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684화 (680/800)

684회

351일차

조디악 왕국, 멸망.

사실상 진작에 왕국은 멸망했지만, 조디악 왕국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던 '파이톤의 성'은 무너졌다.

왕성이 있던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흙더미가 되었다. 던전으로서 역할을 하던 왕성은 던전이 파괴되자 결국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조디악 왕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마왕군이 조디악 왕국을 점령했다.

인류연합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수 십, 아니 수 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조디악 왕국의 멸망에 대한 복수는 반드시 해야했다.

안 그러면 조디악 왕국을 점령한 분노의 군단이 인류 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조디악 왕국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들은 이 걱정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 어쩌면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다.

마왕군을 상대로 무슨 말이냐고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조디악 왕국을 점령한 마왕군-그러니까 '분노의 군단'의 특이성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마왕군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마족들의 왕국과 비슷한 존재들이다.

마왕군을 천명하며 움직였지만, 움직임은 왕국과 흡사했다.

인류연합은 두 패로 나뉘었다.

당장 조디악 왕국의 복수를 하자는 파.

그리고 사태를 살피며 마왕군의 의중을 파악하자는 파.

당장 정면에서 싸우는 마왕군은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새롭게 전선에 합류한 사수좌의 용사 '사지타리우스 마망'을 비롯하여, 숱한 용사들이 마왕군의 정예병을 상대로 크게 선전했다.

조디악 왕국이 버텨줬다면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국이 멸망해버리는 바람에, 후방에 또다른 적이 생기고 말았다.

최전선을 용사들에게 맡기고 마왕군 토벌대를 편성해야 할 지, 아니면 가만히 내버려둔 채 상황을 살필 지.

이도 저도 아닌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구 조디악 왕국은 의외로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리고.

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에는 수많은 종족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

<해방> 던전에서 소환한 부하를 해방합니다. 해방한 부하는 자유의 몸이 되며, 한 번 해방한 부하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야, 던전이 A급이 되니 이런 기능이 생기네."

나는 새롭게 생긴 던전의 기능에 쾌재를 불렀다. 지금 내게 있어 딱 필요한 기능인 동시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어느정도 가시는 기능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A급 쯤 되어야 부하를 풀어줘도 배반을 안 당할 거 아니야."

"그레모리여, 능력만 있으면 B급이어도 딱히 상관은 없지 않나?"

"애매하게 강하다면 능력 좋은 부하가 해방되자마자 바로 뒷통수 칠 수 있는데? 던전의 부하를 해방한다는 건, 부하가 딴 마음을 먹었을 때 던전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침입자를 만든다는 거야."

"그건 확실히 문제가 되는군."

내가 포가년의 던전을 도망쳤던 때 처럼, 뭔가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아."

나는 해방이라는 기능을 알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포르네우스의 혐오스러운 인성을 다시 한 번 더 자각했다.

"이 씨발년이?"

나 파후우를 던전의 부하로 죽이려는 게 아니라, 해방한 다음 던전에 등록되지 않은 생명체로 죽이려 들었다.

즉, 그 년은 내가 인연소환에도 올라가지 못하게 완전히 죽이려고 한 것이다. 역시 보통 썅년이 아니다.

"언젠가 찾으면 꼭 제일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고 말테다."

"그 포르네우스? 뭣하면 쟁탈전 걸어버리지 그래?"

"그러려고 했는데, 계속 쟁탈전이 걸려있어서 말이야."

왕국도 점령했겠다, 나는 예전부터 생각해두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30위, 포르네우스 던전은 계속 쟁탈전에 걸려있었다.

물론 내가 아는 그 포르네우스가 맞는지는 의문이다. 포르네우스 던전은 에일라의 아버지인 전대 변경백에 의해 멸망했다고 했고, 지금의 포르네우스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은갈치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나게 된다면 꼭 사지를 찢어죽이는 게 편안한 죽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겠지."

언젠가 긴 시간이 흘러 그 년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굳게 닫힌 촉수 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우효, 더럽게 크네."

시간의 흐름이 변했다. 나는 정사와 라스의 방을 가득 채운 은빛의 드래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비늘에 윤기 좔좔 흐르는 것 보소. 이게 홀리 드래곤이지."

미인은 자고로 잠꾸러기라고 했다. 나는 전장 40m가 넘는 드래곤이 눈을 깊게 감은 모습을 보며, 나의 세력이 참 많이 성장했구나 감개무량했다.

드래곤을 우리 군단의 것으로 만들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잠깐 정신에 들어갔다 나오지. 샤이탄, 안내해다오."

"실례합니다."

샤이탄은 내 손을 잡고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와 그레모리, 샤이탄은 홀리 드래곤-바르바토스의 안으로 들어갔다.

"까꿍!"

은빛으로 물들어진 신전.

나는 신전의 한 가운데에 조용히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은발의 거유 하이엘프, 바르바토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1년 만인가?"

"무슨 소리냐. 바깥의 기준으로 따져. 나흘도 안 지났어."

"그래?"

바르바토스는 한껏 기가 풀려있었다. 나를 향해 울부짖던 독기는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흐트러졌고, 바르바토스는 인자한 홀리 드래곤으로서 자신을 되찾았다.

"3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와서 정신강간하는 것만 아니면 참 좋을텐데 말이야."

"야,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거거든?"

"시간은 모든 생명에게 있어 상대적인 것이지."

역시 지성에 있어서는 다른 생명체들보다 월등한 드래곤답게, 시간을 두고 상대성이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복잡한 이론을 이야기할 거라면 그냥 내 침대에서 상대나 해줄 것이지, 바르바토스는 자신의 기준으로 수 개월마다 찾아오는 우리를 무척 반겼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셋이서 찾아온 거지?"

"그냥 얼굴 보러왔다. 잘 지내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나 생각 있으면 라스도 좀 하고."

나는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굳이 내 수명을 깎는 정사와 라스의 방에 들어와 샤이탄의 능력을 통해 꿈속으로 들어오는 것 모두, 바르바토스를 한 번 보고 싶어서 왔다.

정확히는 그녀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

"바르바토스여. 그것이 완성되었다. 기대해도 좋아."

"오호."

바르바토스는 내 말을 금방 알아채고 눈을 빛냈다.

"그게 사실이냐?"

"물론. 네가 바라는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실현되었으니, 혹시 생각 있으면-"

구구구구.

꿈속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샤이탄은 나와 그레모리를 데리고 황급히 꿈속을 빠져나왔다.

스스스.

은빛의 드래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르바토스 던전을 점령한 이래 숙면에 들어가 한 번도 본체를 움직이지 않았던그녀가 처음 몸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위이잉.

[폴리모프.]

바르바토스는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인간형으로 바꿨다. 이전보다 훨씬 더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라스와 임신에 최적화 된 몸매였다.

"어서 가자꾸나. 당장 보고싶다."

잠에서 깨어나 하이엘프로 변한 바르바토스는 오히려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궁금한 걸까?

"오피큐스가 어떻게 능욕당하는 지 그렇게 궁금하냐?"

"당연하지!"

바르바토스는 사납게 웃었다.

"그 새끼가 나한테 준 굴욕을 생각하면, 내가 씹어먹어도 시원찮아."

공감한다. 나는 바르바토스를 데리고 정사와 라스의 방을 빠져나왔다.

포털을 넘고, 포털을 넘으며 도착한 곳은 조디악 왕국의 옛 귀족터, 콜로세움.

콜로세움의 입구 한 켠에는 휘황찬란한 검은 동상 하나가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었따.

"짜잔."

나는 검은 동상 골렘을 바르바토스에게 과시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모자라 본체를 직접 꺼내 눈ㅇ로 확인할 정도로 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오피큐스의 몰락.

자신을 조종했던, 잠을 재우지도 않았던 비열한 인간 놈을 곤죽을 만들 좋은 기회.

"옛다, 솜방망이."

나는 바르바토스에게 나무로 된 곤봉 한를 건넸다. 그녀는 봉을 받자마자 두 팔에 힘을 주고 동상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깡!

나무는 동상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나는 검은 동상이 나를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살포시 무시했다.

"더 줄까? 레벨 70까지는 무난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됐다. 지금은 이것 만으로 충분해."

바르바토스는 직접 주먹을 움켜쥐며 힘을 과시했다. 내 부하라는 명목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회복한 드래곤의 진정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너는 역시 오크지만 인간보다 더한 존재다."

"이 놈이 한 걸 생각하면 약과지."

깡.

나는 솜방망이로 골렘 동상을 후두려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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