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81화 (579/800)

581회

151일차

화염표범과 흑익룡들의 폭격 하에, 우리는 적이 구축한 진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달렸다.

"으하하! 던져라, 던져!"

전차에 오른 오크들은 전차 안에 쌓아둔 드라이어드 나무뿌리를 마구잡이로 집어던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로 사방에는 불씨가 가득했고, 우리는 적의 진지에 장작을 집어던졌다.

"주인님, 앞에!"

"이런!"

불길에 뛰쳐나온 토벌대의 병사들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기병의 진격을 몸으로 막아서는 건 분명 어리석은 짓이었으나, 무식하게 방어 마법을 전방에 펼치며 결연한 표정을 짓는 마법사가 하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의 원수!"

마법사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고,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눈에 넘실거렸다. 분명 나의 작전으로 인해 부모가 죽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은 게 분명했다.

"미안하지만 난 네 부모따위 모른다!"

륜이 내 품에서 바람화살을 쐈다. 마법사가 펼친 방어막은 산산조각났고, 우리는 마나의 잔재를 뚫고 마법사를 향해 진격했다.

서걱!

암두시아스가 비스듬히 마법사를 비껴나가듯 옆으로 달렸고, 나는 마법사의 목을 도끼로 한 방에 날려버렸다. 진하게 풍겨오는 피비린내가 내 몸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키메리에스, 병력을 둘로 나눈다! 아더에게 선회하라고 전해!"

펄-럭!

키메리에스가 검은 깃발을 펄럭이자, 나를 따라오던 오크 전차부대가 유턴을 하듯 방향을 꺾었다. 절반은 나를 따라오고, 절반은 아더가 이끄는 길을 따라 부대가 반으로 갈라졌다.

'우리는 이대로 시계방향으로 돌고, 아더는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폭격이 떨어지는 건 우리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르파스의 공습부대는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다가, 우리의 진격에 맞춰 우리 진행 방향 앞에 점액폭탄을 집중 투하했다.

콰과광!!

우리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밀집된 방패병들의 위로 점액폭탄이 떨어졌다. 나는 잽싸게 기수를 밖으로 돌렸고, 나의 뒤를 따르는 전차들도 내 뒤를 따라-키메리에스가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끼이이익!!

둔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합판 전차는 금방 덜커덩거리며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두 바퀴는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전차를 모든 오크들의 손길은 점점 거칠어졌다.

"크아아아!!"

오크들은 함성과 함께 야구배트같은 뿌리털들을 휘둘러 집어던졌다. 누가 더 멋지게, 빠르게, 그리고 적의 몸을 맞출 수 있나 대결이라도 하듯 던지는 솜씨가 매섭기 짝이 없었다.

"커흑!"

얼굴에 나무뿌리를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병사도 있었고,

"아아악! 뜨거워!"

일부러 불씨에 불을 붙여 던지는 불빠따에 다리를 얻어맞은 병사도 있었고,

"이 씨바아알!!"

전차를 향해 달려왔다가, 오크가 풀스윙으로 휘두른 뿌리털 배트에 투구가 날아가며 머리가 으깨진 병사도 있었다. 우리는 착실히 외곽부터 적을 때려죽이고 불태워나갔다.

"주인님, 저기 마주와요!"

"...! 군단장님, 저기!"

륜과 키메리에스가 앞뒤로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급히 눈을 돌려 둘이 가리킨 방향을 살폈다.

"아버님!!"

정면에는 어느새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온 아더의 전차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방, 토벌대의 안쪽에는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등판하는 건가, 성기사단."

안쪽에서부터 뛰쳐나온 은빛의 분류에 나는 기수를 바깥으로 돌렸다. 암두시아스는 곧장 비스듬히 달리며 토벌대에서 멀어졌고, 아더 또한 우리와 부딪히지 않도록 천천히 기수를 돌렸다.

"다친 이들은?!"

"없습니다!"

"좋다! 아더야, 히트 다음에는?!"

"어웨이! 달리라고 하셨습니다!"

일격이탈. 한 번 크게 데미지를 넣었지만, 적을 완파할 만큼의 병력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전차 부대의 기수를 돌렸다. 바로 우리의 뒤 꽁무니를 쫓아오는 은빛의 백마부대 때문에.

"라스푸틴!!!"

백마부대의 선두에는 적의 대장, 이므신할이 성검을 든 채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뒤따라오는 성기사단 조차 뿌리치고 달려올 것 같은 기세였다.

'아주 제대로 빡쳤군.'

자신이 탄 말에 신성력의 힘을 부여하여 달리는 속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격보다도 빨랐다.

콰과광!!

하르파스의 공습부대가 성기사단의 질주 경로에 폭격을 퍼부었으나, 폭격이 떨어지기도 전에 성기사단은 폭심지를 지나쳤다. 폭발은 그들의 말꼬리를 스칠 뿐이었고, 오히려 우리를 뒤쫓는 데 힘을 실어주는 것만 같았다.

"역시 만만찮군. 따라잡히겠어."

"주인님, 그러면...?"

"륜, 키메리에스. 둘이서 기수를 몰아라. 터널까지 데리고 달려."

"주인님!!"

나는 둘이 나를 붙잡기 전, 암두시아스의 등 위에 서서 높이 뛰어올랐다.

"달려라, 명령이다!"

히히힝---!!

암두시아스는 화답을 하듯 전속력으로 달렸다. 나의 좌우로 퍼지는 오크들은 전차를 몰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마라. 딱 한 번, 진격을 막기만 하고 다시 돌아갈 것이니."

전신이 붉은 문신으로 달아오른다. 붉은 문신이 흑요석 도끼에도 퍼져나가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구구구구.

전차들이 떠나고 난 뒤. 정면에서 성검을 든 용사가 나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며 성검을 겨눴다. 백마를 몰고 달려오는 여자 용사, 이므신할은 내 심장을 향해 성검의 끝을 겨누고 있었다.

"흥분했군."

"죽어, 이 개같은 놈아!!"

"죽을 생각이었다면 여기에 혼자 남지도 않았지."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나는 홀로 땅 위에 섰다. 분노와 살기로 눈이 돌아간 이므신할은 내가 '어디'에 멈춰섰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므신할이여, 나와 싸우기 전에 하나 명심하도록 해라."

나는 흑요석 도끼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도끼날이 땅을 향해 수직으로 바라보도록 움켜쥔 다음, 발기할 힘까지 모조리 팔과 손에 밀어넣었다.

"나와의 싸움에 있어서,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상식 밖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용사라고 한다면, 나는 상식을 초월해야한다.

"발 밑 조심해."

"......!!"

콰과과광!!

이므신할이 달려오기 직전, 하늘에서 내가 서있던 곳을 중심으로하여 사선으로 폭격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성기사단은 나조차도 뒤덮은 폭발에 당황했고, 그들을 태운 백마들은 갑작스런 폭발의 열기에 움찔거리며 멈춰서려고 했다.

"이 개새끼! 발밑 조심하라면서 하늘에서는...!"

"너희들이 달려오는 땅이 어딘지 잊었느냐?"

그들은 현재, 정확히 라임과 슬라미아들이 뚫어놓은 곳 위에 서있었다. 나는 폭격의 폭연 속에서 힘차게 도끼를 아래로 내려찍었다.

"용사여! 내가 너를 먹기 전에, 죽을 생각 하지마라!"

콰------앙!!

나는 도끼를 망치처럼, 땅을 후려쳤다. 도끼는 땅을 파고 들어가 아래로 훅 꺼져버렸고, 나는 호수 위의 빙판이 깨지는 것처럼 아래로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 밑, 조심하라고 했잖아?"

동시에 아래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라임이 만들어낸 동굴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우지끈!

내 아래에서 나를 받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구울 다섯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미리 떨어지는 지점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쿠션으로 뛰어든 구울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뷰르르릇.

"씨발, 지렸다."

통각을 쾌감으로 바꿔놓은 바람에, 나는 그만 무발기 사정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두 발은 연속으로 사정하는 것처럼 주륵주륵 새어나왔다. 구울 쿠션이 없었으면 분명 너무나 강한 쾌락에 뇌가 녹아버렸을 지도 모른다.

"피, 피해!!"

구구구구.

성기사들은 황급히 좌우로 달리며 몸을 날렸다. 나를 중심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토굴은 기사들이 있는 길을 덮쳤고,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와르르 토사가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도화선이 있다면, 이런 거지."

쾅, 쾅쾅!!

폭격은 계속된다. 내가 다치든 말든, 죽지만 않았다면 무조건 화염구를 떨어뜨리라는 내 지시 덕분에 하르파스는 열심히 적 진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바지 안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찝찝함 속에서, 나는 찌그러진 구울들의 몸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용사야. 이렇게 싸워본 적 있냐?"

"이, 개같은...!"

내 바로 지척, 불과 5m도 되지 않을 거리에 이므신할은 엎어져있었다. 머리는 불길 때문에 산발이 되었고, 흙더미 사이로 빠져버린 발 아래에는 구울들의 앙상한 팔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지금 너를 잡기에는 나도 무리가 있지. 그러니까...."

카--앙!

나는 이므신할이 휘두른 성검을 도끼로 쳐냈다. 로도페리가 만든 걸작답게, 내 문신의 힘이 들어가니 성검조차 맞받아 칠만큼 단단했다.

"지금은 마킹만 해두지."

나는 이므신할이 내 심장을 찌르는 틈을 노려, 이므신할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도끼의 자루로 성검의 이빨같은 부분을 틀어막고, 나는 한손을 아래로 뻗었다.

스륵.

"히이익?!"

이므신할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손 끝에 닿은 감촉을 만끽하며, 도끼 자루를 잡고 몸을 돌렸다.

"아아, 이것은 보만튀라고 하는 것이다."

키에에엑!!

내 뒤에서 뛰쳐나온 구울들이 이므신할을 향해 달려듬과 동시에, 나는 뒤로 냅다 달렸다.

"으하하하하!!"

하늘에서는 폭격이, 땅밑에서는 구울들의 시체폭탄이. 나는 등 뒤에서 막대한 은빛이 터져나오기 전, 전속력으로 성벽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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