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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737화 (733/800)

737회

43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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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던전의 마족들이 트랄을 비롯한 용사들을 노리고 있다.

마족들은 내가 신성력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다면 마족들은 어디서 신성력을 얻고자 할까?

'당연히 사냥이지.'

서브던전에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마물들을 잡는게 아닌 이상, 신성력을 얻기 위해선 인간들을 잡아야한다.

그리고 그 중 신성력을 가진 이들 중에서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역시 성검의 용사들이었다.

'졸지에 내가 용사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되었어.'

대외적으로 향방이 밝혀진 용사는 많다.

너무 많아서 간단히 이야기를 하자면, 레오인 나와 비르고인 메어리, 아리에스인 에일라를 제외하고 모든 용사들이 현재 신성교단의 본거지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중 한 명은 내 부하인 미르마망 사지타리우스.

그리고 나머지 성검의 용사들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보면, 트랄과 함께 우리 던전에 찾아왔던 이는 쌍둥이 요정 제미니와 게갑주의 여전사 칸세르였다.

그들이 이므신할 레오와 접촉해 레오 후작령에 들렸다가 다음 차례를 찾아갔을테니, 분명 리브라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는, 혹은 내 잠정적 적인, 아직까지 속내를 파악할 수 없는 용사는 전부 다섯.

천칭의 리브라.

전갈의 스콜피오.

염소의 카프리콘.

물병의 아쿠아리우스.

마지막 물고기의 피스케스.

이중 리브라에 대한 소식은 대충 전해들었다.

그는 아리에스 대방벽이 무너졌을 당시 트랄과 함께 대마족 전선을 만들었던 존재고, 휘황찬란한 금빛 갑옷을 입는 남자라고 들었다.

'트랄도 남자 동료가 필요하겠지.'

때로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힘든 고충을 함께 이야기할 동성 동료가 필요한 법이다. 주변에 자신을 원하는 여인들밖에 없으니, 아마 트랄도 편하게 대화를 나눌 벗이 필요했으리라.

'그 놈은 괜찮아.'

풍문으로 들었던 것도 썩 나쁘지 않고, 애초에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트랄이 고른 동료다.

'설마 놈도 트랄을 노리는 건 아니겠지? 남자인데? 아니야, 트랄은 남자도 반하게 만드는 마성의…. 에이, 설마. 사내로서 존경하는 정도겠지. 설마 용사가 하드게이겠어.'

트랄이 동료로 받아들인 자가 비정상적일 리가 없다.

아니다. 비만 오크였던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준 트랄이라면 또 모를 지도…?

'일단 나중에 만나게 되면 알겠지.'

리브라는 풍문으로 들었으니 제외.

'그래서 남은 놈들을 따져보면 아예 모르는 자는 둘.'

스콜피오, 카프리콘.

아쿠아리우스와 피스케스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나와 한 번씩 마주쳤고, 불가침 비슷한 조약을 맺고 행방을 감췄다.

'아쿠아리우스가 지키고 있는 아틀란티스, 그리고 아쿠아리우스가 우리 라스토피아에 접근할 수 있게 도운 피스케스. 둘 다 일단 당장의 적은 아니야.'

나와 정면으로 척을 지지 않는다면 적이 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성검이 빼앗긴다거나 우리 군단을 상대로 휘두르는 날은 바로 자지로 혼쭐을 낼것이다.

남자라면 대가리를 박게 만들고, 여자라면 좆대가리를 박게 만들 것이다.

어느쪽이든 지금은 알 수 없는 불리한 요소가 많다는 것.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 알아야 할 적이 많다?

당장 전력으로 맞부딪힐 적만 선택해 싸우면 되는 일.

우리에게 공세를 퍼부은 드워프 무리를 물리쳤으니, 이제는 우리쪽에서 또다른 적을 공격하러 갈 차례다.

쟁탈전.

레메게톤 2.0.으로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쟁탈전의 주요 골자는 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던전과 던전 사이의 전투는 유지되며, 서로를 잡아먹음으로써 세력을 늘려나갈 수 있다.

"쟁탈전 걸어. 준비됐냐?"

[물론이지.]

펭귄 외투의 조인은 입안을 손가락으로 씩 들어올리며 이죽거렸다.

[나를 이렇게 믿어줘서 고마울 지경인걸.]

"혹시나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퇴각해. 스크롤 바로 찢어버려."

[당연한 소리. 누구네 던전 주인인데, 당연히 안 죽죠.]

[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하르파스의 뒤에는 루나가 하르파스를 꼭 끌어안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뒤에는 다크엘프를 비롯한 수많은 병력들이 포털 앞에서 대기중이었다.

"이쪽에서 정면으로 들어갈테니까, 너는 꼭 우리가 들어간 뒤에 후방을 노려. 알겠지?"

[그래, 그래. 걱정도 팔자다. 5위님께서 고작 7위 털어먹는데 자신감을 가져!]

"그래? 그러면 한 마디만 하지."

나는 하르파스와 루나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싹 다 죽여버려."

우리가 쟁탈전을 걸 던전은 우두머리 이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다.

오직 던전의 주인만 잡으면 부하들이 알아서 딸려오는 구조.

"철도 사업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 화력은 꼭 필요하단 말이지...그러니까 잡아낸다."

마액이든 신성란이든 단순히 불로 태우는 게 아니라 '화력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바로 정령이다.

"아몬을 잡는다."

던전 주인, 7위.

아몬.

그의 또다른 이름이자 진명은,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라고 한다.

"참 이상한 세상이야. 정령왕이 던전 주인 노릇이나 하고."

"근데 그 정령왕도 다른 던전 주인 부하 노릇하고 있었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몬은 7위라는 이름답지않게 포-스의 지배하에 있던 마족이었다.

아마 데스트랄을 앞세우고 깡패짓에 당하며 호구잡힌게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미안하다.아몬. 내가 어지간하면 약한 애들은 안 건드리려고 하는데…."

마침, 신성교단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아몬의 던전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도착했군."

나는 대규모 병력을 멈춰세웠다. 벌써부터 열기에 후끈거려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설마 광산 안에 던전을 만들 줄이야."

"그냥 광산도 아니에요. 아래에 용암이 흐르는...화산인 것 같아요."

불의 정령왕이 가장 힘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라고 대놓고 광고를 하는 듯 했다. 나는 오랜만에 양손에 도끼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 어디있냐. 아몬. 내가 너를 잡아다가…."

화르르륵!

아래에서 솟아오른 바윗덩어리들이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게 꼭 당장이라도 불꽃을 뿜어낼 것 같았다.

"반딧불이로 만들어주마!!"

불의 정령왕을 잡아, 먼저 라스토피아 전체를 밝히는 등불로 만들 것이다.

아몬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

하나는 포-스 던전을 공략하는데 방해를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여신교단의 본거지를 쳐들어가는데 중간에 던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첩보가 있었다.

성녀와 그녀를 호위하는 용사 둘이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여행을 준비중이라는 말을.

"흐흐흐, 함정은 못참지."

나는 성녀를 반드시 붙잡을 것이다.

아몬 던전을 함정으로 만들어.

* * *

<38위 던전, 하르파스가 쟁탈전을 걸어왔습니다!>

"이런, 젠장!"

아몬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좌절했다.

"다 좋다 이거야! 내가 포르네...뭐시기 밑에서 오랫동안 굴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도왔던 것 때문에 시비가 붙은 건 이해해! 하지만!"

쿵!

아몬은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수정구를 발로 짓밟았다.

"감히 불의 정령들을 이따위 취급하는 건 용서못해!"

아몬은 던전의 주인이자 불의 정령들을 지배하는 왕이다.

정령들은 아몬의 백성이며 곧 분신이다. 혼은 별개의 것일 지언정, 그 육체는 정령왕으로부터 파생된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던전 주인으로서 아주 특별한 개체들을 새롭게 엄선하여 육성했으니, 휘하 정령들에 대한 애착이 남들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라스토피아는 마치 조롱을 하듯 영상석들을 보냈다. 작은 구슬 안에는 마치 '이렇게 될 운명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짧은 영상들이 남아있었고, 아몬은 영사석에 담긴 영상을 보고 홧병이 났다.

"감히 정령들을...!"

해가 지고 노을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저녁. 어둠이 도시를 드리우자, 대로변에 위치한 가로등에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램프 안에는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 한 마리가 작은 램프 속에서 날고 있었다. 전력을 내면 작은 가정집 하나는 통째로 태워버릴 수 있는 불꽃의 하급 정령은 유리 속에 갇혀 애처롭게 날개만 펄럭이며 빛을 뿜었다.

아아, 이것은 가로등이라고 하는 것이다.

"젠장!"

아몬은 영상의 끝에 재생되는 오크의 목소리에 화가 치밀었다.

"왜 우리를 못살게 굴어서 안달인데! 우리 좀 가만히 내버려둬! 제발!"

이미 라스토피아는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지 않았는가. 사실상 가미긴, 바사고, 아가레스, 바알과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자들이 왜 7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을 괴롭힌단 말인가!

"나한테는 인장도 없고, 최상급 마석도 없고, 신성력도 없다고! 그런데 왜 나를 공격하는 거야!"

아몬은 억울했으나,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체 왜!"

누구도 아몬에게 정답을 알려줄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모든 부하들은 아몬으로부터 파생된 불의 정령들이었기에.

* * *

아몬 던전에 쟁탈전이 걸린 그 시각.

정령계는 아주 삭막하고 흉흉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원래는 더 시끌벅쩍하고 좋았는데, 너무 삭막하네."

바람의 정령왕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훑었다. 정령계는 중간계와는 다른 환상적인 광경을 보였지만, 정령계를 가득 채워야 할 정령들은 너무나도 우울해보였다.

"물의 정령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고, 불의 정령들도 상태가 평소보다 좋지 않아."

바람의 정령왕은 항상 서로 부딪히며 으르렁거리던 두 속성의 정령들이 힘이 없는 것을 보고 힘이 빠졌다.

물의 정령왕에 대한 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의 정령왕은 정령들의 일부가 '피의 정령'이 되어 소위 마기에 오염되어버렸다.

정령계에서도 요정여왕이 빠르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 피의 정령은 물의 정령들 전체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그리고 피의 정령들의 준동에 따라 다른 정령들도 행여나 중간계의 독기가 옮을까 상당히 조심하고 있었다.

비록 피의 정령들이 물의 정령의 영토 중에서도 따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행여나 한 명이라도 격리 중인 곳에서 탈출할까봐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아,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인데."

바람의 정령왕은 한숨을 내쉬며 중간계의 바람을 읽었다. 한산한 정령계와는 달리, 중간계는 어수선하다 못해 아비규환이었다.

전쟁, 전쟁, 전쟁.

온통 대륙 곳곳에 피바람만이 가득했다.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혈향은 인간과 마족들이 뒤섞여 악취로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바람의 정령으로서 가장 친숙하다고 할 수 있는 엘프들 마저도 이제는 변해버렸다.

오크.

라스푸틴.

중간계에서 악명이 높은 오크가 엘프여왕을 취해버리는 탓에, 바람의 정령들은 몹시 조심스럽게 부름에 응해야만했다.

다행히 '두 명'의 엘프여왕들은 엘프들의 친우인 바람의 정령들을 라스푸틴에게 바치지 않았지만, 어쩌면 엘프들의 바람화살과 정령친화 능력을 포기하고 바람의 정령들을 타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오직 주인의 쾌락을 위해.

"...으으, 정말이지."

"왜 그렇게 울상이니."

"앗...!"

바람의 정령왕은 바로 공손하게 자세를 취했다. 정령왕의 눈앞에는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요정여왕이 있었다.

"우울한 일이라도 있니?"

"그게 실은...."

바람의 정령왕은 자신의 마음을 사실대로 읊었다. 요정여왕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그게 네 걱정이란 말이구나."

"네. 바람의 정령들도 물의 정령들처럼 변이하는게 아닐까 싶은...."

"그거라면 걱정말렴. 오크는 너희들에게 관심이 없을테니까. 너희들과 순수한 계약 관계를 맺으면 맺었지, 굳이 척을 지려고 하지는 않을걸?"

"네? 왜요?"

요정여왕은 검지로 바람의 정령왕의 입술을 지긋이 누르며 윙크했다.

"불의 정령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테니까."

"...네? 혹시 지금 이프리트는...?!"

"얘."

요정여왕은 지긋이 웃었다.

"이프리트라니...? 멋대로 정령계 밖으로 빠져나가서 던전의 주인이 된 자란다. 이름도...아몬이잖니."

"......."

바람의 정령왕은 입을 꾹 다물었다.

* * *

"넵튜뉴스한테 박을 때는 물보지에다가 박았는데, 이프리트에게 박으면 불보지에다가 박는 건가?"

"...글쎄요?"

박아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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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불꽃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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