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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738화 (734/800)

738회

43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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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 던전에 들어온 첫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었다.

"더워!"

엄청나게 덥다. 흙바닥은 아래에 잔뜩 흐르는 용암 때문에 한껏 달궈진데다가, 공기마저 습해서 후끈거린다.

"이러니까 7위 던전을 먹지."

나는 지금까지 여러 던전을 공략해왔지만, 이곳만큼 던전의 환경 자체가 심각한 경우는 처음봤다.

던전을 공략하고 싶어도 공략하려다 지치게 만드는 던전!

피로가 쉽게 누적되고 탈수증세가 일어날 것처럼 땀이 뻘뻘 흐른다. 호흡이 다소 힘들 정도로 공기가 건조하고 탁하다.

"이거 아래에서 가스 올라오는 거 아닌가?"

"가스요?"

"그래. 인체에 조금 해로운 유독가스 같은 거지."

불타는 재만 하더라도 숨을 들이마셨다가 크게 기관지가 상하는데, 이상한 냄새까지 가득하니 분명 이건 유독가스가 퍼져있는게 틀림없다.

"으으, 진짜 공략하기 싫은 던전이다."

이런 던전인 줄 알았으면 그냥 적당히 눈감고 넘어갈 걸 그랬나싶지만, 그래도 이 던전을 공략해야 신성교단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정확히는 다른 지역에 있는 모든 전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켜, 신성교단의 본거지를 향해 바로 달릴 수 있다.

그런 지리적 이점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륜, 힘들지는 않지?"

"저는 괜찮은데, 주인님이 엄청 힘들어보이세요."

"크흐흐, 땀이야 뭐 원래 조금 나던거니까 괜찮은데...이건 더워도 너무 덥잖아."

바닥에 하피알을 실수로 깨드리기라도 한다면 치직거리며 프라이가 될 정도로 뜨거웠다.

"여기서 전투까지 하면 아주 난리가 나겠는데."

그냥 있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여기서 싸우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상대는 모두 불로 이루어진 마물이니, 우리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러모로 우리가 불리한 환경이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아몬의 던전은 이미 한 번 공략당한 던전이다. 다름아닌 포-스가 조종하는 데스트랄에 의해 고개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었던 곳이다.

즉, 이곳은 공략방법이 아예 없는게 아니다.

포-스의 단순무식함과 데스트랄의 지성을 생각하면 방법은 단 하나.

정면돌파.

죽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숨을 들이마시고, 달려드는 모든 적을 격파하고 중앙으로 들어가 아몬을 쓰러뜨리는 것이 바로 해법이다.

'나도 할 수 있다.'

트랄도 아닌 트랄의 가짜도 성공한 전술인데 어찌 내가 하지 못하랴!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종족이어야 하나?'

정찰을 하러 왔다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다른 던전은 아무 조합이나 대충 꺼내서 어떻게 능욕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 십상이었지만, 지금은 꺼낼 수 있는 패가 한정되어있다.

'호흡을 하지 않는 존재들이 제격.'

그렇다면 구울이나 골렘 위주로 병력을 편성해야하는데, 하필이면 적이 불의 정령들이라는게 또 걸렸다.

언데드는 불에 잘 탄다.

골렘은 불에 잘 녹아내린다.

이렇게 이지선다가 막혀버리니, 어떻게 부하들을 동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쳇. 이제 좀 쉽게 가나 했더니…."

"하하, 항상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시잖아요."

"그래. 젊었을 때 고생해서 노년에 행복하게 지내려고 이 고생을 하는데, 도대체 나는 미래에 얼마나 평안을 누리려고 이 개고생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분명 하루하루 알차고 행복하고 색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지금 고생이 미래의 내가 가질 행복으로 치환된다면, 미래의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있을까?

"......스읍.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칼을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불은 여러모로 내게 악연이 깊은 존재로써, 한 때 나를 스킨헤드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뛰어들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불에 타서 고통스러운 건 좋지 않다.

"...슬슬 올 것 같구나."

나는 도끼를 움켜쥐었다. 륜도 활을 빙글 돌리며 앞으로 겨눴다.

키기기긱.

바닥에서 땅강아지같은 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짐승들은 정령 특유의 에테르체로 우리를 맞이했다.

"미친, 저게 다 정령이라고?"

"불의 하급 정령들인데...레벨이 높은 것 같네요."

분명 내가 아는 하급 정령들은 30레벨 마법사들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수준인데, 눈앞의 하급 정령들은 70레벨 마법사들은 찜쪄먹을 기세로 사납게 콧김을 뿜었다.

화르륵.

숨결조차 화염으로 뿜어져 나오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정령들이란 말인가?

"정령들을 부하로 만들어서 레벨을 올리다니. 으으, 대단한 놈."

[흐흐흐, 잘못찾아왔구나. 라스푸틴과 그의 노예 엘프여.]

개미핥기 한 마리가 다른 정령들보다 더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우리를 비웃었다.

[환영하마. 이곳은 나 아몬의 던전. 지옥의 유황불과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업화가 가득한 염옥이니라.]

"개소리. 그냥 화산 아래에 던전 깔고 꿀빨고 있는 주제에."

[.......]

아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이곳에 던전을 깐 이유는 대충 알고있다. 불의 정령으로서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알아챈 거지? 이곳에 던전을 설치하기에 가장 좋다는 것을."

[.......]

아몬은 침묵했다. 나는 도끼를 앞으로 겨눴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정령왕이라는 자가 마왕군의 하수인이 될 리가 없지. 아무리 못해도 나름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데, 마왕의 아래로 깔리는 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잖아?"

[알게 뭐냐. 마왕이라는 자가 여신조차 범하려고 드는 세상인데.]

"그렇게 말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상당히 건방지구나. 감히 군단장께서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어? 오만방자한 놈."

스스로 여체화로 몸을 바꾸어 다리를 벌리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하긴, 그 정도로 건방지니까 계약자를 삼키고 지가 던전 주인 자리를 이었지."

[......킥.]

아몬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깔렸다.

[재미있군. 내가 계약자를 죽이고 던전 주인의 자리를 빼앗았다?]

"나는 이었다고 말했는데, 찬탈이었나? 크흐흐, 계약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몸을 빼앗은 걸 보면."

[...네놈.]

아몬의 목소리가 점점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지?]

"뭘. 우리도 똑같거든. 대신 좀 다르지."

륜의 머리 위에 있던 서클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륜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륜의 활에는 물줄기가 화살처럼 깃들기 시작했다.

"야, 정령왕끼리는 서로 안부인사 주고받고 안 그러냐?"

[...물의 정령왕 넵튜뉴스? 어떻게 하이엘프 여왕에게 깃든 거지?!]

"던전에 가두고 따먹은 다음 강제로 계약을 맺었다."

요정여왕의 부탁 겸 거래를 받아들여, 나는 그녀에게 가호를 받고 물의 정령왕을 해방했다.

"그리고 깃든 건 아니야. 순수하게 정령왕의 힘만 사용하고 있는 거니까."

[그럴 리가…! 아무리 하이엘프 여왕이라도 정령왕의 잠식은 견디지 못할텐데…!]

"정령왕도 자지에는 못 이기더라고."

물의 정령왕은 영원의 굴레에서 탈출하는 대신 내 자지에 충성의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나는 넵튜뉴스가 가장 적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륜을 선택했다.

"지금 물의 정령왕은 하이엘프 여왕님의 버프일 뿐이다."

이제, 륜은 정령왕의 힘을 가져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평소보다 더 기세가 날카롭기는 하지만.'

넵튜뉴스가 우리에게 협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넵튜뉴스의 협조는 평소보다 더욱 적극적이었다.

'물이랑 불이랑 사이 나쁜 건 만국 공통인 건가.'

서로 상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의욕을 낼 필요가 없는 넵튜뉴스가 륜에게 모든 힘을 넘겨주고 있으니, 나에 대한 불만보다 아몬에 대한 울분이 더 큰 것 같았다.

'어느쪽이든 나한테 도움만 되면 돼.'

중요한 건 던전 공략에 큰 도움이 되냐, 안 되냐.

내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넵튜뉴스가 물의 힘을 이용해 륜을 지키는 것.

그 뿐이다.

다른 도움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

"아몬. 지금 쟁탈전 걸렸지?"

[그래! 네놈이 쟁탈전으로 보낸 그 영사석! 그걸로 나를 능욕하기 위해 보낸 것들은 잘 봤다!]

"그럼 그쪽으로도 아주 위험한 친구들이 가고 있다는 거 알아?"

[...뭐라?]

아마 지금쯤, 내 지시가 몇 차례 중계를 거쳐 그들에게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물의 정령왕이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물의 정령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곳에 있는 정령은 오직 넵튜뉴스 한 명 뿐이다.

* * *

위이잉.

포털이 반짝이자마자 불덩어리가 넘실거렸다. 포털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정령들은 저마다 포털을 넘어온 존재가 숯검정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환영인사가 격렬한 걸."

푸쉬이이이---

불꽃은 강물에 떨어진 것처럼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사그라들었다. 불의 정령들은 그게 정령사들이 주로 쓰는 '워터 월'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정령사들의 대결에서,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 사이의 대결은 항상 수증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다.

"그럼 나도 인사해야지."

파--앙!

가벼운 발구름과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정령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신성력의 파동에 몸서리를 쳤다.

[?!?!]

하얀 연기가 가라앉자, 불의 정령들은 수증기를 헤치고 나타난 존재에 깜짝 놀랐다.

다크엘프!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인 엘프는 머리보다 큰 가슴을 출렁이며,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이 모습으로 정령들을 만나니까 감회가 새롭네. 안녕, 여신께서 인정해주신 다크엘프 여왕이란다."

다크엘프 여왕, 루나의 하복부에는 신성력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짓에 따라 은빛의 신성력은 물처럼 주변에 흐르며 각양각색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고고고고----

신성력의 물줄기는 까마귀 머리의 조인들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들은 그게 '안드라스'라는 종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에 분개했다.

[!!!!!]

물의 정령이-그것도 상급이나 되는 존재가-신성력의 힘을 이용해 마족의 모습을 취했다!

[이, 이런 미친! 여기에도 엘프 여왕이 있다고?! 그것도 다크엘프인데 신성력을 쓰는 여왕?!]

"뭐야. 내 소문이 아직 멀리 퍼지지 않았...아, 그러네. 밖에서는 그냥 엘프 모습으로 쏘고 다녔지. 풉."

루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펭귄 후드를 입은 하르파스가 펭귄 부리를 벌리며 입을 벌렸다.

"살다 살다 정령들을 상대로 싸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르파스가 입을 벌리자 안드라스 형상의 물정령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부리가 벌어지기 무섭게, 하르파스를 비롯한 정령들의 입에서 일제히 물방울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아, 군단장님께서 명명하신 기술. 워터 블라스터, 발사."

하르파스의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물의 정령들이 일제히 입에서 강력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사사사삭!

불의 정령들은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수증기가 되어 사그라들고 말았다.

"후후, 불의 정령왕. 안녕?"

루나는 안드라스 모양의 물의 정령들, 운디네라스들을 조종하며 싱긋 웃었다.

"나도 정령왕 하나 필요한데,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강제였다.

* * *

"미친, 미쳤어, 미쳤다고!!"

아몬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했다.

정문으로는 오크와 하이엘프 여왕이, 포털로는 다크엘프 여왕과 하르파스가.

네 명 모두 레벨이 무려 100이나 되는 자들이 일제히 침입했다.

"이건 사기야...!"

아몬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불의 정령왕과 휘하 정령들이 7위까지 올라온 배경에는 그들이 불꽃의 힘을 다루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은 불에 약하다. 신성력처럼 정령의 힘이 마족에게 상극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데드같은 자들에 대한 확실한 견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적은 신성력과 정령력으로 무장한 채 서서히 입구부터 다가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쳐야해.'

쟁탈전은 하르파스가 걸었다고 한들, 결국 군단의 주인을 죽이면 모든게 쉽게 해결된다.

그러므로 저 건방진 오크를 죽여야한다. 아몬은 불의 정령을 몰래 뒤로 돌려 오크를 향해 돌진시켰다.

"흐하하! 뒤가 비었구나!"

벌처럼 날아든 불의 정령은 오크의 몸에 안착했다. 이제 피부를 녹여버릴 듯이 뜨겁게 타오르는-

사락.

불의 정령은 오크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나갔다.

"...어?"

오크에 대한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크는 아몬이 깃든 불의 정령을 향해 씩 웃으며 엄지를 내렸다.

[나는 불꽃라스를 즐기는 자. 네놈의 공격은 하나도 통하지 않지. 이거보다 그레모리 보지가 더 뜨겁겠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방에서 불의 정령들이 덮쳤으나, 오크는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았다.

[내가 왜 사전준비 없이 바로 너한테 왔는지 아냐? 넌 나한테 아무 공격도 못해. 흐흐흐.]

오크는 그저 땀만 흘리며 던전의 안쪽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올 뿐이었다.

"어, 어째서 정령의 힘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거야?!"

아몬은 절망에 빠졌다.

[왜냐고?]

오크는 두 팔을 벌려 사납게 웃었다.

[내가 예전에 말이야, 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섹스를 했던 오크다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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