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회
357일차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항상 한 가지를 확인했다.
"쟁탈전 알림 떴냐?"
바르바토스 던전을 점령한 이후, 나는 바르바토스 던전을 나의 '멀티' 던전으로 만들고 쟁탈전의 알림을 항상 확인했다.
"아니."
그럴 때마다 붉은 머리의 미녀 드래곤은 내 대답에 칼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이면 새롭게 '바르바토스'가 된 그녀에게 몇 번이고 질문했다.
"포스 던전 후장 열렸냐?!"
"얼굴 보러와서 하는 얘기가 그거야?"
바르바토스는 내게 짜증을 부렸다. 내가 자신에게 나보다 높은 이름을 부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에게 불꽃의 브레스를 뿜어내며 나를 위협하려고 했다.
"포스 던전 열리면 기념으로 분신 네 명 동시에 쓰게해주마."
"열리자마자 말씀드릴게요, 주인님. 제가 주인님 사랑하는 거 알죠?"
"답지 않게 존대는."
<레베나 바르바토스>.
합성을 통한 처녀재생을 숱하게 반복하던 마녀에게 나는 바르바토스의 이름을 맡겼다.
그레모리라는 던전 주인으로서의 이름은 그녀의 자식인 스카 트올로지에게 넘어갔고, 그레모리 던전은 이제 자간 던전과 마찬가지로 생산계열의 던전이 되었다.
무엇을 생산하느냐 하면, 지금의 그레모리가 음충이니 음충을 생산하는 던전이 되시겠다.
그리고 바르바토스라는 이름 앞에 새롭게 '레베나'라는 이름을 자처하는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순간의 이름을 밝혔다.
"던전 주인으로서 가진 이름이 아니라, 내 태생의 이름이 레베나라는 거야. 알겠니?"
"그래봐야 그레모리가 그레모리지. 어떻게 부르든 내 맘이다, 분신 난교하고 싶어서 발정난 걸레모리야."
"뭐래, 걸레한테 걸레처럼 쥐어짜이고 싶니?"
"분신 넷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터뜨릴 수 있으면 인정해주마. 그래서 포가년 알람 떴냐고!"
나는 그레모리를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쪼았다. 그녀가 화장실에 갈 때도, 그녀가 잠을 잘 때도, 그녀가 내 상급 마석을 제물로 바쳐 내 분신 중 하나와 라스를 할 때도 옆에서 그녀를 쪼아대며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포르네우스 던전으로 통하는 포털이 열렸다.
"야, 됐지?!"
"가라, 그레모리 레베나 바르바토스! 가서 분신들과 원없이 난교해라!"
"꺄아아앙!!"
그레모리는 나의 네 분신을 데리고 방문을 걸어잠궜다. 뒤에서 대기중이던 다른 손님들은 허망하게 나를 바라봤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바르바토스 던전을 통해 적 던전으로 향하는 포털을 열었다. 마석 털러 가자."
"""라스!"""
부하들은 내 말에 바로 나를 따라 포털을 이동했다. 내 던전에서 바르바토스 던전을 거쳐, 바르바토스 던전에서 열린 포털을 통해 나는 곧장 던전을 넘어갔다.
"씁-하."
근 1년 가량 잊고 있던 더러운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피냄새가 나를 반겼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구나."
던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번 망가졌다가 복구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주변을 훝으며, 로브를 뒤집어쓰고 옷을 여몄다.
"내 정체 안 드러나지?"
"물론입니다. 그냥 덩치 큰 전사로 보일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나는 내 등 뒤를 따라온 부하들을 살폈다. 내가 그리도 벼르고 벼르던 포-스를 잡으러 온다고 하니, 사실상 그레모리를 제외한 모두가 총출동하여 내 뒤를 따라왔다.
"아리에스여, 새삼 감회가 새롭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이곳에서 주인님과 처음 만났었죠."
"그래. 네게는 여러 모로 안 좋은 추억이 되겠고...."
쿵! 나는 거대한 몽둥이를 손에 움켜쥐었다. 로도페리가 직접 만든 몽둥이는 누구 하나 때려죽이기에는 정말 최적의 무게였다.
"내게도 안 좋은 추억밖에 없는 곳이다."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몽둥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복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샤아아악.
몽둥이의 안에 붉은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성욕까지 에너지로 돌린 풀파워 라스푸틴이 아니라서 붉은 기운이 다소 옅기는 했으나, 그 덕분에 레오는 아티팩트로써 순수한 힘을 더 강하게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집은 손님이 왔는데 아무도 안 나오네."
분명 안쪽에서 듣고 있을텐데 왜 아무도 나오지 않는 걸까. 나는 괜히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도망간 거 아니야?'
8위 던전 바르바토스에서 쟁탈전을 건 게 무서워서 도망쳤을 가능성이 있다. 용기와 가슴이 비례하는 마족인 만큼, 자신보다 훨씬 높은 단계의 던전 주인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나선 것에 기겁을 하며 도망쳤을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알던 포가년이 아니라거나.'
포르네우스는 천하에 성녀와 버금가는 망할 존재이기는 하지만, 특정 인을 지칭함과 동시에 던전 주인으로서의 직책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년, 그러니까 은갈치가 여기서 도망을 간 뒤로 새로운 존재가 포르네우스의 이름을 이어받은 가능성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오늘 지상에서 포르네우스의 이름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마침 오는 구나."
쿵, 쿵쿵. 멀리서 쿵쾅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몽둥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놈들을 후려칠 준비를 마쳤다.
"자, 오너-"
"취이익."
"......?"
어디선가 이상한, 익숙한, 그리고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렸다.
"크릅, 쿠흡. 쿠르륵."
"취히익, 취히익."
분명 멀리서 걸어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통로를 가득 채우는 더럽고 습한 열기에 분노의 라스푸틴을 부를 뻔 했다.
"씨발, 도대체 뭐지?"
"취히익. 바르바토스 던전에서 우리 던전에는 무슨 일이냐, 취힉!"
가장 앞선 오크의 모습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흉측했다. 하반신은 허리띠에 천쪼가리를 달아 앞을 가리고 있었고, 머리에는 고작 뿔달린 투구 하나 쓰고 있었다.
'야겜 오크?'
흉측한 돼지와도 같은 얼굴은 전형적인 야겜, 그러니까 19금 에로게 속의 오크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다만, 그들의 배는 나처럼 볼록하지 않았다.
이른바 '근돼'라고 불러야 할 모습이 강했다. 트랄과 내가 육체미와 관계없이 몸이 섞이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닐까?
"취힉, 강자가 약자에게 쟁탈전을 걸었다!"
"주인님께서 슬퍼하신다! 쟁탈전은 하극상이 기본인데, 바르바토스가 전부 망가뜨렸다!"
"그래도 맛있게 생긴 여자들이 많으니까 참는다. 취익."
오크들은 감히 내 뒤에 있는 부하들을 향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와 내 여인들은 그들의 '맛있게'라는 발언의 의미를 금방 깨달았다.
"저 새끼들 혹시...?"
"식인 오크인 것 같아요. 말하는데 피냄새가 가득해요."
나는 역겨움에 헛구역질이 나올 뻔 했다. 그들은 나를 향해 비웃으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쿠흡, 식인 아니다. 우리는 뭐든지 잘 먹을 뿐이다."
나는 강한 식욕을 가진 오크들을 보며 기이함을 느꼈다.
동질감?
아니다.
이것은 자기혐오에 가까운,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추휘이익!!"
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오크들이 의외로, 아니 사실상-
"씨발, 저게 왜 4성이야?!"
누구 하나 빠짐 없이, 전부 탈 4성급 레벨을 가진 괴물들이라는 것.
"이 새끼들 뭐야!!"
* * *
"......."
은발의 여인은 시스템을 통한 원견의 마법을 통해 침입자를 관찰했다.
엘프에 드워프에 인간에 슬라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다양한 종족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하나같이 전부 4성을 훌쩍 넘어가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하긴 한데, 털 던전을 잘못들어왔어."
여인은 입꼬리를 비틀며 시스템창을 두드렸다. 길쭉한 손가락에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몸 내려간다?"
"추히익, 죄송합니다...!"
여인의 아래에 네 발로 엎드린 오크는 부들부들 떨며 여인을 지탱했다. 유아 체형이라고 봐도 무방한 여인은 손톱을 세워 오크의 목덜미에 박아넣었다.
푸우욱!
갑작스럽게 부하를 죽인 행동에도 여인의 주변에 있는 오크들은 가만히 있었다. 이들 모두 한 번씩 여인에게 죽임을 당한 오크들이었다.
"아아, 주인님께 살해당하다니...!"
"포상이다, 추히익!"
오히려 죽음을 기뻐하고 있었다. 여인은 오크의 피가 찐득하게 묻은 손을 혀로 핥은 뒤, 오크의 시체를 발로 밀쳤다.
"알아서 치워."
"추히익."
오크 둘이 오크의 시체를 잡고 자리를 떠났다. 죽은 시체 오크의 운명은 하나 뿐이었고, 오크들은 저마다 입맛을 다시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여튼 귀찮다니까. 그렇게 많이 뽑고 또 뽑았는데 아직도 멍청한 오크가 있다니."
여인은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전방에서 싸우는 오크들은 무기 하나로 분전하고 있었다.
몽둥이 하나, 도끼 하나 만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 엘프나 수인들을 상대로 제법 잘 싸우고 있었다.
"흐흥, 역시 고기방패로 오크만한게 또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주인님."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쇠한 오크는 구부정한 허리에도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너희 부족을 아직도 중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야. 네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도 살아남았기 때문이지. 흐흐흐."
"영광입니다, 주인님."
"그래.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이 몸께서 보잘 것 없는 너희 부족에서 나온 오크 둘을 섞어서 아주 특별한 오크를 만들었는데 당연히 그렇지."
여인은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근육질의 오크는 여인의 손에 와인잔을 끼웠고, 스스로의 팔에 칼을 그어 피를 흘렸다.
주루룩.
여인은 오크가 뽑아낸 생피를 마시며 냄새를 음미했다. 붉은 입술이 피를 머금어 더욱 시뻘게졌다.
"침입자 놈들이 우리 던전을 어떻게 하지 못하게 막아."
"주인님."
은빛의 로브를 뒤집어 쓴 여인이 나타나자, 여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
"또 오크를 죽이신 겁니까?"
"나를 아래에서 지탱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왜?"
"...아닙니다. 이 던전은 주인님의 던전. 주인님께서 곧 법이며 진리시죠. 그러나."
로브의 마법사는 지팡이로 바닥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여인의 눈앞에 '시스템'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스크린에는 오크들을 상대로 분전하는 침입자들이 한눈에 보였다.
"이렇게 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군을 죽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주인님, 자중하여 주십시오."
"하, 내가 진리라며. 그런데 네가 그런식으로 말하면 그게 진리야?"
여인은 전방을 향해 피가 담긴 와인잔을 집어던졌다. 와인잔은 허상을 통과하듯 은빛 로브를 통과하며 산산조각났다.
"건방진 년."
"......제 말을 꼭 들어주십시오."
"그래, 그래. 들어줄게. 네 말 들어서 손해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여인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래도 나를 감히 능멸하려고 하지마. 나, 용사랑 성녀 한테서도 살아남은 여자야. 알겠어?"
"...물론입니다. 주인님."
"그래, 내 이름이 뭐라고?"
로브의 여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포르네우스 님."
여인, 포르네우스는 웃으며 인연소환의 목록을 불러냈다.
"이야, 죄다 죽었네."
빼곡히 차오른 회색의 향연 속, 포르네우스는 시스템을 이용해 오크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그녀는 고작 하급 마석을 사용하여 오크들을 부활시켰다.
"추휘익."
"적, 강하다."
"그래. 강하니까 지금부터 서로 잡아먹어."
포르네우스의 말에 두 오크는 서로를 노려보며 무기를 들었다.
짝!
포르네우스가 박수를 치자마자 오크들은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이가 포식한 대상의 힘을 전부 빼앗아가는 방식에 로브의 마법사는 고개를 떨구었다.
"파후오크. 포식으로 강해지는 특성의 오크. 아주 좋은 성능이야...."
사락.
포르네우스는 하급 마석을 돌멩이처럼 소환진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다른 오크가 튀어나와 살육전에 달려들었다.
"더 먹고 더 강해져. 너희들의 성장 비결은 바로...동족 포식이니까."
* * *
"으허, 씨발!"
나는 절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정말 질기다 싶을 정도로 놈들은 강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같이 고작 등급이 2성이라는 것이다.
"90레벨 짜리들이 무한 부활한다고?"
탈 4성급 오크들의 향연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해졌다. 던전 내에 한가득한 땀내에 진심으로 괴로웠다.
"샤이탄, 이 새끼들 도대체 뭐냐?"
[...합성입니다.]
"뭐?"
[두 명의 오크를 합성한 것으로 나옵니다. 아무래도...주인님과 트랄 님의 '오크 개체'를 합성한 듯 합니다.]
"......."
이런 개짓거리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다.
"은갈치 그 개새끼구나."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