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69화 (568/800)

이므신할에게 입힐 드레스는, 언제든지 준비되어있다.569회

150일차 모험가 오백 명이 하룻밤에 사라진 지도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후작령의 병사들은 나날이 강대해졌다. 인류 연합 최전선에서 싸운 이므신할의 지도 하에, 햇병아리 신병부터 퇴역군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5천이나 되는 대규모 토벌대가 구성되었다.

후작성에 있는 재화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단련한 병사들은 왕국 내 전력의 2할, 아니 과장 좀 보태어 3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 슬슬 남작령으로 쳐들어 갈 것 같지 않아?

- 이제 움직이지 않으면 이상하지.

병사들은 나날이 자신감으로 차올랐다. 단련을 할 때마다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설령 색수병에 재발하더라 순회사제단의 도움으로 성욕을 해결할 수 있었다.

- 그거 들었나? 저기 아랫 구역에 살던 꽃집 아가씨 말이야, '그 날'의 충격으로 손목을 그었다고 하더군.

- 상점가에서 잡화점 하는 총각은 물건들 중에 값비싼 것만 챙겨서 야반도주 했다고 하던데? 덕분에 그 놈한테 돈 빌려준 사람들 다 지금 돈 나올 곳 찾느라 아주 난리야.

- 후작가에서 하는 얘기 들었나? 이 모든 건 마왕군 때문이라더군. 인간들의 성기능을 향상시키는 걸 각오하고, 마왕군은 인간들을 성적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던데?

온갖 유언비어와 혹세무민이 난무하는 가운데, 성밖으로 나간 모험가들은 태반이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후작성의 통제를 벗어나 먼저 남작령으로 달려가 오크 고환을 자르려던 이들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 쯧쯧, 그러길래 왜 자기들끼리 먼저 가서 마족들 배나 불려주냐 이거야.

- 구울이 될 게 뻔하지. 남작령도 똑같이 당했다고 하지 않나? 도시 하나가 점령당하고, 거기 있던 사람들을 글쎄 시체로 부려서 성을 포위했다더군!

- 으으, 잔인하고 역겨운 마왕군 놈들. 여신님께서는 뭘 하시나? 저 놈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지 않고.

- 어제 폭우가 쏟아진 날, 빈민가에서 색수병이 재발했다는 것도 마왕군 탓이라던데?

후작성 내에 마왕군에 대한 반감은 나날이 깊어져만갔다. 애초에 후작성 밖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난민들부터 마왕군에 범해진 피해자들이었고, 그 중 일부는 가족이나 친지가 마왕군의 기병대와 비행마수에 의해 납치되기도 했다.

- 마왕군 때문에 못 살겠다!

여론은 점점 마왕군 타도로 집결되기 시작했다. 마왕군에 대한 복수심, 마왕군에 대한 적개심, 마왕군이 가진 것들에 대한 탐욕.

그리고 거기에 화룡정점을 찍는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하며, 토벌대의 의지에 불이 붙었다.

- 오크들은 엘프들을 강간하여 노예로 만들었다!

- 엘프들은 오크들에 의해 강제로 아이를 낳았고, 그들은 지금 인질로 붙잡혀있다!

- 엘프들이 마왕군에 붙은 것부터가 이상하다!

"""엘프들을 해방하자!!!"""

이른바, 엘프해방전선이라는 별칭을 가진 5천의 토벌대가 서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 * *

<새벽 5시, 포트라스 지휘관실.>

"사기를 너무 많이 쳤더니 진실이 섞여버렸군."

나는 후작성에서 얻은 첩보들을 정리하며 진실과 거짓을 가려냈다. 9할은 우리 마왕군에 대한 거짓 선동이었으나, 1할 정도는 진실에 가까운 추측이 섞여있었다.

"색수병을 퍼뜨린 것은 인간인데 마족이 퍼뜨렸다고 하질 않나.... 오크가 엘프를 강제로 범했다고 하질 않나.... 이런 모욕은 참을 수 없군."

"9할 정도는 사실이잖아요."

"아니지, 아니야. 진실은 강한 자가 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강자이고, 저들은 우리에게 패배할 것이지. 그러므로 모든 진실은 우리가 정한다."

훗날, 역사서에 레오 후작령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는 이렇게 쓰이게 되리라.

"라스의 뜻을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은 엘프와 정을 나누는 오크들을 질시하여, 엘프들을 빼앗으려했다고."

"현재도 모자라서 미래까지 사기를 치시는 거예요?"

"사기라니? 기만책이라고 해다오. 그리고 사기로 쌓아올린 왕국의 여왕이 누가 될 것 같으냐?"

"......."

륜은 검지로 양 볼을 동시에 찌르며 싱긋 웃었다. 평소라면 자지에 입술을 맞추며 자신임을 어필했겠지만, 나는 일일 퀘스트를 위한 사정을 제외하고 그 어떤 성교도 나누지 않았다.

고오오.

달아오른 자지가 문신이 반짝이자마자 금방 가라앉았다. 5성이 된 이후 나는 문신의 힘을 다루는데 더욱 집중했고, 성욕을 끓어넘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성욕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현자의 시간>.

사정 이후 모든 것을 해탈하고 초월한 상태에 이르는 정신을 유지하는 비기 중의 비기. 시도 때도 없이 치솟아오르는 나의 라스푸틴을 잠재우며, 라스푸틴의 발기력을 나의 체력과 활력으로 전환하여 전쟁 준비에 힘을 썼다.

"륜아, 나중에 꿈에서 하자꾸나."

"넹! 언제 주무실 거예요?"

"아까 자고 일어났으니 내일 새벽은 되어야 잘 수 있겠지?"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 뭔가를 싸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나는 요새의 방비를 더욱 강고히 갖췄다. 요새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미르마망의 출격 이후 다행히 대규모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 적의 출정을 알게 된 이상, 중요한 손님을 맨몸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법.

"전투복을 입어라, 륜."

"...진짜로 이제 싸우는 거네요."

"그래. 전쟁이다."

나와 륜, 그리고 우리 군단의 후손들이 훗날 볼 역사서에 우리의 승리라고 남기기 위해, 우리는 무기를 들어올렸다.

"이므신할을 따먹고, 후작성을 점령할 것이다. 마을을 점령하고, 도시를 점령하고, 남작령에 이어 백작령까지 점령했지. 륜이여, 후작령 다음은 무엇이겠느냐?"

"왕국?"

"그래."

이므신할을 잡아, 왕국 점령의 선봉에 세울 음란타락 용사로 세울 것이다.

* * *

<그 시각, 후작령 레굴루스 성 교회>.

"여신이시여."

성검의 용사, 이므신할은 조용히 여신상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주변에는 이므신할을 비롯한 수많은 기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여신상의 옆에는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라그비아 대사제가 성수를 뿌리며 세례를 내렸다.

"여신께서 보듬어주실 겁니다."

"예. 인류를 위하여, 여신께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다.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후작령은 마왕군을 상대로 이겨야만 했다.

만약 후작령의 토벌대가 패배한다? 후작성이 점령당한다.

후작성이 점령당하게 되면 그 뒤는 바로 왕국의 중심, 왕도에 이르게 된다. 후작성은 비르고 남작령에서 발생한 마왕군을 상대로 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회에 모인 이들은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승전을 다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추기경 예하, 어찌 아직도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까?"

"......."

유일하게 표정이 좋지 않은 남자, 퀘르벨스 추기경은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므신할의 뒤에서 그녀를 보좌하듯 선 바이스 성기사단 부단장이 슬쩍 눈치를 보냈지만, 퀘르벨스는 짧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모았다.

"여신께서 보듬어주시기를."

신성력이 없는 퀘르벨스에게는 기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 * *

"이제야 움직이네."

성벽 위.

라임은 식량창고에서 훔친 육포를 씹으며 비르고 남작령을 향해 진군하는 병사들을 내려다봤다. 성을 온전히 빠져나가는 것만 30분이 훌쩍 넘은 대부대의 행군에 라임은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럼 나도 움직여야지."

라임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나.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것'.

"그런데...."

콰득! 라임이 주먹을 점액으로 바꾸어 벽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벽의 앞에는 투명한 벽에서 점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뭐임?"

"어머나, 과격하네. 아가, 느이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든?"

토벌대가 떠난 성벽 위, 라임은 정체불명의 마족과 마주섰다.

"얘, 네가 뭘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까?"

"......."

라임은 턱을 두어번 두드린 뒤,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

"좆이나 까드셈."

"......."

순간, 홀로 남겨진 마족은 벙 찐 얼굴로 성벽 사이로 사라진 라임의 빈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저 년 싸가지봐라...?"

마족, 마르바스는 입술을 할짝거리며 라임의 뒤를 쫓았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오빠 자리 물려받지. 흐흐흐."

마르바스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 * *

늦은 오후.

협곡 앞에 도착한 토벌대는 완벽한 요새의 모습을 갖춘 포트라스에 넋을 잃고 말았다.

"저건...."

"벽돌이 아니라...철벽?"

좌우로 펼쳐진 절벽에는 얇게 펼쳐진 철판이 체스판처럼 오밀조밀 붙어있었다. 철판 사이사이 보이는 틈에는 날카로운 무기가 번뜩였다. 토벌대는 왕성이나 대방벽보다도 더 공략하기 어려워보이는 요새에 숨이 턱 막혔다.

"언제 이런 걸...?"

"분명 보고에는 협곡에 극소수의 마물들만 상주하고 있다고...?"

간부급 기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레굴루스 성 보다도 단단하고 강력해보이는 요새는 난공불락이라는 말을 넘어, 다른 영지로 빙 돌아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지? 고작 마물 주제에...!"

본래는 가운데가 뻥 뚫려있었을 협곡의 사이에는 굳건한 성문이 달려있었고, 아치형을 그리며 이어진 성벽 위에는 활을 든 녹색 머리칼의 엘프들이 시위를 바짝 당기고 있었다. 기사들이 웅장한 요새형 관문을 보며 기가 질린 가운데, 사자갈기를 목에 두른 흰 갑옷의 여기사-이므신할은 검집에서 성검을 빼들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엘프는 인류의 적이야."

이므신할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엘프들이 이므신할에게 활을 겨눴지만, 이므신할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성문의 앞까지 홀로 말을 몰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성문을 열어라!"

파--앙!

성벽 위의 엘프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성벽 위에서 쏘아진 바람화살은 일제히 이므신할을 덮쳤으나, 그녀의 손에서 번쩍인 은빛에 모두 산들바람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어리석은 놈들!"

이므신할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검날 곳곳이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에 파먹힌 것같은 성검 레오는 사자의 기세처럼 모습이 흉악했다.

"순순히 나와서 항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죽을 것이다!"

"말만 앞섰구나, 인간이여. 너는 틀렸다."

쿵.

성벽의 정중앙. 검은색을 베이스로 한 고급스러운 로브에 금색과 은색의 자수가 섞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의 그림자에 짙게 가려진 그의 얼굴은 태양빛이 비치는 낮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네놈이구나! 네가 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야!"

"숨길 것도 없지. 내가 바로 군단. <라스푸틴>이니라."

"이 개자식...!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긴 말은 필요없다, 인간이여.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둘 중 하나."

라스푸틴은 두 팔을 들어올리며 짧게 박수를 쳤다. 흰 면장갑을 낀 그의 손등이 붉게 달아오르자마자, 요새를 뒤덮은 철판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이잉, 철컥.

철판은 하나 둘 창문이 열리듯 열렸고, 안에서 또다른 엘프들이 인간들을 향해 활을 겨눴다. 성벽 뿐만 아니라 요새의 안에도 층층마다 자리잡은 엘프들의 위협에 토벌대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엘프가 성벽 안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이리도 두려울 줄이야.

크르르.

순간,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생존본능에 따라, 토벌대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운가?"

라스푸틴의 조롱섞인 웃음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인간을 경멸하는 악의 넘치는 목소리에 토벌대는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짐승이 포식자를 눈앞에 두고 공포에 빠지는 것은 당연.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여, 너희에게 오늘 나 라스푸틴이 선언한다. 나는 너희들을 모조리 잡아먹을 것이다."

라스푸틴의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을 향해 불길한 검은 빛을 뿌리는 화살이 치솟아오르며, 성벽의 뒤에서 검은 물결이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날아오르라, 군단이여."

캬오오오오!!

평원에, 세계에 거대한 포효가 울려퍼진다. 검은 피막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까마귀 머리의 조인, 아니 용(龍)인들은 푸른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저게...도대체...?"

"드라고니안 드라스. 용의 인자를 손에 넣은 안드라스지."

라스푸틴은 인간들을 향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것이 너희의 종말이니라. 이것이야말로...."

쿵, 쿵.

라스푸틴이 자신의 손등을 마주보며 두드리자, 하늘을 뒤덮은 드라고니안 드라스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라스."

로 다-------------!!

라스푸틴의 선창과 함께, 익룡의 브레스가 하늘을 뒤덮었다.

* * *

안드라스.

할파스라는 마족의 뒤틀린 욕망과 저주로 인해 만들어진 비운의 조인 마수.

나는 지금까지 우리 군단을 위해 힘써온 이들을 위해,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였다.

드라고니안.

드래곤의 힘을 얻게 된 안드라스들은, 이제 새로운 날개를 얻어 하늘로 비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드라고니안의 어머니, 레비즈 안 드라스를 위하여."

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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