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80화 (780/800)

580회

151일차

라임과 12단 합체를 한 슬라미아들은 땅에 넓은 땅굴을 판 채 레굴루스 성으로 진격했다.

인간들은 인위적으로 생긴 지진에 당연히 공포를 느꼈을 것이며, 샌드웜으로 추정되는 진동이 위로 전해진 것에 불안해졌을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가 공격을 할 차례지."

가만히 얻어맞는 건 성미에 맞지 않다.

라임과 슬라미아들이 길게 내어놓은 땅굴을 가만히 놀려두는 것도 아깝다. 동시에 슬라임 공병들이 무사히 레굴루스 성에 닿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렘브라스까지 이어질 수 있어.'

렘브라스.

먹으면 금방 포만감을 느끼는 아주 특별한 빵.

과장 좀 보태어 먹으면 10개월은 배가 부르게 될 빵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인간들을 최대한 한계에 몰아넣어야 했다.

"하르파스, 공습을 준비해다오. 놈들의 시선을 끌어라."

"알겠어, 군단장. 그런데 주인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야?"

"지금은 날뛸 시간이다."

나는 흑요석 도끼를 들어올렸다. 나의 앞에는 파티클 보드 전차에 오른 오크들이 무기를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구울이 아닌 워울프나 유니콘이 전차에 묶여있었다.

"전 알로켄의 의지를 이어, 인간들을 전차로 박살내버리자."

과거, 그레모리가 상대했던 트롤 전차 부대의 주인 <알로켄>의 전술을 흉내내어, 우리는 트롤들이 전차를 몰았던 것처럼 오크들이 전차를 몰았다.

이미 마을 주민들을 납치할 정도로 기수들은 전차를 모는 솜씨가 일품이었고, 기마인 워울프나 유니콘들도 충분히 전차를 잘 이끌 수 있었다.

"아더, 워울프들은 맡기마."

"얼마든지 맡겨주십시오, 군단장님."

나의 장자, 아더는 늠름한 얼굴로 검을 들어올렸다.

서브 던전을 통한 성장으로 아더는 어느덧 레벨이 60대를 훌쩍 넘겼고, 곧있으면 70대를 바라보는 드라고니안 오크로 탈바꿈했다. 대규모 병사들을 동원하는데 있어서 아더만큼 능숙하게 오크를 다루는 자는 없었다.

"이번 전투의 성패는 속도에 달렸다. 그러므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해."

위이잉.

나는 성벽 근처에 만들어놓은 거대 포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마르바스로 인해 차원의 틈을 경유해서 넘어왔지만, 일반 오크들은 마을을 습격하고 인간들을 납치해 '포털을 통해' 요새에 돌아왔다.

"인간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상, 발각 될 때까지 계속 써먹도록 하지. 이번에 약탈할 대상은 그냥 인간 마을이 아니라 토벌대의 본진이다."

"""라스!!"""

병사들이 힘찬 외침고 함께 무기를 땅에 찍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박수를 친 뒤, 암두시아스의 등에 올랐다.

"주인님. 제가 당신의 뒤를 지키겠습니다."

파트너인 유니콘 암두시아스와 떨어지면 전력이 약화되는 듀라한 키메리에스는 내 뒤에 걸터앉았다.

"앞은 저예요!"

륜은 내 로브 안에서 싱긋 웃으며, 특별히 앞으로 빼놓은 손에서 활을 흔들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을 태워야 하는 암두시아스에게 제법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암두시아스도 강해져서 이제는 셋도 거뜬히 태우고 달릴 수 있었다.

"하르파스, 먼저 가라! 하늘에서 놈들을 괴롭힌 다음 우리가 갈테니."

"지금 바로 갈 거야?"

"그래."

적을 기습하는 것의 가장 효과적인 시간은 야심한 시각. 인간이 가장 방심하는 새벽 4시에 우리는 공습과 함께, '야습'을 결행하기로 했다.

"흑익룡들이여, 불꽃을 머금어라!"

흑익룡들은 모두 '불꽃'을 장착했다.

"놈들의 진지를 박살내버리자."

작전명, 화염과 분노.

* * *

<그 시각, 토벌군 진지>.

"...진지를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므신할은 혼자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전황에 대해 자문자답했다.

"이러다 아래에서 땅굴이라도 파고들어오면 난감해지는데."

안그래도 소름끼치는 마수를 사용하는 자들이다. 샌드웜으로 추정되는 마수가 진지 아래를 조롱하듯 지나간 이상, 진지를 옮길 필요는 분명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일 아침에 당장 옮겨야겠어."

병사들은 분명 불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괜히 적이 땅밑에서 튀어나오는 걸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진지를 옮기는 것이 훨씬 확실하고 올바른 판단이었다.

꾸르륵.

"아...."

이므신할은 점점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람인 이상 기본적인 생리현상은 필수였으나, 요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다.

"......."

참아야 한다. 이므신할은 허탈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밤바람은 고요하게 진지를 감싸고 있고, 달빛은 은은하게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여신이시여."

이므신할은 승리를 기원했다. 이곳에서 확실하게 승리하여, 환경은 열악하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안하게 싸울 수 있는 전장으로 가기를 바랐다. 아니면 용사 일행에 합류하여 함께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같은 오크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지."

성검 타우러스의 용사. 생긴 건 남자엘프 같지만 이므신할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오크가 외형이 변한 존재였고, 이므신할은 그걸 직감했기에 다소 거리를 두고 지냈다.

"훨씬 낫네."

던전 주인 라스푸틴. 배가 불룩 튀어나와있는 거구의 오크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온갖 악랄한 계획과 작전으로 이므신할을 괴롭혔다. 그들이 인간들에게 입힌 피해를 생각하면 당장 모가지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르르.

검집 안에 넣어둔 성검이 나지막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사롭지 않은 성검의 진동에 이므신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뭔가 온다. 이므신할은 검을 뽑아든 뒤, 땅 아래로 신성력을 서서히 펼쳤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콰---앙!!

이므신할은 성검을 뽑아 땅 아래로 찔러넣었다. 샌드웜이 뚫고 지나간 공간을 향해 신성력이 아래로 뿜어졌고, 땅굴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신성력의 폭격에 산화되었다.

"가, 각하?!"

놀란 기사 하나가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이므신할은 담담한 얼굴로 여유를 부리며 지시를 내렸다.

"땅굴로 대규모 마물들이 오고 있었다. 전원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하라."

"예!"

툭. 무언가, 기사의 머리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기사는 딱히 아프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머리 옆으로 떨어진 무언가에 고개가 슥 돌아갔다.

"이건...?"

무언가 끈적한 덩어리를 뭉쳐놓은 듯한 물건이었다. 우박같은 것이 머리에 떨어졌는데도 아프지 않았던게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므신할은 정체불명의 물건을 향해 성검을 겨눴다.

"뭔진 몰라도 마족들의 개수작이 분명해!"

"정답이다, 용사!!"

하늘에서 우렁찬 포효와 함께, 검게 물든 밤하늘에 붉은 붉덩이가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퉤!"

화염표범 수인, 플레어 판테라들은 입안에 한가득 머금은 슬라임 점액을 불꽃과 함께 토해냈다. 빨리 뱉어내지 않으면 점액이 감싸고 있는 마액이 흘러나오기에, 플레어 판테라들은 입에 넣는 즉시 점액을 크게 핥고 지상으로 뱉어야 했다.

"투우에엑!"

플레어 판테라 하나가 헛구역질을 하듯 불꽃을 토해내기도 전에 점액 구슬을 뱉어냈다. 아무리 겉면을 감싼 점액에 엘프의 젖을 넣었다고는 한들, 일단 구슬 안에 찰랑거리는 액체가 무엇인지 알기에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으으, 이걸 어떻게 그렇게 다들 맛있게 먹는 건지...."

"여자가 되면 해결되는 거라스. 으, 떨어지는 거 조심하라스."

흑익룡이 된 안드라스는 플레어 판테라를 뒤에서 끌어안고 부둥부둥 흔들었다. 두 마족을 연결한 가죽끈은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가 없을 정도로 꽉 묶어놓았고, 안드라스 또한 다리를 앞으로 휘감아 날개를 펄럭거렸다.

"너희 암컷들이야 맛있는 거라도 우리는 좀 많이 그렇다고. 너희들도 그린엘프 젖은 안 좋아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군단장님 명령이라스."

군단장의 배려 아닌 배려로, 남녀가 하나의 짝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빨리 다음 화염구를 날리라스."

"으으, 이 정도 날렸으면 다음 단계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니냐?"

"...판단은 하르파스 님이 하시는 거라스."

플레어 판테라들의 시선이 펭귄 로브 뒤로 드래곤의 날개를 펼친 여인, 하르파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몰래 품속에 챙겨온 크림 바게트 속의 크림에 빨대를 집어넣고 쪽쪽 빨며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왜? 더 쏴야지."

"그, 부대장님. 저희 이제 '폭격'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하르파스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화염구는 슬라임 점액을 불태우며 마액과 닿았고, 마액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불꽃을 더욱 크게 만들어 지상을 불태웠다.

"인간들이 제법 잘 끄는데?"

하지만 이미 레굴루스 성에 불난리가 났다는 걸 듣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건지, 토벌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불덩이들을 처리했다.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물을 뿌리고, 마을 안 곳곳에 있던 우물에서 물을 꺼내 불을 꺼뜨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선 공격이 아무 쓸모도 없게 될 것 같습니다."

"확실히 화력이 약해진 거라스."

"그러니까 마법사들이랑 정령사들을 제거하자?"

끄덕. 흑익룡과 화염표범의 말에 하르파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제거한다고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지만, 인간들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불길이 생각보다 덜 번지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흑익룡들이 부리에 마액 구슬 넣고 소닉붐으로 뱉어. 플레어 판테라들은 거기에 맞춰서 불을 토해내고. ...흑익룡들 입안에다가 키스로 불 넣으면 되잖아."

"......!! 오오오! 그런 방법이!"

플레어 판테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르파스는 손을 들어올리며 수신호를 보냈고, 흑익룡들과 화염표범들은 서로 합을 맞추고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츕.

표범수인들은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려 흑익룡들의 부리에 입술을 맞추고, 안에 작은 불씨를 토해냈다. 드라고니안이 되면서 신체가 강해진 안드라스들은 입안에 들어온 뜨거운 숨결을 혀로 잘 섞어, 플레어 판테라가 옆으로 비켜선 사이 아래를 향해 부리를 쩍 벌렸다.

퉤에엣!!

흑익룡들의 브레스와 함께, 부리 사이에 끼워둔 점액 구슬이 화염과 함께 지상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  * *

"나는 레인 오브 파이어를 준비했는데, 어째 하늘에서 융단폭격이 내리는 구만."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나의 부하들이 만들어낸 좋은 변수에 전신이 짜릿하게 울렸다. 화염표범과 흑익룡들이 만들어낸 환상의 콜라보는 지상에 닿자마자 터지는 폭탄이 되었고,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세 배는 더 빨라진 것 같구나. 좋은 변수다. 신나게 터지라고 하지."

마을은 폭격으로 곳곳에 불기둥이 치솟았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떨어지던 불덩이는 마법사들이 쉽게 대처할 수 있었으나, 흑익룡들의 브레스와 함께 떨어지는 화염구는 수직으로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쾅, 콰앙, 콰아앙!!

마법사들이 실드를 펼치기도 전에 주변에 폭탄이 터졌다.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고, 지금이야말로 야습을 걸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전차, 돌격 준비."

마을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 우리는 성문도 열지 않고, 인간들의 눈이 닿지 않는 절벽 너머에 대기하고 있었다.

"3cm 드랍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네."

실제로 100m 정도 되지만, 우리는 협곡의 가장 얇은 곳에 작은 터널을 설치했다.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게 서너명 단위로 오갈 수 있는 작은 '포털'을 만든 뒤, 마법의 힘으로 그 존재를 숨겼다.

"진짜 땅굴은 이쪽이다, 머저리들."

적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시간만 조금 투자한다면 수 백에 이르는 기병대가 '성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적진을 향해 달릴 수 있다.

"가자, 군단이여!"

"""라스!!"""

나는 선두에서 유니콘을 몰고 내달렸다.

* * *

토벌대의 징집병, 마르에 차이르는 사방에 붙은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잠재울 새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 폭탄에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또 날라온다!"

"으아악!!"

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불꽃은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처음에는 눈처럼 느리게 떨어지던 불덩이를 요격하던 마법사들도 하늘을 향해 실드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불의 우박을 막아내야만 했다.

"커흡, 씨발!"

불꽃이 타들어갈 때마다 사람 몸이 타들어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르에는 모포를 휘둘러 자신의 바로 옆에 튄 불씨를 꺼뜨렸다.

"젠장, 괜히 오크 부랄 자르려다가 이게 무슨...엉?"

구구구구.

폭음 사이에, 왠지 모르게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샌드웜이 아래를 지나가나 싶었던 순간, 마르에는 저 멀리 협곡 방향에서 울려퍼지는 함성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

성문은 열린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저런 병사들이. 마르에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순간.

"라아아아아-----!!"

셀 수도 없는 오크 무리가 전차를 몰고 나타났다. 선두에는 흰 말을 타고 달리는 검은 로브의 존재가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컥!"

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 무릎이 화끈거렸다. 다리 한쪽의 자세가 무너져내렸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에는 손가락만한 굵기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엘프...?"

"누구 부랄을 자르겠다고?!"

히히힝!! 유니콘은 높이 날아올랐다.

"면상 빻아버려!!"

빠--악.

마르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유니콘의 앞발굽에 안면이 으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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