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회
188일차
“정말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네요. 하필이면 당신이 사고를 치다니.”
입이 바싹 마른다. 전신에 땀이 흘러내린다.
피가 몰려있던 자지가 사그라들며 발기가 풀린다. 나의 좆침반은 에스투를 닮은 여인을 보고 판단을 내렸다.
이 여자는 세워선 안 되는 여자라고.
‘미쳤다.’
감히 나의 여인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눈앞의 존재가 어쩌면 여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신이 이 여인을 질투하여 천마대전이 벌어진 게 아닐까싶을 정도였다.
“생각하는 건 올바르지만 일단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맞춰보세요, 제가 누구인지.”
“.......”
상대는 나를 시험하려들었다. 나는 그녀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에스투와 거의 똑같은 몸매였지만 노출도가 달랐다.
에스투는 판타지에 일부러 정장이라는 구속구를 채워놓은 느낌이라면, 눈앞의 여인은 몸과 하나가 된 듯 한 검은 드레스로 전신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꼴린다.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매일매일 침대에 던져놓고 박고 싸고 싶다.
‘이런 생각을 읽고 있는데도 봐주고 있는 상냥함에 싸고 싶다.’
상대는 에스투와 마찬가지로 내 생각을 읽어내는 존재였다.
따라서 초월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 내게 찾아올만한 자는 단 한 명 뿐.
“혹시 장모님?”
“...틀린 말은 아닌데, 하아.”
한숨을 내쉬는 것 조차 너무나도 섹시했다. 저 뜨거운 숨결이 내 자지에 닿는다면 천국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미치겠네. 자꾸 색정적인 생각들게 만드는 거 서큐버스들 특징인데.’
“맞아요. 나 서큐버스입니다.”
“헐.”
뿔도 날개도 꼬리도 없는데 서큐버스라니. 그게 무슨….
“인정합니다.”
서큐버스가 따로 서큐버스이겠는가? 인간의 정기를 쪽 빨아먹으면 그게 서큐버스지. 샤이탄이 두 번의 진화를 거쳐 서큐버스의 여제가 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장모님, 제가 당신을 뭐라고 칭하면 되겠습니까?”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장모님이라고 그냥 불러요.”
‘이름은 네 글자인데 장모님이라.’
“일단 그러면 라큐라드라고 하세요.”
“......너무 노골적인 이름같은데요.”
이름을 밝혀서인지 이제야 그녀, 라큐라드의 데이터가 자세하게 보였다.
[라큐라드(?)] Lv.256 ★★★★★★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르게 기시감을 느꼈다.
“탐욕의 인장 장모님이 맞습니까?”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니 장모님이 맞죠.”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여기 오신 건 탐욕의 인장이 계속 자고 있는 걸 해결해주기 위해서입니까?”
“아뇨. 물의 정령왕 때문입니다.”
내 기대감이 제대로 어긋났다. 인장을 깨워서 마왕의 딸 자매 하렘의 새로운 인원이 추가되나 싶었더니, 라큐라드는 오히려 내 던전의 간식을 빼앗아가기 위해 멀리서 행차한 셈이었다.
“무, 물의 정령왕이요?”
“그래요. 정령왕의 혼이 던전의 시스템 속에 갇히는 건 정말이지 초유의 사태란 말이죠? 이대로가면 중간계의 모든 환경이 무너지게 될 겁니다.”
“고작 정령왕 하나 없을 뿐인데요?”
“정령왕이라는 건 이 세계에서 물이 존재한 자연의 섭리가 여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재를 구축한 자를 말하는 겁니다. 정령왕이 사라졌으니 물의 무한한 순환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는 걸요.”
라큐라드 왈, 내가 물의 정령왕을 던전 속에 가둬버리는 바람에 세상은 난리가 났다고 했다.
“홍수, 가뭄, 폭우, 물난리...아주 세상 곳곳이 난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에요. 천족이고 마족이고 사이좋게 다들 멸망하게 생겼다고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설마 저보고 정령왕을 해방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싸우면 질 게 뻔하다. 하지만 이건 항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모처럼 잡은 100렙짜리 보스몹을 그냥 풀어줘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령왕을 해방하면 좋겠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죠?"
"물론입니다. 저건 제 전리품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소곤소곤. 그녀는 내게 제법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뭔가 2%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오히려 내 쪽에서 추가 제안을 걸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머나."
나는 내 생각이 가능한지 질문했고, 라큐라드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요염히 웃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린 건 아닌 듯 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대신 반대급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걸 알려드릴게요."
"중요한 것?"
"페투라노스. 그게 당신이 탐욕의 인장이라고 부르는 아이의 이름이에요."
참으로 흡혈귀다운 이름이다. 그리고 우리 군단의 일원으로 참 알맞은 이름이기도 했다.
"그 아이는 원래 영혼이 없는 존재에요. 육체는 태어났지만 혼이 죽은 아이죠."
"그게 무슨?"
"인장하기 싫다고 원래 자기 몸에서 탈출해서 다른 몸에 빙의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 말씀."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는 갔다. 마왕의 딸로 칭송을 받던 존재가 한순간에 던전 주인들이 서로 쟁취하지 못해서 안달인 물건 취급 받게 되었는데, 탈출하는 방법이 육체탈출 넘버원이라고 한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육체는 제 딸이 맞지만, 영혼이 빠져나간 빈 인형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냐고요? 그걸 알려주면 당신이 범하려고 들테니까 굳이 말하지 않겠어요. 찾고 싶으면 직접 찾아보세요."
범해지기 싫어서 몸을 버리고 도망간 사람의 행방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도 내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가 붙잡아서 원래 몸에다가 집어넣는다면 어떻습니까?"
"그 때는 어쩔 수 없고요."
라큐라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우리가 있던 검은 안개의 공간이 사라지고, 회색으로 멈춘 세계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서클릿을 집어들어 내게 건넸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조정은 다 해놨어요. 자, 여기요."
<정령의 서클릿> 물의 정령왕의 혼을 담아낼 수 있는 서클릿. ( 1 / 1 )
여인이 건넨 서클릿은 속이 꽉 차있었다. 동시에 회색으로 이루어진 물의 정령왕은 곧 육체가 무너질 듯 말 듯 붕괴되고 있었다.
"아참, 그런데 장모님. 페투라노스 양의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에이션트 뱀파이어라도 되는 겁니까?"
"......."
라큐라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움켜쥐었다.
"부히익!!"
브류류륫. 손에 잡힌 것 만으로 지려버렸다. 나는 엄청난 쾌감의 폭격에 라큐라드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여튼 내가 이래서 에스투 보내려고 했는데...."
"어...?"
방금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기시감을 느끼고, 직접 신체 접촉이 일어난 덕분일까? 나는 손가락 사이에 비친 라큐라드의 정보에 오한이 들었다.
[■■■스] Lv. 256 ★★★★★★ <마왕>
마왕. 6성. 에스투보다 '1' 높은 레벨.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를 아는 듯한 말투와 행동.
"설마 장모님이라는게 직접 낳으신-"
퍽.
어쩐지 대꼴이더라.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아는 가슴이다."
"정신이 드세요, 주인님?"
나는 륜의 무릎배게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지?"
"얼마 안 되었어요. 갑자기 세상이 검게 물들더니 밖으로 튕겨나온 걸요."
륜은 우리가 나온 장소를 가리켰다. 나베리우스 서브 던전으로 들어가는 포털은 비활성화되어있었고, 일일도전횟수도 < 3 / 3 >으로 이미 가득 차있었다.
즉, 서브던전의 클리어는 끝났다. 언제 보스를 죽였는 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운영에서 서브던전을 점검하면서 튕긴 것이 분명하다.
"쯧. 보통 이런 점검이 있을 때는 던전 도전 횟수를 리셋해주거나 다른 보상을 해주는데 말이야."
"보상...혹시 이거 아닐까요?"
륜은 손을 펼쳐 푸른 서클릿을 내게 건넸다. 어디에 갔나 싶었더니 륜이 챙긴 걸까?
"이거 어디서 났냐?"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주인님 얼굴에 놓여있어서 제가 챙겼어요. 잘생긴 얼굴 가리는 게 보기 흉해서요."
"잘했다, 륜. 이런 건 착용할 사람이 착용해야지."
나는 륜의 이마에 서클릿을 올렸다. 푸른 보석이 가운데 박힌 서클릿은 륜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주인님, 이게 무슨...와."
륜의 눈동자가 서서히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물의 정령왕이 륜의 몸을 마음대로 조종하는가 싶어 가슴이 철렁내려앉았지만, 다행히 내가 걱정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님께서 하신 거죠?"
"뭐, 뭐가 말이냐?"
"제가 정령친화력이 낮아서, 일부러 물의 정령왕과 직접 계약할 수 있는 걸로 만들어주신 거잖아요."
"...크, 크흠!!"
륜은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륜을 들어올린 다음, 그녀의 서클릿과 입술에 각각 키스를 퍼부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입을 다물게 만들어주마."
"그럼 저만 좋은 거 아닌가요? 히힛."
"됐다. ...크흠, 이걸로 네게도 정령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사용해보겠느냐?"
"네!"
륜은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클릿에서 푸른 물줄기가 치솟아오르더니 륜의 옆에 륜과 똑같이 생긴 물의 정령이 태어났다.
[나, 나는 어떻게 된...?]
"피치 에이드다!!"
[히이익!!]
물의 정령왕, 넵튜뉴스는 내 소리를 듣자마자 넙죽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세요! 다시는 건방지게 굴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이계에 갇히는 건 제발...어...?]
넵튜뉴스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륜을 바라보았다.
[왜 내 계약이 하이엘프와...?]
"흐흐.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그렇게 됐다. 이제부터 이 아름다운 하이엘프가 네 계약자다."
"안녕하세요!"
륜은 활기찬 미소로 넵튜뉴스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똑같이 생긴 두 명의 륜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바로 내 자지가 두 배로 커질 것 같았다.
"물의 정령왕이여. 너는 지금부터 륜을 위해 평생을 일해야 한다. 알겠느냐?"
[펴, 평생?]
"그렇다. 이 여자는 나의 여인이자 라스토피아의 지도자, 트루-하이엘프 퀸이 될 존재.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이엘프이며 모든 엘프들의 여왕이 될 존재다."
[하, 하지만 여신님의 성흔은 안 보이는데...?]
찰싹.
[햐읏?!]
"힉?!"
나는 넵튜뉴스의 엉덩이를 가볍게 후려쳤다. 그러자 넵튜뉴스 뿐만 아니라 륜 또한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오오, 감각동기화! 이제 성감도 두 배로 느낄 수 있겠군!"
"와아아!!"
[왜, 왜 계약자가 좋아하는 거야...?]
"혼자서 두 배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으, 으아앙!!]
물의 정령왕은 비명을 지르며 서클릿 속으로 숨었다. 다시 륜의 눈동자가 푸르게 물들었고, 륜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싱긋 웃으며 두 손을 튕겼다.
쏴아아.
륜의 주변에 물덩어리들이 모여 바닥에 모여들었다. 륜은 물덩이 위에 누워 두 다리를 벌리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인님, 이건 물침대라고 하는 거예요."
"크으...내가 잘 가르쳐 놓기는 했군."
이 얼마나 기특한 여인이란 말인가? 나는 륜의 위에 몸을 겹치듯 누웠다. 당연히 자지는 미끄러지듯 그녀의 안을 찌르고 들어갔다.
"흐응, 흐으읏...역시 주인님이랑 얘기할 때는 하면서 얘기하는 게 제일 좋다니까요. 하아."
"이전보다 물은 많아진 것 같군 그래."
"그거야...하앙. 아참, 주인님. 이런 것도 가능하답니다...?"
륜은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서클릿의 푸른색이 륜의 전신을 뒤덮음과 동시에, 륜의 체모가 모두 푸른색으로 변했다. 서클릿에는 연분홍빛과 갈색이 뒤섞여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짜잔! 넵튜뉴스를 제 몸에 빙의시켰답니다!! 하이엘프 공주의 비기에요!]
"......크으, 역시 륜이다. 설마 이런 기술을 알고 있었다니."
역시 륜에게 정령왕을 준 건 정답이었다.
- 물의 정령왕을 서브던전에서 뽑아내겠습니다. 당신의 경험치 손실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대신 물의 정령왕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서클릿을 주도록 하죠. 물의 정령왕은 계약자가 죽을 때까지 계약자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나는 정령왕의 혼을 서브던전에서 빼내어 무한 파밍을 포기한 대신, 륜에게 힘을 주었다.
"야, 피치에이드. 너 다시 서브 던전 들어갈래, 아니면 순순히 라스하고 정령계로 돌아갈래?"
"......."
넵튜뉴스, 피치에이드는 순순히 다리를 내 허리에 휘감았다.
"자, 잠깐만요! 이, 이건 제가 하는 게 아닌-"
[몸의 조종은 제가 하고, 느끼는 건 전부 정령왕이에요!]
"부히이이이익!!"
"햐아아아아아앙!!"
군단은 물의 정령왕을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