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회
151일차
인간들에게 있어서 골렘은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마물 중 하나다.
덩치는 쓸데없이 크고 물리방어력은 높은 놈들이, 덩치값으로 밀어붙이면 쉽게 막을 방법이 없다.
"골렘과는 다르다! 골렘과는!"
일반적인 골렘과는 천지차이다. 드라이어드의 나무뿌리는 돌덩이를 연결하는 관절부가 되어 유연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강철깃털이 얇게 펼쳐진 피부는 가벼우면서도 강철의 단단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끄어어어!!
그나마 무게가 있다면 관절부에 해당하는 돌덩이가 무겁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는 코어-마석의 힘은 내가 보충해줄 수 있다.
"더 빨리 달려라, 골렘들이여!"
키메라가 되어 다시 태어난 스톤골렘들은 형태가 어떻든 군단의 부하이며, 그들의 목 위에 달린 까마귀 머리는 장식이 아니다.
"나의 오라를 받아라!!"
끼요오오옷!!
검은 골렘들의 까마귀 눈에서 붉은 안광이 빛났다.
동시에 강철 피부 아래의 나무줄기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오라로 강화된 마나의 흐름이 끓어오르는 피처럼 골렘들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으아아악!!"
인간들은 전력으로 달리는 골렘들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누구 하나 막아볼 생각도 못한 채, 자신들을 '밟아 죽이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골렘은 피하지 않는게 머저리였다.
"피하지마! 맞서 싸워! 너희를 위해 요새가 직접 나왔잖느냐!"
골렘들은 협곡을 개조하는 순간부터 성문으로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흙더미 아래에서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너희는 우리의 성의를 무시했다! 너희 수가 많아서 기껏 성벽을 만들었더니 말이야!!"
그런데 그런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 놈들은 하늘에 길을 만들어 성벽을 넘어가려는 짓을 벌였다. 당연히 인간들을 상대로 성벽으로서 탱킹을 하려던 키메라 스톤골렘들로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성벽을 넘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쫄보 새끼들, 다 짓밟아버려라! 쿼 터 백!!"
우어어어어어!!
골렘들은 럭비선수처럼 달리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골렘이라는 폭거에 대처할 수 있는 이들은 성벽 너머에 넘어가, 후작령 방향에 남은 병사들은 일반병밖에 없었다.
"퐁, 당, 퐁, 당!"
돌덩이들이 몸을 던진다. 밟아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슬라이딩을 하며 인간들을 덮친다.
끄아아악!!
도망치는 토벌대를 하나하나 징검다리처럼 밟아 죽이는 골렘도 있고, 인간들이 있는 방향으로 둥글게 만 몸으로 앞구르기를 하는 골렘도 있다. 심지어 어떤 골렘은 밀대마냥 옆으로 누워 굴러가기 시작했다.
"골렘들이여! 너희들의 키즈 카페가 바로 이곳이니라!"
용사도 없고, 성기사단도 없고, 일반병만 가득한 진지는 골렘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 고작 40기도 되지 않는 적은 수의 골렘이지만, 그들이 다섯 명씩만 죽였다고 봐도 족히 200명은 훌쩍 넘었다.
"역시 성기사단이랑 용사가 빠지니 쭉정이 뿐이로구나! 흐하하!"
골렘을 잡으려면 압도적인 물리력이 필요하거나, 또는 마법이나 신성력같은 이능이 필요하다.
'성기사단이 남아있었으면 바로 골렘들이 붙잡혔을텐데.'
하늘길에는 아직 반응이 없다. 용사와 성기사단이 하늘길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밟아 죽여야 한다. 나는 골렘의 어깨에서 전선을 살피다가, 삼삼오오 모여든 로브의 인간들을 가리켰다.
"저쪽! 저쪽에 마법사들이 있다! 가자!"
쿵, 쿵, 쿵!
나를 태운 골렘은 멀리뛰기를 하듯 다리를 뻗으며 시원시원하게 달렸다. 누구보다도 나의 오라를 가장 가까이에서 받는 골렘은 날개가 있었다면 하늘이라도 날 것만 같은 기세였다.
쩌저적!
마법사들이 허공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골렘의 몸통보다도 큰 고드름침은 분명 골렘에게 약점이 될 게 분명했다.
"나를 던져라!"
나는 골렘의 어깨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골렘의 손바닥에 착지했다. 내 뜻을 눈치챈 골렘은 투포환 선수처럼 나를 고드름을 향해 집어던졌다.
"분, 쇄!"
흑요석 도끼날이 붉은 문신으로 물들었다. 골렘은 나를 날린 반동으로 몸이 옆으로 갸우뚱 기울며 넘어졌다.
우지끈!
벌레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나는 복상사로 보내주지 못한 이들에게 마음 속 깊히 사과한 뒤, 도끼를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디스펠---!!"
와장창!!
나의 분노가, 나의 힘이 실린 도끼가 고드름침을 산산조각냈다. 마나가 모여든 얼음덩어리는 나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었고, 나는 도끼를 휘두른 관성에 의해 빙글빙글 돌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나는 몸을 최대한 땅과 수평으로 놓았다. 빠르게 돌기 시작한 몸은 멈출 수 없었고, 나는 360도로 회전하는 세상에서 내가 떨어질 지점을 정확히 확인했다.
"헹가래 가즈아아아!!"
내가 떨어지는 위치는 정확히 마법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 나는 내가 떨어지기 직전에 마법사의 얼굴을 향해 힘차게 배를 들이밀었다.
"끄아아악!!"
콰---앙!!
나는 마법사가 급히 만든 실드와 부딪혔다. 배부터 떨어진 나는 마법사의 실드를 짓누르며 튕겨나가듯 굴렀다.
"아아악!!"
콰득. 우득. 우지끈. 뼈 부러지는 소리, 근육 찢어지는 소리,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울렸다. 실드에 부딪히고 몇 바퀴를 더 굴러 땅에 떨어진 나는 바닥에 멍하니 대자로 누웠다.
"히야, 타이밍 죽이네."
맑은 하늘에는 검은 날개를 펼친 흑익룡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기사단을 쫓지 않고 협곡 위로 올라가있던 흑익룡들은 내 바로 위에서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으으, 아파, 무거워...!"
"내가 좀 근육질이라."
나는 내 엉덩이에 깔린 여자 마법사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그녀는 한쪽 팔이 뒤틀려있었다.
"거 미안하다. 깽값은 슬라임 환생으로 변상해주마."
퍽. 나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여자 마법사의 목덜미를 쳤다. 그녀는 바로 기절하며 고개를 떨궜다. 여자 마법사 옆에는 내가 떨어지면서 깔아뭉갠 마법사 일곱명 가량이 의식을 잃거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헹가래 안해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날아오는 거 잘 받았어야지."
"이, 미친, 돼지새끼가...!"
마법사들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법을 사용해 뭔가 불화살을 날리거나, 전격을 날리려고 마나를 일으키고 있었다.
"느려."
휘이이잉---
마법사들이 내게 마법을 쏘는 것보다, 내 주변에 점액폭탄이 떨어지는 것이 더 빨랐다. 나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몸을 반바퀴 굴렀다.
으아아아악!!
사방에 불덩이들이 떨어지며 터져나갔다. 나는 로브 안까지 전해지는 열기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후우."
"하루 이틀도 아니고...하아."
내 주변을 중심으로 불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온 흑익룡들과 플레어 판테라들이 나를 중심으로 원진을 펼쳤다.
"주인님, 오늘도 역시 과격하시네요. 또 다칠까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내 한 몸 던져서 마법사 열을 죽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륜아, 머리카락 괜찮지?"
"네, 네. 머리카락은 괜찮으신데 이번에는 눈썹이 타셨네요."
"뭐...라고...."
나는 손으로 눈썹을 훑었다. 살짝 까슬까슬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야 임마."
"히힛. 표정이 굳어계셔서."
"없어도 되는 털은 여자의 겨털과 보털 뿐이다."
"다리털은요?"
"그것도 포함해서."
나는 륜의 귀를 꾹꾹 눌렀다. 사방을 굴러다니던 골렘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몸을 숙였고, 원형의 요새를 만들어냈다.
"인간들이 엄청 당황했군. 자기네 진지 한복판에 요새가 떡하니 알까기로 박혀있으니 말이야."
마법사들이 모여있던 곳을 습격해 박살낸 것에 토벌대는 공포에 빠졌다. 칼과 창을 겨눈 병사들은 단단한 골렘의 강철피부에 무기를 겨누기만 할뿐 안에 있는 우리를 찌르러 들어오지 못했다.
"이제 이 안에서 쏴대면 난리가 나겠군. 그린엘프들은?"
"죄송해요. 시간이 안 맞아서 협곡위에 아직 있어요."
"그건 아쉽구나. 괜찮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움직여서 적들을 견제할 것이다."
그린엘프까지 들어온다면 완벽한 벙커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화염표범과 흑익룡 만으로도 충분히 적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군단이여, 인간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준비하라."
"각자 위치로~! 골렘의 겨드랑이 사이, 고간 아래, 빈 공간을 알아서 찾아서 밖으로 쏠 준비하세요!! 저는 위에서 쏠 테니까!"
거기에 우리 군단 최고의 난사 전문가, 륜이 있다. 륜이 골렘의 어깨 위에 앉아 활을 밖으로 겨눈 사이, 나는 성벽 방향을 잠시 눈으로 훑었다.
"이므신할이여, 어찌하겠느냐."
과연 그녀는 하늘길로 넘어올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일단 죽일만큼 죽이고 생각하자.'
용사와 성기사로부터 유리된 마법사와 일반병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놈들이 또 없다. 사제들은 음충으로 무력화 된 이상, 이제 남은 건 특출난 힘이 없는 인간들 뿐.
"스팀팩 건다!"
깡, 깡, 깡, 깡!
나는 흑요석 도끼를 거칠게 두드렸다. 도끼의 붉은 문신이 내 주변으로 퍼져나가, 군단의 부하들에게 깃들었다.
"이동식 요새 <포트라스>! 뚫을 수 있다면 뚫어봐라!!"
우리는 키메라 스톤골렘의 틈바구니에서 사방으로 인간들을 향해 온갖 공격을 난사했다. 나는 안에서 계속 흑요석 도끼를 두드려 부하들에게 버프를 걸었다.
"비트 들어간다!!"
동경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비트로, 나는 오라를 뿌렸다.
* * *
<그 시각, 아스타로트 던전 지하 2층. 별실.>
"휴우, 큰일날 뻔 했네요."
지하 2층의 책임자, 메어리는 하마터면 다른 길로 빠질 뻔한 인간을 잡아 별실에 가뒀다.
"싸우기 전에 몇 발 빼놓은 게 정말 잘 먹혀들었네요. 잘했어요."
"후후, 허리를 너무 강하게 흔들어댔으니까...."
제법 강한 모험가라 저항은 거셌지만, 이미 벽으로 위장하고 있던 키메라 스톤골렘에 붙잡히는 바람에 크게 저항하지는 못했다. 그는 저항하려다 그만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다.
"이, 이 놈들!! 거짓말쟁이들! 여신을 팔다니, 네 년이 그러고도 용사냐!"
"네, 성검 비르고의 주인이죠. 에잇."
비르고의 용사, 메어리는 손에 쥔 케이스 뚜껑을 열었다. 커스터드 크림 속에 고이 자고 있던 크림색의 음충은 남자를 향해 풀쩍 뛰어올랐다.
"조용히 나갔으면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었을텐데, 유감이에요. 그래도 당신의 자리가 당신을 살린 줄 아세요."
"이, 이 씨바아알!!"
"가만히 있으면 괜찮았을텐데. 당신에게 복수하겠다고 벼르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짝. 메어리가 손뼉을 치자, 비밀장치를 해제하고 한 무리의 여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린엘프부터 시작하여 서큐버스에 이르기까지 다들 흉흉한 눈빛으로 지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은 실험을 해주셔야 겠어요."
메어리는 단단하고 길쭉한 빵, 렘브라스의 윗부분을 세로로 살짝 갈랐다. 그리고는 유리관 같은 것을 안에 쿡쿡 찔러넣어 공간을 만들어냈다. 표독스러운 눈빛의 그린엘프 하나가 유리관의 끝을 잡고 유리관 안의 빵조각을 쏙 빨아당겼다.
"퉤!"
두두두. 빵부스러기가 지부장의 얼굴에 맞아 땅에 떨어졌다. 침섞인 빵부스러기를 얼굴에 맞는 굴욕에 지부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분노한다고 하여 스톤골렘의 구속을 벗어나거나 할 방법은 없었다.
"어머, 되게 감정이 실려있네요. 무슨 관계였어요?"
"글쎄요, 전 남편?"
"뭐...?"
지부장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슴이 빵빵해지고 이목구비도 훤칠해진 그린엘프는 자신이 망가뜨린 누군가를 쏙 빼닮아있었다.
"어, 어떻게...?!"
"알 필요 없어. 나는 여기서 다시 태어났으니까."
그린엘프, 레이플은 음충이 담긴 꾸덕꾸덕한 크림을 빵안에 밀어넣었다. 지부장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 그러지마! 제발!"
"뭐래. 자기는 나보고 먹기 싫다는 거 억지로 먹이게 했으면서."
"그러니까요."
"업보야, 업보."
뒤에 있던 여인들도 하나같이 지부장을 모욕하기 시작했다. 지부장은 천사의 날개를 단 여자나, 서큐버스인 여자가 낯이 익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다 자신이 한 번쯤 먹고 버렸던 여자들이었다.
"이, 이봐...?"
"입 벌려."
꾸우욱. 레이플은 렘브라스를 강제로 지부장의 입에 찔러넣었다. 비릿하게 미소짓는 그녀는 빵을 끝에서부터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크림이, 구멍에서 흘러내려 조금씩 지부장이 혀에 닿기 시작했다.
"우우웁?!"
"당신이 호기심을 가지고 던전 안을 탐험하려고 한 것 처럼, 저희도 한 번 탐험해보려고요. 과연...."
메어리는 한손을 얼굴에 대고 슬며시 미소지었다.
"스카 트올로지가 입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하고."
"으으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