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642화 (638/800)

642회

189일차

다음 날.

탐욕의 군단, 격파.

탐욕의 인장, 획득.

나베리우스 던전의 서브던전화.

2군단의 '잡몹화'.

그리고 정령왕의 문제 해결.

사실상 나베리우스 던전에 대해 정리가 끝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왕국군을 상대로 계속 이 상태로 가다간 피해가 너무 크다.'

3군단에는 만렙이 2명 있었다. 2군단에는 만렙이 2+1명이 있었다.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1군단에는 과연 몇 명의 만렙이 있을까?

"좋아. 그럼 이제 남은 수는 하나밖에 없군."

나는 군단의 중요 요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국군을 상대할 좋은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각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해다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라스와 함께 열린 회의는 열기를 더했다. 다른 여인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돌아가면서 성기를 주고받으며 1:1로 의견을 경청했다.

그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크게 두 가지.

당장 공격하자는 의견.

서브 던전에서 충분히 레벨을 올려 전열을 가다듬자는 의견.

어느쪽도 일장일단이 있어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고, 하필이면 정확히 반반으로 갈려 다수결에 따라 결정하기도 어려웠다.

[왕국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정령왕의 의견에 모두가 경청했다.

[어, 엄청난 괴물이에요. 정령왕인 저도 그의 영역에서는 싸우기 꺼릴 정도로. 무, 물론 계약자의 능력에 따라 제 능력도 한계가 있고, 또....]

"구구절절한 소리는 관심없고, 그래서 괴물이 성장하기 전에 빨리 잡자?"

"그럼 더 난감하네요. 정령왕조차 꺼리는 괴물이 왕성에 살고 있다니."

[그, 그 괴물은 왕성 안에서 나온 적이 없기는 해요.]

새로운 의견에 따라 우리의 의견은 더욱 격화되었다. 나의 자지도 바쁘게 움직였고, 여인들의 의견은 점차 하나로 모였다.

"좋아. 최전방에서 고렙들이 고생 좀 하는 동안, 후방에서 레벨링 좀 하면 되겠군."

거의 한나절에 가까운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당장 공격하되 평균 전력을 올리자'는 의견이었다.

"주인님, 그럼 병력 구성은 어떻게 되는 거죠?"

"본인 레벨이 90레벨 이상이다 하는 자들만 요새에서 왕국군을 상대하고, 나머지 부하들은 전부 서브던전 파밍 돌린다. 대신 정원 등록은 아스타로트 던전이 아니라 다른 던전에 등록할 것이다."

"그건...."

"그래. 나베리우스의 블라드 운용 방식을 차용해왔다. 놈은 블라드들을 죽여서 인연소환 리스트에 보관했지만, 우리는 다른 던전에 옮겨두는 거지."

서브던전에 들어가서 경험치를 온전히 파밍할 수 있는 건 '해당 던전에 등록'된 존재 뿐.

"빼애애액! 나도 만렙들 죽여서 레벨 올리래!"

"그레모리 너는 나랑 최전방에 가서 라스하면서 요새나 방어하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야, 하르파스. 너도 마찬가지다?"

"나쁘진 않은데, 안드라스한테 따라잡힌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던전 주인들은 모두 요새로 동원될 것이다.

하지만 던전의 주인이 아닌 이들은 일정 레벨에 도달할 때까지 서브 던전에서 경험치를 올린 뒤, 왕국군과 최전선에서 싸워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강해지면 바로 다른 던전에 이름을 올린 뒤 최전선으로 달려올 것이다.

"샤이탄, 고레벨들은 당분간 플라우로스 던전에 등록해."

"알겠습니다. 주인님이 굳이 안 돌아와도 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믿고 맡기마."

이른바 '졸업'.

고레벨 병사는 왕국을 상대로 최전선에서 적의 전력을 깎아먹는다. 그리고 저레벨 병사들은 서브 던전에서 최대한 레벨링을 하며 전력을 늘린다.

"나베리우스 던전을 상대했을 때 배웠지. 베테랑들은 다른 곳에 빼버린 다음, 신병들을 최대한 늘리는 것. 그걸 위해 신병들이 서브던전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나베리우스 서브던전까지도."

"그게 가능해? 왕국의 병사들이 약한 건 아닐텐데."

"흡혈귀들도 강해요."

"맨 뒤의 보스룸은 깔끔히 포기하는 거야?"

"흐흐, 가능한 방법이 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오늘 서브 던전에 한 번 더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제 거의 80레벨을 넘긴 이들을 싹다 데리고 나베리우스 서브 던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륜, 들어가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알겠지?"

"네!"

[히이익! 가, 가두지 말아주세요!!]

언제나처럼, 우리의 새로운 전술에는 새로운 부하가 힘이 되는 법이다.

* * *

"당신!"

"크으으윽...!!

네토라레우스는 잘려나간 팔에 주저앉아 괴로워했다. 급히 신성력을 이용해 피는 멎게 만들었지만,  팔이 '소멸당한'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흐흐, 한 방 먹었군."

"지금 웃음이 나와?!"

"그치만 웃기지 않아? 고작 던전의 마물 따위에게...크윽. 팔을 잃다니."

네토라레우스는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숨을 고르고 팔에 신성력을 불어넣어, 금빛으로 이루어진 팔을 만들어내 땅에 떨어진 망치를 움켜쥐었다.

"너는 괜찮아?"

"나는...."

페스니에는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뭔가...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뭐?"

"뭔지는 모르겠어. 내가 낼 수 있는 힘이라고는 상급 정령술 정도인데...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네토라레우스는 혼란스러워하는 페스니에의 헝클어진 이마를 정돈하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나에 대한 사랑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거잖아?"

"그건...."

페스니에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부끄러워했다. 왕자와 공녀의 관계임에도 풋풋한 신혼의 사랑을 풍기는 둘의 모습에 장군들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지!"

"그렇소. 분명 돌파구는 있을 것이오."

"우리 모두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우오오오오오!!"""

장군들은 함성과 함께 사기를 진작했다. 2군단은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고작 여기서 몰살당할 수는 없었다.

"왕국의 평화를 위해!"

"인류 연합의 승리를 위해!"

"모두 힘을 냅시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빼꼼 열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만한 정도의 폭이 열린 순간, 2군단의 모두가 무기를 들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페스니에, 너는 뒤에 있어."

"으, 응."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페스니에는 도대체 무엇이 결여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던전에 들어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른 장군들에 비해 한정되어 있었다.

물의 정령을 다루는 것. 그나마 자신있는 상급 정령을 소환하여 적을 물어 뜯는-

"어?"

힘이 나오지 않는다. 계약된 모든 정령들과의 계약이 끊어졌다. 페스니에는 갑자기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왜, 왜 계약이...?"

"왕자님! 무, 문틈에서 뭔가가!!"

손가락 틈 사이로 촉수같은 것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장군들은 던전에서 나오는 촉수 괴물들을 떠올리며 하체에 힘을 줬다.

"뭔가-"

구구구구.

무언가가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페스니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미약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웩, 우웁, 우웨---엑.

"...구토?"

콸콸콸콸콸콸---!!

던전 내 통로의 흙먼지가 뒤섞인 토삿물이 철문 안으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 * *

"힘내라, 하르파스."

하르파스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리에 씌워놓은 슬라임드래곤 껍질은 철문 안으로 막대한 양의 물을 방류하는 호수가 되었다.

"라임, 철문의 틈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점액으로 막아다오. 그리고 다른 모두는 철문을 힘으로 막아다오."

루나와 로도페리가 철문 양쪽으로 서서 앞으로 밀었다. 철문은 둘의 거대한 카이트 실드가 되었고, 우리는 공동 안으로 하르파스가 뿜어내는 강물을 집어넣었다.

언뜻 보기에 의미는 없어보이는 작전이다. 하르파스가 토해낼 수 있는 펌프의 양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고, 적이 계속 안에 멍청하게 갇혀있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바로 이번에 륜이 계약한 물의 정령왕, 넵튜뉴스.

"가라, 륜!"

"아앙, 하앙, 하아앙...!!"

륜은 신음을 질렀다. 내게 골반이 붙잡혀 뒷치기로 박히고 있는 그녀는 철문 틈 사이에 자리를 잡은 라임의 위에 엎어져 앞으로 손을 뻗었다.

[아흥, 하윽, 오고곡!!]

그녀의 이마에 씌워진 푸른 서클릿은 아래에서부터 붉은 기운으로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흐응, 이게 정령왕? 아주 좋아 죽는데?"

그레모리는 륜의 서클릿을 어루만지며 윗부분의 튀어나온 장식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그 움직임이 마치 클리를 애무하는 손길과도 같았고, 실제로 륜도 거친 숨을 내쉬며 가볍게 가버렸다.

"정령계에 있어도 감각은 동기화 되더라. 흐흐, 정령계에서 항항거리다가 쪽팔리면 이쪽으로 다시 넘어오겠지.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정령왕의 위치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물의 정령왕이 가진 '능력'.

"륜, 전방을 향해 힘차게 홍수 발사!"

"아흑, 하아악...!!"

륜의 푸른 서클릿이 빛나기 시작했다. 라임은 아래에서 커다란 가슴으로 륜을 떠받쳐들었고, 나는 뒤에서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지지대로 륜의 뒤를 받쳐들었다.

"에일라! 메어리! 용사들은 모두 륜에게 신성력의 힘을!"

"...2왕자, 죄송합니다. 부디 철문 너머의 일은 모른 척 하시길."

"진짜 될까요? 되면 정말 효과적일 것 같은데!"

두 명의 용사는 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렸다. 성흔이 그녀의 등허리에 새겨진 음문에 깃들었고, 분홍빛 음문은 신성력의 힘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륜의 마력이 되었다.

"흐하하, 인간들아!! 잘 느껴라! 이것이 바로 홍수터진다는 것이다!!!"

퍼억. 내가 륜의 자궁구를 귀두로 찔러버림과 동시에, 서클릿에 깃든 마나가 폭발했다.

콰-------앙!!!

서클릿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뿜어져나왔다. 로도페리와 루나는 륜이 철문 사이에 끼운 서클릿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철문을 지지했다.

"힘내, 륜! 너는 할 수 있는 아이야!"

"하이엘프 공주! 네게 군단의 미래가 달려있다!"

""참아!!""

"히이익!!"

구구구구구.

륜과 하르파스가 동시에 뿜어내는 세찬 물줄기는 금방 보스룸 내부를 무릎까지 채웠다. 나는 륜과 하르파스가 조금 더 잘 쏟아낼 수 있도록, 손등을 두드려 문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조금만 더 힘내라! 더, 더 홍수를 터뜨려!"

"아흑, 흐윽, 흐어엉...!!"

"구웨에에에엑!!"

"안에 있는 놈들을 익사시키는 거다!"

아아, 이것은 욕조라고 하는 것이다.

* * *

"어푸, 크헉!"

페스니에는 발버둥을 치며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영을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그녀로서는 아래에서 차오르는 겁에 질렸다.

"히익?!"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페스니에는 난리를 부렸다. 하지만 상대는 페스니에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어딘가에 올렸다.

"하아, 하아. 페스니에...."

"네토라레우스!"

페스니에는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발판 위에 올라온 것에 화들짝 놀랐다. 금빛 발판에 한 팔을 올려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네토라레우스는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올라와! 어서!"

"안 돼. 내가...아래에서 떠받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야."

"아...!!"

네토라레우스의 입술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얼음장같은, 아니 얼음장보다도 더 차가운 물의 온도는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분명 이 정도면 얼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얼음보다 차가운 물은 엄청난 추위로 2군단의 체온을 앗아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제...나도 곧 갈 것 같아."

"안 돼, 네토라레우스!"

"다음 생에도...나와 함께...."

네토라레우스는 발판에서 떨어졌다. 아래에서 차오르는 물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약간의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끝으로 더이상 반응은 없었다. 사람의 반응은 없었다.

"......."

페스니에는 수면에서 튀어나온 물의 정령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떻게...이럴 수 있어!!"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정령이잖아! 물의 정령왕이잖아!!"

[그래. 나는 물의 정령왕이지. 하지만 이제....]

물의 정령왕은 씁쓸한 얼굴로 페스니에의 목을 움켜쥐었다.

[나는 피치에이드라고 하는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 정으로, 네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마.]

"그게 무슨-"

푹, 푹푹푹.

강 아래에서 붉은 피가 솟구친다 싶은 순간.

[이번에도 미안하다.]

사락.

페스니에는 피치에이드의 품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당신! 팔이! ...어라?"

"페스니에!! 나는 괜찮다. 크윽...."

"나...방금...?"

콸콸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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