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회
179일차
현대전의 패러다임 변화는 여럿 존재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변화의 시작은 단연 비행기의 등장이다.
공군.
똑같이 육군 간의 전투가 이루어진다면,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훨씬 더 유리하다.
할파스가 던전을 수직으로 쌓아올려 비행마수들의 이점을 살렸던 것도 비행의 이점을 살리기 위함이며, 우리는 지금까지 숱한 공군 병력의 이점을 살려 적을 쓰러뜨려왔다.
"젠장, 이거 좆됐다."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리폰 부대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에서는 대범한 척 당당하게 나섰지만, 당연히 예상하지 못한 공중병력의 등장에 쫄리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젠장, 니프엘라에게 전달 가능한가? 그리폰을 쏴버리라고 전해!"
"네? 그리폰이요? 기수를 쓰러뜨리고 그리폰을 군단의 것으로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득이지! 하지만 변수는 싫다! 그리폰은 가챠로 뽑으면 되니까 전부 쏴 죽여버려!"
나는 가차없는 학살을 지시했다. 륜은 곧장 하피 라이더로 하늘에서 그리폰을 상대하기위해 여념이 없는 니프엘라를 향해 바람으로 속삭였다.
파바바박!
하피 에일로와 블랙 레이븐의 등에 올라탄 쿠앤크 엘프들의 바람화살이 밤하늘을 갈랐다. 신성력이나 마법과는 달리 순수한 바람을 엮어 만든 화살은 기의 흐름으로 감지하는 방법밖에 없었고, 정면으로 날아가는 그리폰들의 안면을 향해 쏟아졌다.
카가가강!
하지만 바람화살은 그리폰의 부리에 튕겨나갔다. 머리나 몸에 맞은 바람화살도 방어마법이 새겨진 철갑에 부딪혀 떨어졌다. 중갑기병이 군마에게도 마갑을 씌우듯, 인간들은 그리폰에게도 철갑을 씌워 공격을 튕겨냈다.
끼이이익!!
다행히 화살 하나가 그리폰의 눈을 꿰뚫었다. 한쪽 눈에 바람화살이 박힌 그리폰은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퍼덕였고, 등 뒤에 올라있던 기사는 당황하며 고삐를 움켜쥐어 진정시키느라 난리법석이었다.
"젠장. 니프엘라의 저격으로도 한 마리 눈 날아가고 끝이라고? 미친 놈들, 밥먹고 비행훈련만 했나?!"
"그럴 걸요? 고도로 훈련된 자들이에요."
"젠장. 하긴, 그게 직업이면 그만큼 능력을 보여야지."
그리폰 라이더는 곧 현실로 치면 베테랑 전투기 파일럿과 같은 급의 존재일 것이다. 일반병도 아니고 장교급은 되어야 조종석에 앉을 수 있으니, 그리폰 위에 올라탄 기사들도 초엘리트들이 분명했다.
"엘프들이랑 비슷...아니, 우리가 약간 우위인가?"
나이가 최소 200살은 훌쩍 넘은 쿠앤크 엘프들의 평균전력은 그리폰 라이더들을 살짝 웃돌았다. 그리폰 니프엘라의 지시로 퍼붓는 바람화살의 비는 한 두 번은 스쳐도 지속적으로 정면에서 얻어맞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불리해."
"아앗, 놈들이 열기구를 노려요!"
우리는 지키는 입장이고, 저들은 파괴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그리폰 라이더들은 좌우로 나뉜 쿠앤크 엘프의 사이를 가로질러 후방에 떠오르는 열기구를 향해 달렸다.
대형 조류 마수 위에 탄 엘프보다 열기구가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누가 대장인지는 몰라도 제법 감이 좋은 것 같았고, 나는 빠르게 지시를 내려 맞춤 대응을 했다.
"안드라스! 흑익룡들을 이끌고 날아올라! 저들의 접근을 막아!"
내 지시에 안드라스는 지상에 남아있던 흑익룡들을 모조리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밤하늘에 펄럭이는 검은 깃털은 그리폰들의 경로에 따라붙으며 그리폰 기수들을 향해 뒤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끼요오오옷!!"
흑익룡들의 브레스가 그리폰들의 뒤를 덮쳤다. 그리폰들은 좌우로 산개하며 공격을 피했고, 결국 흑익룡들의 브레스는 쿠앤크 엘프들이 뒤집어 쓸 뻔 했다.
"시건방진 새끼들."
감히 주인공들이 3류 악당을 상대로 하는 유도탄 유도를 감행하다니. 이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도발이다. 쿠앤크 엘프들은 당연히 흑익룡들의 브레스를 멋지게 피했지만, 우리에게 이런 개수작을 부렸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 열기구에 닿게 하지 마!"
그리폰들은 제법 가까운 위치까지 열기구에 닿았다. 흑익룡들과 하피 에일로, 블랙 레이븐이 하나로어우러져 그리폰들을 견제해도 그리폰들은 꾸역꾸역 열기구에 닿으려고 날개를 펄럭였다.
"미친 놈들! 자살특공대도 아니고!"
벌써 몇몇 그리폰들이 날개가 꺾이거나 하여 추락하기 일쑤였으나, 그리폰 기수들은 눈에 열기구만 보이는 지 공격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벼르기만 하고 있었다.
"마검 폭탄 사수해! 떨어뜨릴 위치까지는 더 날아야한다!!"
나는 바닥에 거꾸로 놓은 할레오 색스의 몸통을 탕탕 두드렸다. 맑고 청량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울려퍼지는 나의 오라에 그리폰을 견제하는 공군 부대가 서서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요오옷! 그리폰을 노려! 그러면 자동으로 등 뒤에 있는 인간도 떨어져 죽을 테니까!"
"놈들의 공격을 피해라! 우리는 하늘로 떠오르는 것만 제거하면 된다!"
그리폰 라이더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상당히 눈치가 빨랐다. 우리가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를 지킨다싶으니, 열기구를 터뜨리려고 발악을 하는 셈이었다. 나는 그리폰 라이더들이 교묘히 우리 공군의 틈을 비스듬히 비집고 날아드는 것에 절로 허탈해졌다.
"아무리 스펙이 우위라고 한들 경험의 차이는 이길 수 없나?"
콰직!
그리폰 라이더들이 무기를 휘둘러 열기구의 천을 가격했다. 망치에 얻어맞은 열기구는 출렁이며 흔들렸고, 검이나 도끼날에 찍힌 열기구는 잘린 천에서 바람이 뿜어져나왔다.
푸쉬이이이-----
공겨을 허용한 열기구는 바람빠진 풍선마냥 날아가며 흔들거렸다. 불꽃의 힘으로 팽창된 천은 중간이 끊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벌어졌고, 데워진 공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열기구는 맥없이 땅으로 추락했다.
쾅----!!
평야에 떨어진 첫 열기구의 나무판자가 땅에 닿자마자 박살나 땅에 흩어지며 비산했다. 불길은 나무판자에 묻혀놓은 젖기름에 달라붙어 주변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요새와는 대략 200m는 넘게 떨어진 거리. 요새 관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적 지휘관 급 인간 중 제법 눈에 띄는 두 여자를 발견했다.
"오우, 화장봐라. 얼굴에 분칠해서 늙은 티 덕지덕지 가려놓았네."
멀리서봐도 알 것 같았다. 성벽 위에 올라선 두 여자는 10년 전이면 그래도 얼굴을 봐줄만 했으나, 나는 숱한 자연미인들로 기른 안력으로 그들의 얼굴에 짙게 묻은 화장의 흔적을 확실히 눈으로 봤다.
"몸은 그래도 새끈하네. 씁."
"주인님, 인간은 에일라랑 릴리가 있잖아요?"
"그러게. 근데 에일라는 용사고 릴리는 오랫동안 못하잖아. 그리고 쟤들은 적이니까 괜찮아."
라임에게 먹게하여 내 간식으로 만들면 어떨까. 물론 그것도 성을 공략할 때의 이야기고,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가 무사히 요새에 떨어질 때의 이야기다.
"요격당한 열기구는?"
"이제 다섯이요."
"그래? 육십개를 띄웠는데 고작 다섯이라니, 다행이군."
절반만 떨어져도 팡팡 터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고작 다섯밖에 격추하지 못했다는 건 우리 군단의 공군이 집요하게 그리폰 라이더들을 쫓아다니며 공격을 방해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안타까워서 어떡하냐. 어떻게 마검 없는 것만 골라서 터뜨리고 있다니."
바닥에 떨어진 열기구들은 전부 부서진 통나무 잔해와 스타킹 조각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불타기만 하는 것은 마검이 꼽힌 열기구가 아니다.
"폭탄드랍 국룰은 더미지."
하늘로 올라가는 모든 열기구에는 마검이 실려있지 않다. 진짜 마검이 실린 열기구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더미 열기구의 뒤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고, 그리폰 기수들은 우리 병사들의 끊임없는 견제 속에 더미를 터뜨리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더미인 걸 모르는 것 같은데 상관은 없겠지.'
결과적으로 마검들이 떨어지기만 하면 일사천리. 마침 마검을 실은 열기구도 적당한 위치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열기구는 가만히 멈춰있거나 하늘로 더 올라가려고 할 뿐이었고, 열기구에 꽂혀있는 마검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적의 기믹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던전 주인의 전술이지. 밀어버려."
내 지시는 륜의 목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상공의 니프엘라는 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열기구를 잡아당기는 흑익룡들과 연계하여 열기구를 요새 위로 밀어넣었다.
위이이잉----!!
반경 2km라고 인식을 한 것일까? 요새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지며 거의 90도에 준하는 각도로 거대한 포격을 날렸다. 나는 빛무리에 휩싸이는 열기구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오우, 제법 파괴력 장난 아닌데?"
"그러게요. 어쩌죠? 불꽃이 더 피어오르는데."
화르르륵!
포격을 얻어맞아 젖기름 발린 통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폭발해 떨어졌다. 불의 비에 더불어 통나무 위에 마구잡이로 놓여있던 철가시들은 검은 비가 되어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졌다.
"정수리에 불떨어져서 대가리가 벗겨지거나, 정수리에 쇠침이 박혀서 대가리가 꿰뚫리거나."
분명 요격마법으로 파괴했음에도 떨어지는 불덩어리와 살상무기에 인간들은 제법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폰 라이더들은 더욱 열심히 그리폰을 재촉하며 열기구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이미 열기구는 그리폰을 무시해도 될 정도까지 높이 날아올랐다.
"분노의 군단, 라스주의 배달 준비!!"
"""라스!!"""
공군 병사들은 하나 둘 열기구의 연결부위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다. 검은 스타킹 천과 통나무 차체가 연결된 부위 근처로 다가간 공군 병사들은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투하---!!"
서걱.
우리의 공군 병사들은 연결부위의 스타킹을 찢어버렸다. 어느 하나 지탱하기 힘들게 하나도 남김없이 싹다 잘라낸 덕분에, 젖기름 발린 통나무 차체는 강철의 성화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놓인 마검과 함께.
"으하하하! 뭐해! 요격해 멍청이들아!"
위이이이잉--!
신난 나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지 방위마법은 바로 밤하늘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며 열기구를 터뜨렸다. 하지만 이미 더미였던 열기구가 터졌던 것처럼, 불씨와 철가시들은 폭발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다 숨겨라. 마검도 마찬가지."
후작성을 점령하며 얻은 온갖 철제 날붙이들. 그것을 지옥용광로에 녹여 가느다란 대못으로 만들어 차체 안에 뿌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달구어진 대못은 요새에 있는 이들의 몸에 비처럼 후두두 쏟아졌다.
"우리의 작전을 막지 못하는 너희들의 패배다."
적이 근처에만 다가가도 빔포를 날린다면, 그 포격을 역으로 이용해 하늘에서 불바다로 만들면 그만.
폭약과 폭탄은 잔뜩 배낭에 실어 성 위에 띄워놓았으니, 기폭장치는 방어용 마법진의 효과가 발동되는 곳까지 밀어넣으면 끝이었다.
고오오오.
할레오 색스가 울린다. 요새의 방어마법은 한 시도 쉬지않고 열기구를 포격했고, 열기구가 터질 때마다 불비가 아래로 쏟아져내렸다.
"오늘 어디 한 번 제대로 활활 타봐라. 흐흐흐."
* * *
화르르륵!
요새 위의 병사들은 적의 불합리한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의 비와 나무조각, 그리고 대바늘 같은 대못은 머리 위로 들어올린 방패마저 푹푹 우그러뜨리며 병사들을 위협했다.
"젠장, 이건 사기야! 메리지, 방어마법 해제 좀 해 봐!"
"지금 하고 있어! 젠장, 왜 이렇게 복잡해? 드래곤이 건 마법이라도 되는 거야?"
오르드와 메리지를 비롯한 3군단의 간부들은 야심한 시각 마왕군이 쏘아올린 작은 불덩이에 자다가뛰쳐나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패없이 밖으로 나오지 마! 목 근처에 불씨가 떨어진다고!"
"앞으로 조금!"
오르드는 죽어라 병사들에게 지휘를 내려 적의 공격을 피하도록 지시했고, 메리지는 요새를 달궈진 철바늘의 비가 잔뜩 끼게 만드는 계기 하나를 줄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됐다!"
메리지의 환한 미소와 함께 요새에 걸린 자동방위 마법은 일시적으로 효력을 멈췄다. 덕분에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열기구는 천천히 제 갈길을 가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시간을 벌었-"
퍼-억.
하늘에서 떨어진 검 한자루에 병사 하나가 등에 칼이 꼽혀 죽었다. 기괴한 형태를 한 검은 보기만해도 사이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플라스토닉 증폭기, 설치 완료.]
"뭐...?"
기이한 형태에 폼멜 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구부정한 정체불명의 검, 마검은 서서히 붉은 오라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조심해라! 마왕군의 세뇌전술이다!"
푸쉬이이이.
붉은 오라는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퍼진 오라에 3군단의 지휘관들도 당황했다.
"윽...!"
"이, 이거 무슨 짓을...?!"
[발정토템.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성욕에 불타게 만들지.]
위이이잉.
마검들은 일제히 붉은 오라를 방출했다.
[자지랑 보지가 불타서 지금 미쳐버릴 것 같지?]
더욱더 활활 타올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