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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572화 (571/800)

572회

150일차

요새가 눈앞에 생겼다고 한들 인류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류에게는 막대한 수의 토벌대가 있고,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있으며, 성검의 용사 이므신할이 있었다.

하지만 적에게는 수적 우위를 무시하게 만드는 벙커가 있었고, 땅을 달리는 기병들을 조롱하는 듯한 날개달린 마물들이 있었고, 성검의 용사를 상대로 옷을 입은 것도 아닌 것 같은 옷을 입은 타락 용사가 날뛰고 있었다.

“우와아아악!!”

하늘길에 올라있던 병사들을 모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정면에서 방패를 들어 막기에는 화강암 랜스를 겨누고 돌진하는 기병들의 돌진이 너무 강했다.

“죽어, 죽어!!!”

죽음의 기사들은 하늘길에 오른 인간 병사들을 좌우로 밀쳐냈다. 이므신할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진 죽음의 기사들은 송곳이 되어 병사들을 찔렀다.

끼아아악!

날개까지 접어 앞으로 달리는 유니콘들은 정면에서 방패를 들어 돌진을 막으려는 병사를 방패 째로 짓밟았다. 방패병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가 무너졌고, 유니콘은 방패를 디디고 높이 뛰어올랐다.

펄-럭!

유니콘은 날개를 좌우로 펼쳤다. 신성력이 담긴 날개의 힘으로 유니콘을 하늘을 달리기 시작했고, 듀라한들은 인간을 쳐냈던 돌창을 아래로 내던졌다.

콰--앙!!

돌창은 아래로 떨어지며 병사들을 덮쳤다. 그린엘프들의 화살 공격에 방패로 몸을 가리느라 위를 보지 못한 병사 하나가 돌창에 찍혀 으깨진 것은 양반이었다.

파사삭!

돌창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돌조각 파편이 튀었다. 돌창을 피하던 병사들은 부서진 창 안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에 절로 짜증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치솟아올랐다.

“씨발, 또 구울이야?!”

부서진 창 안에는 반으로 갈라진 인간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성벽에서 흑마법사들이 지팡이를 치켜든다 싶은 순간, 구울이 보라색 안광을 터뜨리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콥스 익스플로전. 시체를 매개로 하는 폭발마법에 반경에 있던 병사들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시체가 터지며 생긴 폭발도 폭발이지만, 폭발의 여파로 시체의 잔해를 뒤집어 쓴 것이 더 피해가 컸다.

“으, 으아악!!”

구울 안에서 흘러나온 시독에 노출된 병사들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미약과는 다른, 피부를 녹아내리게 하는 시독은 금방 병사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마왕군이 고통에 바닥을 구르는 인간들을 놓칠 리가 없었다.

파바박.

어느새 구멍 사이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린엘프들이 화살비를 퍼부었다.

우어어어!!

미노타우르스들은 중앙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가 든 바윗덩어리를 집어던졌다.

화살비가 떨어진 곳에 시체폭탄이 떨어지고, 시체폭탄이 폭발한 곳 주변에 화살비가 꽂힌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악의로 똘똘 뭉친 공세에 토벌대들은 그만 질려버렸다.

“으으, 미친 놈들아니야!”

전황이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인류를 상대로 어떤 틈도 보여주지 않고 인류를 완벽하게 죽여버리겠다는 마왕군의 의지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마왕군은 인간들에 대한 예의라고는 전혀 없었고, 그 예로 화살에 죽은 인간 시체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으어, 으어어…!!

동료가 몸을 흐느적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에 토벌대의 병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구울의 목을 날렸다. 재빨리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당하는 건 기본이었다. 마왕군과의 전투에 이골이 난 베테랑들은 죽은 동료들이 더이상 고인능욕을 당하지 않도록 검을 휘둘렀다.

“안 돼! 포크파랄!! 정신차려!!”

하지만 그건 베테랑들이나 이미 ‘경험’이 있는 자들의 움직임이었고, 신병들이 밀집된 곳에서 부활한 구울은 죽지 않았다. 신병들은 구울이 된 동료에 우물쭈물했고, 사제가 당장 달려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장 목을 날려, 멍청아!”

“하, 하지만 제르배맨은 제 친구-”

끄어어!’

포크파랄 제르배맨이라 불린 구울은 친구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을 조종하는 흑마법사의 명령대로, 친구의 어깨를 썩어가는 이로 깨물었다.

“으아아악!!”

콰-----앙!!

포크파랄은 친구와 함께 폭발했다. 바로 앞에서 폭사당한 신병은 상반신이 흉측하게 터진 채 무릎을 꿇었다.

“.......”

전황을 살피던 바이스는 혀를 차며 검을 들어올렸다. 전황이 완전히 불리한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 피해가 훨씬 더 크기는 컸다. 봐주는 것 하나 없이 적을 죽이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으니, 성기사단도 모르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성기사단, 모두 돌격 준비!”

바이스 엑슈얼을 위시한 성기사단이 말에 오른 채, 하늘길을 따라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

카앙, 카앙!

용사와 용사가 싸우고 있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며, 이므신할은 한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오히려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전투경험은 미르마망보다 더 강한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대를 잘못 만났다.”

아무리 강자간의 싸움에 크게 의미는 없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투에 있어서 상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거리가 벌려진 전투에서 근거리 전사가 원거리 궁수를 상대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상성에 따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 당연했다.

“미르마망도 지금 필사적이거든.”

유두 가리개가 벗겨진 이후, 미르망은 보지 가리개를 사수하느라 온 힘을 다해 이므신할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므신할에게 한 번이라도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아래도 뜯겨나가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기믹대로 세뇌장치 두 개 다 벗겼는데 세뇌가 안 풀리면 답은 간단하지.”

이므신할은 내게 낚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완전 구속구도 아니고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철쪼가리가 용사를 세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지타리우스의 용사여! 진정해! 나는 당신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오지마, 다가오지마아아아!!”

열성적으로 세뇌를 풀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건만, 정작 당사자가 세뇌는 커녕 진짜로 자지에 굴복해 마왕군의 편이 되었다는 걸 알면 이므신할은 진심으로 미르망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흐흐, 이대로 시간만 벌면 이번 전투는 우리 승리...응?”

구구구구.

정면에서 은빛의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백마를 모는 은빛의 기사단-<성기사단>이었다.

“저런. 우리랑 한 판 뜨려고?”

추기경의 선택인지 아니면 성기사단의 뜻인 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성기사단이 중간만 가기는 커녕 우리의 중앙을 가로질러 돌파하려고 하늘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이므신할의 뒤를 받쳐주면 이건 상당히 난감하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말을 타고 하늘길을 달려와 성벽을 오르려는 미친 놈들이 성벽을 오르기 전에 재빨리 요격하는 것. 나는 좌우를 살핀 뒤, 하늘길의 위로 번쩍 뛰어올랐다.

“그만하면 됐다, 나의 노예야! 돌아와라!”

“...!!”

미르망은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천마의 기수를 돌려 내게로 달려왔다. 이므신할은 하늘길에 성검을 꽂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나를 노려봤다.

“흐, 흐흥…! 기사단이 성벽을 넘어가면, 네놈들은 끝장이다!”

“그렇다면 길을 끊어버리도록 하지. 용사여, 다이아몬드를 자르려면 다이아몬드로 잘라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

나는 내 로브 안쪽의 하복부를 살짝 받쳐들었다. 나의 하복부가 아니라, 신성력으로 가득찬 이너 아머 <레비즈>의 하복부를.

“신성력의 힘을 꺾는 것도 신성력이지. 너희에게 진정으로 여신이 누구의 편을 따르고 있는지 보여주도록 하마.”

사아아아----

로브 안에 끼워진 레비즈의 몸이 은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성검의 용사에 버금가는 막대한 신성력의 보유자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인 지도 모른 채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똑똑히 보아라, 브라스트 파이어---!!”

레비즈의 가슴에 맺혀있던 신성력이 로브를 불태우며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이므신할은 내 쪽에서 날아가는 갑작스런 신성력의 포격에 당황하며 몸을 돌렸지만, 레비즈의 유두포 각도는 적을 죽이기 위한 방향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단단한 빙판을 수압커터로 잘라내난 것 마냥, 이므신할이 만든 하늘길은 레비즈의 포격에 의해 길 자체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신성력과 신성력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남는 건 은빛의 결정이 반짝이며 무너지기 시작한 하늘길 뿐이었다.

“잘 가라, 이므신할."

이왕이면 여기서 빨리 죽어서 순순히 미르망과 '나체용사 결정전'을 위한 임신배틀을 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딜 개수작을 부려!!"

하지만 나의 달콤한 바람은 꿈으로 끝났다. 파스스 결정 조각이 떨어지는 하늘길을 향해 성검 레오를 꽂아넣었다.

위이잉!!

끊긴 길을 중심으로 물줄기처럼 좌우로 퍼지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길이 끊겼다!! 성기사들은 좌우로 산개!!"

이므신할의 좌우로 달려오던 성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이므신할의 길을 따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미끄러지듯 달렸다.

“젠장, 매끄럽게 옆으로 새는 거 보소?”

성기사들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임기응변으로 기수를 돌렸다. 말들조차 그대로 달리면 성벽에 대가리를 들이받는다는 걸 인지한 듯, 달리던 속도를 서서히 늦추며 곡선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정확히 U턴했다.

“하여튼 성검의 용사들은 하나같이 상식이라고는 없어!”

하늘에서 별빛을 떨어뜨린다거나, 땅에서 허공을 향해 4차선 도로를 깔아버린다거나.  규격외의 힘을 발휘하는 용사들을 보며, 나는 그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정복욕이 다시 치솟아올랐다.

“이므신할이여! 보라!”

나는 내쪽으로 후퇴한 미르망을 뒤에서 잡아당겨 그녀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미르망은 다소 당황하며 움찔거렸지만, 길의 끝에 선 채 나를 노려보는 이므신할을 보며 가슴이 점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네 년은 미르마망의 세뇌를 푸는데 실패했다!”

“이 더러운 놈!! 당장 그 더러운 손을 떼지 못 해?!”

“누가 남의 여자 젖가리개를 박살내서 말이야!”

“네 놈!!”

머리 끝까지 화가난 이므신할의 뒤, 성기사단과 병사들은 빠르게 하늘길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나의 ‘불가사의한’ 신성력으로 인해 하늘길이 끊겨버렸으니, 언제 또 길이 부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들 도망치고 있었다.

“시간을 끌려는 거군.”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갖출 시간을 벌기 위해, 이므신할은 끝까지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시간을 벌려고 했다. 짜증과 경멸은 진짜 감정일 테지만, 적어도 그녀는 분노에 눈이 멀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므신할이여. 네게 예우를 갖추도록 하지. 병사들이 도망칠 수 있게 혼자서 적과 맞서싸우는 그 기개, 나 라스푸틴이 인정한다.”

“...그 딴 거 몰라. 빨리 용사를 해방해! 용사는, 성검의 주인은 네가 그런 식으로 다룰 사람이 아니야! 성검의 용사는 인류를 위해-”

“성검의 용사는 성검 사용자일 뿐! 성검을 어떻게 쓰는 지는 당사자의 마음이지!”

나는 미르망의 손목을 잡고 하늘로 높이 들어올렸다. 그녀의 팔에 채워진 석궁은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고, 볼트에는 나의 문신처럼 붉은 화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성검 사지타리우스는 미르마망의 것이며, 미르마망은 나의 것이다! 고로 성검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든, 내 마음이니라!”

이므신할이 성검 레오를 이용해 나의 부하, 서큐버스 햣샨을 괴롭혔던 것처럼, 성검의 주인은 성검을 어떻게 사용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성검을 이용해 인류를 학살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성검마다 관심사는 성검에 박힌 사명 뿐이니까.

“흐하하! 나 라스푸틴이 명한다! 성검의 용사, 미르마망이여! 성검으로 인류를 학살하라!”

“아, 아아, 으아아…!!”

미르망은 내 품에 안겨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했다. 자신이 볼트를 발사하는 순간, 붉은 화살은 하늘에 걸린 별빛들에게 신호탄이 될 게 뻔했다.

"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궁극기를 사용하라! 이름하야, 자! 궁!"

"아아아악!!"

미르망의 자궁문신이 반짝임과 동시에, 미르망의 석궁에서 붉은 볼트가 하늘을 가르며 치솟았다.

"나 라스푸틴에 의해, 용사 미르마망은 인류 학살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마족의 대장에 의해 인류 대학살을 명령받은 용사.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아악, 안 돼, 안 되는데…!!"

미르망 또한 그것을 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끝내 인간으로서 가진 마지막 끈을 놓아버렸다.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있던 인류에 대한 의지가, 자지가 주는 쾌락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쏴, 쏴버렸어요…!"

파방, 파앙!!

붉은 볼트는 하늘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볼트가 신호탄 역할을 하자마자 하늘에서 응어리 진 별빛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

하늘을 수놓은 은색 별빛이 떨어지는 곳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인간들니 밀집되어 있는 지점들.

"타락이 단순히 자지에 미친 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

미르망은 거기에 별똥별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음에도 성검의 힘을 방출했다.

용사의 타락 마지막은, 용사가 직접 인류를 학살하는 것.

"토벌대 5천을 제물로 바쳐, 나는 이 여자를 용사 이전에 내 여자로 만들겠노라. 마족의 여인으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용사의 힘에 의해, 별똥별들이 토벌대를 덮쳤다. 이므신할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노려봤다.

"꼬와? 꼬우면 더 열심히 설득하셨어야지."

이 모든 사단은 세뇌당한 용사를 설득을 하지 못한 용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아아아악!!!

협곡에 인간들의 비명 소리가 널리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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