존나 아프고, 그러다가 존나게 아파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러다가....”
오크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말겠지.”
“형제여, 그건.”
“그냥. 던전 안에서 죽었다 부활한 애들한테 들은 이야기다. 얼마전에 병력들 대규모로 한 번 꼴아박았잖냐. 마석이 1할이나 소모되었다고 어찌나 길길이 날뛰던지. 크흐흐.”
오크는 실실 웃으며 잔을 한 번 더 들어올렸다.
“너는 꼭 죽지마라. 죽으면 아파. 많이.”
“...어차피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그건 그렇지만, 언젠가 살아나지 못하게 되는 때가 있지 않겠냐.”
오크는 남은 맥주를 각자의 잔에 모두 따르며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내가 약속한다, 씨발. 너 나중에 내 부하가 되면, 내가 목숨걸고 너 책임지고 부활시켜주마.”
“흐흐, 그것 참 감개무량한 말이로군.”
오크는 함께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 목숨을 바칠만한 일이라고 한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명예가 밥 먹여주냐?”
“명예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아도, 다른 이들을 배부르게 살 찌울 수 있지.”
오크는 두 팔을 벌리며 일어나 외쳤다.
“내게 주어진 이 목숨, 뜻 있는 곳에 쓰는 게 얼마나 멋진가?”
“그게 네 명예냐?”
“어차피 한 번 뿐인 목숨, 가장 바라는 것을 위해 죽는게 무엇이 나쁜가?”
“아니, 죽는게 좋은 게 아니라니까?”
“그럼 형제가 나를 살려주시게.”
오크는 오크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제가 정말 높은 사람이 되어, 나를 부릴 수 있는 자가 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
오크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내가 꼭 그런 놈이 되어, 네가 죽으면 너를 살려주마.”
달빛이 반짝이는 밤.
두 오크는 서로를 향해 주먹을 맞부딪혔다.
* * *
뚝, 뚜둑.
붉은 피가 아래로 콸콸 흘러넘친다. 피 사이에는 끈적한 것이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
“크, 흐흐.”
트랄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성녀의 몸이 동시에 아래로 떨어졌고, 트랄도 뒤로 넘어졌다.
“트랄!”
나는 바로 트랄에게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아마도 타우러스를 깃들게 한 단검이 들려있었고, 단검은 정확히 트랄의 고간부를 가리고 있었다.
단검이, 정액이 튀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하얗고 끈적한 그것은 트랄의 아래에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너,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형제여!”
트랄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그의 악력에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쫓게!”
“너, 너!”
“어서!”
트랄의 눈은 단호했다.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뒤로 돌리니, 그곳에는 하반신을 중심으로 피가 사방에 튄 성녀가 혼란에 빠진 얼굴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괘, 괜찮아. 아, 안에 분명 흘렸을 거야. 그러니까...!”
성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들었다. 순간, 나는 갈림길에 서고 말았다.
트랄을 치료하지 않으면, 트랄은 과다출혈로 죽는다.
하지만 트랄을 치료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성녀를 놓치게 되는-
턱.
내 몸이 뒤로 밀렸다. 트랄은 망설이는 내 무릎을 손으로 밀었다.
“......크윽!!”
나는 트랄의 떠미는 손에 밀려 몸을 뒤집었다. 피로 물든 바닥을 짚으며, 앞으로 뛰었다.
“어딜 도망가!”
나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할레오를 내 손 위에, 손톱에 박아넣는다는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아악!!”
내게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성녀는 내게 머리카락의 끝이 잡혔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손으로 휘감아 손목을 비틀었다.
“으윽...!”
성녀의 목이 뒤로 꺾였다.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 뜯을 것처럼 내쪽으로 당기며, 다른 손을 뻗었다.
“이제 죽었-”
서걱!
성녀는, 다시금 자신의 머리칼을 단검으로 잘랐다. 삭발에 가깝게, 두피가 쓸려 머리에 피가 흐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미친 년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봐!”
뒤가 벗겨진 성녀는 내게 단검을 내던졌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성녀의 머리칼을 아래로 흩뿌렸고, 앞으로 팔을 내뻗었다.
찌직!
성녀의 스크롤이 찢어졌다. 성녀를 중심으로 푸른 안개가 펼쳐지기 시작했고, 나는 모든 힘을 다해 외쳤다.
나의, 승리의 여신을.
“륜!!”
“뭐-”
새---액.
바람이 일었다. 내 등 뒤에서, 내 옆구리를 스치듯 바람이 비틀어지며, 성녀를 향해 날아갔다.
“크윽?!”
성녀는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는 공격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벌써 머리 뒤에 있던 상처는 모두 회복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화살은, 성녀의 몸을 노린 게 아니었다.
푸—욱!
“아-”
바람화살은 성녀가 들고 있던 스크롤에 구멍을 만들었다.
성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푸른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막 흩어지려던 성녀의 몸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런-”
“야.”
나는 트랄의 피묻은 손으로, 성녀의 뒷통수를 움켜쥐었다.
“누가 멋대로 도망갈 생각을 해?”
나는, 전력으로 성녀의 뒷통수를 잡아당겼다. 옆으로 스친 그녀의 눈에는 당혹과 공포가 스쳤다.
“트랄 자지 내놓고 가!”
나는, 성녀의 머리를 붙잡고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내려찍었다.
나의, 온 몸의 무게를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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