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697화 (693/800)

697회

357일차

이 세상에는 도플갱어라는 마물이 있다.

대상으 모습을 똑같이 복제하는 건 기본이고, 등급과 레벨이 높으면 대상의 기억, 지식, 습관, 그리고 정신까지 복제한다고 하더라.

도플갱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를 복제해봐야 지들이 감당 못하지.”

나는 기본적으로 욕구가 넘치는 오크다.

그들이 과연 나의 ‘과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던전 주인을 상대로 하극상을 벌인 오크가 난데, 과연 도플갱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도 만약 존재한다면? 음...정말 싫을 것 같은데.”

나라는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문제는 도플갱어는 분신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

분신은 내 지시와 명령을 듣는 내 또다른 손과 발, 그리고 자지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분신으로 내 여인들과 잠자리에 들어도 거부감은 커녕 오히려 좋기만 했다.

하지만 도플갱어는 나와 완전히 ‘별개’의 존재다.

내가 아닌 다른 영혼을 가진 존재가 내 육체를 똑같이 따라하고 복제하는 이상, 그건 나를 흉내낸 존재일 뿐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 도플갱어가 있다면, 내 손으로 직접 때려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자기혐오.

그리고 내가 처음 본 나의 도플갱어는 정말이지 보기 흉측했다.

“죽어라, 돼지 새끼야!”

퍼억--!

나는 홈런을 치듯 철제방망이를 휘둘렀다. 단순한 방망이도 아니고, 마검 할레오를 깃들게 하여 휘둘렀다.

“뀌익!”

놈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안에 내용물이 빠져서 축 늘어진 뱃살은 펄럭펄럭 거리며 흔들렸다.

‘저런 거 수술해야 한다던데.’

나는 괜히 나도 저렇게 될까봐 으스스했다. 레벨이 높아지고 등급이 높아짐에따라 늘어난 뱃살은 언젠가 줄어들게 되겠지만, 이미 늘어난 피부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반듯하게 자란 미래를 보았다. 탄탄하게 자리잡은 근육을 보았고, 나는 그 미래를 이 손으로 반드시 붙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고작 내 도플갱어 따위에게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우오옷!!”

나는 놈을 향해 할레오 배트를 휘둘렀다. 놈은 무기를 놓치고 맨몸으로 가드를 올렸고, 나는 가드 째로 놈의 위에 할레오를 휘둘렀다.

“죽어라!”

라스로 자비를 베풀던 나는 없다. 이곳에는 살육의 광기에 젖어있던 피에 배고픈 전사만이 남아있을뿐이다.

“내가 다른 것들은 다 따먹어도 포르네우스 던전 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포르네우스 본인도 용납할 수 없는데, 포르네우스 던전의 부하들이라고 오죽하겠는가.

심지어 나를 합성해놓은 듯한 파후오크들에 더불어, 내 시체를 되살려놓은 듯한 3성 오크까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설령 여기서 이 오크의 두개골을 깨부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분노를 참지 않을 것이다.

“그, 그만…!”

오크는 나를 향해 애원하기 시작했다.

“추히익, 그, 그만 때려라…! 오크 아프다…!”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잘생겨지라고 때리냐?”

퍼억. 나는 오크의 복부를 향해 할레오를 휘둘렀다. 오크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괴로워했다.

“크어엉!”

“역시 너는 진짜가 아니다.”

나는 할레오를 거꾸로 쥔 다음, 놈의 하복부를 발로 짓밟고 놈에게 할레오를 겨눴다.

“진짜는 나다.”

나는 던전의 최심부에서 포르네우스가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로브를 뒤로 넘겼다.

“포르네우스! 네 반란분자가 돌아왔다!”

나는 당당히 내 존재를 밝혔다. 이미 목소리나 행동거지로 나를 알아챘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나를 형상화한 나의 가짜를 죽임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강해졌다.

나는 강해져서 돌아왔다.

나는 포르네우스를 죽일 수 있을만큼 강해졌다!

“거기서 목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 포르네우스!!”

“멍청한 새끼.”

아래에 깔린 오크는 나를 향해 비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잡고 휘둘렀다. 놈의 도끼는 정확히 내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퍼---억!

도끼가 박혔다.

벽에.

“그러니까 네가 짝퉁이라는 거다.”

가짜가 휘두른 도끼는 허리의 반탄력에 의해 튕겨나가 벽에 박혔다. 세상 어느 방패보다도 단단한 나의 고기방패에 오크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마신께 여쭤보든가.”

나는 할레오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 자가 있다면, 말이지.”

그리고 나의 전력을 다해, 문신의 힘까지 끌어올리며 할레오 배트를 아래로 내리쳤다.

“지옥으로 꺼져라, 나의 암울했던 과거여---!!”

콰직!!

나는 내 스스로, 과거의 나를 죽였다.

* * *

“아하하하!”

포르네우스는 배를 붙잡고 웃었다. 그리고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에 움켜쥐고 있던 유리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저 개자식이!”

쨍그랑!

유리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근처에 있던 오크들은 튄 파편에 상처를 입었으나 굳건히 고개를 조아렸다.

“저 놈 때문에 내 던전이 망할 뻔 했는데, 감히 높으신 분에게 기생해서 내 던전을 털러 왔다 이거지?!”

포르네우스는 정수리까지 시뻘게져서 분개했다.

그녀의 기준으로 아무 힘도 없는 오크가 8위 던전, 그것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바르바토스 던전의 선봉대장으로 나서는 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삐빅.

포르네우스의 앞에 시스템의 스크린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지옥과도 같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부름에 응답하였습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바르바토스가 왜 나한테 쟁탈전을 건 건데?!”

[...흠,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르바토스 던전이 몰락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뜬소문이라고 생각하여 파악 중에 있습니다만-]

“느려, 이 새끼야!”

포르네우스는 욕지기를 내뱉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스크린 너머 불꽃 덩어리는 뭔가 기분이 언짢아진 것처럼 타올랐으나, 포르네우스는 스크린 너머의 마족이 어떤 기분인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네가 내 부하라면 주인이 쟁탈전 안 걸리게 잘 관리했어야지! 네가 걔보다 순위 높잖아!”

[죄송합니다, 주인이시여.]

자신보다 낮은 자를 상대로 기고만장하고 콧대를 높이는 자.

“빨리 쟁탈전 걸어! 바르바토스 새끼 죽여버려!”

[...주인. 바르바토스와 쟁탈전이 걸려있다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시스템의 제약입니다.]

“칫….”

불꽃의 마족이 ‘시스템의 한계’를 언급하자마자 포르네우스는 꼬리를 말았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포르네우스라는 마족은 강약약강의 전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럼 순간이동으로 부하들 보내. 지금 당장.”

[주인, 저는 지금 인류연합의 최전선에서 전투를….]

“어쭈? 너 지금 까분다? 내가 그거 또 보내봐? 마침 나 소환했다 이거야.”

[...네?]

불꽃의 마족은 진심으로 놀랐다.

[그거 지난 번에 한 번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흥, 그 때랑 지금은 다르다고. 내가 있는 거 없는 거 싹다 긁어모아서 이번에 새로 하나 장만했지.”

[......경하드립니다.]

“경하만 주지말고 게이트 만들어서 지원군 보내. 안 보내면 바르바토스 정리한 다음, 그걸 네 던전으로 보내버릴테니까.”

포르네우스는 다시 옥좌에 앉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잘하자, 아몬. 응?”

[...금방 보내겠습니다. 주인.]

삑.

시스템의 연결이 끊어지자, 포르네우스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빈정거렸다.

“역시 걔 말대로 할 걸 그랬네. 그냥 어디 쓸모 없는 던전에다가 쟁탈전 걸어서, 다른 놈들이 쟁탈전 걸지 못하게 막을 걸 그랬나?”

포르네우스는 혼자서 궁시렁거리며 시스템을 두드렸다.

“너희, 가서 당장 그 새끼 죽이고 와.”

“취이익.”

“마음껏 먹어치워버려. 이 세상에서 흔적도 남기지 말고 전부 지워버리라 이 말이야.”

파후오크들은 포르네우스가 내린 살상명령에 눈을 빛내며 자리를 떠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파후우’라는 존재를 죽이는 데 파후오크들은 열이 제대로 올랐다.

“후우, 짜증나게. ...응? 뭐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발의 마법사는 시스템으로 뭔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포르네우스는 은근슬쩍 마법사의 시스템창을 눈으로 살피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포르네우스의 눈에는 그녀의 창이 보이지 않았다.

주룩.

하지만 마법사의 눈에 흐른 눈물은 볼 수 있었다.

“야, 너 우냐? 너도 울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뿐입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환하신 ‘그’에 대한 모든 정비는 끝마쳤습니다. 이제 사용하시면 됩니다.”

“후후, 좋았어. 그럼 불러봐.”

저벅, 저벅.

던전의 통로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오크는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에 흉측한 철갑을 두른 채, 두꺼운 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오크의 머리 위에는 단 하나의 문구만 반짝이고 있었다.

Lv.100.

"명령이다. 그 새끼, 꼭 죽여버려. 데스트랄."

"크르르...."

"......."

은빛의 마법사는 여전히 스크린 속, 붉은 빛이 감도는 문신 오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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