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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571화 (570/800)

성검을 높이 치켜든 그녀를 보며, 나는 도끼를 움켜쥐었다.571회

150일차 공성을 하는 입장에서 쉽게 공성을 하는 방법은 성벽을 올라가는 것이다.

궁병은 자고로 접근전으로 죽여야하는 법. 오랜 기간 인류연합 최전선에서 싸워온 이므신할은 어떻게 해야 요새를 쉽게 공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성벽을 오르기 위한 사다리는 없다. 애초에 정찰부대의 보고에는 이런 거대한 요새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찰부대가 보고를 허위로 했다. 문책은 나중에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저 성벽에 올라가 적과 직접 얼굴을 마주할 ‘길’이 필요했다.

“여신이시여, 나에게 힘을!”

이므신할은 성검을 높이 치켜들어 아래로 내리찍었다. 검에서 뿜어져나오는 은빛은 찬란하게 성벽 위를 향해 뻗어올라갔고, 곧 성벽으로 향하는 비탈길이 되었다.

“따르라, 기사들이여! 여신께서 만드신 이 길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사다리보다 더 편리했다. 그저 조금 경사진 길을 달리면 되니까. 신성력에 의해 굳어진 다리는 정확히 성문 위에 걸쳤고, 그 폭도 열 명이 족히 함께 걸을 수 있는 너비였다.

“레오 가문을 위하여!!”

이므신할과 기사단은 정면, 라스푸틴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

“이건 한 방 먹었군.”

성검의 용사들이 하나같이 규격 외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신성력으로 길을 만들어버릴 줄은 몰랐다. 내 발치 바로 앞에 다다른 신성력의 길은 아무리 도끼를 휘둘러도 깨질 것 같지 않았다.

“거 더럽게 단단하네.”

나는 발로 길을 툭툭 건드렸다. 단순히 한 두 명이 아니라 군대가 달려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넘어올려고 만들었으니 안 무너지는 게 당연한 건가. 흐흐흐.”

“군단장 님!!”

“너희들은 계속 돌을 굴리고 활을 쏘아라! 자리를 유지해!”

좌우에 있던 부하들이 노출된 중앙 성벽으로 달려오려했지만, 나는 그들이 계속 사격을 이어나가도록 지시했다.

“길이 열렸다는 건 이제 이곳만 막으면 된다는 것! 너희들은 지금부터 좌우에서 중앙쪽으로 사격하라!”

중앙 성벽으로 넘어오는 길이 하나만 만들어졌기에, 오히려 쏘기 더 쉬웠다. 평원에 넓게 펼쳐진 토벌대 병사들이 이므신할이 만든 비탈길로 모이며 병목현상이 일어나기에, 병력은 더욱 밀집되기 시작했다.

“저기 올라오려는 놈들도 참 어리석지. 성벽으로 올라오는 길을 만들어놓고, 성벽에서 싸울 것을 대비하여 말에서 내린 채 달려오다니 말이야.”

이므신할과 기사들은 ‘달려오고’ 있다. 성벽 위에서 싸울 것을 대비해, 말에서 내려 직접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워울프들로 유린하고 싶지만, 그러면 애들 발바닥 전부 까질테니 패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길이라는 건 마물이 닿는 순간 발바닥부터 불타버린다는 얘기. 신성력에 저항력이 없는 마물들은 근처에 가기만 해도 피부가 따가워지며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흐흐흐, 하지만 이므신할이여. 대처 방법만 당장 세 가지가 떠오르는 구나.”

분노식 해결, 오만식 해결, 색욕식 해결. 나는 성벽 위로 올라오기만 하면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하는 인간들의 표정을 보며, 저 오만한 표정이 당황과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고싶어졌다.

“벌써부터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기회가 생겼으니 패를 꺼내야겠지?”

두두두둥. 나는 후방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때이른 호출에 다소 당황하는 게 느껴졌지만, 곧 허공을 달려오는 수 십의 ‘천마’들은 내 뒤에서 활공하며 내 명령을 기다렸다.

“키메리에스! 암두시아스! 전장은 신성력의 길이다. 낙마하면 몸이 그대로 불타는 지옥길이지. 그럼에도 달릴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유니콘의 위에 올라탄 듀라한, 키메리에스는 돌로 된 랜스를 들고 사납게 웃었다. 뒤를 따르는 죽음의 기사들도 돌진을 위해 검을 검집에 넣고 랜스를 들었다.

펄럭, 펄럭.

유니콘들은 몸 양 옆으로 난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발로 두드리며 투레질을 했다.  이제는 페가수스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유니콘들의 날개에는 신성력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라스 나이트들이여. 돌격하라.”

“라스---!!”

하얀 천마를 모는 듀라한들은 허공을 달리며 성벽을 디디고 달렸다. 성벽 위로 달려오는 인간들을 향해, 드워프들이 스톤골렘의 몸통을 깎고 철판을 덧댄 랜스는 무게만 100kg이 훌쩍 넘었다.

“군단을 위하여!!”

둥, 둥둥, 두두둥!

유니콘들이 신성력의 길에 발을 디뎠다. ‘천사’와의 합성이 이루어진 죽음의 기사들은 전부 유니콘에 날개가 달리는 식으로 변했고, 덕분에 나는 지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병대를 손에 넣었다.

“길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이므신할!!”

나는 한쪽 주먹으로 북을 두드렸다. 나의 분노가 담긴 오라가 북소리와 함께 울려퍼졌고, 듀라한들이 앞으로 내건 랜스에 깃들어 붉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신성력은 유니콘에게. 마기는 듀라한에게.

서로 상반되는 두 기운이 각자에게 깃들어, 시스템으로 하나가 된 죽음의 기사들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길을 달렸다. 기수인 듀라한이 낙마하여 신성력에 불타는 즉시 기마인 유니콘 또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기사들은 눈에 귀기를 흘리며 달렸다.

“너희를 범한 인간들에게, 복수하라!!”

끼아아아------!!

처녀귀신같은 비명과 함께, 듀라한들은 랜스를 전방으로 쥐고 몸을 최대한 낮췄다. 마주치는 인간들을 전부 꼬챙이로 꿰어버리겠다는 살의가 넘실거렸다.

“인간들에게 간살당해 죽은 복수를 풀 기회다.”

인간에게 당한 고통은 똑같이 인간들에게.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논리적인 이유는 원한에 의해 언데드로 태어난 마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원래 귀신의 원한에 당하는 자는 불합리하게 당하는 게 기본이므로.

“전부, 으깨버려라!”

콰득!

이므신할을 좌우로 피해 달린 죽음의 기사들의 진격에, 울타리조차 없는 하늘길을 달려오던 병사들이 기병창에 꿰뚫리거나 여파로 튕겨져나갔다.

“저런. 그러길래 길을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지.”

나는 좌우로 비어있는 길을 가리켰다. 이므신할과 나는 서로 시선이 닿을 위치까지 가까워졌고, 이므신할은 죽음의 기사들을 향해 휘두르려던 성검을 내게 겨눈 채 마저 달려왔다.

“나를 상대하고 싶은 것이냐? 미안하지만 나는 오늘 군단장이니라. 나의 활약은 부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있지.”

“죽어라!!!”

이므신할은 100미터도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은빛을 머금은 참격이 내 몸을 반으로 가르려는 듯 하늘길을 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닿으면, 분명 곱게는 끝나지 않는다.

“죽는 건 네가 될 것이다, 이므신할.”

두둥, 두둥.

북가죽에 노크를 하듯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내 귓불을 스치듯 날아간 별빛의 화살이 참격의 정중앙을 정확히 맞췄다.

파지지직!!

똑같은 ‘신성력’이 서로 부딪혀 맞물렸다. 초승달같던 참격은 송곳같은 별빛 저격에 유리창깨지듯 산산조각났다. 오만으로 물들어있던 이므신할의 얼굴 표정도 박살이 났다.

“뭐, 뭐야…?!”

“성검의 용사여. 스포일러는 좋아하지 않지만, 네게 보여주도록 하지.”

나는 이므신할을 향해 성검-이라는 이름의 석궁을 겨눈 타락용사의 허리를 끌어안고 자궁문신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라스푸틴에게 패배한 용사는 이렇게 된다. 성검의 용사여, 네가 사랑하는 남편은 누구라고?”

“라스푸틴 님이십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가면의 용사는 혼란에 빠진 용사를 향해 볼트를 발사했다.

카앙!

이므신할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본능에 따라 저격을 쳐냈다. 나는 비키니 아머 아래 속살이 다 비치는 타이즈를 간질이며, 이므신할을 향해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너도 똑같이 만들어주마, 이므신할.”

“이 더러운 마족 새끼! 용사를 세뇌하다니!!”

“.....흐읏.”

이므신할의 말에 미르망은 다리를 살짝 꼬았다. 자궁문신이 잠시 분홍빛을 띄었다가 사라졌고, 비키니 아머 아래에서 음란한 암캐의 냄새가 살살 풍겨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가라, 나의 세뇌용사! 주인을 위해 싸워라!”

“주인님을 위하여!”

미르망은 웃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내게로 향하는 길을 신성력의 천마와 함께 틀어막은 미르망은 이므신할이 조금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은화살을 날렸다.

“크윽…! 비겁한 자식! 용사들끼리 싸우게 하다니!”

이므신할은 뒤로 크게 백덤블링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용사 사지타리우스! 내가 당신을 저 간악한 마족의 세뇌에서 풀어주겠다!”

“......아하아악!”

미르망의 등허리가 활처럼 휘며, 이므신할을 향해 화살을 마구잡이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세뇌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짜식, 컨셉에 먹혔군.”

그것이 실은 세뇌를 당했다고 감쪽같이 믿고있는 이므신할의 앞에서 하는 치녀 플레이에 지려버리고 만 것이지만, 나는 미르망의 명예와 패티시를 위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승리의 키워드를 읊어볼까.”

나는 숨을 크게 골라 소리쳤다.

“흐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세뇌를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갑옷을 벗기지 않는 한-이, 이런…!”

“멍청한 자식!!”

이므신할은 나를 욕하며 웃었다.

“약점을 가르쳐줘서 고맙다! 내가 반드시 그 갑옷을 벗겨서, 세뇌를 풀어주겠다!”

“크윽...젠장, 젠자----앙!!”

던전 안이었으면 부위파괴 당하는 걸 보며 한 발 뺄텐데.

* * *

<그 시각, 레굴루스 성 지하.>

"뭐하자는 거임?"

라임은 자꾸만 자신의 뒤를 밟는 정체불명의 마족에 신경질이 났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어쩌면 주인보다도 강할 지 모르는 강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뒤를 쫓아오고 있는 건 당연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하자는 거냐니, 난 그냥 구경하는 거야. 구경."

"전쟁이 장난인 것 같음?"

"전쟁? 이 소꿉놀이 수준의 전투가 전쟁이라고? 후훗, 고작 이 정도로 전쟁이라고 하면 안 되지."

"용사가 선봉에 서서 싸우고 있는데 그게 전쟁이 아니면 뭐래. 흥."

군단의 전투를 무시하는 여인, 마르바스의 태도에 라임은 다시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슬라미아들이 다른 곳에서 임무를 진행하는 동안, 라임은 지하수로에 발을 담근 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저걸 어떻게 하면 떨쳐낼 수 있을까. 저것의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저걸 어떻게 하면 주인과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을까.

"어머, 얘봐라. 나 따먹으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강한 자를 먹고 강해지는 건 마족의 기본임."

"알아. 나도 마족이니까. 근데 고작 그 정도로 되겠어? 레벨로 치면 나 100레벨이다?"

"100이나 200이나 일단 잡혀서 먹히면 다 똑같은 걸. 100레벨이라면서 이런 것도 할 수 있음?"

라임은 지하수로에 퐁당 빠져버렸다. 수로의 흐름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는 라임에 마르바스는 울상을 지으며 수로에 몸을 던졌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아."

지하수는 막대한 양의 미약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 * *

카앙, 카앙!

신성력과 신성력이 부딪힌다. 둘의 성질이 똑같고, 사용하는 종족이 같은 이상, 둘의 격돌은 순수한 힘과 힘의 격돌이 될 뿐이었다.

"젠장, 눈을 떠!"

이므신할은 검을 휘둘러 은화살을 전부 쳐냈다. 신성력으로 빚어낸 천마의 위에 올라 석궁을 겨눈 용사는 자꾸만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 했다.

"너는 지금 세뇌당하는 거라고!!"

"으, 으읏...!"

가면의 용사는 신음을 흘리며 이므신할을 저격했다. 숙련된 전사는 아닌 듯 했지만, 성검 사용자로서 가진 최소한의 전투력 때문에 이므신할은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정신차리란 말이야! 용사가 어떻게 마왕군에서 싸울 수 있어!!"

"아, 아아, 하아...!"

설득이 계속 이어지는 덕분일까. 가면의 용사는 점점 행동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므신할은 적 대장의 말실수를 떠올리며, 두 다리에 신성력을 모아 앞으로 내달렸다.

"하아앗!!"

최대한 빠르게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정면으로 달렸다. 당연히 화살 또한 정면으로 날아왔고, 이므신할의 어깨에는 신성력의 볼트가 박혔다.

"이 까짓 상처!"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달려오는 이므신할에 가면의 용사는 잠시 주춤거렸다. 이므신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페가수스의 위로 뛰어올랐다.

"그 음탕한 갑옷, 벗겨버리겠어!"

이므신할의 손이 용사의 비키니 아머, 흉부장갑을 붙잡았다. 가슴과 가슴 사이를 잇는 장갑을 붙잡은 이므신할은 전력을 다해 갑옷을 손아귀의 힘으로 잡아 뜯어냈다.

"됐-"

이므신할은 갑옷을 뜯어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갑옷 아래, 속살이 비치는 타이즈에 가려진 용사의 가슴 유두에는 하트 모양의 무언가가 정확히 유두를 가리고 있었다.

"꺄아아악!!"

가면의 용사는 한손으로는 가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고, 성검을 들고 있던 손으로는 이므신할의 명치를 때렸다.

"커, 커흑...."

이므신할은 자신이 만든 하늘길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을 향해 떨어지면서, 이므신할은 용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양쪽 다...! 아니, 아니야!"

아직, 국부를 가리고 있는 갑옷이 남아있었다. 이므신할은 낙법을 취해 땅을 구른 뒤, 다시 자신이 만든 하늘길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유두를 가린 저것, 저것까지 전부 뜯어내야해!"

"아아아아악!!"

가면 용사의 화살비가 더욱 거칠어졌다.

"니플패치 붙여두기를 잘했군."

니플패치를 두고 세뇌용 흑마법 아이템으로 착각하는 이므신할을 보며, 나는 살짝 지려버렸다.

"쟤는 지가 잡히면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을까."

니플패치랑 C스트링만 입고 왕도의 성벽을 두드릴 용사가 누가 될 지, 이번 전투를 통해 결정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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