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회
43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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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개쩐다."
나는 에일라의 눈을 통해 보이는 발레포르 던전의 구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일단 영상은 끊고.'
영사석은 빠르게 부순 뒤 라스토피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생중계를 끊었다. 대충 마무리 멘트를 날리고 정리했으니 알아서들 생각하겠지.
딱히 이건 나만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다. 내 앞에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있었고, 이걸 그대로 전국에 퍼뜨렸다가는 나중에 라스인들이 크게 실망할까봐 걱정되었다.
"현대치트를 여기서 보게되다니."
철컹, 철컹, 철컹.
금속 기계음이 맹렬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에일라가 서있던 던전의 통로는 소위 '그리드' 단위로 뒤집히기 시작했고, 철벽이 생겨나 통로를 가득 채웠다.
'꼭 비밀기지 같군.'
이 세계의 던전은 기본적으로 자연 동굴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할파스의 던전처럼 세로로 길쭉한 구조도 있고, 아몬의 던전처럼 용암 지대를 배경으로 던전으로 만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반 동굴 통로이거나 약간은 마왕성을 연상케하는 구조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앞의 던전은 외형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흔히들 2D 판타지 세상의 던전이 일반 던전이라면, 발레포르의 고블린 던전은 3D 세상의 각진 아스팔트 월드에 가까웠다!
'이러니까 신성란 성의를 무시하지.'
바알부터 내 위까지, 다들 받고 입을 싹 닦기는 해도 최소한 전면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신성란을 통해 스킨 가챠를 할 수 있고, 그 티켓을 공짜로 가져왔는데 왜 필요로 하겠는가?
하지만 발레포르라면 얘기가 다를 것 같았다. 이런 현대적인 디자인의 집을 가지고 있다면, 신성 소환으로 아바타를 꾸미는 것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일라, 좀 더 안으로 들어가보거라."
[괜찮을까요?]
"어차피 던전의 구조가 바뀐 거지, 막 던전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화한 건 아닐테니까."
에일라는 내 지시에 따라 더욱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용사의 거침없던 발걸음은 점차 긴장으로 더뎌지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에일라는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별반 큰 문제가 없는 던전 구조라고 봤으나, 에일라는 이상하리만큼 경계가 심했다.
"주인님."
"그래, 샤이탄. 네가 보기에는 에일라가 왜 저러는 것 같으냐."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지하철 이동 통로와 크게 차이가 없는 구조일텐데.
"주인님께서는 주변에 촉수가 가득한 방에 떨어졌다고 하면 어떻게 움직이시겠습니까?"
"......아하. 그렇군."
나는 샤이탄의 허리를 당기며 그녀의 볼에 포상을 남겼다.
"나에게는 아무렇지않은 광경이지만, 에일라에게는 미지의 공포로 작용할 수 있겠어."
무지의 공포는 용사마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아무리 용사라고 한들, 그래도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공포심은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당장 나도 저기서 뭐가 튀어나올 지 모르는 상황이니.'
에일라에게는 차라리 고블린 수백 마리가 튀어나오는게 더 익숙할 것이다. 이전까지 많이 싸워왔고, 많이 죽여왔으니까.
하지만 뭔가 특이한 존재가 나온다면-
"아니."
뒷통수가 얼얼했다. 눈앞에 나타난 고블린들은 가벼운 로브차림이었으나, 두 손에 막대 모양의 기다란 스틱을 들고 있었다.
독침일까? 아니다. 독침은 심지가 달려있다거나, 그 끝에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오르지 않는다.
"여기 판타지 아니었냐."
왜 고블린들이 죄다 폭탄을 들고있는걸까.
"발레포르 놈, 마왕군에 큰 민폐를 끼쳤군."
폭탄 같은 걸 개발했으면 진작 마왕군에 널리 퍼뜨려야하는 게 아닌가.
"에일라!"
내가 에일라를 부르기 무섭게.
콰-----------앙!!!
에일라의 주변에 뿌연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 * *
"느흐흐, 역시."
발레포르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도열해있는 수많은 고블린들을 격려했다.
"좀 더 많이, 빨리 낳거라!"
"키히히힛!"
고블린들은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는 레일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아래로 끈적한 진액이 묻은 녹색 폭탄이 흘러갔다.
"폭탄 고블린들아, 더 많이 만들어라! 그래야 용사가 여기까지 오지 않지!"
"키히히힉."
폭탄 고블린들은 구역질을 하듯 폭탄을 뱉어냈다. 그들은 하나의 폭탄을 게워내자마자 또다른 폭탄을 만들어냈다.
"크릅, 크르릅."
폭탄 고블린들은 마석을 입에 넣고 씹어삼켰다. 중간중간 옆에는 동물의 사체로 보이는 것들이 한아름 쌓여있었다.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유독가스의 압축. 그리고 내부에서 피막으로 둘러싸 완벽한 구형으로 뱉어내는 고블린들.
하나하나가 화염구 급의 폭발력을 가진 폭탄 고블린들의 폭탄은 공장 컨베이어 벨트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라스토피아 놈들, 들어올테면 들어와보라지."
발레포르는 벼르고 있었다.
"폭탄은 차고 넘치니까."
* * *
"흠...난감하군."
폭탄이 터지는 건 에일라에게 아무런 피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은 정말 야무지게 폭탄을 활용하고 있었다.
던전은 파괴되지 않는다.
아무리 안에서 난동을 피워도 던전은 무너지지 않는다. 즉, 폭탄을 수백 개 터뜨려도 던전 자체에는 피해가 없다.
"문제는 에일라의 호흡인데."
놈들은 영악하게도 폭탄 안에 숨을 들이키면 중독되는 독을 숨겨두었다.
내가 미약 테러를 일으켰을 때 기체로 많은 이들을 중독시켰던 것처럼, 에일라 주변에 폭발을 연속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한 번은 호흡하게 되어있다.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숨을 안쉴 수는 없다.
코를 막고 숨을 쉰다? 이미 전신에 폭연이 묻어있다. 독으로 젖은 손수건을 입에 바로 들이미는 행위나 마찬가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
"한 명으로 봐줬더니 안 되겠군. 샤이탄, 그건 준비되었나?"
"네. 라스-나인 중 하나를 적절히 개조했습니다. 던전 내부에 진입 가능합니다."
"그래. 에일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전차를 보내서 고블린 놈들을 다 날려보낼테니."
호흡을 방해한다면 무호흡으로 적을 박살내버릴 전차를 동원하면 된다.
다행히 우리는 에일라가 시간을 버는 동안 기존의 라스-나인 한 대를 개조하여 경량화하는데 성공했다.
안타깝게도 사람 두 명 정도 탈 정도밖에 공간이 없었지만, 던전 내부를 일방통행으로 달리기에는 충분한 너비였다.
"대 던전 전용 전차. 이름하야 라스-텐…. 아니지, 이럴 때는 라스-X라고 해야지."
라스-엑스. 드라고니안드라스 전차의 열 번째 모델로, 던전 내부 침입이 가능한 전차다.
"라스-엑스, 출격."
[잘 다녀올게요!]
이미 안에는 한 명의 여인이 라스-엑스의 안에 타고 있었다.
* * *
"이제 몇 분 지났지?!"
"고작 3분입니다!"
"에이잇, 더 폭탄을 던져! 용사가 숨을 쉬게 만들라는 말이야!"
발레포르는 부하들을 다그치며 눈앞에 있는 버튼을 마구 눌렀다. 붉은 원형의 버튼은 쉴틈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빨리 빨리 폭탄을 뱉어! 그리고 던져!"
많은 고블린들이 힘겹게 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뱃속에서 알을 뽑아내듯, 폭탄 고블린들은 폭탄을 입에서 토해낸 다음 곧장 용사를 향해 던졌다.
콰과과광!!!
폭연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폭탄 속에 들어있는 마비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용사의 체내로 스며들게 된다면, 용사는 금방 쓰러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
발레포르는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는 용사에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빠빵!!
쟁탈전의 포털 입구에서 들려온 경적 소리.
다른 던전에서 죽은 고블린들의 원혼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상기한 발레포르는 던전 입구에 나타난 괴생명체(?)를 보고 기겁했다.
"크윽, 설마 소문으로 듣던 전차라는 것인가?!"
길게 달린 자지포와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는 귀두는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던전 내부를 탐사하러 온 거북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무장을 해제하여 던전에 강제로 들여보낸 듯한 모습이었다.
"크, 흐하하! 그래! 너무 커서 들어올 수 없지! 여기는 고블린 던전이다 이거야!"
발레포르는 장난감과도 같은 전차를 보며 비웃었다.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저놈에게도 폭탄 맛을 보여줘! 펑펑 터뜨리란 말이야!!"
발레포르는 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벌써 수백에 이르는 폭탄이 터졌고, 발레포르는 폭탄 고블린들의 활약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
순간.
구구구구.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레포르는 던전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전차를 향해 광소했다.
"흐하하! 얻어 터지러 오는-"
부와아악.
정체 불명의 소리와 함께, 전차 앞에 연분홍빛 꽃잎이 피어올랐다.
"...보지인가?"
분홍빛으로 반짝이는 에테르 음부는 점점 더 순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버지니움 차징."
라스-엑스의 안에는 또다른 용사, 메어리가 타고 있다.
"실드에 닿으면 다 소멸 당하는 거 알지?"
나는 그저 메어리의 힘을 빌어, 신성력으로 반짝이는 방패를 전차의 앞에 달아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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