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회
45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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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뭔데? 갑자기 왜 300만원이 네 이름으로 입금되어있는데?]
"너는 300만원이 입금되었는데 반말 찍찍하냐?"
청년은 헛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 너머의 상대에게 이죽거렸다.
"오빠가 300이나 주셨으면 '아이고, 오라버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떠받들어모시겠습니다'하고 해야하는 거 아니냐?"
[너 혹시 연탄 피웠어? 갑자기 죽기 전에 재산 나한테 보낸 거 아니지? 죽지마, 씨발. 나 오늘 올라가면 좆 돼.]
"...얘는 지 오빠가 죽어도 자기 일 챙기...아니다 됐다."
[장난치지말고. 너 지금 뭐해? 이거 도대체 뭐냐고! 30 보냈으면 이해라도 하지, 이게 뭐냐니까?!]
성질을 박박 긁기는 하는데, 아래에 깔려있는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빠 로또 2등 당첨됐다."
[.......]
"당첨금 중에 무려 300을 보냈다고. 200도 아니고 400도 아니고 무려 300! 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보냈다고, 임마."
[.......]
청년은 실실 웃으며 주변을 걸었다.
[...이상한데 쓰지마. 보내준 돈은 잘 쓸게.]
"비타민 잘 챙겨먹고."
[할아버지도 안 하는 소리를 왜.... 아니다, 끊어. ...나중에 올라갈테니까, 그 때 봐.]
뚝.
"매정한 것."
청년은 궁시렁거리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빠 소리 했으면 200이라도 더 보내줬을텐데."
청년의 사소하다면 사소한 복수는, 2등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알렸다는 점.
2등은 당첨되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고, 청년은 분명 2등에 당첨되었다.
단지 한 가지 알리지 않은 점이 있다면, 청년은 2등의 지분 중 무려 5개나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흐흐."
청년은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일단 동생에게 당첨금 중 일부를 보내 체면치레는 했으니, 이제 남은 금액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 지 행복한 고민만 가득했다.
1등이 아니라 2등인데 뭐가 행복할까? 그에 청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주절먹.
야근을 매일매일해서 수당을 다 챙기고 나서야 월급 300만원 찍히는 봉급쟁이에게 1억이라는 돈이 어찌 적은 돈이랴.
"이게...흐흐."
청년은 지갑속에 담긴 작은 종이를 소중히 품었다. 동생에게 돈을 보내고 난 뒤, -300만 뒤에 찍힐 +1억이라는 돈이 그에게는 로또 1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쉽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쉽다. 하지만 한 끗발 차이로 3등으로 밀리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은가?
만약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달이 나가는 대출금을 어찌 갚아나갈 수 있었겠는가.
"...아 씹."
돈을 타기도 전에 돈이 나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청년은 은행을 방문하기 전,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
자신이 복권을 구매했던 곳. 바로 그곳에는 언제 벌써 현수막을 제작했는지, '로또 2등 5명 당첨!!'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크흠."
청년은 뿌듯함을 감추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돌았는지 매대 앞은 2등*5의 기운을 받으려고 모인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안녕히가세요."
편의점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지친 얼굴로 포스기를 찍고 있었다. 청년은 아르바이트 생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눈으로 훑었다.
[양서연]
'고맙습니다.'
전혀 고마울 이유는 없었지만, 그저 그 날 판매해준 것 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청년은 마스크를 다시금 확인하며, 아르바이트생의 앞에 서서 매대 뒤를 가리켰다.
"아이스블라스트 한갑이요."
"......?"
아르바이트생은 청년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년은 자신이 찾는 담배갑을 손으로 가리켰으나, 아르바이트생은 한참동안 가만히 있었다.
"저기요?"
"네, 네...."
아르바이트생은 힘없는 손으로 계산을 마쳤다. 청년은 담배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뭐야, 기분나쁘게."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은 아르바이트생의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 눈빛이 너무 소름이 돋아서, 청년은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싶었다.
"...으으, 춥다."
청년은 바로 근처 은행으로 향했다. 일요일 동안 꼼꼼히, 몇 번이고 확인해봤고, 어느 은행에 가서 당첨금을 타면 되는지 동선까지 확인했다.
다만.
청년은 알지 못했다.
청년에게도 1억이라는 돈이 큰 돈이듯,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이 큰 돈이라는 것을.
'로또 1등도 아닌데 누가 빼앗으려고 들겠어.'
그래서 안심했고, 간과했다.
세상에는 미친 자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1억이 아니라 500만원으로도 칼부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소위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자들이 곳곳에 숨어있으며, 그들은 세상 어느 곳에도 있다는 것을.
퍼---억.
청년은 은행에 들어가기 직전, 지름길로 가기 위해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간 순간.
누군가로부터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뭔가 '쿵'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이미 자신은 앞에 고꾸라졌으니까.
"씨, 씨발.... 좆된 것 같은데?"
"오빠, 빨리 찾자!"
"아, 아니야...! 나는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야! 일단 찾아서 튀어야 할 거 아니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청년의 몸을 강제로 눕히고, 몸을 뒤지는 얼굴이 보인다.
"이 새끼가...분명...!"
청년은 생각했다.
정말 어이없게도 죽는다고.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 있나?
콰득.
"크윽?!"
죽을 수 없다. 청년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여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놔, 놓으란 말이야...!"
여인의 눈은 광기로 물들어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여인은 등뒤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푹---!!
청년의 목을 찔렀다. 그것이 청년이 기억하는,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로또 1등이랑 2등이랑 당첨금 액수도 비교 못하는 빡대가리한테 내가 뒤졌다고?
손발이 바들바들 떨린다. 막 정신이 나갈 것 같고, 분노가 차오르고, 미칠 것 같았다.
"너는 이해 못하겠지! 하지만 나는 반드시 돌아갈 거야! 인생역전의 기회라고!"
인생역전은 커녕 살인 전과 추가에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아닐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하면 그게 더 화가 치밀까봐, 일부러 말을 아꼈다.
"새로운 인생을 열 절호의 찬스였어! 그냥 뚝배기만 후려서 챙기기만 하면, 그걸로 내 인생은 새롭게 펼칠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 새끼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실수라.
한 번에 나를 기절시키지 못했던 것? 아니면 피를 보고 죽인 줄 알고 패닉에 빠졌던 것?
그도 아니면 몸을 일으키려고 했던 나를 자기 스스로 죽였던 것?
"젠장...! 붙잡혔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내가 그 뒤로 어떻게 불렸는지 알아?! 로또 2등에 살인한 년이 되었어!!"
성녀는 나를 향해 광소를 터뜨렸다. 분명 내가 그 당사자로서 부활한 존재라는 것도 모를텐데, 그녀는 마치 내게 하소연을 하듯 울분을 터뜨렸다.
'이게 그건가.'
마족들이 꼭 계획이 어그러지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신파극마냥 떠들어대는 것.
"그러다가 만나게 되었지! 여신 님을!"
성녀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이계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나를 과거로 되돌려보내준다고 했어! 그래, 막강한 신성력의 힘을 얻은 거야!"
그게, 정말로 여신일까?
"나는 원래 세계로, 과거로 돌아가겠어!!"
아.
그래서 1등이구나.
"그러니까 너는...트랄을 범해서 아이를 낳은 뒤에, 네 세계의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그래! 너 따위는 생각도 못하겠지!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겼었는지!"
"...하."
나는 성녀의 악독한 눈을 보며 생각했다.
왜 이 여자를 기억하지 못했을까. 왜 이 여자를 잊었던 걸까.
죽고 난 뒤에 수백번도 죽여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나 죽일 수가 없어서 참지 못했던 여자를 왜 잊고 있었던 걸까.
'포-스 때문이지.'
전생의 한 번 말고, 현생의 3년은 내게 너무나도 길었다.
아무리 고생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괴로움이 가득했고, 포-스조차 해결하지 못하는데 전생의 고통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전생에 대한 악연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현생, 오크 생에서 나를 힘들고 불쾌하게 하는 자는 포-스였고, 지금도 자다가 포-스의 꿈을 꾸면 벌떡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다듬으며 간신히 말을 토해냈다.
"트랄을 이용해서 네 인생을 다시 펼치겠다?"
"그래! 내 인생이 망하기 직전으로!"
"...씨발."
절로 쌍욕이 나왔다. 당장 모가지를 붙잡고 비틀며 따지고 싶었다.
남의 인생을 멋대로 망가뜨려놓고, 자기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거 아닌가?
"너는."
나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앞으로 달려,
"죽인다----!!"
신성력을 향해, 전력을 담아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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