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회
248일차
워터 엘리멘탈 형태의 물 정령은 대부분 형태가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고정되어 있다는 말은 '특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떠한 이유로 몸체가 변한다고 해도 그 형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슬라임이 섞인다면 어떨까?"
슬라임 만큼 자신의 육체를 쉽게 바꾸는 존재가 없다. 우리 군단의 슬라임은 기본 디폴트 형태부터 시작하여, 드래곤, 라미아, 오나홀, 인형, 러브돌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를 거쳤다.
그리고 이제 슬라임과 물의 정령이 합쳐져, 두 종족이 가진 특성이 하나로 모인 새로운 종족이 탄생했다.
슬라임 스피릿.
바야흐로, 변환자재.
형태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동시에,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선 변형한 형태를 일시적으로 고착화하여 유지시킬 수도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달라붙어서 응집력을 갖추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슬라임이 된 모르디네들을 모두 하나로 뭉쳤다. 점착성을 갖춘 모르디네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부위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우리 군단의 병기, "라스트로이어". 몸이 닿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파괴하는 파괴의 화신.
50m를 훌쩍 넘는 거인의 형상을 갖춘 슬라임 정령들의 모습을 향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가라, 울트라 슬라임 라스."
붉은 액체 형태의 거인-라인은 울트라스 라인이 되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인으로서 항구도시 버나드를 습격했다.
"모두 박살내버려."
졸라 짱센 울트라스 라인은 뀨오아아앙 하고 울부짖었다.
* * *
파지직!
거인의 손이 결계를 좌우로 찢어버렸다. 마족을 내쫓는 결계는 거인을 내쫓기는 커녕 거인의 몸에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갔고, 심지어 거인의 몸에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라스키토와 모르디네의 습격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수 십 미터에 이르는 거인이 갑자기 나타나 도시를 습격하는 게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누, 누가 살려줘!"
하물며 이곳 도시에는 사람들을 지켜줄 마땅한 장군도 영웅도 없었다.
이미 숱한 영웅들은 칼을 빼들고 분노의 군단을 향해 덤볐다가 알 낳는 기계가 되어버린지 오래였고, 도시를 지키던 장군은 지금 세 명의 정령에 의해 윤간당하고 있었다.
쿵, 쿵, 쿵!
그래서 라스트로이어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도시 경비병들이 성벽 위에서 열심히 화살을 날리며 라스토리어의 진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라스트로이어는 오히려 화살을 몸으로 맞으며 전진했다.
스르르.
슬라임의 피부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라스트로이어는 아무 이상없이 화살을 몸에 집어넣었다. 화살이 닿는 부분만 껍질 부분이 갈라지며 화살을 속에 머금었고, 몸 속에 흐르는 유체는 화살을 순식간에 녹였다.
"미, 미쳤어!"
남아있던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성벽에서 도망쳤다. 라스트로이어는 하늘 높이 손을 뻗어 주먹을 쥐었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거칠게 주검을 내리쳤다.
쿵----!!
먼저 지진과도 같은 거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막대한 진동이 땅을 울리기 시작했다.
"서, 성벽이 무너졌다---!!"
라스트로이어의 주먹 한 방에 버나드의 외곽을 지키는 성벽에 구멍이 생겼다. 말 그대로의 의미로 구멍이었고, 순식간에 사라진 성벽은 라스트로이어의 팔 속에 갇혀있었다.
스르르륵.
라스트로이어는 주먹으로 내리친 성벽 전체를 팔에 머금고 몸속에서 녹여내리고 있었다. 안에 벽돌이 있든 무기가 있든 사람이 있든, 슬라임의 먹성은 어떤 잔재도 남기지 않고 전부 녹여서 먹을 기세였다.
"이, 이거나 먹어라!"
병사 하나가 스크롤을 찢으며 라스트로이어의 손목을 향해 겨눴다. 양피지에서 튀어나온 붉은 불꽃은 슬라임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하하! 어떠냐, 슬라임은 불에 약...하...."
푸쉬이이이.
불길은 라스트로이어의 몸에 닿자마자 사그라들었다. 병사들은 하나 둘 무릎을 꿇으며 좌절했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거대한 존재는 무자비한 포식자였다.
뀨와아아앙---
라스트로이어는 포효를 내지르며 전방을 향해 높이 뛰었다. 누군가를 연상케하는 포즈로, 앞으로 다이빙을 하듯 쭉 손을 뻗었다.
“으, 으아악!!”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보다 라스트로이어의 거구가 떨어지는 게 더 빨랐다. 50미터 거구의 플라잉 바디 프레스에 버나드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쿵-----!!
도시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에 사람들은 전부 주저앉았다.
건물 안에 숨어있던 이들도 하나 둘 남김없이 무너지는 잔해에 깔리기 시작했고, 도망치던 병사들도 붕괴된 길에 우왕좌왕했다.
동시에, 앞으로 엎어진 라스트로이어는 잠시 미동 없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인간들은 사람이 엎어졌을 때 어떻게 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누구든 앞으로 엎어지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기 마련. 도시를 전부 박살내려고 난동을 부리던 라스트로이어가 가만히 있자, 사람들은 하나 둘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기, 기회다----!!”
“도망쳐!!”
라스트로이어가 기절한 사이, 버나드의 주민들은 왕도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최소한 왕도 오피큐스 만큼은 마왕군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뀨와앙.
하지만 그건 무른 생각이었다. 50미터의 거대 유체 괴수가 고작 자빠진 것 정도로 기절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기절한 것도 아니었다. 라스트로이어 근처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던 병사들은 라스트로이어 파묻힌 집의 잔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사, 사람이?!”
첨벙첨벙. 라스트로이어의 슬라임 점액 몸체 안에는 주민들이 안쪽에서 갇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전부 절정에 가버리는 듯 떠는 인간들은 라스트로이어의 안에서 탈출할 수 없어보였다.
뀨우웅.
라스트로이어가 일으켰다. 그리고 고간부에서 동그런 점액 구슬이 하나 둘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힉! 사, 사람을…!!”
붉은 구슬 안에는 라스트로이어가 넘어진 곳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과연 저항하지 않는 자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분노의 군단 답게, 최소한 라스트로이어가 도시 일부분을 깔고 누웠음에도 사람은 죽지 않았다.
“으헉, 어허헝!”
...하지만 좋아 죽으려고 했다. 슬라임 내부의 미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물속에서도 호흡은 할 수 있었으나, 호흡을 할 때마다 일정량의 미약을 코로 들이마셔야 했다.
“라, 라스!”
라스트로이어가 알처럼 낳은 구슬에 갇힌 인간들은 모두 라스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구슬과 구슬 두 개가 서로 부딪히며 끈적거리기 시작했고, 남녀의 구슬이 붙자 안에 갇혀있던 남녀가 서로를 물고빨고 통정하기 시작했다.
붙잡히면 성교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다. 사람들은 라스트로이어를 피해 다시 도망쳤다.
구구구.
하지만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려는 라스트로이어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인간들이 빨리 날고 긴다고 한들, 50미터 거인이 한 번 걸으면 그 밑에 대부분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라스트로이어는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 굴리기 시작했다.
데굴, 데굴.
거인은 몸을 앞뒤로 뒤집으며 도시를 휩쓸었다. 앞, 옆, 뒤, 옆을 반복하며 떨어질 때마다 건물은 순식간에 짓눌려 파괴되었다.
으적, 으적!
몸이 떨어진 곳 아래에 있는 건물은 라스트로이어의 몸속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건물 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졸지에 라스트로이어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말로 살아남은 걸까.
푸슛, 푸슈---웃!!
라스트로이어는 속에서 만들어낸 껍질로 사람들을 감싸며 뱉어냈다.
라스트로이어는 땅을 다지듯 천천히 도시를 망가뜨리기 시작했고, 라스트로이어가 지나가는 길에는 붉은 점액구슬에 갇혀 라스에 오염된 이들만 남게 되었다.
“으아아….”
버나드를 도망치려던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몸을 한 바탕 굴리며 장난을 치던 라스트로이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방을 나뒹굴며 건물을 녹이고 흡수하며 사람들을 구슬로 배출해서인지, 처음 도시를 습격했을 때보다 훨씬 크기가 줄어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라스트로이어를 감히 도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항할 수 있는 병사들은 이미 라스트로이어의 구슬 속에 ‘모르디네’들과 함께 갇혀 정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실상 저항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하, 하하.”
털썩.
간신히 건물 틈바구니에서 살아나온 병사는 검을 떨어뜨렸다. 땅에 주저앉아 소화를 시키듯 휴식을 취하던 라스트로이어는 병사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올렸다.
뀨왕.
그 행동이 마치 바닥에 내려앉은 모기를 잡는 듯한 행동이라, 병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간과 마왕군의 역할이 뒤바뀌지 않았나-”
쿵---!!
손바닥이 병사를 내리쳤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흙먼지가 터져나왔다.
잠시 뒤.
항구 도시 버나드였던 곳에는 라스 소리만 가득 울려퍼졌다.
* * *
“장하다 길라인. 도시를 전부 먹어치워버렸구나.”
울트라 슬라인, 라인의 활약으로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수 십 명의 피정령이 모여 만들어진 슬라임 거인은 무참히 모든 것을 흡수했고, 인간만 골라서 쏙 빼놓았다.
“라임아, 보아라. 저게 우리의 딸이다.”
나는 라임을 안고 라인의 활약을 마음껏 만끽했다.
항구도시는 성벽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끔히 사라졌고, 슬라임 점액 구슬에 갇힌 사람들만이 항구도시가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주인님, 인간 포로들은 어떻게 함? 다 먹음?”
“음….”
라임의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도시는 무너졌다.
‘5성급 주요 요인들이 모두 몰래 왕도로 모인게 크지.’
버나드의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고위급 장성을 비롯하여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 모두 왕도로 집결했다는 것을.
그 바람에 버나드를 지킬 수 있는 자들은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모르디네들이 역소환 당한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결국 놈들도 나타나지는 않았다.’
“륜, 혹시 포로 중에 제법 강해보이는 놈들이 있었나?”
“아니요, 전부 일반병 수준의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있었으면 라인이랑 애들이 공격당했을 듯.”
라임의 말대로, 모르디네 투입 초기에 우리 병사들을 사로잡은 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라인의 난동에 두려워서 도망친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마치 한 번 안에 사정을 했는데 요도구에 정액이 남아있는 듯한-
위이잉.
“......호오.”
내가 등에 묶어둔 할레오 색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전투 태세에 라임과 륜은 바로 싸울 태세를 마쳤다.
저벅, 저벅.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성검 레오가 덜덜 떨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 성검의 용사가 분명했다.
“너는 누구냐.”
“성검 아쿠아리우스의 용사.”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느냐.”
적, 적, 제발 적. 너무나도 고운 미성에 나는 그녀가 적이기를 속으로 외쳤다.
“그대는 성검 레오의 용사인 동시에 조디악 왕국 일대를 휩쓸고 있는 분노의 군단 대장, 라스푸틴이 맞는가?”
“맞다. 내가 바로 모든 엘프들의 주인, 사랑의 지배자, 분노의 체현! 뭇 모든 여인들을 사랑으로 인도할 라스푸틴이니라.”
용사가 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우리에게 있어 흔한 일이었고, 나는 얼마든지 쌍수들고 환영할 수 있었다.
“그대는 나와 사랑을 논하러 왔는가?”
내 말에 제발 화를 내며 싸움을 걸기를. 나는 일부러 그녀, 아쿠아리우스를 도발했다.
“...그대의 말을 정정하지. 그대는 모든 엘프들의 주인이 아니오.”
“뭣?”
철컥.
여인은 투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안에서 찰랑거리는 푸른 머리칼이 떨어져나왔고, 내 자지가 불끈불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좆침반이 울렸다.
푸른 머리칼을 찰랑거리는 흰 피부의 엘프는 심해처럼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대에 바다엘프라고 불리었던 존재. 지금은 깊은 바다의 나라 <아틀란티스>를 이끄는 ‘세이렌’ 종족의 수장, 세르디라고 하오.”
“세르디. 기억했다. 이름 한 번 예쁘군.”
알을 정말 잘 낳을 것 같은 이름이다. 갑옷 안의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골반은 물병처럼 새끈하게 빠져있으리라.
나는 입맛을 다시며 세르디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대의 제안은 무엇인가?”
“......이곳 버나드는 조디악 왕국과 아틀란티스를 잇는 연결 고리가 되었소. 버나드라는 도시는 아틀란티스를 숨겨주는 일종의 방파제가 되었지.”
세르디는 텅텅 비어버린 버나드 였던 황야를 가리켰다.
“이제 조디악 왕국은 끝이 보이오. 하지만ㅇ 아직 왕도에는 ‘괴물’이 살고 있소. 그러므로 본인은 바다 왕국의 여왕으로서 제안하는 바이오.”
쿵! 세르디는 거대한 삼지창을 바닥에 찧으며 투기를 보였다.
“오피큐스를 지키는 드래곤을 같이 사냥합시다, 군단장. 그럼 아틀란티스는 그대들의 국가 라스토피아의 우방이 되겠소!"
“.......씨발, 드래곤?”
오피큐스의 수호룡.
오랜 세월 동안 조디악 왕국을 지켜온 존재.
<파이톤>.
그의 또다른 이름은 바르바토스라고 한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