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회
359일차
“......뭐야?”
포르네우스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영롱한 무지개빛이 반짝이는 것은 단 하나, ‘레벨업’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냥 일반 병사들과는 사뭇 다른 빛무리가 나타나는 자들이 있다. 바로 던전 주인의 레벨업이다.
그게 눈앞에 나타났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일으키는 당사자이자 감히 포르네우스라는 대마족에게 반기를 들었던 돼지 오크, 그가 던전 주인들만 나오는 빛무리를 뿜으며 레벨업을 했다.
무려 두 단계나.
“.......”
포르네우스는 긴장하며 시스템창을 열었다. 상대방의 정보가 새로 갱신된 걸 차마 보고싶지는 않았지만, 포르네우스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으….”
삑.
파후우 라스푸틴 아스타로트.
Lv.100.
★★★★★.
“이게 뭐야!”
포르네우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상대가 ‘아스타로트’인 것, 상대가 레벨 100인 것, 상대가 무려 5성이나 되는 것, 상대가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네 개 군단의 통솔자이자 조디악 왕국을 쓰러뜨린 라스토피아의 지도자 <라스푸틴>이라는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왜 저 새끼인 건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름 석 자, 파후우라는 이름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파후우.
남들보다 배가 볼록하게 태어난 오크에게 자신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 숨 쉬는 것이 다른 오크들보다 태어난 순간부터 힘들어보여, 그 숨을 조롱하고자 지은 이름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경멸과 멸시로 오크의 삶을 시작한 존재이거늘, 어찌 이리도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보다 못한 자가 어째서 이렇게 성공한 존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아악!!”
포르네우스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자신의 살육을 받아줄 어떤 존재도 없었다.
파후오크?
전부 고기방패로 써먹어버렸다. 이미 죽은 파후오크들은 괘씸죄로 아직 소환하지 않았고, 살아남은 파후오크들은 통로를 몸으로 막으러 떠났다.
데스트랄?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 파후우에게 머리가 박살이났다. 사지를 구속당하고 망치를 제압당해, 이빨과 함께 머리가 완전히 박살날 때까지 얻어맞았다.
즉, 데스트랄은 지금 인연소환의 목록에 올라가 있다. 최상급 마석을 무려 10개나 먹은 생체병기는 제 값을 다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살아있었을 때는 7위 던전도 단신으로 다 박살내고 다녔던 최강의 병사는 곤죽이 되어 죽었다.
다른 던전에 쟁탈전을 걸어 포털에 궁둥이를 밀어 집어넣기만 하면, 아무리 늦어도 사흘 정도만에 모든 던전을 박살내버리던 괴수는 또다른 괴수에게 무기를 빼앗기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부히힛.]
놈은 귀기어린 웃음소리를 흘리며 망치를 빙빙 돌렸다. 망치에 깃든 붉은 기운은 고위 마족인 포르네우스가 모를 수 없었다.
“마검…!”
[어이, 거기 보고 있나?]
놈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피가 잔뜩 묻은 오크는 옆에 있던 엘프의 도움으로 피를 닦아냈다.
[포르네우스, 내가 돌아왔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다가, 자신이 죽는 게 확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반기를 들었던 그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살육과 광기에 물들어 있던 그 때와는 사뭇다른 존재감에 포르네우스는 전신이 떨렸다.
마족이기에 포르네우스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포르네우스였기에, 그녀는 스크린 너머에서 느껴지는 상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포르네우스보다 강한 자였다.
“이...젠장….”
포르네우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심지어 상대는 오크 하나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 90레벨에 이르는 온갖 여자 종족들은 라스푸틴이나 데스트랄에는 미치지 못해도, 그에 준하거나 그보다 못한 수준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파후오크 10명 정도는 쉽게 죽여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젠장…!”
데스트랄이 무너진 순간, 포르네우스 던전의 힘은 급감한다.
모든 힘을 데스트랄 하나에 모아놓았기에, 데스트랄이 망가지면 완벽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내가...저 새끼한테 잡힌다고?"
그럴 수 없다.
다른 놈들에게 잡혀서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죽을 수 없다.
“그, 그래! 걔라면 답을 알고 있을 거야!”
포르네우스는 급히 시스템창을 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를 시스템으로 부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어디, 어디있어?!”
포르네우스는 초조한 마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네라스------!!”
“부르셨습니까.”
포르네우스가 부른 이름의 여인은, 은발을 찰랑거리며 포르네우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 빨리 이거 수습해! 저 새끼들 어떻게 하지?!”
“...두 가지 안타까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아몬 던전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
포르네우스는 등허리에 핏기가 가셨다.
“반란…?”
“예. 부하들을 이곳에 보낸 걸 바탕으로 데스트랄의 죽음을 눈치챈 듯 합니다. 아마도 최상급 마석을 10개 사용하여 바로 부활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만….”
“말도 안 돼. 그 새끼가 그런 도박을 했다고?”
포르네우스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당장 던전으로 넘어가서 자결하라고 명령만 내리면 아몬이고 이프리트고 나발이고 자결해야 하는 놈인데?”
“...그걸 각오하고 반란을 일으킨 모양입니다. 지금 저희 쪽 던전으로 향하는 포털 입구에 병력을 포진하고 농성중입니다.”
콰득!
포르네우스의 뒤에서 마력이 번쩍거렸다. 옥좌가 반으로 갈라졌고, 포르네우스의 머리칼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안타까운 소식은?”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여인, 네라스는 다소곳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저, 네라스. 진정한 주군의 곁으로 가고자 합니다.”
“너-”
파지직.
포르네우스는 정체 불명의 구속에 의해 몸이 굳었다. 은발의 여인은 지팡이를 포르네우스에게 겨누며 중얼거렸다.
“잠깐이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래도 역시...당신은 아니에요.”
네라스는 눈물을 흘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역시 당신은 어울리지 않아요.”
푹.
지팡이 끝이 포르네우스의 심장을 관통했다.
* * *
“흐, 흐흐, 흐흐흐.”
나는 절로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륜이 소환한 넵튜뉴스가 내 위에서 물을 뿌려대도 나는 내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를 식힐 수 없었다.
“이것이 궁극진화체, 그레이트 파후우…!”
레벨을 끝까지 찍는 건 모든 RPG의 1차적 반환점이다. 끊임없는 만렙 컨텐츠가 물밀듯이 쏟아지며, 온갖 전직을 통해 더욱 강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르다.
레벨을 100까지 찍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오를 수 있는 생물적인 한계라는 것을.
6성으로 초월하지 않는 한 여기서 더는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마치 인위적으로 걸린 한계에 다다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끙…."
나는 바닥에 잔혹하게 흩어진 데스트랄의 잔해로부터 떨어졌다. 놈의 얼굴을 흔적도 없이 망가뜨린 이유는 이 놈을 감히 트랄이라고 부르기에는 트랄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네 대신 네 짝퉁 박살냈다, 형제여.'
나는 트랄을 대신하여 트랄의 가짜에게 심판을 내렸다. 놈의 망치를 빼앗아 직접 머리를 으깨버렸다.
중간중간 이빨을 세우며 내 망치를 막아내려고했지만, 할레오가 깃들어 아티팩트화 된 망치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짝퉁 주제에 무기는 되게 좋은 거 쓰네."
나는 빼앗은 무기를 손에 움켜쥐고 빙글 둘렀다. 드라이어드의 나무 뿌리, 그것도 아스모딘 급의 강도를 자랑하는 뿌리털의 강도는 아무리 휘둘러도 자루가 망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점으로는 망치.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망치는 아무나 곤죽을 만들기에 딱 좋은 형태였다. 망치를 이루는 철도 잡철하나 섞이지 않고 매끈했다.
무기 욕심이 없는 나지만, 좋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축복 그 자체다.
그리고 이 무기를 사용할 걸 생각하니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걸로 포르네우스 머리를 깡…!"
상상만으로 지릴 것 같았다.
드디어 포르네우스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너무나도 기쁘기 그지 없었다.
[군단의 주인이시여, 길을 열었습니다.]
하서스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구울들이 열심히 파후오크들을 옆으로 치우고 벽을 파고 있었다.
그래도 군단의 주인을 복제한 놈들이라고, 나름 안 보이는 곳에서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상했다.
"내가 지나가면 자유롭게 먹어도 좋다."
"주인님, 그건...."
"저 놈들은 내가 아니야."
이 세상에 파후우 라스푸틴 아스타로트라는 존재는 나 하나 뿐이다. 나는 귀에 단 마도구를 통해 내 던전에 지시를 내렸다.
"샤이탄, 혹시 모르니 '그걸'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금방 보내겠습니다.]
포르네우스를 상대할 최강의 무기까지 마련한 나는 누구보다 앞장 서서 던전의 보스룸 앞까지 다가갔다.
"드디어."
끼이익.
나는 철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그 날, 모두의 앞에서 굴욕을 당했던 그 날.
내가 앞에 에일라를 끼운 채 목숨을 구걸했던 그 날과 똑같은 풍경으로, 반으로 잘린 옥좌에는 은발의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몸 안이 비치는 은빛의 실크 드레스을 입은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고 침대에 앉아 허니문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여신을 처음 볼 때의 그 아름다움과 기품이 느껴졌다. 차음 볼 때는 아닌 것 같았지만, 역시 깎아지른 절벽보다도 오목하게 들어가는 흉부장갑을 보니 포르네우스가 확실했다.
"......허, 이 것 봐라."
나는 그녀의 위에 떠오른 정보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
Lv.100.
★★★★★★.
"그래. 나도 이렇게 성장했는데, 너도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지."
나는 해머를 포르네우스에게 겨눴다. 찰랑거리는 은발에 쭉빵 미인이 된 그녀는 당장이라도 내가 임신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여인이었다.
"살려달라고 말하지 마라. 어차피 따먹을 거니까."
"......훗."
은발의 여인, 포르네우스는 입꼬리를 비틀며 손을 뻗었다.
"얼마든지."
까딱거리는 손짓과 함께, 나는 영혼을 실어 소리질렀다.
"포르네우스!! 복수를 하러 왔다!!!"
복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