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회
176일차
충격. 찐 성녀 살해 의혹.
"그건 그 년 인성을 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충격적인 건 다른 거야."
성녀 비처녀 의혹.
"유니콘을 탈 수 없는 성녀라니, 이 얼마나 신성모독이란 말인가!"
레비즈를 상대로 장난을 치던 나는 그만 엄청난 정보를 입수하고 말았다. 혹시나 싶어서 하나하나 일부러 끊어서 한 번 씩 질문해봤고, 그에 따라 성녀가 비처녀라는 정보를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성녀가 비처녀라니, 그게 말이 돼?"
"아 글쎄 그렇다니까. 레비즈가 자기가 보빨할 때 봤는데, 처녀막 같은 게 없다고 했어."
직접 같이 침대에서 뒹군 당사자가 더 잘 알지 않겠는가. 하는 행동거지나 말뽄새는 처녀를 넘어 남자 한 번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한 숫처녀같았지만, 일단 처녀막은 없다고 하니 비처녀가 분명했다.
"으으...강제로 합성시킨 다음 찢어버릴까?"
"그냥 고통을 주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하지마. 알 아까워."
"그건 그렇지. 뭔가 방법은 없을까...첫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데."
"뒤로 안 해봤으면 뒷처녀 먹으면 그만이고, 임신을 한 번도 안해봤으면 첫 임신을 하게 하면 되는 거 아냐?"
역시 그레모리는 우리 군단의 현자다. 어떻게 하면 성녀의 처음을 가져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크으, 역시 그레모리다. 그럼 그레모리야, 지금 성녀가 어디에 있는지 아냐?"
"나야 모르지. 그걸 확인하려고 지금 나 부른 거 아냐?"
"그래. 정보를 수합하려고 하는 거지."
후작성을 점령하고 조디악 왕국을 상대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뒤, 우리는 우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 대륙의 상황을 살폈다. 던전의 입구를 개방하여 부하들에게 몰래 주변을 정찰하라고 하여 확인한 결과, 우리의 던전은 거의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조디악 왕국과 연결되어 있는 곳은 전부 세 방향.
하나는 나의 아스타로트 던전이고, 또 하나는 퍼시발 알로켄의 더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드라이어드 목재 파밍을 위해 따로 분류한 자간의 던전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왕국이나 제국, 동맹 등의 영지에 열려있어 금방 확인만 하고 던전의 입구를 은폐했다.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건 우리 던전이군."
"그만큼 전면전으로 우리 쪽으로 온다면 이쪽에서 전쟁을 치를 가능성이 높겠네."
후작령에서 왕도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일주일을 꼬박 달리면 닿을 위치에 왕도가 있었고, 본격적인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 정도 거리는 충분히 감수하고 달려갈 수 있었다.
"알로켄 황야에서 왕도의 뒷통수를 치는 건 불가능하겠지?"
"당연하지. 거리도 거리지만 중간에 아직 점령하지 못한 인간 귀족가문이 많아. 걔들도 정리하려면 또 한 세월일 걸?"
"그래. 그럼 나머지는 자간의 던전을 이용하는 건데...."
과연 자간 던전의 입구를 통해 별동대를 파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나는 자간 던전이 열린 위치에 다소 씁쓸함을 느꼈다.
"아리에스 백작령에 열렸군."
자간 던전은 하필이면 현재 한창 전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아리에스 백작령에 입구가 열려버렸다. 이미 후작성에서 모험가 길드가 가진 정보를 통해 얻은 첩보에 따르면, 아리에스 백작의 소실에 따라 대성벽은 무너졌으나 성검의 용사들이 백작성에서 농성하며 활약중이라고 전해졌다.
"역시 트랄이다. 2만 마군을 모조리 쓸어버리다니."
아무리 2만이라느 숫자의 대부분이 평균 2성 수준의 하급 마수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들, 대성벽 전체를 뒤덮는 엄청난 수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린 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타우러스의 용사가 트랄이 아니었으면 용사들이 습격했던 날, 분명 던전이 밀려버렸겠다 싶을 정도로 용사들은 자신들의 강함을 여과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나도 용사니까 할만하겠지?"
아리에스, 비르고, 사지타리우스, 그리고 나의 할레오. 신성력을 보유한 세 성검과 마기로 타락한 마검의 힘이 있다면 분명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성검의 용사들이 우리의 적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선 언젠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바이스가 이끄는 성기사단이 레오 후작가에 편승해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싸웠던 것처럼, 인류연합과 마왕군의 일대 결전에서 성검의 용사들과 직접 싸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날을 위해서라도 전력을 가다듬어야지.'
최소한 마르바스 수준은 이르러야 한다. 마르바스를 침대에 강제로 자빠뜨리고 힘으로 범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되어야 나도 전장에서 쩌리가 아닌 엄연한 네임드로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마검의 힘을 손에넣었다고 한들, 순정으로 100레벨인 놈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게 사실이니까.
"가만히 앉아서 좆질하는 건 역시 내 성미에 맞지 않아. 직접 몸을 움직이겠다."
"흐흥,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거야?"
"그래. 전력이 분산되어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만하다."
왕국의 전력은 현재 둘로 분산되어있다. 하나는 인류 연합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활약하고 있는 이들이 있고, 또 하나는 아리에스 대성벽이 무너짐에 따라 백작령 근처 영지의 방비를 위해 파견된 병사들이 있다.
"병력이 양쪽으로 갈린 이상, 그만큼 수도에 남은 병사들은 적을 수밖에 없지."
"수도로 진격하시겠다. 그래서 구체적인 전략은 뭔데?"
"3만년 조이기."
정확히는 반 년안에 왕성을 점령해야하기에 반 년 조이기가 되겠지만, 우리는 아주 천천히 왕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왕성까지 천천히 병력을 진군시키면서 놈들과 싸운다.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할수록 인간들의 피해는 누적되고 우리는 병력이 손실되지 않도록 전력을 유지하는 거지."
"입으로는 세계도 점령할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 싸워온 거랑은 느낌이 다르잖아. 상대는 왕국이야. 어떻게 할 거야? 또 전염병이라면서 발정제를 뿌리기라도 할 거야?"
"어떻게 하기는. 그런 건 우리가 전력으로 열세였으니까 하는 거지."
압도적인 힘 앞에는 전략과 전술은 모두 무의미하다.
"힘으로 밀어버린다."
"그럼 본진은?"
"본진? 그거야 당연히...."
나는 절로 입꼬리가 비틀렸다.
"가만히 누워있는 방구석 백수 한 명 불러다가 수비시켜야지. 우리 라스토피아의 랜드마크가 되실 분인데, 언제까지 가만히 놀고 먹게 놔둘 수는 없잖아?"
* * *
하이엘프 공주, 쿠앤크 엘프 여왕, 그리고 그린엘프의 시초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신이 꽁꽁 묶인 드라스군이 누워있었다.
"호오...이런 존재가 만들어질 줄이야."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질겅이던 신수 유그드라실은 군단에서 새롭게 태어난 엘프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오크, 인간, 엘프, 드래곤. 무려 네 종족의 유전자가 섞인 새로운 종이란 말이렸다."
"유전자요?"
"그런 게 있다. 흐음. 이건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신수는 곧장 나뭇가지를 뻗어 드라스군, 세이지의 안에 집어넣었다. 졸지에 나뭇가지에 아래가 꿰뚫리게 된 세이지는 전신을 떨었고, 루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성인식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이미 처녀는 아니지만, 그린엘프로부터 파생된 엘프가 아니더냐."
신수는 드라스군의 안을 휘저어 나뭇가지를 끄집어냈다. 나뭇가지 끝은 무언가를 살포시 감싼듯한 형태로 안으로 휘어들어갔고, 신수는 만족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상당히 우수한 형질의 정수로구나. 네 종족의 형질이 조화를 이루고 완벽한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있어. 솔로몬의 시스템으로 합성된 존재라 번식은 상당히 어렵겠지만, 원래 드래곤의 피가 섞이는 것들이 다 그렇지."
"신수님, 그러면 저희 제안은...."
"아. 그래. 끙."
신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계약서에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운 엘프종의 종자를 받는 대가로, 너희들의 땅을 지켜달라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신수님. 던전을 지켜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던전이 있는 당신의 '땅'을 지켜달라는 것이지요. 이 숲을 비롯한 이 일대 전역이 곧 신수님의 땅이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나를 꾀어내려고 하는 구나. 머리 좀 썼군."
신수는 세상의 일에 간섭할 수 없다. 하지만 지상에 사는 존재인 만큼, 자신의 영토에 침입한 무뢰배에 대해서는 철저히 다스릴 권리가 있다.
"신수님, 저희 도와주세요!"
"군단장도 신수님을 모시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라스토피아의 랜드마크이자 중심으로 말이에요."
"끙. 그러니까 나보고 지상으로 던전을 향해 오는 놈들을 잡으라는 거 아니냐."
"...헤헷."
모험가들은 던전을 공략하러 오겠지만, 도중에 신수에 의해 붙잡혀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신수의 영토를 침범한 것은 아니지만, 신수의 영지에 흙묻은 발로 드나드는 것은 분명히 불경한 일이었다.
단지 던전이 신수의 영토 안에 있을 뿐.
눈가리고 아웅이기는 하지만, 신수가 자신의 땅에 개입할 명분은 충분했다.
"용엘프의 유전자를 제공해준 것 만으로 나를 써먹으려고 하는 건 조금 내가 밑지는 장사기는 하지만, 내 자손들이 이리도 간청을 하니 어쩔 수 없군."
"와! 신수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하도록 하지. 나는 너희들의 편을 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의 땅을 범하려는 이들에게 벌을 내릴 뿐.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호되게 매를 들어 쫓아낼 지언정, 너희들의 편을 들어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수는 명백히 선을 그었다. 명백한 중간자의 입장에 서고자 하는 신수의 태도에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도 충분해요. 나머지는 저희들이 해결할 테니까."
"숲에 들어오는 자들을 죽이는 건 엘프들의 몫이니까요."
음흉한 엘프들의 미소에 신수는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너희,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야?"
신수의 말에 엘프들은 웃으며 동시에 소리쳤다.
"""엘프 양산!"""
* * *
"......."
라스베가스의 주민, 리트셋 라이펠프는 오늘도 조용히 혼자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는 오늘도 정분이 넘치는 이들로 가득했지만, 그녀는 그들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후우."
늙고 주름진 손. 굽은 허리. 어느덧 나이가 예순을 바라보는 그녀는 라스베가스가 되기 이전의 자비야바에서 살아온 산 증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라스베가스에서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몸이 너무나도 늙어 어딘가로 떠날 수도 없는 몸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 십 년을 살아온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마왕군은 늙고 병든 이라고 한들 무참히 죽이지는 않았다.
- 무엇을 잘하지? 오호, 그 머플러는 직접 짠 것인가? 제법 손재주가 있군. 그렇다면 공장에서 스타킹을 제조할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도록 하라.
군단은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을 주었다. 라스베가스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비롯하여 숱한 이들이 그녀에게서 바느질법을 배워갔고, 그녀는 자신의 기술을 팔아 목숨을 이어나갔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검은 까마귀 머리의 마족이 자연스레 집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정장에 <사회복지단>이라는 명찰을 단 그는 리트셋처럼 늙고 병든 이들을 위해 군단에서 지정한 복지병이었다.
"일주일치 식료품과 의복이라스."
"고맙네."
리트셋은 은근한 눈빛으로 안드라스를 올려다봤다. 노인이라고 성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리트셋은 라스베가스에서 지내며 잠재워놓았던 성욕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군단은 그런 이들의 욕구조차 해결해주었다. 라스라는 이름으로.
"미안하지만 오늘은 힘든 거라스. 다른 곳에 이거 돌리려면 한참 돌아다녀야 하는 거라스."
"그건 뭔가?"
"모병 지원서."
안드라스는 품에 한아름 안아든 종이 한 장을 리트셋에게 건넸다. 그녀는 침침한 눈으로 종이에 적힌 문구를 찬찬히 살폈다.
"왕국과의 전쟁에 나설 굳건한 병사들을 모집 중...?"
"후작령은 점령했고, 이제 왕도를 점령할 차례라스."
"...후.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응?"
리트셋은 문구를 다시금 눈으로 살폈다.
- 선착순 500명, 모병 지원자는 엘프로 다시 태어날 기회 제공.
"이, 이건 무슨 말이냐?"
"아, 그거? 말 그대로의 의미라스."
안드라스는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군단의 용사 모집중!>이라는 피켓을 든 녹발의 엘프들이 열심히 선전을 하고 있었다.
"저는 인간 모험가였습니다! 하지만 군단의 도움으로 엘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군단을 위해 힘쓸 때입니다!"
"여러분! 저는 동료에게 배신당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엘프로 다시 태어나, 지금은 하루에도 알을 몇 개씩 낳는 몸이 되었습니다!"
"......허."
리트셋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일어서기도 힘든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엘프로 다시 태어나면 수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순수하게 엘프의 긴 삶은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들은 거라스. 하지만...최소 수 십년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라스?"
"이보시게."
리트셋이 내민 손은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주시게."
군단에 그린엘프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