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회
261일차
조디악 왕국을 고향으로 가진 S급 모험가, 게르가티 주크다는 밀려드는 적의 파도에 신물이 났다.
"으아악! 이 개같은 마족들! 죽어, 죽어!"
고향에 있는 동생이 사라졌다. 결혼을 약속한 소꿉친구가 사라졌다. 고향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인간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마족의 땅이 되었다.
고향을 구원하기 위해 왕국으로 돌아왔지만, 왕국에는 마왕군에게 패배할 것 같다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우오오오!!"
하지만 게르가티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마왕군의 공세를 이겨내고 고향 마을을 되찾으면, 최소한 죽은 동생이나 연인의 시신이라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남아있었다.
퍼억!
게르가티에게 손을 뻗으려던 구울의 머리가 터졌다. 게르가티는 대검을 휘둘러 몸에서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구울을 무참히 때려죽였다.
라스으으으....
대검에 대가리가 으깨지는 청년 구울은 원통한 얼굴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미 죽어 시체가 능욕당하고 있는 존재일텐데 어째서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게르가티는 너무나도 소름이 끼쳤다.
"허억, 허억."
호흡이 점점 거칠어진다. 다른 때라면 더 펄펄 날아다니면서 싸울 수 있는데, 유독 분노의 군단을 상대할 때가 되면 빨리 지치고 피곤해진다.
"이, 망할 놈들...허억."
게르가티는 다른 모험가들의 뒤로 물러섰다. 끓어넘치는 마나를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전장을 주시했다.
"허어억--!!"
허공에 떠오른 허상에 게르가티는 숨이 넘어갈 뻔 했다. 50m 허공에는 아름다운 두 개의 엉덩이가 좌우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 야한 건 안 돼!!
그리고 성녀의 얼굴을 닮은 작은 2등신 얼굴이 몹시 띠꺼운 얼굴로 야한 건 안 된다고 외치며, 엉덩이 사이로 보이는 중요 부위를 절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살랑, 살랑.
엉덩이가 흔들릴 때마다 성녀의 얼굴도 함께 움직였다. 그걸 올려다보며 게르가티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나왔다.
"성녀 씨발."
라고, 내뱉고 말았다. 저게 적의 술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자로서 어쩔 수 없었다.
꽈아아악.
"큭...!"
게르가티는 아랫도리 근처의 뻐근함에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급히 성수가 든 병을 꺼내 성수를 들이켰지만, 이미 솟아오르는 남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허상으로 보이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
좌우로 흔들리는 엘프 여왕의 엉덩이 위에 진녹색 오크의 손이 큼지막하게 올라갔다.
"큭...!"
부럽다고 묻는다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 손의 주인이 자신의 동생과 연인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니 속에 천불이 났다.
마왕군에 대한 분노는 적을 죽이기 위한 의지가 되어 활활 불타올랐다.
"망할 마왕군 놈들, 죽어라!!"
게르가티가 마나를 정리하고 검을 다시 본격적으로 휘두르자, 구울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조디악 왕국을 위하여!!"
게르가티가 휘두르는 검에 푸른 마나가 깃들었다. 마나 소드를 휘두르는 그의 힘은 명실상부한 소드마스터, 아니 그 이상이었다.
"허억, 허어억...!!"
이상이어야 했다. 갑자기, 그의 아랫도리가 부풀어 올라 터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크흡?!"
게르가티는 숨을 참았다. 적의 공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흡을 참는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그 덕분에 아랫도리의 감각이 더욱 잘 느껴졌다.
뷰릇뷰릇.
조금만 움직여도 옷에 스친 그곳에서 체액이 줄줄 새어나왔다. 게르가티는 진심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게...라스푸틴 식 약화....!"
사정을 할 때마다 기력이 빠져나간다. 사정 후의 여운이 몸을 감쌀 때마다 마력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눈과 귀와 코로 느끼는 적의 섹스어필로 인해 자지에만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으아아악!!"
게르가티는 악다구니를 쓰며 검을 휘둘렀다. 검으로 적을 벤다기보다는 검으로 적을 후려치고 뭉겐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죽어버려, 죽어, 죽어!"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북받쳐올랐다.
자신은 인간으로서, 조디악 왕국의 국민으로서 칼을 휘두르며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데, 마왕군의 우두머리란 놈은 일부러 하늘에 자신의 정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인간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아아앙~
나른한 교성이 울려퍼졌다. 올려다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게르가티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오크의 자지가 하이엘프 여왕을 범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도 하이엘프의 엉덩이 구멍을!!
"허, 허허."
온몸에 힘이 빠진다. 안 그래도 뷰릇뷰릇하며 전신에 탈력감이 생기고 있건만, 저런 모습을 보니 더 할 말이 없었진다.
"진짜 개같다...."
저들은 수치심이라는 것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자신의 상식이 잘못된 것인가?
왜 여신은 자신을 능욕하는 마왕군의 행동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단 말인가?
정녕, 조디악 왕국은 여기서 끝날 운명이란 말인가.
"끄, 으아아악!!"
게르가티는 괴성을 질렀다. 주변에 달려드는 구울들을 향해 소드 마스터의 힘을 전력으로 뿌리며,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
무아지경.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은, 검과 혼연일체가 되어 구울들을 죽여나가는 가운데, 정확히 68번째 구울을 벤 순간.
"어...?"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의 구울을 베어버렸다. 정신이 별세계로 떠나간 듯한 게르가티는 핏기가 싹 가셔버렸고, 자신이 검으로 벤 구울을 보고 정신이 새하얘졌다.
켜허...엉....
어깨부터 허리까지 검에 양단된 구울은 게르가티를 향해 망연히 손을 뻗으며 자세가 무너졌다.
"도, 동생이-"
"정신차려! 적의 환각이다! 아무튼 적이 부리는 사술이다!"
뒤에서 동료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게르가티에게는 전혀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아, 아으, 내, 내 동생이-"
피융.
무언가가 게르가티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에서 알싸한 기운히 퍼져나옴과 동시에, 게르가티는 자신을 향해 활을 쏜 장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라탈...?"
머리와 눈동자가 핏빛처럼 붉은 블러드 엘프 여인은 자신을 향해 아랫입술을 깨물며 활을 내렸다. 그의 뒤에는 블러드 엘프의 주인처럼 거들먹거리는 거구의 오크가 블러드 엘프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어째서...."
푸북.
한 번 공격을 허용한 순간, 이미 게르가티의 검은 꺾였다. 오크에게 안기는 고향 마을의 연인을 본 순간, 게르가티의 마음은 꺾이고 말았다.
"이런...개같은...."
푹푹푹푹.
하늘에 떠오른 허상은 여전히 오크의 자지가 두 여인의 속을 드나다는 걸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야한 건 안 돼!
띠꺼운 성녀의 얼굴과 함께.
* * *
"주인님, 적이 슬슬 물러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당연히 추격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놈들도 마냥 멍청이는 아니구나."
그냥 퇴각하면 우리들에게 추격당하는 것을 알기에, 적들은 정령이나 골렘같은 소환수를 부리며 우리 군단 병사들의 진격을 막았다.
위이잉!
퇴각하는 병사들의 머리 위에 신성력의 우산이 펼쳐졌다. 성문부터 정면으로 쭉 뻗어진 신성력 우산에 비는 떨어지며 좌우로 튀었다.
표면이 일부 깍이기는 하지만, 마치 방수천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액 샤워는 신성력 우산을 전혀 깎아내지 못했다.
"저건 뭐야?"
"주인님, 뭔가 위에 투명한 막 같은 게 펼쳐진 것 같아요."
눈썰미 좋은 륜 덕분에 나는 빗방울이 우산에 닿아 튀기 전, 투명한 막에 의해 먼저 튕겨나가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미친. 저거 마나 실드 아니냐?"
"맞는 것 같아요. 신성력이 닿으면 그냥 파괴되니까...마나층을 만들어 위에 덧씌웠네요."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으면서 함성을 지르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저들에게는 성공적으로 살아서 도망치는 게 곧 승리였다.
"젠장. 이쪽은 시간이 없단 말이다."
마르바스와 맺은 라스 동맹도 기한이 이제 여유가 없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디악 왕국으로 달려오는 '용사'들이 문제였다.
'미르망이 시간을 끌어주기를 비는 수밖에.'
첩보. 성녀가 용사들을 이끌고 조디악 왕국에 원군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하더라.
과연 트랄이 어디 편에 설 지는 모르지만, 트랄을 비롯한 용사들이 적으로 돌아서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그들이 오기 전에 최소한 왕성은 점령해야만 했다.
"내가 이 수는 쓰려고 하지 않았건만...!"
적당히 수단과 방법은 가려주려고 했건만, 아무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되게 생겼다.
"하서스! 라스투자드!!"
나는 최전방에서 구울 군단을 이끌고 최대한 적들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던 두 언데드를 호출했다. 전신을 인간들의 피로 물들인 둘은 넵튜뉴스의 정화를 받고 금방 말짱한 모습으로 변했다.
"너희들에게 죽음의 기사, 라스 나이트들을 내어주마. 저들을 쫓아 모조리 죽여라."
구구구.
포털을 넘어온 수십의 기사들이 흉흉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 *
"오, 온다!!"
퇴각하는 병사들의 뒤를 노리는 적들의 움직임이 거칠어질 것 정도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멀리 목없는 듀라한들이 집채만한 워울프를 타고 달려오는 건 너무나도 무서웠다.
"조심해!!"
"저 정도 공격쯤은!!"
방패를 든 용사 한 명이 몸을 돌려 앞으로 달려나가 거대한 방패를 들어올렸다.
깡!!
하지만 라스 나이트가 든 거대한 해머에 방패용사는 방패 째로 으깨져 육편이 되었다. 막 부하들을 통솔하던 장군은 시체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라스 나이트를 보며 오한이 들었다.
"왕...자님?"
2왕자, 네토라레우스의 체격을 닮은 라스 나이트는 무자비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성기사들이 사용하던 망치는 인간의 피로 뒤덮여 있었다.
[이젠...아니야....]
라스 나이트의 등 뒤에 펄럭이는 망토에는 "74호기"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네토라레우스를 닮은 라스 나이트들 또한 마찬가지.
[빼앗긴 생명에 대한 복수를 하라, 네토라레우스 군단이여!!]
라스투자드의 호명과 함께, 수 십의 네토라레우스들은 망치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라스-----!!
서걱, 서걱.
성기사, Lv.100의 시체를 원본으로 삼은 라스 나이트들은 아무 의문도 없이 왕국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서브 던전에서 획득한 재료는 던전 밖으로 가져올 수 있지."
"시체도 마찬가지다. 생명체는 밖으로 꺼낼 수 없지만, 사체는 끌어낼 수 있어."
"영혼을 빙의시키는 건 아쉽게도 불가능했지만...구울로서 조종하는 것은 가능하다."
"아아, 이것은 리폼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만히 두면 소멸할 네토라레우스의 시체를 가만히 두는 건 너무 아쉽더라고. 흐흐."
매일 하루에 3명.
나는 서브던전에서 네토라레우스를 복상사 시킨 다음, 죽은 시체를 빼내어 구울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