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회
43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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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나와 인연이 깊다.
내 머리를 불태웠던 것도 불꽃이고, 내가 초기에 슬라임 점액에 기름을 섞어 화염병을 만들어 재미를 봤던 것도 불꽃이다.
화공은 언제나 효과가 강했고, 나는 화공을 많이 애용했다.
하지만 오크는 불꽃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피부가 아무리 재생력이 좋다고 한들 피부가 타버리면 재생될 것도 재생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화염에 대해 저항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그레모리와의 전투에서 머리가 벗겨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화와 같은 신기한 힘이 없는 이상, 한 번 타버리면 모두 끝난다.
화륵.
그러나 화염정령들의 공격은 내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화르르륵.
나를 향해 열심히 불꽃의 브레스를 뿜어내는 화염늑대들.
날개를 펄럭이며 불꽃가루를 가루처럼 뿌리는 화염나비들.
"따스하구나. 마치 온수탕에 몸을 담근 기분이야."
그들 모두가 나를 향해 불꽃을 뿜어냈으나, 나는 조금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크는 불꽃에 피해를 입으나, 나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지금 눈앞에 있는 화염 정령들의 공격에 대해 아무런 피해도 없는 '면역'인가?
"너희들의 공격은 내게 데미지를 하나도 주지 못한다!"
답은 간단하다.
"정령력에 저항력을 가진 게 아니라, 정령력에 나는 면역이기 때문이다!"
[요정왕의 가호].
내게는 정령왕보다 더 위의 존재인 요정왕의 가호가 있다.
물의 정령왕을 서브 던전에서 꺼내주면서 나는 요정왕을 직접 알현하게 되었고, 그녀는 내게 물의 정령왕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딸 아스모딘에 대한 배려를 바라며 내게 가호를 내렸다.
시스템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가호를 받음으로써 정령에게도 파종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아몬! 너를 굴복시켜서 불꽃라스의 정령을 낳게 해주마!"
덕분에 물의 정령으로부터 파생된 피의 정령을 새로이 만들게 되었다. 그 어떤 물의 정령도 내게 반항하지 않았고, 나는 넵튜뉴스를 괴롭히며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다.
정령들은 내게 아무런 피해를 끼칠 수 없다.
자신의 상위 존재가 직접 가호를 내렸으니, 굳이 따지자면 나는 정령왕과 동급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정력왕이다.
"크하하! 어디있느냐, 불의 정령왕! 어서 나와서 누가 더 뜨거운가 자웅을 겨뤄보자!"
지는 쪽은 박히고, 이기는 쪽은 박는다. 나는 앞에서 달려드는 정령들을 손으로 쳐내고 할레오로 밀치며 당당히 앞으로 걸었다.
"라스푸틴 열받았다!"
이미 나의 물건은 분기탱천하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불의 정령왕을 여체로 만들어 푹푹 쑤실 생각에 전신의 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너같이 실체를 갖추지 못한 정령은 전신이 보지라고 하더구나!"
정령은 육체를 구성함에 있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스모딘처럼 실체화한 육체를 형성하는 경우.
또다른 하나는 넵튜뉴스처럼 에테르체인 몸을 형성하는 경우.
아몬,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후자로 들었다.
"네 에테르 보지에다가 나의 라스푸틴을 들쑤셔줄테니, 당장 이리로 나와서 나와 함께 라스를 즐겨보자꾸나!"
정령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
내게 요정왕의 가호가 있는 이상, 정령은 내게 반기를 들 수도 없다.
"정령들 전부 내 라스푸틴에 박히면 바로 뿅 가버리더라고!"
내 자지에서 뿜어져나오는 정액은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나와 닿으면 마나를 녹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신성력과 닿으면 신성력을 중화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게 정령과 닿으면 어떻게 되는가?
쾌감을 느낀다.
정령들은 내 라스푸틴에 박힌 순간, 정령으로서 전혀 알지 못했던 성적 쾌감을 깨닫고 만다. 에테르체에 대하여 내 자지가 들어감에 따라 체질이 변형되는 것이며, 정령은 성적 쾌감과 욕구를 느낄 수 있는 몸으로 변하고 말더라.
"넵튜뉴스는 이미 내게 굴복했다! 너도 얌전히 라스푸틴의 노예가 되어라!"
나는 이미 요정왕에 의해 요정과 정령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을 얻은 것이다!
"지금 항복하면 부하 정도로는 생각해주마! 어떠냐! 끌리지?!"
나는 안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직 화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아몬이 결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분명 내게 항복할 거야.'
아몬은 포-스의 데스트랄에게 쫄아서 자신보다 낮은 던전을 따랐던 새가슴이다. 자신보다 높은, 마르바스인 나를 상대로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항복...개같은 소리 하네.]
잔칫상을 차려놓고 환대해도 결국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 이 더러운 괴물.]
"...흐흐, 그래? 그렇단 말이지."
키에에엑!!
용암 속에서 수많은 불줄기가 뛰쳐나왔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거리며 화염으로 된 숨결을 토해내는 마수들은 근간은 정령이었으나, 그 모습이 마족화 되면서 상당히 흉측해졌다.
키르르륵.
사람 팔을 물면 이빨이 팔에 박히는게 아니라 사람의 팔을 잘라버릴만큼, 용암속에서 튀어나온 정령은 크나큰 위협이 될 존재다.
"협상은 결렬이다. 지금부터 다 죽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나를 향해 퍼부어지는 모든 정령들의 불꽃 공격을 할레오로 막아냈다.
"지금 범하러 간다."
* * *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몬은 결단을 내렸다.
입구를 가로막은 부하들은 오크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렇다고 포털 방향을 막고 있는 부하들이 다크엘프 여왕과 하르파스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후방은 물의 정령들이 아몬의 수하들을 향해 물을 쏘아대고 있었다. 엘프의 화살에 깃든 물의 정령들은 불의 정령들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쓰러뜨렸다.
"흐흐, 그래. 서로 계약자가 다르다 이거지...."
엄밀히 따지자면 아몬은 계약자가 없다. 그는 자신의 소환자를 먹어치우고 던전 주인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정령왕끼리 계약자가 달라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일은 왕왕 있어왔다. 그래서 아몬은 물의 정령왕이 오크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기는 건 자신이 될테니.
"모든 정령들에게 명한다. 던전의 심처로 모여."
아몬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몬 던전의 하수인들이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
* * *
"응?"
방금 막 마수 하나를 용암에 집어던진 나는 다른 정령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에 의아함을 느꼈다.
"저게 뭐야?"
"다...도망치는 걸까요?"
"도망가는 것 치고는 너무 제대로 튀는데."
겁을 먹고 도망가는 형국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작전상 후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킹드모여?"
"네?"
"아니. 전력을 한 곳으로 모아서 대처하려는 속셈같구나."
정면으로는 고작 둘밖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면을 대응하기를 포기하다니. 나는 마도구를 통해 샤이탄과 연락을 취했다.
[샤이탄. 루나와 하르파스 쪽은 어떻게 되었지?]
[양호합니다. ...급보. 포털 쪽 마수들도 일제히 도망갔다고 합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인가."
사방에 흩어져있던 부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옥쇄를 각오한다.
"흐흐흐, 멍청한 놈들. 그런 놈들 상대로 우리가 아주 좋은 작전을 알고 있지."
배수진을 친 상대에게는 배수진 너머로 빠뜨리는 것도 좋지만, 배수진을 향해 불화살을 퍼부어버리면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번에는 불화살이 아니라 물화살이 되겠지만.
"륜. 넵튜뉴스에게 알려라. 던전 심처에 또 물난리 나게 만들게."
"아...그 보스룸 안에서 익사시키는 작전이요?"
"그래! 불의 정령왕이 물을 증발시키는게 더 빠를지, 물의 정령왕이 불을 전부 꺼뜨리는게 더 빠를지 내기해보자꾸나."
어느쪽이 이길까.
나는 륜과 함께 던전의 안까지 쭉 들어갔고, 마침내 던전의 보스룸을 발견했다.
강철로 된 철문이 우리를 맞이했고, 나는 안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열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후, 여기서 용암이 다 흘러나오는 구조인가."
보스룸은 길쭉하게 뻗은 낭떠러지 너머, 거대한 벽 사이에 있는 구멍에 철문이 달려있었다. 좌우로 넘어졌다가는 용암에 다이빙을 할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륜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내 품에 안았다.
"륜, 위험하니까 내 몸에 딱 붙어있어라."
나는 륜과 함께 아주 조심스럽게 낭떠러지를 건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앞으로 뻗었다. 뛰어가면 1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괜히 뛰어가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즉사다.
"휴우."
다행히 우리는 보스룸 입구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갈림길이 여럿 있었으니, 분명 포털로 넘어온 이들도 우리 뒤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몬! 내가 왔다!"
나는 보스룸의 문을 활짝 열었다.
"넵튜뉴스! 하이드로 펌...."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상반신만 두둥실 떠있는 거대한 불꽃의 괴물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광석들을 갑옷처럼 쓴채, 갑옷 내부는 정령력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의 세례를 받으라!]
"...어우야. 이렇게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극한의 쫄보메타라니."
나는 할레오를 움켜쥐며 마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불의 정령왕! 들박을 하러왔다!"
아몬.
그는 마치 로그나라스가 되어 우리를 향해 불덩어리를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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