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회
190일차
첫 번째 웨이브를 막은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가 만들어낸 흡정귀들은 성욕에 대한 본능에 따라 타락하여 군단의 하수인이 되었고, 일주일 동안 요새 안에서 이어진 라스 훈련에 따라 완벽한 노예가 되었다.
"라스!"
"라스!"
"라스라스라스!"
요새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라스 소리에 나는 전신이 짜릿하게 울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흡정귀가 된 것에 절망하던 인간도, 모든 것을 부정하고 체념하다가 좌절한 인간도, 자신은 끝까지 지지 않을 거라며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인간도 모두 라스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타인의 정기는 일용할 양식이며,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명수나 마찬가지였다.
"루나야, 지금 요새 안에 있는 흡정귀들의 수가 몇이나 되냐."
"삼백 명."
2천의 정찰대를 상대했음에도 고작 300명 밖에 군단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울들이 만든 흡정귀들의 수는 천이 조금 넘는 막대한 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700명이라는 흡정귀들이 산화하고 말았다.
"태양에 노출되면 성욕이 가라앉는다니 그런 게 어디있어. 늑대인간이냐?"
"자지야, 내 생각에는 여신님의 달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여신의 달이 비출 때는 음욕에 굴복하고, 달이 희미해지는 낮에는 성욕이 감퇴해? 에라이."
역시 여신은 치녀신이 분명하다. 모두가 그녀를 신성한 존재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마왕을 발정시켜놓고 자신을 강제로 범하게 만드는 거로 한껏 즐기려는 상변태가 따로 없다.
그러니 우리 군단을 지지하지. 지지를 받는 입장으로서는 기쁘지만 이왕 도와주는 거, 흡정귀들이 달빛이 아닌 태양빛 아래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300 결사대가 있다니 다행이로다. 놈들에 대한 충성은 확인해봤나?"
"물론! 성별에 맞게 상대를 세워둔 뒤, 새벽부터 노을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범하도록 만들었어. 중간에 지쳐서 암막 밖으로 나오면 태양빛으로 나오게 했지."
천 명의 흡정귀 중 대부분이 물의 정령을 상대로 버티지 못했다.
암막 뒤주 속에서 12시간을 떡만 치고 있어야 하는 우리 군단의 사상검증에 통과한 300명은 우리 군단의 상징과도 같은 스타킹을 하사받았으나, 나머지 700명은 태양빛으로 기어나와 현자 타임을 느껴버렸다.
현타가 와도 세우는 것. 그게 군단의 남자로서 해야할 일이다.
덕분에 700명의 흡정귀를 잃고 700명의 구울을 얻었지만, 나머지 300명이 혼자서 3인분을 거뜬히 해준다면 효과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실험은 성공했지?"
"응. 전파력도 대단해. 뭣보다 전파된다고 해서 효과가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더라고."
"당연하지. 누구 피가 들어갔는데. 다름 아닌 이 몸의 피가 섞여들어갔다고."
"그거 참 다행이네. 정액이 섞여들어갔으면 내가 아주 가만 안 놔뒀어."
루나는 두 손을 팡팡 두드리며 요염히 웃었다. 그녀에게 내 피는 평범한 피에 불과했지만, 정액은 여전히 질좋고 달콤한 허니크림치즈였다.
까악, 까악.
하늘에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며 먹을 게 없나 돌아다닌다. 하지만 우리쪽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까마귀들은 자신들이 뜯어먹어도 되는 시체를 찾는 것이지, 자기들이 오히려 잡아먹힐 구울을 노리지 않았다.
"진짜 까마귀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야."
"맨날 안드라스들만 봐서 그런 거 아냐?"
"그것도 그렇긴 한데, 던전 밖에서 이렇게 오래 생활한 것도 오랜만이군."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치를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던전 안에 있었던 내가 제법 장기간 밖에 나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포트라스 요새 공방전부터 시작하여 호트로 요새를 점령하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제법 오랜 기간 던전을 비웠다.
"던전을 놀리는 것 같아 불안해?"
"샤이탄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딱히 걱정은 안 되는데, 다소 불편하군. 정말 이럴 때는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흐응, 그럼 이건 어때?"
루나는 자신의 성흔을 탕탕 두드렸다.
"내가 너를 낳아줄까, 자지야?"
"이건 또 미친 개소리야?"
"어머, 지금 개처럼 박아준다고 그러는 거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차라리 그레모리한테 분신술을 배우는 게 훨씬 낫지."
루나의 배에서 태어나면 분명 시스템 상 근친으로 묶여 루나와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대로 계속 사는 게 훨씬 낫다.
"...조만간 진짜로 분신술을 배워봐야겠어."
"자지 두 개로 동시에 찔러주려고?"
"너는 왜 생각이 다 그 모양이냐. 모처럼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데."
"그거야 네가 맨날 라스 이외에는 생각 안 하니까 그렇지. 솔직히 얘기해서 꼴렸지?"
".....반반."
던전의 운영도 포기할 수 없고, 내 분신과 함께하는 MFM 쓰리썸도 포기할 수 없다.
그레모리의 조언에 따르면 내가 자지로 느끼는 성감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하더라. 사정을 해도 감각만 느낄 뿐이라고 하여 여신교도적으로 생각하면 불경이었지만, 그래도 본체가 출산율에 기여하지 않는 건 아니니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안 배울 이유도 없지만, 배울 시간이 마땅찮았다. 마법은 상당히 어려웠다.
[군단의 주인이시여,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성벽 아래에서 라스투자드가 유유히 솟아올라 내 앞에 나타났다.
"좀 부럽다. 그렇게 수 미터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거 보니까."
[제 마법은 모두 군단의 주인께서 하사하신 힘입니다. 이 힘을 이용해 군단의 주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이겠습니다.]
"그 힘으로 나 분신 만들어주면 안 되냐?"
[......라스!]
섹스도 못하는 리치 법사가 라스를 외치며 시선을 피했다. 흑마법으로도 불가능한 쌍창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눈물이 괜히 앞을 가렸다.
"크흑. 어쩔 수 없지. 몸이 하나여도 두 개인 것처럼 일하는 수밖에."
세상을 라스로 물들이기 위해, 나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을 만들어냈다. 성벽 아래에는 눈이 온통 핏빛처럼 붉은 300명의 결사대가 전투복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스!"
"라스."
나는 흡정귀들을 향해 지시했다. 그들의 몸에 흐르는 내 피는 내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내게 복종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간단하다. 어둠을 틈타 움직여라. 그리고 인간 세상에 녹아들어라.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 침투하여, 분노에 잠식된 피를 흩뿌리는 것이다."
"라스!"
"무언가를 뒤집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올라갈 필요가 있지. 세상을 향한 혁명이다. 아래에서부터 들끓는 피를 위로 솟구치게 만들기 위해, 너희는 인간 시절의 기억을 살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숨어들어라. 그리고...."
콰득! 나는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세운 손으로 루나의 수박통을 움켜쥐었다.
"인간들을 깨물어라! 피를 전염시켜라! 너희와 같은 군단의 하수인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라!"
우리 군단에 소속되지 않은 순수한 마족들. 우리 군단에서 만들어낸 종이지만 우리 군단에서 관리하지 않는 역병과도 같은 존재들. 그리고 내 피가 깃든 우리 군단을 상대로는 자지를 세우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노예 병사들.
"가서 인간들의 도시를 습격하라!!"
"""라스!!"""
흡정귀의 무한 양산. 라스투자드는 흡정귀들을 향해 다른 곳으로 통하는 포털을 수도 없이 열었다. 5성 리치는 700명의 구울을 상대로 마나를 갈취하여 포털을 뽑아냈고, 흡정귀들은 저벅저벅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부터 조디악 왕국은 흡정귀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조디악 왕국의 모든 영지로 향하는 포털을 열었고, 흡정귀들을 파견했다.
"작전명, 라스키토."
* * *
<늦은 밤, 피스케스 영지의 벽지 소규모 마을.>
"곳곳에서 전쟁이로구나."
산간 마을의 장로, 모스키 아토디다스는 잠에서 깨어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마을을 둘러봤다.
인구 5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은 싸움 한 번 일어난 적 없이 화목했고, 바깥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평화로운 곳이었다.
인류 연합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 군대에 자원한 청년들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떠난 이들을 제외하면 몇 년간 특별한 일 없이 무난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영주님께는 미안하지만 요즘 숨돌릴 수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몰라.'
산간 벽지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일은 영주가 세금으로 횡포를 부리는 일이다. 모스키의 마을도 무장한 기사가 들려 세금을 거둬가는 일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먹고 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푸드득.
고요한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올랐다. 혹시나 야생 동물이 오는 게 아닐까 싶어, 모스키는 활을 조용히 집어들었다.
저벅, 저벅.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래 전 일류 사냥꾼으로 유명세를 날린 모스키는 다가오는 상대가 적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길 잃은 짐승일까, 아니면 드디어 대륙 곳곳에 퍼진 전쟁의 기운이 이곳 마을까지 도래한 걸까. 모스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활을 겨눴다.
사락. 숲을 헤치며 나온 자는-
"헉!"
"커, 허억...."
전신에 상처를 입은 왕국군의 병사가 앞으로 힘겹게 고꾸라졌다. 모스키는 활을 내팽겨치고 병사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투구를 벗겨보니 땀과 피에 젖은 기다란 금발이 아래로 떨어졌다. 여자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모스키는 마물들에게 입은 상처를 보고 침묵을 금할 수 없었다.
드디어 전운이 마을에까지 드리웠구나. 모스키의 백발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아...."
병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모스키는 병사를 뒤흔들며 다급히 물었다.
"정신이 드시오?!"
"......미안, 합니다."
"아니, 당치 않소! 우선 상처를-"
콰득.
병사는 모스키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모스키는 당황했고, 목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에 전신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뭐, 뭣?!"
쿵쿵쿵쿵.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스키는 병사를 내팽겨치며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목에 난 상처는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우호옷?!"
뷰르릇. 아랫도리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세차게 뿜어져나왔다. 모스키는 갑작스런 사정에 두 다리에 힘이 풀렸고, 병사는 모스키를 붙잡고 수풀 사이로 잡아당겼다.
"크, 허억, 으허헝!"
모스키는 꼴사납게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몸속에서 무언가가 뒤틀리고, 아랫도리가 계속 커져만 가는 격통에 신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라스를 위하여."
병사는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헤진 바지를 벗었다. 달빛에 비친 병사의 하반신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불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감 너머 뽀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지금 뭐하는-"
"라스."
푸--욱.
병사는 예고도 없이 모스키의 길고 딱딱한 침을 자신의 속에 찔러넣었다. 밤에 산책을 하러 나왔을 뿐인데 갑자기 나타난 왕국군의 병사에게 겁간을 당하는 것이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활짝.
자지를 삼킨 병사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달빛에 비친 병사는 악마가 웃는 것처럼 입꼬리를 비틀었다. 날개와 뿔만 없지 영락없는 서큐버스의 모습이었다.
"으, 으아악! 서큐버스다!"
"틀렸어."
퍽퍽퍽. 짧게 둔부를 위아래로 튕긴 병사는 하나 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전신이 검은색 천으로 뒤덮여있었고, 탐스럽게 익은 가슴의 형태가 전부 드러나 있었다.
"나는 흡정귀야. 네게서 정기를 빼앗아 갈 거야."
"저, 정기?!"
"군단을 위하여."
여인의 붉은 눈에는 정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모스키는 무언가 크게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으아, 아, 안 돼!"
"돼!"
뷰릇. 모스키의 딱딱하고 길고 커다란 바늘에서 체액이 뿜어져나왔고, 모스키는 속에서 뒤틀리는 생각에 자신이 끝장났음을 직감했다.
"하아, 하아...."
산골 마을의 인자한 장로는 사라지고, 흡정 욕구에 휩싸인 괴물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마침 세금을 거두기 위해 온 병사들은 참혹한 마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곳곳에 뿌려진 피속에 남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50명이나 되는 이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앵앵, 애애애애앵.
어딘가 듣기에 너무나도 거북한, 전신이 가려워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