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70화 (569/800)

570회

150일차

끼요오오옷!!

드라고니안 드라스, 별칭 <흑익룡>들이 내지른 초음파는 대지를 뒤덮었다. 이미 우리 군단은 귀에 슬라임 점액으로 귀를 보호하고 있었고, 하나로 뭉친 충격파는 온전히 토벌대를 향해 쏘아졌다.

"크아악!!"

고막이 터져 엎어진 인간들이 수두룩했다. 양 귀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들의 귀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몸이 허약한 놈들은 아예 고막이 터진 채 쓰러져버렸다.

"고작 기함 하나에 쓰러지다니, 저 놈들은 구울행이다."

나는 쓰러진 이들의 얼굴을 눈에 익힌 뒤, 쓰러진 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초음파의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동굴 속, 창 너머에 엄폐한 그린엘프들이 일제히 활 시위를 놓았다.

파바박!!

일시적으로 무력화된 적의 위에 화살비를 퍼붓는 것이야말로 살상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지금처럼 화살비를 막아내야하는 존재들-마법사들이 속이 진탕이 되어 쓰러졌다면 더더욱.

"더 많이 쏴라! 조준하고 쏘지마! 어차피 널린 게 인간 대가리다!"

엘프들에게 화살을 조준하지 말고 쏘는 건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벙커에 숨어 화살을 쏘는 엘프들은 본디 엘프가 아니라, 원래는 인간이었다가 그린엘프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다.

"그린엘프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만큼 가치를 보여라!"

우리 군단에 의해 엘프의 궁술 재능을 획득한 자들로, 태생이 엘프인 이들보다는 다소 재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합성을 통해 새로 태어난 그들에게는 재능을 커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음껏 쏴라! 내가 너희들의 힘이 되어주마!"

쿵, 쿵쿵!

나는 바퓰라의 가죽을 벗겨 만든 북을 직접 두드렸다. 자궁구를 두드리거나 엉덩이를 때리던 때와 달리, 진짜 북을 두드리는 덕분에 문신의 붉은 오라는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너희들의 몸에 흐르는 전사의 피를 일깨워라!"

그린엘프의 녹색은 오크의 녹색. 나의 유전자가, 오크의 유전자가 섞인 덕분에 그린엘프들의 힘은 엘프보다는 훨씬 강했다.

으아아악!!

고막이 찢어져 비명을 지르던 이들은 몸통에 바람구멍이 뚫리며 죽음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비틀거리던 병사들은 황급히 방패를 들어올리며 서로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쓰러진 놈들을 맞추지 않아도 돼! 그냥 쏴! 힘으로 방패를 뚫어버려!"

엘프의 근력이 20, 궁술이 100. 오크의 근력이 100, 궁술이 20이라고 한다면, 그 둘이 섞인 그린엘프는 근력 80에 궁술 80인 셈이었다. 오크와 엘프의 특장점을 하나로 모은 만큼, 인간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있어서 그린엘프의 가치는 단순히 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너희의 가치가 젖통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해라!"

쫄깃한 보지와 민트초코 젖이 흐르는 E컵 가슴만이 그린엘프의 가치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최소 3성급인 그린엘프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강인한 전사들이다.

"아직 깨우치지 못한 인류에게, 새롭게 다시 태어난 너희의 진가를 보여줘라!"

그리고 종족의 특성에 더하여, 그린엘프들에게는 '인간이었던 지성과 경험'이 있다. 어떻게 하면 적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 개개인이 판단할 능력이 있다.

아아악!!

그린엘프의 바람 화살은 방패가 없는 곳을 집중적으로 요격했다. 방패와 방패의 틈을 노려 저격을 했다. 하늘을 향해 쏘아, 눈먼 화살로 궤도를 예상하지 못하게 만들어 정수리를 꿰뚫었다.

둥, 둥둥둥!

그리고 화살비는 멈추지 않는다.

"마나 떨어지면 마액 삼켜서 마나 채워!"

화살은 결국 소모품이며, 수성전에서 화살이 떨어지면 궁병은 쓸모가 없어진다. 그러나 그린엘프의 화살은 바람을 마나로 엮어 만든 것이며, 소모된 마나는 그린엘프 각자 보급받은 마액으로 다시 복구할 수 있다.

"계속 퍼부어! 화살을-좌익, 엄폐!!"

"3사로부터 7사로, 방어!!"

연사를 명령하려던 나는 그린엘프들에게 엄폐를 명령했다. 륜의 추가 지시에 따라 해당 사로에서 활을 쏘던 그린엘프들이 사격용 구멍을 철판으로 틀어막았다.

"마법사들의 공격이 온다!!"

방패병의 아래에 숨어 마나를 모으던 마법사들이 성벽을 향해 일제히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화려한 마법진들이 지팡이 끝에 펼쳐지자마자, 우리를 향한 살의가 가득한 살상마법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흑익룡들이 요격!!"

하늘을 날고있던 드라고니안 드라스들은 이미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안에 씹고 있었다. 그리고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부리를 쩍 벌리며 숨결을 토해냈다.

캬아아아-----!!

마나를 머금은 숨결이 날아오는 마법들을 향해 날아갔다. 마액을 삼켰다가 토해내는 마액 숨결은 하나하나가 최하급 마석 수준의 마력과 파괴력이 담겨있었다.

쿠구구구!!

성벽을 노리기 위해 쏘아진 마법들이 마액 숨결과 부딪혀 공중에서 폭발했다. 화염구가 터지고, 얼음 고드름이 부숴지고, 전격은 허공에서 흩어지듯 사라졌다.

"다 터뜨렸, 을리가 없지! 젠장, 조심해라!!"

그러나 모든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 특히 마족들의 마기 가득한 마나로도 요격하기 힘든, 은빛의 신성력을 머금은 거대한 망치가 마법진의 틈 사이로 날아왔다.

"군단이여, 충격에 대비하라!!"

콰-----앙!!

신성력의 망치가 그린엘프들이 숨어있던 곳을 때렸다. 마액 브레스로도 깎아내지 못한 신성력의 오함마에 요새 전체가 흔들렸다.

"젠장, 더러운 사제 놈들!"

토벌대의 한켠에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들이 진을 갖추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고막이 터지고 바람화살에 상처입은 이들을 치료함과 동시에, 사제들은 대규모로 모여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겁한 놈들이로다. 마족을 상대로 신성력을 사용하다니!"

우리가 사용하는 마기는 인간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데 비해, 인간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은 우리 군단에 치명적이고 위협적이기 짝이 없다. 당장 이번 홀리-오함마만 하더라도, 흑익룡들의 마액 브레스를 뚫고 성벽을 두드리지 않았는가.

"젠장, 마법사나 사제나 살아있는 공성병기니."

무겁게 투석기나 발리스타를 들고와 돌덩이를 실어 나를 필요가 없다. 마법사나 사제들이나 마나든 신성력이든 힘을 모아 날리면 그게 곧 투석기고 발리스타다. 괜히 마왕군이 저들이 활약하기 힘든 지하로, 던전으로 숨어든 것이 아니다.

반칙. 명백히 선을 넘는 행위였다.

"반칙을 했으면 룰대로 플레이 해야지! 너희들만 살아있는 공성병기 있는 줄 아느냐!"

두둥, 탁!

북을 울려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좌우 성벽의 위, 셋 씩 나뉘어져있던 거구의 전사들이 날카로운 뿔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미노타우르스들이여, 스로인 준비!"

성벽 위.

여섯마리 4성 미노타우르스들은 저마다 거대한 덩어리를 틀고 있었다.

***

“방패병, 막아! 엘프들의 화살로부터 마법사들을 지켜! 사제들은 한 번 더 홀리 해머 준비!!”

바이스 엑슈얼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병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검은 비룡들과 녹색의 엘프들이 벌이는 원거리 사격을 뚫을 수 있는 건 오직 마법사와 사제들 뿐이었다.

“적의 원거리 공격은 저게 전부다! 마법사들은 포션을 먹고 마법을 날려!”

요새에 틀어박힌 마왕군의 원거리 공격도 한정되어 있었지만, 성문 앞에 있는 토벌대도 공성수단이 한정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르륵!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나를 모아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홀리 해머가 두드렸던 성벽 쪽에는 공격으로 인해 안쪽이 큰 데미지를 입은 듯 보였고, 당분간 공격이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홀리 해머가 찍은 곳을 한 번 더 공격해! 요새를 부숴버려!”

바이스의 지시에 따라 마법사들의 화염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하늘을 날고있는 검은 비룡들은 까마귀의 부리를 열어 브레스를 뿜어댔으나, 불길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했다.

타닥, 타닥.

불덩이는 성벽을 때렸다. 마법사들은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효과는 미비했다.

“비룡들에 의해 마법이 상쇄된 건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초음파 공격을 하는 검은 까마귀 비룡들로 인해 토벌대의 전력 중 1할 가량이 고막이 터졌다. 사제들이 빠르게 수습을 하고 있고, 그들이 당장 공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언제까지 대치만 할 수도 없을텐데….”

바이스는 전황을 살피며 겉으로는 불안을,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을 위험은 없군.’

마왕군과의 결전이 얼마나 처참하고 잔혹한지 알고있는 이상, 바람 화살의 사거리 밖에 있는 바이스로서는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추기경의 부탁으로 마왕군과의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고 한들, 바이스는 제 목숨이 더 소중했다.

‘열심히 안 하면 내가 목이 달아나게 생겼단 말이지.’

바이스와 바이스를 따르는 성기사단은 ‘이기는 편’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장은 마왕군을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했다. 공성전에 성기사단은 딱히 큰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몸안에 있는 신성력의 힘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여신이시여.”

바이스와 성기사단은 부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에 피를 흘리는 이들을 치료하고 다녔다. 재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고통스러워하던 이들은 금방 일어설 수 있었다.

“자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귀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던 청년의 귀에는 어느새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바이스가 뿌린 신성력의 힘에 의해 찢어진 고막의 상처가 아물었고, 청년은 복수심에 활활 불타올랐다.

“더러운 마족놈들! 후작님과 여신님을 모욕한 마왕군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놈들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 그래.”

청년의 열의는 몹시 대단했다. 그러나 열의만으로는 마족 하나도 제대로 죽일 수 없었다. 청년이 공성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크게 없었다.

“자네, 혹시 모르니 후방으로-”

“돌, 도오오올!!”

청년은 성벽 방향을 가리키며 오도방정을 떨었다. 갑자기 무슨 돌 얘기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성벽의 방향으로부터 거대한 돌 덩어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여신이시여!”

바이스는 신성력을 일으켜 앞에 거대한 방패를 세웠다.

콰아아앙---!!

“크으윽…! 여신의 이름으로----!!”

키기긱. 바이스를 중심으로 성기사단은 제 몸의 열 배도 넘는 은빛의 방패를 세웠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돌덩이는 신성력의 방패에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어, 어떻게 돌이…?”

음머어어어----!!

성난 황소의 거친 포효가 울려퍼졌다. 검은 비룡들이 내질렀던 브레스와는 다른, 순수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포효에 바이스는 잠시 몸서리를 쳤다.

“...대단한 기세야. 어디, 과연. 저 미노타우르스들이 날린 거네.”

성벽위에는 왼쪽에 3명, 오른쪽에 3명 각기 다른 뿔을 가진 미노타우르스들이 자기 몸통만한 돌덩이를 들고 있었다. 바이스는 돌이 어디서 날아오는 지 금방 깨달았다.

“미친. 미노타우르스들이 직접 던진다고?”

우오오오오---!!

붉은 오라의 콧김을 내뿜은 미노타우르스들이 돌덩이를 뒤로 크게 젖혔다. 그리고 성벽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달려와 돌덩이를 던졌다.

“젠장! 마법사들과 사제들을 대피시켜! 스펠 해제하라고 해!”

미노타우르스들의 투석각은 정확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법사나 사제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돌덩이를 던졌고, 주변에 뭉쳐있던 병사들로 인해 까딱 잘못하면 돌에 깔려 찌그러질 것만 같았다.

“무식하게 돌덩이를 던지다니...응?”

째깍, 째깍.

어디선가 시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이스는 자연히 소리가 들리는 방향, 신성력의 방패로 바닥에 굴러간 돌덩이로 고개를 돌렸다.

“돌 안에…뭔가 있어?”

째깍째깍째깍.

돌덩이 안에 뭔가가 있다. 바이스는 황급히 검을 들어 신성력을 불어넣고 바윗덩어리를 갈랐다.

“이, 이건?!”

돌덩이는 그냥 돌덩이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잘 뭉쳐놓은 뒤, ‘진흙’으로 빚어 만든 거대한 도자기 같은 물건이었다. 깨진 틈 사이로 찌르는 악취에 바이스는 소름이 돋았다.

시체 냄새.

안에는 보라색 안광을 흩뿌리는 구울들이 사지가 비틀린 채 구겨져 있었다. 2m 지름 돌덩이 안에는 대여섯의 구울이 척추가 접힌 채 갯지렁이처럼 엉켜있었다.

“이런 씨발?!”

고오오오!

전장에 죽음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당장 구울이 옆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코를 찌르는 죽음의 냄새가 성벽 위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리치다!!"

검은 로브를 입은 구울 흑마법사들이 미노타우르스의 뒤에 숨어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바이스와 성기사들은 급히 돌덩이를 사방에서 에워쌌다.

"시폭이다! 막아!"

콰아아아아!!

돌덩이 안에 있던 구울들이 일제히 폭발함과 동시에, 폭발한 돌조각의 파편과 구울 시체들이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

"공성병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체재가 있으면 굳이 쓸 필요가 없지. 흐흐흐."

미노타우르스 6형제. 그리고 미노타우루스들이 던지는 구울 폭탄을 인간들의 곁에서 터뜨리는 라스투자드의 12사도.

"이쪽도 살상에 도가 튼 놈들이 있다 이거야."

예로부터 인간 잡는 건 미노타우르스와 구울들이 기가 막히게 잘했다.

"던져!"

마법사와 사제들이 대형마법을 준비하지 못하게, 미노타우르스들은 선을 넘어온 공을 던지듯 성벽 위에 쌓아둔 구울 폭탄을 힘차게 스로인했다.

"흐흐, 이대로가면 무난하게 우리가 이긴다."

성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들만 틀어막으면 우리의 승리. 하지만 승리가 그리 쉬울 리가 없다.

"온다."

성검의 용사, 이므신할이 기사단과 함께 말을 몰아 성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대로 달려오면 성문은 금방 무너질 터."

나는 바람화살의 비를 뚫고 성벽 앞까지 달려온 이므신할 레오를 보며 아래로 지시를 내렸다.

"저 년은...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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