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회
176일차
전쟁 이후의 복구 작업은 언제나 정신이 혼미해지기 마련.
그래도 전쟁 중에도 애는 낳고 다 먹고 살기 나름으로, 우리는 전후의 상황을 수습하고 군비를 갖추는데 열의를 쏟았다.
레굴라스 성을 넘어 후작령 전체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안다이할의 기사단에게서 뽑아낸 정보로 우리는 숱한 화전촌을 밀어버렸고, 성으로 끌고와 판자촌에 강제로 기거하게 하여 우리 군단의 주민으로 삼았다.
집성목이기는 하지만 드라이어드의 뿌리털은 어지간한 통나무보다 더 단단했고, 모듈식으로 만들어진 판자촌은 말이 판자촌이지 사실상 컨테이너 식의 원룸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끌려와서 살해당할 거라고 울고 난리를 치던 화전민들은 새로운 집과 직장, 그리고 안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안착하게 되었다.
플라우로스 던전으로부터 시작한 하극상은 야금야금 한 계단씩 상승했다.
자간 던전 이후로 하위 던전 점령 작업은 다소 더디기는 했지만, 어느새 47위 부알 던전까지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멀티 던전의 주인들은 내 아들뿐만 아니라 나의 손자 세대까지 이어졌고, 오크들에게 던전 주인의 자리를 하사받는 건 일종의 영광이 되었다.
우리 군단에서 큰 활약을 한 던전 주인들에게는 내가 할레오를 통해 낳고, 드워프들이 직접 망치로 개조한 특별한 무기를 지급했다.
마검 할레오의 새끼 마검들을 뽑아내어 베이스를 만들었고, 각 오크들이 원하는 무기와 형태에 따라 마검은 온갖 형태로 개조되었다.
그 외에 목장의 운영, 던전의 시설 확충, 지하 2층의 재개장, 나의 여인들과의 정사 등 나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아스타로트 던전은 전쟁을 쉬고 있지만, 나의 부하들이 하극상을 일으키는 것에 지원을 나가거나 원군을 파병하는 등 나는 군단의 정점으로서 지휘를 내리는데 집중했다.
"솔로몬이 괜히 72 던전을 만든 게 아니라니까."
지도자의 길이 이토록 험난할 줄이야. 언젠가 나도 솔로몬처럼 '인간들을 멸망시켜라'라는 말만 내린 채, 뒤에서 여인들과 알콩달콩 지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작령 점령 이후 우리 군단에 생긴 가장 큰 변화.
플라우로스 부터 시작하여 안드로말리우스 던전에 이르기까지, 하극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던전의 소환 시설에 레비즈의 자식들을 코쿤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우, 드디어 코쿤이 열리는 건가?"
우리는 눈엣가시같은 성기사단을 모조리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었다.
가장 먼저 플라우로스의 던전 안에서 드라고니안과 그린엘프의 알을 섞어 합성을 한 새로운 개체의 코쿤이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에 나는 마침 박고 있던 륜을 안고 냅다 플라우로스 던전으로 달려왔다.
"우효옷! 역시 그린엘프의 알을 섞기를 잘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변하고 있다니!"
코쿤 속에서 농익어가는 성기사들은 점점 기네비어같은 예쁘장한 남자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고, 코쿤에서 나오는 순간 레비즈의 딸로서 진정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퀘르벨스 추기경이 떠난 뒤, 최초로 성기사를 합성한 지도 어언 나흘.
드디어 소환시설을 차지하고 있던 코쿤이 좌우로 열리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 나는 그를 향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네 목숨을 라스토피아를 위하여!"
[세이지 클라크], Lv.21, ★★★★☆. "드라스군".
우리는 드디어 용성기병-드라스군-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원판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이, 전형적인 그린엘프에 드라고니안이 섞인 모습에 나는 절로 전신이 짜릿했다.
"보자, 처녀막도 온전히 있고, 완전한 여체가 되었군."
"나는...."
"어이쿠. 시끄럽게 짹짹거리기 전에 기절시켜야지."
빠악.
나는 드라스군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의 뒷목을 수도로 쳐서 기절시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린엘프를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머리에 달린 뿔이나 용의 꼬리와 같은 전형적인 드라고니안의 특징이 남아있었다. 날개가 사라진 것은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한 손으로도 들기 힘든 무거운 젖통 때문에 날기도 힘들지 몰랐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엘프로 폴리모프한 드래곤. 날개가 없지만 날개가 없는 것도 딱히 나쁠 건 없었다.
"크, 완전 종합선물세트 아니냐?"
"주인님, 얘는 어떤 맛이에요?"
"보자. 일단 그린엘프가 베이스니까 젖이 나오는 건 기본이니...."
나는 조심스레 가슴을 감싸쥐어 젖을 짜냈다. 하얗게 흐르는 우유를 나무컵에 담아 조심스레 혀를 갖다 대었다.
"와! 소다!"
마시자마자 혀가 짜릿하게 톡 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달콤한 꿀의 향이 나는 동시에, 젖 특유의 농밀한 맛도 느껴졌다. 사이다와 우유가 적절히 섞여 만들어진 맛에 나는 나무컵을 륜에게 건넸다.
"한 잔 마셔보겠느냐? 톡쏘는 맛이 일품이니라."
"...톡 쏘지는 않는데요? 신성력 특유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헐."
탄산이 아니었다. 기포가 터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입안의 세포가 그냥 신성력에 타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족이 아닌 그린엘프의 젖통에 레비즈로부터 이어진 신성력이 함유되어, 마족에게는 소다같은 젖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마실 만 한데?"
어차피 탄산은 건강음료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성력에 의해 입안의 세포가 파괴된다고 한들, 오크의 회복력은 겉치레가 아니다.
"소-다. 탄산은 원래 톡 쏘는 음료니까."
마족들에게 있어서는 시원한 탄산음료가 될 것이며, 인간이나 엘프들에게는 핫밀크가 되리라. 우리의 식문화는 이렇게 또다시 진일보하였-
"아니, 잠깐만. 내가 젖이나 짜려고 얘들을 합성한 건 아니지. 크흠."
젖은 어디까지나 부가효과이며, 드라스군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낸 건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력을 강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어디 한 번 실험을 해볼까. 샤이탄, 거기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 년의 꿈에 접속해서 전장을 꾸며라. 주변에 오크가 가득한 상황에서 드라스군으로 얻은 새로운 힘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금방 보여드리겠습니다."
원래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면 그걸 어떻게 운용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시스템에서 그런 기능이 없다면, 내가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아아, 이것은 쇼케이스라고 하는 것이다."
* * *
"어...?"
세이지는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주변은 던전 안인 것처럼 허름한 동굴이 깔려있었고, 세이지는 어안이 벙벙한 채 자신의 몸을 살폈다.
"내 목소리가 왜...히익?!"
세이지는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가슴에 달린 두 덩이의 젖부터 뿔, 꼬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흔적과 남성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이게 무슨-"
"성기사가 탈옥했다! 잡아라!"
뒤에서 오크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세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도망쳐야해!'
오크들에게 붙잡히는 즉시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세이지는 즉시 자유로운 두 다리를 앞으로 내달렸다.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를 달리는 엘프의 다리는 지칠 줄을 몰랐다.
"여기다!"
통로 맞은 편에서 배불뚝이 오크 하나가 나타나 세이지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거적데기 천으로 음부만 가린 오크는 무방비했지만 손에 들린 철검은 날카로웠다.
"네 놈!"
그 검은 다름아닌 세이지 본인의 검이었다. 자신의 무기가 고작 오크 따위가 가지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세이지는 땅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어디서 더러운 마족이!"
세이지는 돌멩이를 앞으로 힘차게 내던졌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간 돌멩이는 오크의 이마를 정확히 때렸고, 세이지는 전방으로 달려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흐아앗!"
꼬리로 바닥을 지탱하며 명치를 두 발로 찍었다. 구속이 풀려서 그런지 몸안에 들끓는 신성력은 차고 넘칠 정도였다.
"부히이익!"
오크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세이지는 오크의 손목을 걷어차 검을 빼앗아들었다.
위이잉.
곧 그의 손에서 뻗어져나온 신성력이 오크의 심장을 찔렀다. 오크는 붉은 피를 뿜어내며 절명했다. 검에 흐르는 신성력은 마족을 너무나도 쉽게 죽여버렸다.
"하아, 하아. 그래, 이게 맞는 거지...."
마족이 신성력을 이겨내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세이지는 검을 회수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이 여체가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힘, 속도, 신성력 모든 것이 성기사일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젖내가 여기서 난다! 이쪽이다!"
"윽...."
과도한 움직임으로 가슴이 죄수복에 흔들릴 때마다 흘러나오는 뿌연 젖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세이지는 한 손으로 가슴을 붙잡으며 검을 휘둘렀다.
"내가 여기서 쓰러질 것 같으냐, 이 더러운 마족들아!"
세이지는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여신이시여!"
"""부히이익!"""
달려드는 오크들을 일격에 베어버린 세이지는 기함을 터뜨리며 미로를 달려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