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699화 (695/800)

699회

359일차

눈앞의 트랄은 가짜다.

하지만 가짜라고 해서 그의 무력이, 그의 레벨이, 그의 강함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

나는 정면에서 데스트랄의 공격을 직접 막아내며 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2레벨 차이라고는 해도 힘의 차이는 명백했고, 나는 놈의 망치질을 피하는데 급급했다.

부웅- 부웅---!

"크윽!"

놈은 망치를 거칠게 휘두르며 나를 곤죽으로 만들려고 했다. 투구 한쪽의 악마의 뿔 장식이 망가진 놈은 사납게 성질을 부리며 나를 등심 고기 다지듯 망치를 후렸다.

"젠장! 뚝배기 깨졌는데 계속 싸우는 놈이 어디있냐!"

"크아아앙!!"

해일과 함께 날아간 나는 놈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머리를 두동강 내버릴 강력한 일격이었고, 나는 거기서 승리를 확신했다.

그 어떤 생물도 인간형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이상, 99%는 대가리가 깨지면 죽는다.

라이프 베슬을 따로 달고 다니는 리치가 아니고서야, 중요 급소인 심장과 뇌 중 뇌가 강하게 얻어맞으면 지성체인 이상 기절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데스트랄은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놈의 미간을 향해 정확히 몽둥이를 집어던져 투구를 으깨버렸음에도 놈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투구 장식에 달린 뿔로 몽둥이를 후려치더라.

고개를 돌리는 거로 내 전력이 담긴 몽둥이 투척을 막아낸 데스트랄은 투구의 뿔만 부러졌을 뿐이다.

그리고 놈은 마치 고작 체력은 1 깎였으면서 공격력은 4가 올라간 미친 놈처럼, 마치 피해를 입으면 공격력과 데미지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나를 압박했다.

경미한 부상에도 광증을 보이며 주변을 전부 때려부수는 강인함에 피해를 보는 건 나였다.

"젠장!"

놈의 무기를 빼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나는 데스트랄 이외에도 다른 녀석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추휘익!"

데스트랄의 뒤에 있는 파후오크들은 나를 향해 짱돌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놈들은 데스트랄이 돌멩이에 얻어맞는 건 신경쓰지도 않고 전력으로 돌을 투척했다.

"포-스, 네가 감히 나를!!"

나를 잡기 위해 데스트랄을 제물로 삼으려는 누군가의 의지가 분명히 담겨있었다. 나는 내 잘생긴 얼굴을 짖이겨버리려는 데스트랄의 공격에 상체를 뒤로 젖히며 몸을 튕겼다.

출렁---!

데스트랄의 공격은 내 배를 스치며 튕겨나갔다. 나는 배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격통에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지만, 나의 복부는 데스트랄의 전력이 담긴 해머질을 튕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패였다.

그리고 의도치 않은 공격으로 해머가 미끄러진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데스트랄을 노릴 절호의 찬스다.

"아아, 이건 패링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뒤로 발을 크게 뻗어 몸을 지탱했다. 순간적으로 한쪽 다리에 걸리는 무게에 발목이 터질 것처럼 아팠지만, 나 또한 육체의 근본은 오크다.

고통을 분노로, 분노를 힘으로 만들어내는 오크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

"죽어라, 짝퉁!"

나는 오른팔에 모든 힘을 불어넣어 주먹을 휘둘렀다. 문신의 힘을 전부 손에 깃들게 한 다음, 놈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스트레이트를 찔러넣었다.

퍼---억!

나는 놈의 얼굴에 정확히 주먹을 때려넣었다. 주변에 충격파가 일 정도로 강한 권격에 뒤에서 돌을 날리던 파후오크들이 놀라 공격을 멈출 정도였다.

통했나, 싶은 순간. 나는 급히 주먹을 당겨야만 했다. 내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따갑고도 고통스러운 감각은 내가 주먹을 날린 반동이 아니었다.

콰득!

데스트랄은 날카로운 송곳니로 허공을 깨물었다. 아주 약간만 판단이 느렸으면 주먹이 손가락 째로 씹어삼켜질 뻔 했다.

"크으으.... 역시 철근도 씹어먹을 놈...!"

나는 손가락에 길게 난 날카로운 잇자국에 짜증이 일었다. 놈은 내 주먹을 입을 벌리는 것으로, 이빨로 주먹을 깨무는 것으로 막은 것이다.

씨익.

데스트랄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사납게 웃었다. 자신의 입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놈은 내 살점을 이빨로 할퀸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있었다.

"...설마 네놈도?"

"캬아악!"

데스트랄은 광소하기 시작했다. 놈은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포효를 내질렀고, 뒤에 있던 파후오크들은 무기를 들어올리며 데스트랄의 위용에 응원을 보냈다.

"네 놈, 저것들을 먹었구나...!"

나는 데스트랄이 100레벨에 이른 비결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떻게 이 던전이 강해질 수 있었는지 새삼 다시금 알게 되었다.

3성 파후오크 Lv.70을 중급 마석 몇 개로 소환한다.

이지가 없는 파후오크는 다른 오크들의 먹이가 된다.

고레벨 급 개체는 마음껏 파후오크를 먹여 식량 겸 경험치로 만들고, 단 한 명의 생물병기를 만들어 힘을 불린다.

그게 포르네우스가 나와 트랄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던전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63위 아래에서 아둥바둥 거리며 마석 짤짤이를 하는 동안, 포르네우스는 30위부터 상위 던전을 제압하며 세력을 불리고 있었다.

"강하네, 포르네우스 주제에."

강해진 비결은 분명 나와 트랄의 데이터 덕분이리라. 정신과 혼은 던전 밖으로 빠져나갔어도 육신의 데이터는 남아 시스템으로 재현되는 것 만으로 던전을 이렇게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니, 나는 새삼 트랄과 나의 위대함과 훌륭함이 자랑스러워졌다.

'그러길래 진작에 중용하지 그랬냐.'

나는 또다른 미래를 보았다.

트랄과 내가 중용되는 미래를 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포르네우스와 결혼하여 딸까지 낳았고, 감히 바알을 넘보는 거대 세력을 만드는 세계를 보았다.

그러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다. 지금, 포르네우스와 나는 둘 중 한 명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생사지적이다.

"인정하지. 나는 짝퉁트랄보다 약하다."

전력을 발휘해도 이기기 힘든 상대인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막느라 휘어진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강하다."

1:1이 안 된다면, 1:다 로 다수의 힘으로 이겨내면 되는 일이 아닌가?

"얘들아! 조지자!"

"""라스!!"""

뒤에서 내 명령을 기다리기만 하던 부하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었다. 천장, 옆 벽, 아래 바닥, 네 방향에서 구멍을 뚫고 튀어나온 내 부하들이 후방에서부터 파후오크들을 덮쳤다.

"주인님의 가짜들, 전부 죽어버려!"

"꺄하하하!"

"불의 정령들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마법이 휘몰아치고, 물보라가 일어나며, 붉은 궤적이 넘실거린다. 나는 내 옆에 성검을 들고 선 에일라와 함께 트랄을 향해 검을 겨눴다.

"치...사...."

데스트랄은 신성력을 마구 반짝이는 에일라를 보며 흉측하게 이를 갈았다. 나는 놈에게, 그리고 우리를 보고 있을 포르네우스에게 과시하기 위해 에일라의 허리를 휘감으며 놈에게 이죽거렸다.

"꼬우면 너도 애인 만들어 오든가."

나는 데스트랄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내달렸다.

파-앗!

옆에서 벼락같은 금빛의 섬광이 뿜어져나왔다. 에일라는 벽을 박차고 앞으로 달렸고, 나는 맨몸으로 전방으로 달렸다.

"크어어어--!!"

데스트랄은 포효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우리의 후방에 있던 엘프들은 귀신같은 활실력으로 우리에게는 피해 없이 정확히 데스트랄의 몸을 향해 활을 쏘았다.

카앙, 카앙!

망치가 바람화살을 깨부술 때마다 데스트랄은 뒤로 물러섰다. 놈은 화살을 튕겨내며 에일라와 나를 동시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압-!"

에일라는 짧은 기합과 함께 성검 아리에스를 전방으로 휘둘렀다. 데스트랄은 아리에스의 검로에 정확히 망치를 휘둘렀고, 에일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힘대결에서 밀려 뒤로 물러났다.

"역시 트랄의 육체다!"

6성 성검의 용사마저 이겨내는 강인한 힘에 나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근데 그거 아냐?"

나는 이미 트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에일라가 만들어낸 틈 사이로 숨어든 나는 트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겨눴다.

"트랄한테 망치를 들게 만들어? 하여튼 부하들에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구나."

파지직!

분홍빛으로 반짝이는 꽃잎같은 무언가가 날아들어 트랄의 손목에 달라붙었다. 각기 두 개로 나뉘어진 버지니움 실드는 데스트랄의 몸을 신성력으로 불태웠다.

"크아악!"

"둔기류는 원래 내 전문이었어, 머저리야."

나는 데스트랄이 놓친 망치를 빼앗아들었다. 은빛의 망치는 순식간에 나의 문신으로 물들어, 사자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포르네우스-----!!"

나는 과거의 울분을 모두 담아, 아티팩트가 된 망치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이 놈을 네 가슴처럼 만들어주마---!!"

나는 망치를 빙글 휘둘러 놈의 턱을 후려쳤다. 이빨로도 감히 망치를 깨부수지 못하게, 먼저 턱부터 후렸다.

"커헉!"

데스트랄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나는 흉갑조차 입지 않은 놈의 명치를 걷어차며 마운트 자세를 취했다.

꾸드득!

옆에서 나무 뿌리가 돋아나 데스트랄의 손을 휘감았다. 은빛의 신성력으로 반짝이는 족쇄가 데스트랄의 손목을 바닥에 눌렀다.

"야, 짝퉁."

나는 망치를 한 손으로 높이 치켜올린 뒤.

"박-살-!"

턱뼈가 으깨지며 투구가 살짝 벗겨진 놈의 얼굴을 향해, 나는 망치를 후려찍었다.

그리고.

파아앗-------!!

영롱한 무지개빛이 나를 감싸며, 내 전신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려, 두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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