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회
328일차
조디악 왕국의 왕립 아카데미 역사학자, 히스토리안 교수는 자신의 집에 들어온 편지에 한탄했다.
- 그대는 꼭 살아남아 조디악 왕국의 역사를 지켜주시오.
"역사서...안 태우는데?"
히스토리안 교수는 마왕군의 행동에 기이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왕국들은 국가 사이의 전투에서 상대 왕국을 완전히 점령하면 왕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서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그 나라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히스토리안 교수는 피의 정령과 라스를 하면서까지 스스로를, 조디악 왕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들에게 인류를 배신한 자라고 욕을 듣더라도, 한 때 조디악 왕가의 녹봉을 받던 자로서 왕국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집 안에 몰래 역사서를 쑤셔넣었다.
하지만 마왕군은 역사에 딱히 관심이 없어보였다.
역사를 지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마왕군의 점령 방식은 세련되고 철저하고 지독했다.
그들은 역사를 지우는 게 아니라, 신성교단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인간과 마족 사이의 종족을 초월한 성행위가 금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신 교단을 오히려 이단으로 지정했다.
- 여신의 진정한 뜻이 우리 분노의 군단에 있거늘, 감히 허황된 신을 섬기는 것인가!
- 사도다! 이단이다! 여신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처단하라!
- 놈들을 라스로 회개하라!
왕국에 남은 수많은 여신교단의 사제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해 성적 타락을 벗어나고자 여신을 찾았다.
그러나 자신을 범하는 자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신성력을 사용하는 천사들이며, 아랫도리에 오크 자지와 똑같이 생긴 슬라임 자지 모형이 달린 팬티를 입고 자신을 범한다면 신앙심도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마왕군은 조디악 왕국의 역사 대신 신성교단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여신은 마왕군을 보살피며, 성녀는 여신의 뜻을 참칭하며 인류를 속인 걸레다."
분노의 군단은 성녀와 그 무리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꿈.
그는 젊은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몽정을 해버렸고, 꿈속에서는 성녀가 여러 교인들의 위에서 알몸으로 난교를 펼치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성서 대신 성기를 쥐고 흔들고 있었다.
"크흠."
그 모습이 워낙 색정적이어서, 그는 그만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모르디네에게 한 번 신세를 지게 되었다.
- 꺄하하,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나이 들어서 안 서다가 이제 서니까 좋아 죽는구나?
"...좋긴 좋군."
히스토리안은 고민에 빠졌다. 뱀파이어가 되며 흡혈욕구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의 집에 자주 찾아오는 피의 정령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처럼 그에게 젖을 물리며 피를 먹였다.
그리고 히스토리안은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인간, 아니 뱀파이어와 정령은 부부가 될 수 있는가? 라스토피아는 정말로 모든 것이 가능한 국가인가?
과연 이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기나 할 것인가. 히스토리안은 바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군."
도시에는 라스를 통해 라스토피아의 국민이 된 이들밖에 없지만, 그들 중에는 거짓항복을 한 존재도 있었다. 조디악 왕국의 왕성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니, 왕국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며 재건을 꿈꾸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은 히스토리안에게 조디악 왕국의 역사를 원년부터 아는 자로서, 혁명에 동참할 것을 주장했다. 더러운 마왕군으로부터 왕국을 되찾자는 제안은 달콤한듯 하면서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대로 가봐야...응?"
구구구.
갑자기 거대한 진동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사고가 일어난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급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레비테이...응?"
공중부양 마법으로 하늘로 떠오르려던 그는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구구구구.
검은 왕성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아래에 늪이 생긴 것 마냥, 왕성 '전체'가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끝났군."
히스토리안은 와인을 꺼냈다. 왕국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으로, 그는 그걸 와인잔에 붓지도 않고 병째로 입에 물었다.
"조디악 왕국의 역사학자, 히스토리안의 명복을 빈다."
홀짝. 와인병에 비친 그의 얼굴은 머리가 벗겨진 반백의 노교수가 아닌, 창백하지만 하얀 머리칼이 풍성한 젊은 뱀파이어였다.
"나는 지금부터 라스토피아의 역사학자...그래, 라스토리안이다."
라스토피아를 위하여, 건배.
라스토리안은 빈 책을 꺼내, 첫 페이지에 글귀를 적어넣었다.
"왕국은 섹스에 몰락했다."
* * *
<알림> [바르바토스]와의 쟁탈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언제나 승리는 짜릿하다. 그게 마치 미뤄두고 있던 숙제를 완수한 것과 비슷하다면, 여자 던전 주인을 라스로 굴복시킨다면 그 짜릿함은 배가 된다.
"어, 어째서...!"
오피큐스 국왕은 꼴사납게 바닥을 기었다. 펌핑된 근육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며, 지팡이보다 얇은 팔과 다리가 드러났다.
역시 내 예상대로 놈은 전사가 아니었다. 마력으로 근육을 키운 허세에 불과했다.
"어째서 내 명령을 듣지 않은 것이야!!"
"그야 간단하지."
나는 너덜너덜 찢어진 라텍스 갑옷을 벗어던졌다. 완벽한 알몸이 되었으나, 마침 바닥에 떨어진 좋은 망토가 있었다.
"나는 바르바토스와 쟁탈전을 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인간인 너는 평생 모를 이야기지."
시스템은 의지로 발현되는 힘이다. 아무리 육체를 지배했다고 한들, 바르바토스가 항복 의사를 표시하면 그걸로 쟁탈전은 끝나게 된다.
던전 주인이 오피큐스가 아닌, 바르바토스였기에 따낼 수 있는 라스 승리였다.
"알 필요도 없다. 알아봤자 네가 패배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나는 오피큐스가 흘린 망토를 둘렀다. 왕관은 아쉽게도 아직 놈에게 있었지만, 워낙 망토가 화려하여 굳이 다른 장식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옷을 입은 것 같군. 흐흐흐."
"네, 네 이 놈!!"
오피큐스는 지팡이를 내게 겨눴다. 아직 그에게는 성검 오피큐스가 남아있었다.
"소용없다."
나는 허공을 가볍게 두드렸다. 놈에게는 아무런 의미없는 행동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그의 공격을 순식간에 솜방망이보다 약한 공격으로 만드는 마법이었다.
"놈을 제압해라, 바르바토스."
"네."
내가 불어넣은 정기를 통해 마나를 회복한 바르바토스는 폴리모프 마법으로 하이엘프의 외형을 갖춘 것으로 모자라, 오피큐스 국왕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마력의 결계를 형성했다.
쿵!
결계는 반구형으로 오피큐스를 가뒀다. 오피큐스의 지팡이에서 뿜어낸 뱀독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오피큐스는 보랏빛 연기에 갇혔다.
"본인의 독에 본인이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산소 부족은 어떨까. 흐흐."
나는 내 '멀티던전'의 주인이 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쟁탈전에서 승리를 하는 동시에, 나는 바르바토스 던전을 멀티로 삼고 던전의 주인을 선정했다.
"잘했다. 역시 드래곤이야."
"......."
나는 바르바토스의 몸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녀를 만끽했다. 인간형인 그녀는 드래곤 어머니 답게 제법 큰 가슴의 엘프로 변했다. 라슬링 중에 내가 그녀에게 집어넣은 성력은 그녀가 몸을 회복할 좋은 양분이 되었다.
"......그."
"뭐?"
"......내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실인가?"
"물론!"
이미 드래곤의 힘은 우리 군단에 차고 넘친다. 굳이 순정 드래곤의 존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라스토피아에 수호룡 같은 건 필요없다. 이미 내가 수호자 그 자체이니. 너는 그냥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딸과 함께 내 여자가 되어 여신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적절하고 바람직하겠지만, 나의 적이 되어 내게 반기를 드는 것 또한 그녀의 자유이며 선택이다.
"다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명심해라. 네가 내 적이 된다면, 오늘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니. 나는 나의 적을 철저하게 파멸시키지만, 한 번 기회를 줬는데도 배신한 자에게 자비는 없어."
광장 공공재 정도는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나를 배신한 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파멸시킬 자신이 있다.
"...내 알을 인질로 삼고?"
"물론."
당연히 그냥 풀어주지는 않는다. 바르바토스가 우리 군단에 반기를 들지 않게, 최소한의 조치는 해둘 것이다.
"...그렇다면 저걸 사용하라. 내가 666번째 낳은 알이니."
"저거?"
나는 오피큐스를 가리켰고, 바르바토스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내게 무수히 많은 알을 낳게 했고, 5성이 확정된 알과 자신을 합성하도록 지시했다. 그 덕분에...저 놈도 지금은 하프드래곤이야."
"오호. 근데 저게 인질로서의 가치는 없는 것 같은데? ...알공장으로 대신 돌리는 거라면 모를까."
"크허억!!"
오피큐스는 비명을 지르며 마력의 결계를 빠져나왔다. 한껏 창백해진 그는 결계에 지팡이로 뚫어놓은 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무, 뭘하는 거야! 당장 저 새끼를 죽여어어어!!"
지팡이가 반짝이며 보라색 안개를 퍼뜨렸다. 나는 오피큐스의 발악에 괜히 안쓰러워졌다.
"소용없다. 바르바토스는 내 부하가 되기로 굴복했으니. 그녀에게 숙면의 기회를 주는 대가로, 나는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흐흐."
아무리 성검의 힘이라고 한들, 던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하는 시스템의 힘을 이기지는 못한다.
비바 솔로몬.
"근데 말이야, 너 이제 좆 된 거 아냐?"
나는 오피큐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땅에 주저앉아 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뱀 대가리들은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주인의 추한 패배에 성검 또한 패배를 인정했으나, 오피큐스만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피큐스여. 라스토피아의 지배자로서, 몰락한 왕에게 명령을 내린다."
나는 손톱에 할레오를 깃들게 하여,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그에게서 지팡이를 빼앗았다. 그는 힘없이 지팡이를 빼앗겼고, 서서히 늙어가기 시작했다.
성검의 힘으로 젊음을 유지하던 자는 추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향해 성검 오피큐스를 겨누며 선고를 내렸다.
"바르바토스의 알과 합성되었으면서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중죄."
푸---욱!
나는 놈의 고간을 향해 오피큐스를 찔러넣었다.
"그리고 감히 뱀들을 이용해서 내 자지를 물어뜯은 중죄."
오피큐스 지팡이에는 나의 라이오넬이 붉은 기류를 뿜어내며 깃들었고, 나는 성검을 나의 무기로 다시금 빼앗았다.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네놈은 우선 궁형에 처한다."
"으, 으아악!!"
지팡이 끝에서 흘러나온 붉은 머리의 뱀들이 놈의 고간부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뱀이 알 하나는 잘 먹어치우거든."
콰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