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회
172일차
이주일 뒤.
"아아, 후작성에 쾌락이 가득해."
후작성 레굴루스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 마왕군이 후작성을 점령한 당일은 큰 문제가 있었지만, 불과 하루만에 인류는 우리 군단의 통치방식을 깨닫고 순응했다.
복종하는 자, 살아남을 것이다.
저항하는 자, 죽을 것이다.
기존의 마왕군과는 사뭇 다른 지배방식이지만, 마왕군이 아닌 다른 왕국이나 영지에서 후작령을 점령했다는 식으로 알려진 순간 인간들은 금방 이해했다. 우리 군단이 인간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을.
"그렇다면 세금은 무엇으로 내야합니까?"
"정자와 난자."
각 세포에 세금을 메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마물과 정사를 나누게 했다.
"모든 가정은 한 달에 한 번 군단의 마물과 번식해야한다. 남자는 여성 마족에게 씨를 뿌리고, 여자는 남자 마족의 씨를 받아야 하느니라."
"마, 마족이요?!"
"엘프랑 오크 포함이다."
"아, 그럼 뭐...."
불만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일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것에 상당히 꺼려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임신이 불과 하루만에 이루어진다거나 쾌락만 가득하다거나 한다는 것을 듣고 다소 불만을 억눌렀다.
"그, 그럼 부부는요?"
"꼭 성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원래대로 세금을 바쳐도 좋다."
"으으...."
마족과 섹스를 하거나 원래대로 세금을 바치거나. 후작성의 영지민들이 후작성에서 원래의 자산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자비로운 마족이니 벌어들이는 돈의 10%만 세금으로 가져가도록 하지."
"......마왕군?"
"천사인가?"
"후작 가문도 3할은 떼어갔는데...."
"오, 그래? 30%로 올릴까?"
"아닙니다!"
인간들은 금방 적응했다. 후작가문을 물리친 마왕군이 이전처럼, 인간 경비들이 서있던 시기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치안을 다스리는 것에 몇몇은 성급하게도 마왕군의 지배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멋대로 탈출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너희는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딱히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희는 성밖에서 농사를 짓는 놈들입니다. 그럼 저희는 무엇으로 먹고삽니까?"
"마왕군을 위해 노동을 하면 하피의 알을 보급해주지. 하피 깃털을 엮어 스타킹을 만들어라. 아니면 광산으로 와서 드워프들과 함께 철광을 캐도록 하라. 구울들과 함께 나무를 벌목하는 것도 방법이고, 드라이어드의 나무뿌리로 목조 건물을 만드는 것도 있지. 자,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
"...다 한 번씩 해보고 적성에 맞는 걸로 해봐도 좋습니까?"
"좋다. 한 번씩 쭉 해보고 너희들의 새로운 생업으로 삼거라. 아니면 내가 허리 흔드는 일에 자신이 있다 하는 자가 있나? 그런 자는 전문 파종꾼으로 전직해도 좋다. 하피의 알을 낳게 하여 전 도시의 이들을 배부르게 먹인다고 할 수 있으니, 농부로서 하던 일과 큰 차이는 없는 듯 하군."
밖으로 나가야만 생업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던전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직업을 바꾸도록 종용했고, 그들 중 일부는 허리만 써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며 새 직장을 찾았다.
- 라스토피아라는 곳이 이런 곳인 건가.
- 강제로 섹스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딱히 나쁠 게 하나도 없는데?
- 이거...여기에 편승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점점 우리 군단에 대한 이미지는 하루가 갈수록 좋아졌다. 중세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인 생명안전에 대한 문제와 세금의 문제가 해결된 만큼, 인간들은 점점 하나 둘 우리 군단에 눌러앉기를 자처했다.
어딜가도 지옥같은 곳이라면, 적어도 지옥 중에서도 가장 몸과 마음이 편한 곳으로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라스토피아는 인류와 마왕군의 전쟁에서 유일한 회색지대이며, 인간과 다른 종족간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망자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고, 딱히 크게 문제가 일어날만한 껀덕지도 없군."
"예. 슬슬 병력을 더 빼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라스터콜로 부른 생산직 병사들을 다시 생산계에 투입하라. 목장이랑 공장 갈 애들 전부 복귀시켜."
우리가 후작성을 점령하는데 막대한 병사들을 투입했지만, 그들이 모두 후작성의 경계를 서는 건 아니다.
지휘관 급 던전주인 오크들은 다시 자기 던전을 운영하러 가야했고, 드워프는 다시 던전으로 망치를 두드리러 가야만 했고, 드라이어드들도 목재 파밍을 위해 기구에 다시 박혀야만 했다. 하피들은 알을 낳으러 가야만 했고, 슬라미아들은 던전 개조 작업에 착수해야했다.
결국 남은 건 24시간 불철주야 경비를 설 수 있는 구울 뿐. 그마저도 대부분 빠릿빠릿하지 못한 구울들이 대부분이었다. 후작성의 원활한 경비를 위해서는 최소 수 백명 단위의 오크급 병사들이 필요했다.
"병력 공백이 생기면 당연히 틈으로 파고들기 마련이죠. 저희도 확인하지 못한 개구멍이 수 십 개는 되니까요."
"그래. 구울들도 만능은 아니지."
덕분에 후작성은 당장 수가 많고 피로 누적이 없는 구울들이 지켜야만 했고, 다소 굼뜬 구울들의 움직임을 제끼고 외부로 도망치는 이들이 숱하게 발생했다. 아무리 흑익룡들과 하피들이 주야장천 감시한다고 하지만, 감시망을 뚫을 작정을 하고 도망가는 이들까지 관리할 수는 없었다.
섹스와 쾌락의 낙원이라도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 본인이 하기 싫어서 떠나는 이들을 강제로 붙잡을 이유는 없었다. 걸리면 바로 붙잡아서 한계까지 파종하게 한 다음 마물박이의 낙인을 찍어버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인간들은 남작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군단의 통치 방식에 적응하면 전부 늘러붙을 놈들이다. 남작성의 주민들을 생각해봐라. 라스피카에서 라스베가스로 상행위를 나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라스베가스의 시민권을 따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지 않느냐?"
시민들 사이에 계급이 만들어지는 건 좋지 않지만, 꿈과 사치의 도시라는 중심지로서 기능을 하는 게 딱히 나쁜 건 아니다. 라스베가스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니까.
"에일라, 그래서 후작성의 유지들은 어떻게 처리했지?"
"자본가들이나 고위층들의 자산을 모두 몰수했어요.
나는 가진 자, 부유한 자들이 가진 것을 몰수하여 없는 자들에게 베풀었다. 그들의 죄목은 이므신할과 같은 서큐버스 포르노의 독점이었고, 나는 죄인들은 똑같이 라스형에 처했다. 그들의 재산은 모두 군단의 것이 되었고, 나는 그들의 집을 우리 군단의 주요 요인들이 기거할 집으로 만들었다.
"몰수한 재산 중 우리한테 필요없어보이는 것들은 전부 분배하라. 단, 유상분배다."
무상보지는 있어도 무상복지는 없다. 성불구자가 아닌 이상, 군단의 자원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하피의 안에 질내사정 한 번에 안드라스알을 배급받는 것처럼, 그들이 가진 번식능력이 곧 새로운 화폐로서 도입될 것이다.
"고자나 폐경이 온 이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성마법으로 세울 수 있을 때까지 세워보고, 안 되면 합성해야지. 본인의 성기능이 다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면 이종족으로 새로 합성시켜버리도록 하지."
"그러면 무조건 던전의 부하로 등록되는 셈이로군요."
"그래. 환생의 대가는 징집병이다."
성불구자도 우리 군단에서만큼은 최소한의 자비와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부여해 줄 것이다.
하지만 성불구자를 탈출하기 위해 환생을 하게 된다면 던전의 부하로 살아가게 되는 이상,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적들과 마주함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한 껏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섹스만 하라고 환생시켜주는 건 아니니까.'
인간들을 그린엘프로 환생시켜주는 것도 좆을 빨고 젖을 짜내기만 하라는 의미에서 환생시켜주는 게 아니다. 그건 또다른 주 임무이며, 기본적으로 던전의 부하들은 모두 한 명의 우수한 병사의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요새 포트라스에서 활을 쐈던 그린엘프들 모두 그걸 조건으로 인간을 포기하고 그린엘프가 된 이들이다. 애초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린엘프나 군단의 마족으로 환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후작성의 이들을 상대로 모병을 해보겠습니다. 마왕군의 병사로 자원한다면, 지금의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순서가 반대가 되었는데 훨씬 더 설득력이 있군. 늙고 병든 자, 장애인들, 성불구자들 위주로 한 번 모집을 해봐. 크으, 세상 좋아졌군. 나는 환생을 가챠로 했는데 말이야."
평균값인 3성 오크로 태어난 것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우리 군단에 들어올 신병들은 평균 3.8성으로 라인업이 몹시 화려했다. 특히 넘쳐나는 드라고니안과 그린엘프의 알 덕분에 그들의 개체수는 현재 오크의 수를 훨씬 웃돌 수준이었다.
"후후, 그러면 어떻게 주인님께서도 확률에 따른 환생을 도입하시겠습니까?"
"아니. 자기가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는 몸인데 스스로 정해야지. 다만, 오크와 하이엘프는 안 된다."
오크와 하이엘프로 전생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가치가 너무 떨어지게 된다. 하이엘프는 륜 전용이고, 오크는 우리 군단의 지배계급 종족이 될 것이다. 나는 샤이탄과 에일라를 한 테이블에 앉혔다. 우리의 앞에는 행정을 위해 쌓인 온갖 서류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다.
"크흠. 그나저나 후작성을 점령하고 나서도 더럽게 바쁘군."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요."
마냥 부하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후작성에서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전후 처리 과정에서 우리 군단에 투항한 이들을 관리하는데 상당한 난항이 있었다.
세력이 거대해질수록 내부에는 찾기 힘든 암덩어리가 생겨나 썩어가기 마련. 싹은 돋아나기 전에 짓밟아야하며, 암세포는 자라기 전에 환부를 제거해야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군단에게 있어서 우리 군단의 심장부를 노릴 벌레는 누가 있는가. 있다면 딱 하나의 집단이 존재했다.
"성기사단."
바이스 엑슈얼의 인도 하에 엘프들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으로 전투에서 이탈했던 이들. 전황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엘프를 먹은 성기사단 놈들은 현재 군단 안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