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회
357일차
"취히익."
나는 나도 모르게 던전에서 나오는 오크들의 목소리를 따라했다. 이곳에 있는게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었지만, 나는 찬란한 미래와 희망찬 내일을 위해 분노를 참았다.
"정말 짜증나고 미쳐버리겠군."
마음같아서는 전부 엎어버리고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던전 안에 가득찬 파후오크들이 내뿜는 악취는 정말 상상이상이었다. 나는 냄새 때문에 일부러 던전에 구멍을 파서 상대의 후방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포기했다.
포르네우스가 보는 앞에서 던전에 구멍을 판 다음, 외벽을 차단하여 우리에게 냄새가 닿지 않게 만들었다. 차라리 흙먼지와 곰팡이의 냄새가 차라리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깨달았다. 이 세계에 무엇이 필요한 지."
"뭔데요?"
"가글."
무언가를 먹고 나면 반드시 입을 헹굴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치약과 치솔을 항상 들고다니며 양치를 하고, 양치가 안 되면 향을 머금은 차로 구취를 억제하고는 한다.
무언가를 먹고 나면 최소한 맹물이라도 사용해서 구취를 제거해야하건만, 이 새끼들은 양치는 커녕 입안에서 음식을 썩히는 지 구취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그 악취는 하필이면 또 시취였다.
놈들은 무언가를 잡아먹었고, 피와 내장의 냄새가 그들의 입에 한가득 남아있었다.
"이 새끼들은 절대 우리 군단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물을 크게 두종류가 있다.
하나는 동족을 상대로 포식이 허용된 슬라임과 같은 존재고, 하나는 동족을 상대로 포식하는 행위가 흔히들 떠올리는 '식인'과도 같은 존재가 있다.
전자에 대해 사람들은 '마족'이라고 부른다. 지성을 갖춘 존재로서 같은 종족인 이들을 먹어치우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후자의 짐승들에 대해 우리는 '마물'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있다고 한들 같은 종족을 직접 먹어치우는 자들은 그저 미친 존재일 뿐이다.
나는 그걸 슬라임 배양, 그러니까 라임의 성장을 통해 깨달았다.
동족이 아닌 타인을 먹은 라임은 슬라임 계통의 여왕으로 진화했고, 동족을 먹은 슬라임들은 빅 슬라임에서 슬라임 드래곤으로 점차 몸집을 불려나갔다.
제대로 된 지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동족을 먹어치우는 건 마물이다.
그리고 이 포르네우스 던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족은 마족, 파후오크다.
'강하기는 또 더럽게 강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무리 포르네우스 던전이라고 한들 배울 건 확실하게 배워야 했다. 다른 던전도 반면교사 삼아 던전 운영의 노하우를 훔쳤는데, 포르네우스 던전이라고 못할 이유는 하등 없다.
"라임아, 우리 던전 어디까지 파냈지?"
"이 층은 거의 다."
구구구.
라임은 슬라임 드래곤들을 회전시키며 아래를 파내려가고 있었다. 벽과 벽 사이를 공략하는 것에 더불어, 던전 내부의 공간을 천장과 바닥으로 숨어드는 것 또한 우리 군단의 주특기였다.
지금은 악취를 피하기 위한 임시거처를 만드는데 사용했으나, 상식을 뒤덮는 행위에 분명 다소 놀랐을 것이다.
"규칙이 왜 존재하는지 아느냐?"
[규칙을 지키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 하지만 나같은 놈들에게는 다르지.]
규칙이라함은, 규칙 이외의 것을 활용하라는 것.
"라임아, 이쪽으로 땅 더 파다오."
"이쪽으로?"
"그래."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이제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포-스의 앞에서 에일라를 안고 탈출했을 정도로, 나는 이 던전의 구조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쪽으로 가면 말이지...."
쿵.
벽이 뚫리며, 나는 안에서 급히 무기를 들어올리는 파후오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보물창고가 있단다."
파후오크들의 뒤에는 대량의 마석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네놈들이 마석소환으로 식량수급까지 대체한다면, 식량을 얻지 못하게 보급선을 끊어버리면 되지. 흐흐흐."
나는 몽둥이를 앞으로 겨누며 구멍을 넘었다. 뒤따르는 내 부하들도 함께 무기를 들었다.
"약탈이다! 파후오크는 죽이고 마석은 겁탈하라!"
"""라스!"""
우리는 포-스 던전의 심장부를 범했다.
* * *
퍼---억.
허리가 굽어진 오크는 포르네우스의 발길질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금방이라도 요절할 것 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네우스는 오크를 걷어차며 성질을 부렸다.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죄송, 커흑...!"
"죄송하다고 하면 끝이야?!"
퍼억.
날카로운 발톱이 오크의 배에 박혔다. 포르네우스는 씩씩거리며 오크를 계단에서 걷어차 굴렸다.
퍽.
뒷통수부터 떨어진 오크는 부들부들 떨다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주변에 있던 파후오크들은 오크를 향해 강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죽으면, 먹을 수 있다.
이 던전에서 유일하게 파후오크가 아닌 오크는 파후오크 특유의 기름진 것과 달리, 다소 노쇠하기는 했지만 근육이 탄탄하고 먹음직스러운 오크였다.
한 때는 '부족장'이었던 존재.
한 때는 던전 주인의 침실로 불려 총애를 받았던 존재.
그런 존재를 포르네우스는 무참히 짓밟아 반죽음으로 만들어버렸다.
"네 놈이 그 새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서걱. 포르네우스는 손톱을 들어올려 오크의 목을 날려버렸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솟구쳤고, 곁에있던 파후오크들은 뜨거운 피를 뒤집어썼다.
"취이익!!"
파후오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참을성이 없었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했다.
무언가 '공허함'을 먹는 것으로 채우고 싶어했다. 그게 '엑토플라즘'으로 빚어진 마물들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마석창고는 지금 어떻게 되었어?!"
"파후오크들이 분전 중이나...아무래도 조금 불리한 것 같습니다."
"절대 안 되지! 남의 던전에 땅파서 뒷치기나 하는 새끼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어! 젠장, 젠장...!"
포르네우스는 거친 손길로 옥좌의 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돌로 된 옥좌를 스스로 박살내며, 안에 묻어둔 보물상자를 꺼내들었다.
"당장 이걸로 '그거' 부활시켜!"
"그거라고 하시면...?"
"최종병기!"
보물상자의 안에는 무지개색과 황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최상급 마석이 쌓여있었다.
* * *
"젠장, 확실히 버겁네."
30위 던전 주제에 안에 쌓여있는 부하들은 죄다 90레벨이라니, 이런 사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희랑 비슷하네요."
"그래. 그래서 더 짜증나."
포-스 던전은 내 던전 운영의 노하우를 실전압축해둔 것 마냥 단단했다. 나보다 다소 과격하고 효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나는 소름끼칠 정도였다.
'라스가 없는 분노의 군단.'
나는 이 던전의 부하들을 상대하며 직감했다.
만약 내가 에일라, 륜, 라임이 없는 상황에서 던전을 운영했다면 이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오로지 효율만 추구하며 카니발리즘까지 동원하여, 마족이든 마물이든 그 어떤 생물도 '먹어치우는' 포식성을 발휘하면 딱 이 모양 이 꼴이 될 것이라고.
'근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더 위험하단 말이지?'
던전의 땅을 파고드는 것에 대한 대처가 빠르고 정확했다.
"이 던전, 정말 포르네우스 던전이 맞는 걸까?"
"주인님께서 찾던 포-스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지도 몰라."
맛집이라고 해도 사장이 바뀌면 특유의 맛이 바뀌는 법.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던전에 비밀통로를 만들어 창고를 정확히 급습했으나, 적은 그걸 예상이나 했다는 듯 통로를 떡대 파후오크들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사이 마석을 한 움큼 챙겨 달아났다. 우리는 빠르게 떡대들을 제압했으나, 마석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거의 8할 가량 사라져있었다.
구구구구.
그리고 놈들은 마석 창고에서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무너뜨렸다. 격벽을 연상케하는 구조에 나는 점점 더 확신할 수 있었다.
포르네우스가 할 수 있는 용병술이 아니었다.
"포르네우스는 이런 짓을 할 지능이 없지. 암."
던전 주인만 아니었으면 내가 아니라 이전부터 프레깅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여자였다. 시스템이 사실상 그 여자의 목숨을 살려주는 셈이었다.
"젠장...."
"...주인님! 뒷편에!!"
뒷편에 있던 부하들에게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석창고로 들어오은 비밀 통로의 후방에서 부하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
구울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방어력이 강한 놈들로 배치를 했는데, 그들은 모두 '인연소환'의 리스트에 하나 둘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미친...!"
누가 감히 우리 군단의 부하들을 죽인단 말인가? 나는 적들이 우리 구울들을 넘어오기 전에 빠르게 통로를 역주행했다.
"허허, 시벌."
그리고 나는 보고 말았다.
"부히익."
뱃가죽이 공허한, 몽둥이 하나를 든 오크를. 몸에 문신을 새겨놓으면 과거의 나와 너무나도 흡사한 오크가 구울들을 패죽이고 있었다.
"쿰척."
오크는, 나를 향해 사납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