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67화 (566/800)

567회

150일차

일주일.

고트다이할 레오 후작이 다시 후작령 행정의 키를 잡은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마왕군이 있고, 모든 일은 마왕군이 꾸민 일이다."

한껏 수척해진 고트다이할 레오는 광장에 격문을 뿌렸다. 주민들도 이미 고트다이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기에 좋은 시선을 보낼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본인을 흑마법에 심취하였다고 간계를 꾸민 것도 마왕군이며, 후작성 지하에 몰래 공간을 마련해 그곳에 흑마법의 흔적과 마수를 풀어놓은 것도 마왕군이며, 색수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성욕에 타락하게 만든 것도 마왕군이다. 그들은 신성력조차 이겨내기 어려운 사상 최악의 병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튼 모든 것이 마왕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자신이 며느리를 강간하여 며느리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게 된 것도 마왕군 탓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왕군을 토벌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재앙은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진작에 토벌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이 난리를 겪게 만들었는가. 영지민들의 민심이 흉흉해지는 가운데, 고트다이할은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나의 아들, 안다이할이 마왕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안다이할 레오.

후작가의 수치라고 불리우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아들의 시체도 나오지 않았건만, 고트다이할은 안다이할이 마왕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며 그 또한 마왕군의 책임으로 돌렸다.

"레오 가문은 전력을 다해 마왕군을 토벌할 것이니라!"

선두에는 성검의 용사, 이므신할 레오가 성검을 들고 전면에 나섰다.

"마왕군 씨발놈!!"

* * *

<그 시각, 레오-비르고 국경 요새 [포트라스]>.

"주인님, 차원의 틈을 방문한 모험가들로부터 얻은 정보에요. 생각보다 많은 병사들이 모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보자. ...6천? 아니, 잠깐만. 모험가들이 던전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는데도 6천이나 된다고?"

우리 총 병력에 비해 무려 3배나 많은 병력에 나는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우리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만들어낸 병력인데 비해, 저들은 징집병이나 신병을 제외하고도 최정예로 구성된 전력이었다.

"구성은 혹시 알아냈다고 하느냐?"

"조금 중구난방이기는 한데, 기사단의 수만 대략 200명이래요."

"미친, 어떻게 그 수가 나와?"

"성기사단이 합류했고, 퇴역기사들도 불렀다고 하네요. 주인님 말씀대로, 저쪽도 기사 전력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것 같아요."

새삼 남작령과 후작령의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기사 10명으로 빌빌거리던 비르고 남작령과는 달리, 역시 레오 후작령은 거대 도시 답게 기사의 수도 압도적이었다. 우리가 기사들을 최대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기사단을 빼면?"

"음...150?"

"쯧. 당장은 놈들도 눈치보여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텐데 난감하군."

기사라는 족속들은 마나가 담긴 검-오러를 사용하기에 지극히 귀찮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성기사들은 더 귀찮은 놈들이다.

"요새를 믿고 최대한 버티면서 죽이는 수밖에."

아무 탈 없이 지난 일주일. 그 사이 우리는 협곡을 완벽한 요새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협곡 좌우로 펼쳐진 절벽과 산맥은 험하기 짝이 없었고, 협곡을 통과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더 유리하지."

"숲은 저희의 영역이니까요. 히힛."

숲의 지리를 완벽하게 파악한 엘프 10명이 어수룩한 인간 병사 500명 정도는 거뜬히 학살할 수 있다. 숲에서만큼은 드래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 발휘하기에, 우리는 협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피 에일로들에게 동태를 주시하라고 일러라."

협곡 위. 하피 에일로들은 나무판자로 만든 둥지에 보금자리를 트고 공중에서 광역으로 협곡 인근의 일대를 정찰했다. 후작성에서 보내오는 정찰대를 매의 눈으로 발견하여 오는 족족 인질로 잡는 바람에, 정찰부대는 하피 에일로들이 닿지 않는 곳에서 멀찍이 협곡요새를 훑고 도망치기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군. 어떻게 모험가들을 동원하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인간이 6천명이나 검을 들 생각을 하지?"

"그, 그게 있잖아요...."

륜은 씩씩거리며 메어리가 모험가들로부터 알아낸 첩보를 알렸다. 그에, 나는 인간들의 영악하고 악랄함에 부랄이 부르르 떨렸다.

"이 개같은 새끼들이?"

내가 인간이라도 검을 들고 토벌대에 들어갔겠다 싶은, 아주 악의적인 선동이 인간들을 토벌대에 들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 * *

<그 시각, 모험가 길드>.

"크흐흐, 그거 아십니까, 지부장. 오크의 고환은 정력에 좋다더군요. 엘프의 젖은 피부미용에 효과적이고."

"......하피 피를 마시면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거나 하는 것 말이냐? 그거 다 미신이다."

지부장은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앉아있는 마법사의 말에 머리가 절로 아팠다.

"그래서 토벌대에 들어갈 생각이냐?"

"예? 전혀. 차원의 틈에서 꿀이나 빠는 게 좋소. 이걸로 한탕 크게 당겨야지, 크흐흐."

마법사는 자신의 옆 자리에 한가득 쌓여있는 스타킹을 팡팡 두드렸다. 차원의 틈으로 넘어간 던전의 키메라들을 죽이고 얻은 마석으로 바꾼 스타킹은 전쟁 중임에도 제법 고가로 팔리고 있는 물건이었다.

"학비 벌었으니까 다시 마탑에 가서 공부나 할 거요."

"자네 마탑은 졸업하지 않았나?"

"학부생은 졸업했고, 그...<대학원>이라는 것이 있소. 마탑에서 탑주나 교수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

마법사는 자신의 왼팔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의 왼팔은 피부가 손목부터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파충류의 비늘 같은 것으로 뒤덮여있었다.

"논문 주제는 드라고니안의 힘이요. 던전에서 드라고니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 만큼, 이걸 연구하면 분명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을테지."

"...그, 진짜 그게 사실인가?"

지부장은 눈앞에서 진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차원의 틈에서 던전을 공략한 공로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냐는 거 말일세."

"보고도 모르시오? 여신의 은총은 던전에서 얼마나 활약했느냐에 따라 달려있소. 나는 던전 주인을 거의 죽일 뻔 했기에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

아무리봐도 마법사 특유의 허세와 거만이 가득해보였지만, 지부장은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캐물었다.

"참 믿을 수가 없는데...."

"성검 비르고의 용사가 차원의 틈 관리인으로 여신님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소. 실제로 그곳에는 '천사들' 또한 심심찮게 보이지. 흐흐, 천사들이랑-"

마법사는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미소짓다가 금방 말을 끊었다.

"흠흠. 아무튼 지부장, 이건 지부장 님이 나를 동생처럼 아껴줬으니, 나도 그만큼 좋은 걸 알려주고 떠나려는 것이오."

"한 몫 단단히 챙기고 떠나는 건 모험가들 불문율이기는 하지. ...그런데 자네, 혹시 형이나 누나가 수 십명인가?"

지부장은 자신의 앞에 한가득 쌓인 투서들을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전부 <차원의 틈>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포털을 알려달라고 하는 비밀쪽지들이 수두룩했다.

"나 말고도 알려준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자네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군 그래."

"아, 그, 내가 했다는 증거 있소?"

"이프산 루머메이커로부터 들었다고 하던데. 자네 이름이 이프산 루머메이커 아니던가?"

"이런 젠장."

마법사, 이프산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당당히 왼쪽 손등에 마나를 뿌렸다. 그러자 손등 위를 덮는 변장용 마도구가 사라지고, 그의 손등에는 역삼각형같은 기하학적 문장이 떠올랐다.

"이건 다른 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것이오. 이게 무엇인 것 같소?"

"성흔 같구만."

"성흔 같은 것이 아니라, 성흔이오. 내가 진짜 이거 안 쓰려고 했는데...하아."

이프산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단검을 꺼내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그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이프산은 단검을 놓고 성흔이 깃든 손을 뻗어 마나를 뽑아냈다.

"힐."

"......!!"

이프산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마나는 은은한 신성력이 되어 상처를 말끔히 치료했다. 이프산은 주변을 살핀 뒤,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차원의 틈에서 성유라는 걸 받아마셨소. 그걸 마시니 이렇게 신성력이 손등에 성흔으로 자리잡게 되더이다. 보이시오? 지금 상처를 회복하며 색이 살짝 옅어진 거."

"설마...?"

"그렇소. 소모성 신성력이오. 이거 걸리면 이단으로 몰릴 지도 모르지. ...지부장, 만약 그곳에 갈 일이 있다면 이 말을 하시구려. '여신의 젖과 꿀'을 받고 싶다고."

"......."

여신에 대한 불경이 가득했으나, 모험가란 자고로 본인의 이득에 가장 몰두하는 법.

"여신께서 바라시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이건 안 되겠군."

지부장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양피지 중 가장 고급스러운 걸 집어들었다. 그곳에는 [마왕군 토벌대 지원 용사 차출 협조]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화륵.

지부장은 마법으로 공문을 태워버렸다.

"지부장, 여기서 일하기 싫소? 후작가에 밉보이면 어떻게 될 지 뻔히 알면서."

"뭐래. 흑마법에 심취한 근친 강간마 치매 노인이 다스리는 곳에서 길드장 할 바에야, 자네처럼 다시 태어나는 게 훨씬 낫지."

"아내는?"

"몰라, 씨발. 집나간 년을 왜 찾아."

지부장은 이프산의 옆에 한가득 쌓인 스타킹을 보며 혀를 낼름거렸다.

"한탕 크게 먹고 튈 거다."

정력에 좋은 오크 고환과 피부미용에 좋은 엘프 젖을 포기하고, 지부장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기로 결정했다.

"지부장, 그럼 아까 성 밖으로 나간 중소길드연합은?"

그리고 그와 반대로, 오크의 고환과 엘프의 젖을 노리는 자들도 나타났다.

"새끼들, 소규모로 싹다 빠져나가서 성밖에서 하나로 뭉칠 것 같던데?"

차원의 틈에 관한 위치 정보가 길드 내 고위급 인사들에게만 '꿀비밀'로 전해져, 위치를 모르는 이들은 차원의 틈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형님 아내도 따라가지 않았소?"

"아, 글쎄 나는 모른다니까. 이제."

비르고 남작령으로.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만 조용히 꿀만 빨면 되는 거다. 나는 다른 곳에서 새살림 차릴 거다."

* * *

늦은 오후.

오늘도 요새의 성벽위에 올라 평원을 주시하던 나는 평원 앞에 모인 한 무리의 인간들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저 쩌리들은?"

우리가 상대해야할 주적, 정규군은 아닌 듯 보였다. 하나같이 복장이 중구난방인 걸로 보아, 모험가들이 우리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륜. 혹시 놈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들리냐? 조금 멀기는 한데."

"오크들을 잡아서 거세를 하고, 엘프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매일 젖소처럼 젖을 짜낼 거래요."

"새끼들, 내 부랄을 자르러 왔군."

고트다이할의 선동에 낚인 모험가들이 분명하다. 모험가란 자들이 토벌대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저렇게 떼로 몰려올 거라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아직 정식 개장 전이긴 하지만 손님이 왔으니 받아야지."

선동에 의해 낚인 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보내줄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잡아서 족쳐야 한다.

"륜, 궁수들에게 활을 내려놓으라고 전해다오. 성문을 활짝 열어 저들을 맞이하자꾸나."

모험가들을 섬멸하기 위해, 우리는 성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 명만 나가도 정리될 놈들이다."

나는 딱 한 명만 내보냈다.

***

"......."

모험가 길드방의 부인이자 은테 모험가인 여검사, 버지나 파르티는 자신과 함께 온 모험가들의 기세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오크 고환은 얼마에 팔릴까?"

"내가 예전 기록을 봤는데 말이야, 엘프 노예 하나가 금화 100개는 넘게 받을 수 있다더군."

"남작령에 있는 던전에서 좋은 것만 슬쩍 챙겨오자고."

모험가들은 저마다 꿈에 부풀어있었다. 마물의 소재든 던전의 금은보화든, 금의환향 할 수 있는 물건들을 챙겨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 후작성에는 돌아갈 수 없어."

토벌대에 들어가지 않고 성을 빠져나왔다. 혼란을 틈타 탈출하다시피 나온 이상, 다시 돌아가기에는 염치도 없다.

상처만 가득 남은 도시에 이제 볼 일은 없다. 모험가들이 후작성에서 얻은 거라고는 3cm 늘어난 자지와 조금은 풍만해진 가슴 뿐이었다.

"...여기서 오크 부랄 잘라서 왕도에 팔면…!"

"거기까지."

다그닥, 다그닥.

좌우로 활짝 열린 요새의 관문 아래, 가면의 여인이 은빛 페가수스를 몰고 나타났다. 전신을 검은 타이즈에 중요 부위만 칠흑같은 갑옷으로 가린, 음란을 넘어 음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 이상의 접근은 용서하지 않는다."

"누구…?"

"나는…<미르마망>."

스스로를 미르마망이라 칭한 여인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손을 들어올렸다. 천마가 옆으로 비틀어서자, 그녀의 하복부에서 진한 핑크빛 문신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주인님께 해를 끼치려는 자, 모두 죽을 것이다."

미르마망의 손이 아래로 내려옴과 동시에, 하늘에서 별빛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음란 타락한 용사의 상징은 역시 비키니 아머에 자궁문신이지."

모험가들은 별빛의 폭격에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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