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4회
42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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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단의 성장 배경은 당연히 사랑, 라스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진정한 라스가 자리잡기까지에는 다소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하피가 낳은 알을 식량으로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마족감수성으로 치면 하피는 알 뿐만 아니라 하피 통째로 삶든 굽든 생으로 뜯어먹든 별다른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속에 남아있던 인류 감수성에 따르면, 이 행위는 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나는 아인종을 먹지 않고 동물을 사냥해 먹었으며, 아인종으로부터 생산되는 것들은 기껏해야 알만 섭취했다.
군단 전체의 식량으로 하피 알을 돌렸고, 나는 슬라임 점액과 엘프젖에 의지하며 배를 채웠다.
유정란.
태어날 가능성을 가진 알들은 합성을 한다면 기존의 존재와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채 계속 가만히 전시되어있는 상태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알은 그냥 썩어 문드러지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알을 낳더라도 무정란으로 낳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무정란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다. 다행히 솔로몬은 한 번에 알아들었고,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래의 레메게톤 시스템에 그와 비슷한 시스템이 있다고 하더라.
이를 바탕으로 나는 무정란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선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최소한 인간으로서 가진 양심에 찔리지만 않는다면 된다. 어차피 이 행위는 나의 저열한 자기만족에 불과하고, 지금까지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알들에 대한 배려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등가교환이 필요한 법. 그냥은 도입할 수 없어. 거래를 하지.]
무정란 도입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우리 군단이 낳은 알을 모조리 솔로몬에게 바쳤다.
즉, 우리 군단의 종족들은 시스템의 데이터 일부가 되어 마왕군 전체에 등록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가챠 소환의 리스트에 등재되거나, 가계도 조합에 새롭게 등록되었다는 말이다.
-그린엘프 떴냐아아아아아아
-젠장! 10번이나 소환서를 썼는데 안드라스만 10명 나오는게 말이나되냐!!
-씨발, 순혈엘프는 왜 없어! 왜 죄다 오크 피가 섞인 하프엘프냐고! 왜 엘프 젖에서 이런 좆같은 향이 나는 건데!
아무렴 처음부터 던전의 존재가 아닌 쿠앤크 엘프들은 등록되지 않았지만, 그린엘프나 안드라스를 비롯하여 우리 군단의 주요 종족이었던 이들이 모두 등재되고 말았다.
'소환 리스트에 등재되었다고 쉽게 뽑히는 종족은 아니지만.'
아마 지금쯤 그들의 유전적 데이터를 복사한 솔로몬이 안드라스와 그린엘프 등이 되어 열심히 알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군단 전체로 보면 다소 손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사용에 있어서 큰 거부감이 없는 무정란 생산에 성공했다.
"크흐흐, 이제 알을 삶아먹어도 부담이 없다 이 말이야."
계란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에 와서 내가 즐긴 것이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생사를 가르는 전투이고 또다른 하나는 요리였다.
"흐흐흐…완전식품의 압도적인 힘과 바리에이션을 보여주지."
삶은 계란에 이어서 수플레까지.
내부가 톱밥처럼 푸석푸석하고 둔기로도 활용하는 바게트빵 정도가 한계인 이 세상의 식문화는 이제 무정란의 힘으로 크게 진일보하리라!
"주인님. 근데 그거는 조류계 아인들 한정이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다소 유감스럽지만,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알들은 모체가 정해져있었다.
하피 계열의 '조류계' 마족들이 낳는 알은 식용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나, 모체가 '포유류'인 경우는 사뭇 달랐다.
"껍질깨기!"
파사삭.
나는 그린엘프들이 낳은 무정란을 전부 부쉈다. 껍질 안에는 은빛의 액체가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아, 이것은 코코넛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린엘프들이나 엘프종, 인간들이 낳는 무정란은 하피들이 낳는 알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그린엘프의 알처럼 흡사 코코넛을 방불케하는 알들이 대부분이었다.
단단한 겉껍질.
보드라운 과육같은 내부.
그리고 안에 흥건하게 고여있는 마력이나 신성력.
"크크크. 멍청하게 신성력을 가진 놈들을 붙잡아 제물로 바치는 놈들이 있을테지. 누구는 키워서 먹는데."
알 속에는 신성력이 들어있다.
이 신성력은 모체로부터 빠져나온 힘이며, 굳이 비유를 한다면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보석에 모아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신성력을 산란하게 되는 셈이지만!
“아아, 이것은 이제 신성란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그럼 이곳은 뭐라고 부르실 겁니까?”
“글쎄, 양계장은 조금 그렇고….”
으히이이익!
나는 드워프들이 산란의 비명을 지르는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산란대장간 정도로 하지.”
드워프들은 열심히 무정란을 낳느라 여념이 없었다.
암컷으로 합성된 드워프들은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성력이 담긴 알들을 낳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알들을 강철로 짜맞춘 판 안에 차곡차곡 모아 저장했다.
“흐흐흐, 이렇게 신성력을 낳게 만들면 쉽게 신성력을 모을 수 있는 것을.”
신성력을 얻기 위해 사제를 잡아다가 제물로 바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신성력을 얻기 위해 사제를 잡아다가 신성력을 회복될 때마다 갈취하는 건 중수나 하는 짓이다.
진정한 고수는 신성력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나는 드워프들이 낳은 신성란의 위에 내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푸쉬이이.
껍질에 닿은 나의 피 한방울은 신성란을 보호하는 그물처럼 방사형으로 퍼졌다. 마-신의 힘은 수박 노끈처럼 신성란을 개별로 보호하는 포장이 되었고, 나는 30개가 들어있는 신성란을 들고 샤이탄을 호출했다.
“샤이탄, 이거 얼마에 팔지?”
“SR등급에 준하는 물건으로 거래를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흠...SR 받아봐야 우리는 그닥 쓸모가 없긴 한데.”
“그럼 소분하시지요.”
“...역시 샤이탄 너는 천재다.”
나는 샤이탄의 제안에 따라 신성란이 담긴 철판을 반듯하게 잘랐다. 아무리 단단하게 만들어진 철판이라고 한들, 라스푸틴의 진심이 담긴 할레오 톱질에는 종이처럼 판이 잘렸다.
“신성란 10개, 3판. 흐흐, 딱 30연차 할 수 있는 개수로구나.”
삐빅.
나는 시스템 창을 열어 신성란을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뭘 바칠까…?”
내가 바치는 게 아니다. ‘놈들’이 내게 바치는 것이다.
“아아, 가챠 티켓 팝니다.”
[경매].
나는 신성 소환을 위한 신성란을 경매장에 올렸다.
* * *
던전 주인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스템에 나름 적응하기 시작했다.
레메게톤 7위 던전의 주인, 아몬 또한 새로운 시스템에 충분히 잘 적응하며 시스템의 혜택을 누렸다. 그의 옷은 이계의 정장 세트로, 검은 정장에 은색 체인과 버클 등이 장식되어있었다.
“하암.”
아몬은 하품을 하며 부하들의 보고를 들었다. 불꽃의 작은 정령들은 시시각각으로 인류 연합을 상대로 벌이는 전선의 상황을 아몬, 왕에게 알리고 있었다.
“왕이시여, 정령들이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왜? 신성력을 가진 인간들을 습격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불의 상급 정령이 고개를 조아리며 충심으로 진언했다. 하지만 아몬은 정령의 조언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야. 이제 시대는 변했어. 대세는 마왕군이야. 물의 정령왕도 마왕군의 편에 선 마당에 나라고 오죽하겠냐.”
“그러나 여신을 상대로 척을 지는 건….”
“마왕님이 여신을 범하게 되면 척을 지고 나발이고 다 끝나게 되어있다니까. ...조용, 나온다.”
아몬은 시스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리 띄워놓은 창에는 모래시계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아몬은 긴장하며 시스템창을 마구 눌렀다.
“떠라, 떠라, 제발…!”
삑.
시간이 되자마자 [경매장]이 열렸다. 아몬은 경매장에 올라온 ‘마르바스’의 물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미친, 신성란이라고?!”
이건 사야해. 아몬은 시스템창이 망가질듯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잠시간의 끊김과 함께 구입자가 자신이 되었으나, 금방 다른 자가 더 높이 금액을 부르며 구입 기회를 빼앗아갔다.
“젠장, 내가 입찰한 물건에 상회입찰을 하다니…!”
초기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경매였으나, 마르바스가 신성란을 등록하면서 경매는 과열되었다.
안그래도 곳곳에 숨어버린 사제들을 잡느라 고생중인데, 마침 신성력이 담긴 신성란이 무려 10개나 풀린다?
“이건 무조건 사야해!”
어느덧 신성란 10개는 중급 마석을 넘어 상급 마석 단계에 이르렀지만, 좀처럼 경매의 혼란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상급 마석에서 끝나나 싶었으나, 누군가가 최상급 마석 1개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젠장! 최상급 마석 3개! 더는 안 돼!”
아몬은 전재산을 털 기세로 신성란을 구매했다. 더이상 달려드는 자들은 없었고, 아몬은 시스템을 통해 건네받은 신성란을 재빨리 경매장에 올렸다.
“다시 파는 거야...흐흐흐. 조금 더 비싸게…!”
최상급 마석 3개를 대금으로 지불했으니, 당연히 4개는 받아야 하리라. 최상급 마석을 1개 이득볼 생각에 아몬은 신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이제 누가 사고 있는지 볼….”
아몬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추가...판매?"
이번에는 낱개로 10개가 올라왔다.
"되팔이는 못 참지."
정의를 위해, 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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