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615화 (611/800)

615회

176일차

모든 인간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죽음에 의연한 이들이라고 한들 죽음을 앞에 두고는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 죽음 앞에서 당당히 목을 들이밀 수 있는 이들은 아주 비범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1%가 채 되지 않으며, 인류 대부분을 차지하는 99%의 사람들은 평범한 대중일 뿐이다. 다가오지 않을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삶을 즐기다, 막상 죽기 직전에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지는 일반 민중일 뿐이다.

죽고 싶지 않다.

더 살고 싶다.

지성을 가진 생명인 이상,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릴리처럼 인간으로 죽기를 바라는 특출나고 비범한 존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조금 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군단의 여인들이여! 들으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엘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지!”

라스베가스를 비롯하여 라스피카 성에 뿌린 전단으로 모인 여성들은 태반이 중장년, 혹은 노년의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정이 있는 이들도 있고, 가정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너희는 스스로 이곳에 왔노라!”

그들 모두 공통적인 점은 다들 스스로 선택을 내렸다는 것. 나는 이미 그린엘프가 된 요정들을 앞세워 목청껏 소리쳤다.

“위대하신 여신께서 굽어살펴주시고, 전지전능한 마왕께서 인도하심에, 너희들은 인간으로서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세상 그 누가 여신과 마왕을 동시에 언급하며 축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있을까. 하지만 여신도 마왕도 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라스토피아이며, 그 중심이 이 라스베가스 광장이다.

“너희들은 엘프가 될 것이다! 내가 엘프로 만들어주마! 단, 10개월 동안 우리 군단의 병사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니라!”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나는 그들이 앞으로 엘프로서 살아갈 수 십년의 세월 중 10개월이라는 시간을 대가로서 가지기로 결정했다.

“엘프들은 오크 지휘관의 아래에서 군단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군단을 위해 10개월간 일한 뒤에는 군단의 주민으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과, 던전에 소속되어 직업군인으로 살아갈 두 가지 선택지가 있노라!”

나는 사회의 뒤로 밀려나가기 시작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고자 했다. 일할 마음과 환경, 그리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인생의 2막을 살아갈 수 있다.

“약조하마! 너희들의 제 2막은 너희들의 것이다! 10개월간의 군단복무 중 산란의 의무는 없다!”

군단을 위해 헌신하고 10개월이라는 황혼의 청춘을 바칠 이들을 위해서는 파격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군단의 정체성이자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파종과 산란에 대하여, 모병제로 들인 엘프들에 대해서는 ‘성행위의 자유’를 주기로 결정했다.

“하고 싶으면 해라!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군단을 위해 싸울 때에는 절정조차 참고 적을 향해 화살을 쏴야 할 것이니라!”

광장에 모인 이들은 확실한 선택을 내렸다. 나는 암울하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던 그들의 눈빛에서 서서히 삶에 대한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10개월! 임신했다고 생각하고, 군단을 위해 엘프병사로서 헌신할 자들만 이 광장에 남아 서약하라!”

나는 전단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곳에는 데포르메로 2등신 캐릭터가 된 그린엘프가 엄지를 척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우리들끼리 ‘굳건양’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린엘프는 보기만해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군단을 위하여!”

“””라스!!”””

전력이 부족하다면 더 모집하면 그만.

나는 인간들에게 엘프 환생을 대가로, 10개월간의 군복무를 얻어냈다.

***

광장에서의 연설 이후.

던전으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플라우로스 던전에서 장인이자 장모인 존재를 맞이했다.

“어이쿠, 오셨습니까?”

“재미있는 짓을 벌였더구나. 군단장.”

신수, 유그드라실은 플라우로스에게 무릎배게를 해주며 나를 쏘아봤다. 륜과 루나, 니무에를 보내 슬쩍 떠봤더니 던전으로 달려온 그녀의 행동력에 나는 괜히 오한이 들었다.

“그래. 나에게 파수견의 역할을 해달라?”

“파수견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땅, 엘프들의 영토, 라스베가스의 수도가 될 재개발 지역에 들어오는 놈들을 응당 물리쳐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재개발 지역 안에 있는 던전까지 모험가들은 오지 못하게 되겠지.”

“흐흐흐.”

꼼수지만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인선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수가 우리 군단을 위해 뒤에서 몰래 조력을 해준다면, 우리는 왕국을 상대로 온 전력을 쏟아낼 수 있다.

농담이 아니라 본진을 비우고 전력을 쏟아낸 치즈러시까지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던전에 위협을 넣을 수 있는 요인은 쟁탈전뿐이지만, 아스타로트 던전은 여전히 마르코시아스 던전과 쟁탈전이 걸려있으니까.

“던전 안은 당신의 따님이 모두 지킬 것입니다. 신수께서는 따님의 몸에 무뢰한들의 무기가 닿지 않도록 잘 지켜주시지요.”

“좋다. 드라스군의 유전자를 보아 이번만 넘어가주도록하지. 단, 네가 말한 그 기한과 똑같이 하도록 하마.”

“왕국 점령 기한 말씀이십니까?”

“그래. 반 년. 조금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는 나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내가 지켜주도록 하지.”

신수는 손을 옆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신수의 손에서 피어오른 녹색의 기운이 몽실몽실거리며 땅으로 스며들었고, 곧 던전에 나무 한 그루가 생성되었다.

“던전의 주인이라면 보일테지. 어떠냐?”

“......이것도 엘프입니까?”

“아주 먼 과거, 엘프를 숲과 하나로 만들려던 한 미친 엘프 왕의 산물이지.”

<엔트리엘프>.

형태는 분명 나무지만 중간에 사람의 얼굴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다. 신수가 만들어낸 나무 뿌리는 점점 옆으로 뻗어나가, 또다른 나무들을 만들어냈다. 나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것만 같은 얼굴들이었다.

도대체 어디가 엘프인가 싶었지만, 얼굴 바로 옆에 툭 튀어나온 뾰족한 나뭇가지가 하나 보였다. 내가 그걸 만지니 얼굴 부분이 눈을 까뒤집으며 입을 쩍 벌리기 시작했다.

“으윽.”

“모든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귀에 감각이 집중되어 있지. 역시 대단한 자로군. 영체를 실체화했을 뿐인데 보내버리다니. 역시 만물박싸로구나. 흐흐.”

“그건 또 무슨 이상한 말씀이십니까?”

“만물에 박고 싼다는 의미다. 하하하!”

“......아이고, 배꼽 뒤집어지겠습니다. 하하하!”

나는 사축 시절의 나를 잠시 끄집어냈다. 영혼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플라우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나게 떠드는 신수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네, 왜 엘프들의 귀가 뾰족한 지 아는가?”

“글쎄요. 잡고 목구멍에 쑤시라고 그렇게 생긴 거 아닙니까?”

“귀가 뾰족한 종족이 엘프기 때문이니라! 으하하!”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대답이시로군요. 하하하.”

신수님 토크에 나는 막걸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괜히 막걸리를 가져왔다가 신수가 주정까지 부릴까봐 나는 참기로 했다.

“그렇다면 군단장이여, 천사들은 어떻게 태어나는 지 아느냐?”

“평범하게 자궁으로 태어나는 거 아닙니까?”

“아니다. 떨어져나온 날개깃털에서 태어나지. 천사들은 죄다 버섯같은 년들이야. 그래서 다들 헐벗은 모습으로 돌아다니지. 옷을 벗었기 때문이지! 으하핳!!”

“신수님 유우머에 부랄이 덜덜 떨리는 군요.”

하지만 이어지는 신수님 토크는 차라리 나의 여인들과 사흘밤낮을 논스톱으로 침대에서 달리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한동안 신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신수가 본론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크흠. 이들을 숲 곳곳에 뿌리겠다. 하지만 이들을 죽이고 오는 자들이 있다면, 그 자들에 대해서는 나도 따로 나서지는 않으마.”

“이 녀석들의 전력은 대략 어느정도입니까?”

“하나하나가 레벨 80은 될 것이다. 간혹 강한 개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 정도 전력이 될 터.”

신수는 손을 흔들어 엔트리엘프들을 거두어들였다. 80레벨의 파수꾼들을 전력으로 삼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수는 거기까지는 허용해주지 않았다.

“기존의 엘프의 숲을 중심으로 엔트리엘프들을 뿌리겠다. 나무에 깃든 혼령이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야. 이 녀석들은 반 년 뒤에 내가 다시 거둘 것이다. 함부로 던전에서 다시 태어나게 할 생각을 하지 마라.”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적으로 보기 싫어.”

“그건 공감합니다.”

누가봐도 마왕성 근처에 기귀어린 숲에서나 나올 법한 마물 나무의 모습이긴 했다. 나는 무사히 신수에게서 우리 던전에 대한 방위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수님.”

“내가 뭘. 자, 자네의 여인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네. 내가 알콩달콩한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네. 솔로몬의 딸이자 몽마의 후예여,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그게….”

내 옆에서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샤이탄은 내 눈치를 보며 보고하기를 꺼려했다. 명백히 신수의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눈치였다.

“괜찮다, 샤이탄. 신수께서는 가슴이 넓으신 분이다. 인간들을 엘프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도 허락해주시지 않았느냐?”

“바로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고자 왔습니다. 그….”

샤이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나와 신수에게 보고를 올렸다.

“......군단의 남자 주민들이 왜 여자만 엘프로 환생하고, 남자는 엘프로 환생할 수 없냐고….”

“뭐? 왜 안 돼? 엘프로 환생하면 되지.”

“그게, 남자 엘프로 환생을-”

쾅!

신수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어찌나 소리가 큰 지 옆에서 자고 있던 플라우로스가 잠에서 깰 지경이었다.

“안 돼. 남자 엘프라니, 그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란 말이냐?”

“시, 신수님?”

“으딜 엘프 세계의 성별에 수컷을 집어넣으려고 해! 엘프에게 집어넣어도 되는 건 자지 뿐이다! 엘프남자라니, 그런 걸 만들면 내 그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

아아, 이것은 성현의 말씀일까 아니면 착한 꼰대짓일까.

"남자 엘프라니, 이단이다!”

“.......”

* * *

“아하하! 성차별 어떻게 할래?!”

“웃지마라. 지금 되게 복잡하니까.”

신수를 보낸 우리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다. 요즘 하도 남자를 잡아다가 강제로 여자로 환생하게 만들다보니, 생각이 잠시 굳어있었다.

강제로 여자로 태어나게 하는 대상들은 우리의 적이며 포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여자가 되어 자신들이 죽인 생명만큼 새로 낳는게 응당 당연했다.

하지만 우리 기존에 우리 군단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해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군단을 위해 복종하고 헌신한 대가가 포로들과 똑같은 암컷 타락이라니, 그 어떤 남자가 군단의 주민으로서 충성을 다하겠는가.

“쓰읍. 미치겠군. 우리 군단에 수컷 풀이 왜 이렇게 없지?”

“수컷은 많지만 그걸 인간과 합성하기 난감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나는 우리 군단의 수컷들을 살폈다.

“오크는 절대 안 돼. 오크는 라스토피아의 지배계급으로서의 상징이다.”

“미노타우르스는 인간들이 적응하기 힘들 걸요? 체격 차이가 워낙 커서 적응이 힘들 거예요.”

“그렇다고 고블린이나 조-카멜로 합성하는 건 본인들이 원하지 않을 걸요?”

“플레어 판테라나 워울프는 어때요? 걔들 그래도 수컷들이 있잖아요.”

“그건 괜찮기는 한데, 그건 수인족을 만들어버리는 거니까 조금 그렇군. 이왕이면 엘프와 기대수명을 맞췄으면 좋겠단 말이야.”

황혼에서 새로이 만난 청춘이 결혼하여 우리 군단의 새로운 생산계층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엘프 여인은 수 백년을 살고, 마족으로 환생한 남자는 수 십년을 살고 죽는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세계에는 과부가 넘쳐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엘프들의 재혼이 팽배해질 것이다.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을 가지는 건 분명 꼴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사회에 만연한 풍조가 되는 건 안 된다.”

“네가 하면 꼴리는 건데 남들이 하면 안 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미르망은 어떻게 된 거니?”

“뭐래. 내로남불 모르냐. 나는 군단의 독재자니까 괜찮아.”

“그래, 그래. 그래서 라스토피아의 독재자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신가? 그냥 힘으로 억압하고 밀어버리게?”

“그럴 수는 없지.”

늙은 노인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다. 같은 주민이고 세금도 같이 내는데 왜 자신들만 수명 연장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인가.

“엘프와 기대수명을 맞출 수 있는 종족이 필요하겠군.”

어디 좋은 종족이 없을까 싶은 순간.

[군단장 님, 들리십니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자간이냐. 그런데 왠 손님?”

[다른 군단에서 온 사자입니다.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여인입니다. …대화를 원한다는 이유로, 저희를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간 던전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고, 나는 자간을 향해 바로 물었다.

“이쁘냐?”

[네.]

"야. 시야 공유 좀 해봐. 나도 좀…. 어우야."

"어때? 어떻게 생겼어?"

"섹스 존나 잘하게 생긴 흡혈귀야."

나는 부리나케 자간 던전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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