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5회
438일차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가버렸다.
어디로 갔냐하면, 그녀는 아몬이라는 이름을 빼앗기고 이프리트로서 정령계로 역소환되었다.
"심봤다."
나는 이프리트가 낳고 떠난 하나의 알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오오, 이것이 바로 우리 군단의 새로운 희망!"
불꽃 정령.
자고로 불꽃이라 함은 주인공이자 레드의 상징이다. 불속성치고 주인공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아닌 적이 없었다.
흔히들 표현하는 적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불속성은 어느곳에서나 상위티어를 차지한다.
물론 불꽃 정령이 상위티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군단에 티어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있다면 누가 더 잘 조이고 잘 세우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라스토피아의 신민들은 각자 가진 고유의 개성과 기술이 있다.
그리고 우리 군단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기술은 바로 '화공'이다.
'플레어 판테라 만으로는 재미를 좀 많이 못 봤지.'
하르파스처럼 폭포처럼 쏟아지고 샘솟는 수속성 부하들의 수는 엄청 많다.
특히 넵튜뉴스를 영입하고 난 뒤로 라스키토와 같은 피의 정령(?)들을 동원하게 되면서, 우리는 물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부하들을 제법 많이 끌어들였다.
하지만 불은 우리에게 인연이 없었다.
내가 가장 애용하고자 하지만 항상 부족했던 화력.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화력의 근간이 바로 이 불꽃의 알, 불의 정령왕이 낳고 떠난 알이다.
"이것만 있으면 이제 우리 군단도 불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지. 흐흐."
"어떻게 사용하실 겁니까?"
"합성이다."
나의 유전자가 섞여있는 알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합성하는데 쓸 것이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직접 파종하신 알입니다. 합성하게 되면...주인님과의 라스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라스할 생각이 없는 녀석을 부를 거다. 왔군."
쿵, 쿵, 쿵.
던전 안에 거대한 슬라임 거인이 심처까지 들어왔다.
"잘 왔다, 라인!"
뀨와앙.
라인은 내 앞에 재롱을 피우며 나를 반겼다. 나를 반기는 건지 내가 들고 있는 정령의 알을 반기는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라인을 다독여주고 소환진으로 보냈다.
부하합성.
"지금부터 너는 불꽃효녀가 되는 거다. 알았지?"
뀨오앙.
라인은 거대화한 몸을 작게 만들어 소환진 위로 뛰어올랐다.
이제는 어느덧 소녀라고 해도 될 법한 크기의 본체는 당당히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었고, 나는 불꽃의 알을 소환진 가운데 두고 두 손을 합장하듯 붙였다.
"합성!"
고오오오!
불꽃의 알이 붉은 안개가 되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라인은 두 팔을 아래로 내리며, 한쪽 무릎을 들고 까치발을 들어올렸다.
"크하하! 그래, 변신 자세를 아는구나! 역시 내 딸이야."
합성조차 유쾌하게. 나와 라임의 딸인 만큼, 라인은 비록 말은 하지 못해도 행동으로서 자신의 진심을 보였다.
어찌보면 태어나기도 전의 이복동생과 합성이 이루어지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가 라인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불꽃의 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고, 유정란이지만 정령이라는 종족상 다른 마족들과는 사뭇 다른 특성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라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진면목을 보여라, 바알의 후손!"
라인은 라임의 딸이다.
즉, 라인에게도 라임의 안에 깃들어있는 바알의 유전자가 섞여있다.
던전 주인 1위 후손과 현역 5위의 유전자가 섞여 태어나는 불꽃효녀는 또 어떤 모습이겠는가?
"탄생을 축하한다. 라인."
붉은 안개가 가라앉자, 나는 새로운 존재를 맞이했다.
몸은 붉은 슬라임이지만 어엿한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는 불꽃이 활활 속옷처럼 가슴과 음부를 가리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슬라인 계통에 불꽃 속성이 추가된 거로군."
뀨륵.
라인은 여전히 말을 못했지만, 새롭게 추가된 자기 자신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내게 과시했다.
손가락 위에 불꽃일 피우는 건 예사로,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던지거나 불을 몸에 흡수하거나, 슬라임의 육체를 아주 작게 만들어 온몸을 불타게 할 수도 있었다.
"...응?"
나는 라인의 불꽃재롱을 보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급히 라인에게 물었다.
"라인아, 이것도 혹시 가능하니?"
뀨르륵.
라인 왈.
쌉가능.
"역시 라인이 효녀야!"
역시 슬라임이 최고다.
"라인아, 따라와라. 아빠가 좋은 거 먹여줄게."
뀨잉?
과연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라인을 치료할 수 있는 이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라인을 데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시식 결과.
"......쌉가능!"
라인은 슬라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의 정령이라는 기이한 특징을 가진 새로운 종족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 * *
여신교단은 말이 교단이지, 사실상 하나의 넓은 신성제국에 가깝다.
제국이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왕국과 제국의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함이지만, 규모상 제국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이고, 사제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형제자매님들, 기다려주십시오. 차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여신교단은 수많은 난민들로 북적거렸다.
조디악 왕국이 멸망한 이래 더이상 왕국 단위로는 마왕군을 상대로 버틸 수 없다는 불안감.
여신교단은 인류연합의 중추로서 마왕군을 상대로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마왕군은 인간들을 더이상 죽이지 않고 신성력을 가진 인간들만 골라서 죽인다는 소문.
-사제의 근처에 있으면 사제가 잡혀갈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져 사람들은 신성교단으로 계속 모이고 또 모였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많아지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여신교단으로 모였다.
"크윽, 미쳐버리겠군."
여신교단 제 23지구의 책임자, 푸르에소사 폼페르이 대사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몰래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이렇게 몰려오면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
푸르에소사도 여신교단의 독실한 신자로서 난민들을 수용하고 싶은 생각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벌써 4만명이 넘는 외국 난민들을 임시 구호소에 수용했는데, 아직도 2만명 가량의 난민이 남아있다면 어찌해야하겠는가?
"정말 미치겠어."
난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싹을 제거해야한다.
그리고 그 싹은 마왕군으로, 여신교단 23지구-여느 제국으로 치면 제법 명망있는 자작가 정도의 크기를 가진 땅은 유감스럽게도 조디악 왕국을 점령한 라스토피아 왕국, 속칭 라스군과 상당히 밀접해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간에 황무지가 있고, 험준한 산맥이 자리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경계가 쉽다는 것.
산맥을 경계하는 여신교단의 병사들에 의해 마왕군의 동태를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23지구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상황을 계속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폼페르이 대사제님! 급보입니다!"
"무엇인가?"
"산맥에 이상 반응이!"
사제는 급히 마도구를 꺼냈다. 여신교단이 마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다소 이상했지만,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협 앞에서 물건을 가릴 정신은 없었다.
"이건…?"
구구구.
산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르에소사는 산맥 방향에서 튀어나오는 거대한 물체에 넋을 잃었다.
"...여신님 맙소사."
경악. 공포. 충격.
그 모든 단어를 아우르게 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뀨와아아앙.
슬라임이다.
거대 슬라임이다.
전신이 붉게 타오르는, 마치 마그마와도 같은 불의 거인이 산맥 전체를 뒤덮으며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나무를 집어삼키고, 동식물을 모조리 흡수하며, 불씨를 사방으로 퍼뜨리며 활활 타오르고,
정확하게.
산맥을 내려와 십 수만의 사람들이 몰린 23지구를 향해 정면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 *
"흐하하!"
나는 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박수를 쳤다.
"달려라, 달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화마는 모두 먹어치우기로 유명한 존재였다. 용암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슬라임은 산맥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크기를 점점 넓혀나가고 있었다.
"라인이 잘 먹네."
무엇을 숨기랴? 산맥 전체를 뒤덮은 용암 덩어리 전체가 라인인 것을!
"역시 차기 불의 정령왕. 이 정도는 되어야 자연의 불꽃을 관장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아직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라인은 불의 정령왕이 낳은 알과 합성되면서 정령왕의 자격은 갖추었다.
힘.
불꽃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로부터 이어진 요정왕의 가호!
이제 라인은 마물과 정령의 양쪽에 발을 걸쳐놓았다. 슬라임 신의 후손이자 라스마-신의 딸이자 슬라임 여황제의 딸이자 불의 정령왕의 딸이기도 한 라인의 배경은 정말이지 강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
"아몬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라인 아몬.
아몬 던전을 그대로 물려받은 라인은 던전의 주인이 되었고, 던전 내에 흐르던 용암들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먹어치웠다.
즉, 라인은 살아움직이는 마그마가 되었다.
"전부 먹어치워버려."
용암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이 녹아내려 사라지게 되리라.
"이 정도는 되어야 마-신의 딸이지."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