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회
360일차
카드득!
쇠장갑은 손톱에 의해 긁혀 잘려나갔다. 안에는 핏물이 철철 흘러넘쳤고, 날카롭게 자란 손톱은 쇠에 갈려 형체가 남아있지를 않았다.
딸칵, 딸칵.
포르네우스는 손톱이 뭉게진 손으로 구속을 해제했다. 자신에게 걸린 온갖 물리적 마법적 구속은 금방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쇠는 힘으로 풀 수 있었고, 마법에 의한 구속은 어째서인지 몹시 약해져있었다. 포르네우스는 감옥 안에서 자유를 되찾았다.
"...젠장."
포르네우스는 자조하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배신에 구속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복수하겠어."
포르네우스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차올랐다. 은빛의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 섰고, 그녀는 발치에 나뒹구는 늙은 오크의 시체를 걷어찼다.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죽은 오크가 이마로 쇠장갑에 일격을 가했기에 그녀는 구속을 풀고 나올 수 있었지만, 포르네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왜 자신을 더 빨리 구해주지 않았냐고 성질을 낼 뿐이었다.
"으으, 짜증나...!"
포르네우스는 몸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애초에 알몸인 상태로 구속을 당한 데다가 무기까지 빼앗겨, 그녀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시스템이라는 무기가 남아있다. 포르네우스는 피로 물든 손가락으로 시스템창을 조작하며 전황을 살폈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부하들은 모조리 전멸당했다. 최하급 오크 노예병이라도 살아있었다면 그 놈의 눈을 통해 던전 내부를 살필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던전에 남은 부하는 없었다.
던전 내부 정원에서 살아남은 자의 수는 오직 '1'.
포르네우스 한 명 뿐이었다.
"죄다 무능해. 젠장."
포르네우스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네 발로 엎드려, 바닥에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욱, 우웨엑."
포르네우스의 뱃속에서 무언가 꿀렁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점액과 함께 빠져나온 물건은 몇 가지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으나, 그녀에게는 반격의 서막을 알릴 좋은 도구들이었다.
"흐흐, 오늘 날을 위해 모아둔 마석이다...!"
보험.
설령 데스트랄이 맞아 죽더라도 뱃속의 마석을 이용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포석은 깔아두었다. 남은 건 선택을 내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흐흐흐, 어리석은 놈들...!"
고오오오.
포르네우스의 주변에 넓은 포털이 생기기 시작했다. 포르네우스는 시스템의 경고창을 무시했다.
<포기> 던전 주인을 포기할 시 막대한 불이익이 발생.
"예."
포르네우스는 포르네우스이기를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던전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두고보자...!"
포르네우스였던 마족은 포털 안으로 퐁당 몸을 던졌다.
* * *
포르네우스, 아니 포르네라스와의 라스는 성공적이었다. 내 분신들이 내 여인들의 성욕을 진정시키는 동안, 나는 포르네라스의 배가 빵빵하게 차오를 때까지 씨를 뿌렸다.
"저는...라스푸틴에게...라스로 패배했습니다...."
몸을 간헐적으로 떨며, 포르네라스는 아헤가오 더블피스로 패배를 선언했다. 남의 던전 소환진 바로 옆에서 펼쳐진 광란의 라스파티는 즐겁게 막을 내렸고, 우리는 이성을 갖춘 지성인으로서 다시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인사 드리겠습니다. 저는 포르네라스. 미래에서 온 마왕입니다."
포르네라스의 자기 소개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놀랐다.
그녀의 외형은 분명 마왕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기품이 넘쳐흘렀다. 내게 박혀 앙앙거리기 전까지는.
- 흐아앙! 제발, 제발 졌다고 하게 해주세요! 더는 못 견디겠어요! 미쳐, 아흑, 미쳐벼려어엇!!
알몸으로 내게 교배프레스를 당하고 자지에 패배한 여자가 마왕이다? 심지어 미래에서 온?
"마왕처럼 보이지 않는데요!"
그녀에게는 솔로몬과 같은 카리스마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상대로 내숭을 떠는 것이거나, 아니면 지금의 마왕과 미래의 마왕은 조금 다른 존재거나.
"그런 이야기 자주 들어요."
포르네라스는 둘 다 해당이 되는 듯 했다.
"미래의 마왕은 그저 마왕군이라는 집단을 이끄는 마족 대표에 불과했어요. 그래요, 굳이 따지자면 조별과제의 팀장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말씀해주셨죠."
"그렇군. 또다른 나인가."
나는 그녀가 다른 세계의 내 딸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친이 아니지!"
"네. 시스템은 에러가 일어나지 않았는 걸요.
때문에 나는 다른 여인들의-특히 메어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나는 당당히 내 결백을 주장했다.
"파후우의 딸은 아니니까 괜찮다."
그녀는 또다른 세계의 나와 포르네우스가 백년가약을 맺어 낳은 자식이었다.
내가 포르네우스와 이어질 운명이 아닌 이상, 포르네라스는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개체. 즉, 나와는 생판 남이라는 것이다.
"네. 저는 미래에서 또다른 과거의 세계로 온 여자에 불과해요. 저를 자지로 쓰러뜨리신 용사님과는 생판 남이라는 거죠."
나와 포르네라스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이건 시스템도 인정하는 바. 그녀는 그저 나에게 엄청난 호의를 가진 강력한 여자 마족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랬다. 세상 어느 미친 자가 자기 딸에게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하겠는가?
"저는 미래의 마왕으로서, 과거로의 시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답니다. 하지만 '저'의 과거는 아니었어요. 마왕이자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세계의 흐름이 붕괴되기에, 저는 큰 제약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다른 세계'로 떨어지게 되었죠. 미래의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바꾸는 일이 존재하지 않도록 말이죠."
"아아, 그것은 타임 패러독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부하들에게 간략하게 개념을 설명했다.
"이 세계의 포르네우스에게는 반려가 없었어요. 오히려 이 남자 저 남자 침실로 들이며 정기를 빨아먹으면 죽이는...걸레였죠.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래서 포르네우스를 옆에서 보좌했죠. 마왕님께서 보낸 던전 운영의 가이드라면서. 그리고 포르네우스라는 마족을 보좌하며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죠."
존재의 이름은 미묘하게 다를 지라도 솔로몬 72던전 주인의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나와 불구대천의 원수은 포-스도 포르네우스고, 또다른 나와 결혼하여 네라스를 낳은 포르네우스도 포르네우스다.
그래서 그녀는 포르네우스가 아닌 포르네라스를 자처했다. 어머니의 이어받은 동시에, 자신만의 이름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저는 솔로몬 30위 던전의 주인이 아닌, 레메게톤의 주인이 되었죠."
"잠깐. 이건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내가 궁금한 부분이 바로 이거다. 어떻게 마왕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포르네라스가 마왕이 되었는가? 우리의 궁금증에 포르네라스는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가감없이 우리에게 진실을 밝혔다.
"솔로몬님께서 아버님께 마왕의 자리를 양도하시고, 아버님께서 제게 마왕의 자리를 물려주셨어요."
미래, 마왕은 여신으로부터 승리를 따낸다.
승리의 주역은 다름아닌 포르네우스 던전의 두 부부.
오크의 효율주의와 전폭적인 포르네우스의 지지가 섞여, 포르네우스 던전은 불과 반 년만에 왕국을 집어삼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솔로몬은 여신을 범하여 목표를 달성했고, 큰 활약을 한 파'오후'에게 마왕의 자리를 물려줬다고 하더라.
"아버님은 은빛 오크의 대족장에서 마왕이 되셨어요."
"봐봐. 나랑은 다른 존재라니까? 진화 루트가 다르다고. 쟤네 아빠는 대족장 파오후고, 나는 라스토피아의 독재자 아니냐.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크흠."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제가 마왕의 자리를 물려받았답니다."
"어떻게 죽었느냐?"
"......."
포르네라스는 애매한 눈빛으로 내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시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륜'에게 꽂혔고, 나는 그녀의 시선에서 대략적인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자고로, 오크의 대적자는 언제나 엘프였다.
"알겠다. 묻지 않으마. 그럼 슬슬 정리해보자꾸나."
"예. ...마침 슬슬 떡밥을 물 때가 되었네요."
짝.
포르네라스는 손뼉과 함께 천장에 포털 하나를 만들었다. 나는 미묘한 주황빛의 포털에 기시감을 느꼈다.
"......저거 혹시?"
"하아앗-!"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은빛 머리칼에 피떡이 된 소녀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으으, 뭐야. 어떤 새끼가 내 마법진에 간섭을-"
"여어-"
나는 여인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나와 포르네라스를 번갈아보더니 표정이 바로 굳었다.
"네라스야, 이거 네 엄마 아니지?"
"...예. 저희 어머니는, 적어도 혼인 이후에는 평생 한 명의 남자만 받아들이셨으니까요."
마지막 심적 거부감도 사라졌다. 나는 표정이 굳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왜 그렇게 심각해? 뭐 잘못 먹었어?"
"아, 아아...."
포르네우스의 얼굴이 공포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볼을 붙잡으며 활짝 웃었다.
"진정해. 누가 보면 널 패죽이려고 하는 줄 알겠네. 걱정마라. 나 그렇게 잔인한 복수귀 아니야. 그냥...딱 하나만 하면 돼."
포르네우스를 향한 복수는 나의 것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때까지, 포르네우스는 살아있어야 한다.
"근데 아직 쟁탈전 안 끝났네?"
어쩔 수 없었다. 승리를 위해선.
"일단 감히 깨물 생각도 못하게 이빨부터 뽑고 시작해볼까? 야, 아가리 딱 때."
나는 주먹을 움켜쥐어-
"일단 한 대 맞고 보자."
온 몸의 힘을 주먹에 담아, 포르네우스의 얼굴에 때려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