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회
328일차
“시작했군요.”
에일라는 던전 안을 달리다가 자신의 황금양털이 붉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옅게 웃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주인님께서 성검...아티팩트의 힘을 모두 끌어내셨습니다.”
에일라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렸다. 비록 그가 내린 임무 때문에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성검을 통해 느껴지는 주인의 신호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변화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진화라고 해야할까?
형태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변태가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아티팩트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는 건 분명 한 차원 더 높은 힘을 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라스푸틴은 자신이 낼 수 있는 힘보다 더 높은 단계의 힘을 일시적으로 손에 넣었다.
설령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승리를 위해 부작용을 감내하고 아티팩트의 진정한 힘을 해방했다.
아리에스의 황금양처럼 ‘동물의 좌’에 해당하는 성검은 그 형태의 신수로서 변하는 게 가능하다.
이므신할 레오가 성검 레오로서 대항했던 것처럼, 에일라 아리에스가 성검 아리에스로서 거대한 황금양을 꺼내 들이받은 것처럼.
주인은 성검 레오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낸 것이다.
"분명 이기실테지."
성검의 용사들은 성검마다 다르지만 신격에 준하는 힘을 낼 수 있다.
그 힘을 온전히 활용한다면 같은 성검의 용사라 할지라도,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길 것이다.
“주인님께 영광의 승리를.”
에일라는 던전 내부를 구석구석 살피며 주인의 승리를 기원했다.
딸칵.
사랑하는 주인을 생각했기 때문일까? 에일라는 벽을 생각없이 누르다가 그만 이상한 장치를 발견하고 말았다.
“...발견!”
위이잉. 벽 앞에서 전이문이 생겨났고, 에일라는 안으로 들어갔다.
“와….”
그곳은 왕국의 보물창고였다.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 쌓인 재물의 산에 에일라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 재화가 있다면 라스토피아에 눌러앉으려고 하는 수인들에게 퍼주듯이 복지를 남발해도 몇 년은 무너짐없이 거뜬할 것이다.
“주인님, 저희는 당신께서 주신 임무에 진심으로 기쁘답니다.”
에일라를 비롯한 던전의 모든 수하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 하나.
- 신이 바르바토스의 던전을 빼앗기 전에, 바르바토스 던전에 있는 모든 것을 챙겨라.
오피큐스 국왕, 바르바토스는 자신이 상대할테니 그 동안 던전-왕국의 모든 장소를 살펴 약탈하라.
- 최종보스방 들어가서 엔딩 보기 전에 파밍할 거 다 파밍해야지.
라스토피아는 조디악 왕국을 골수까지 빼먹을 생각이었고, 그 선택은 다행스럽게도 틀리지 않았다.
[에일라, 혹시 뭐 좋은 거 나왔어요?]
"네. 막대한 금은보화입니다. 마석이 아니라서 당장 쓸모는 없지만, 추후 이거로 다른 인간 세력과 뒷거래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도 발견했어요!]
에일라는 마법 수정구를 통해 전해진 다른 곳의 광경에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주인님께서 빨리 이 광경을 보셔야 할텐데."
그곳에는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마석이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있었다.
* * *
바르바토스가 변신한 모습을 묘사하자면 수 십 미터 키의 거대한 드래곤이다. 그녀는 거대화 된 몸으로 두 발로 사람처럼 섰다.
'역시 꼴리는 몸이다.'
겉모습이 드래곤이지 사실상 여성형 용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몸에 비늘이 뒤덮인 여인이라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르바토스의 드래곤 형태는 미려하고 아름다웠다.
꿀럭, 꿀럭.
아랫도리에 모인 성력이 불끈불끈 솟아나왔다.
고간부에서 새롭게 돋아난 나의 울트라스푸틴을 본 바르바토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올라서있는 오피큐스는 대놓고 흉물을 보는 것처럼 역겨워했다.
"드래곤을 상대로 세우다니, 이 더러운 새끼!"
[꼴리게 생겼는데 어쩌라고.]
흉부의 굴곡부터 S자로 내려가는 골반 라인까지 누가봐도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좀 꼴린다 싶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미 나의 라스푸틴은 고개를 높이 치켜올렸다.
[긴 말 필요없다.]
나는 두 주먹을 들어올렸다. 사자와도 같은 기상을 가진 나는 내 몸에 넘쳐나는 신성력과 마력의 혼재된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흐아앗!]
나는 드래곤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두 발로 선 드래곤과 비슷하게 커진 내 주먹은 찬란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끝을 내자!]
키아아악!
바르바토스는 명치를 노리는 내 주먹에 팔을 X자로 교차하며 주먹을 막았다. 단단한 시멘트 벽을 때린 것 마냥 주먹이 아팠지만, 나는 한 번 더 팔을 뒤로 당겼다.
바르바토스는 몸으로 주먹을 막은 게 아니다. 교차한 두 팔의 앞에 투명한 보호막을 펼쳐 내 주먹을 막은 것이다.
[신성력 보호막이라고 통할 것 같으냐!]
나는 한 번 더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손과 팔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나왔고, 기류는 피처럼 빠르게 내 팔을 흘러 주먹에 맺혔다.
[신성력 카운터가 내 정기다!!]
카앙---!!
투명한 상태로 모습을 숨겼던 신성력의 보호막이 무참히 망가졌다. 바르바토스는 사납게 입을 벌리며 나를 공격했다.
푸욱, 푹!
두 날개를 앞으로 당겨, 날개 끝의 발톱으로 내 몸을 찔렀다. 발톱은 은빛 사자 거인의 몸 속에, 각각 어깨와 허벅지에 박혔다.
진짜로 몸에 박히는 것 마냥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라이오넬 할레오와 하나가 된 만큼, 은빛 거인의 몸이 내 육체인 셈이다.
- 주인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작 1m 넘는 발톱에 몸이 찔린 셈이다. 실제 크기로 치면 칼에 5cm 정도 박힌 셈이지만, 이것보다 더 한 고통도 나는 숱하게 견뎌왔다.
[우오오오!!]
나는 기합과 함께 앞으로 몸을 던졌다. 다리를 굽혀 사자가 뛰어오르듯 바르바토스를 덮쳤고, 뒷걸음질 치던 바르바토스는 상체를 숙이며 내 손을 맞잡았다.
캬아아악!!
[배를 맞추자고? 흐흐흐!]
나는 바르바토스의 팔을 좌우로 벌리며 가슴을 맞췄다.
드래곤의 몸과 은빛 부정형 거인의 몸으로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성감도 얻을 수 없었지만, 내가 바르바토스를 억누르고 있다는 정신적 쾌감에 나는 사정할 것만 같았다.
[그래, 비비자!]
나는 바르바토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다리 사이로 한 발을 집어넣어 더욱 거리를 좁히고, 그녀의 배에 굳건하게 자란 울트라스푸틴을-신성력으로 맺어진 자지를 비볐다.
키아아악!!
바르바토스는 역겨워하며 뒤로 더욱 물러섰다. 동시에 내 몸을 찌른 날개를 펼치며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날려고? 어림도 없지!]
이곳은 던전이며 동시에 왕성 꼭대기층이다. 시스템이 허용하는 높이가 있으며, 날개 달린 드래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높이가 한정되어있다. 나는 바르바토스가 날기 전에 몸을 앞으로 붙였다.
키샤아아앗!
푸욱, 푹.
나는 바르바토스의 날갯짓에 입술을 깨물었다. 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척 날개를 펄럭이며 나를 찔렀다. 이전과는 다른 곳이 박혀 고통스러웠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손을 놓아버리면 이 알현실을 날아 도망다닐 것이다. 그러므로 살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취해야 했다.
'신성력의 양으로 찍어누른다!'
이미 바르바토스는 막대한 양의 힘을 사용했다. 내가 그리도 망가뜨리고 싶어 안달이 났던 오피큐스의 보호막은 다름아닌 바르바토스의 힘이었다.
오피큐스는 지팡이-성검 오피큐스를 통해 바르바토스의 힘을 훔쳐서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우오오오!]
나는 바닥을 뛰어올라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바르바토스와 오피큐스는 계속 뒤로 물러서며 나를 피하려고 했고,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점프했다.
푸욱, 푸욱, 푹푹푹.
뛸 때마다 날개에 달린 발톱에 몸의 구멍이 점점 많아졌다. 말벌집에서 튀어나온 말벌들에게 떼로 습격을 당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고통이라면 참을 수 있다.
지금의 고통이 잠시 뒤에 있을 달콤함을 위한 운명적 고난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고행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취하리라.
"흐하하! 몸에서 신성력이 줄줄 흐르는 구나!!"
오피큐스는 내 몸의 상처를 가리키며 비웃었다.
"이대로 계속 공격을 퍼부어라, 바르바토스! 뒤로 움직이면서 계속 찌르는 거다!"
몸에 뚫린 구멍에서 무수히 많은 신성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놈을 향해 활짝 웃었다.
[등신. 너 던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구나.]
"뭐?"
던전에는 시스템에 의해 막힌 벽이 존재한다. 나는 바르바토스가 몸을 돌리기 전에, 알현실의 벽을 향해 강하게 밀쳤다.
키야아악?!
나는 바르바토스를 안고 벽을 허물어뜨리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우리는 왕성에서 떨어지는 듯 했으나, 곧 평면으로 각진 투명한 공간에 부딪혔다.
"흐어억?!"
[두려워마라. 아래에 발판있으니.]
오피큐스는 시스템에 의한 공간에 기겁을 했다. 나는 내 아래에 깔아뭉겐 바르바토스의 위에 앉아 그녀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기다려봐. 레비즈도 궁금해 할 걸?]
나는 뒤로, 바르바토스의 고간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르바토스는 내가 하려고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깨닫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이미 내가 그녀의 위를 깔고 앉은 시점에서 게임은 끝났다.
자랑하던 날개는 등부터 떨어져 으깨져버렸다. 이제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뿐.
푹, 푹푹, 푸욱.
몸 아래의 꼬리로 내 등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나는 채찍질을 당하는 고통을 감내하며, 손을 아래로 뻗었다.
[고간! 고간을 보자.]
나는 손에 온 신경을 집중해 비늘 사이사이를 손으로 훑었다. 다른 부위보다 매끈한 비늘 사이로, 뭔가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 분명히 존재했다.
캬아아아악!!
[흐흐흐. 바르바토스여, 나가족도 범한 내가 드래곤이라고 안 될 것 같으냐?]
나는 아래로 쭉 하체를 내렸다.
[네가 나를 찌른만큼 나도 너를 찔러주마.]
푸---욱.
라스토피아에 불가능은 없다.
나는 드래곤의 몸 속에 빛의 창을 찔러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