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회
143일차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대규모 집단 감염은 성공했고, 발정은 겉잡을 수 없이 번져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믿음을 무너뜨렸다.
"인간들이여, 이 또한 여신의 바람이니라."
나는 하르파스와 안드라스에게 쥐여진 원견의 수정구를 통해 레굴루스 성의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광장부터 시작해서 빈민가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은 모두가 섹스라는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되겠군."
증상이 가라앉아, 모두가 한 번씩 색수병이 발발하면 사태는 종식될 것이다. 한 번 발정난 이상, 그 이상의 미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증상이나 감도가 약해지는 건 미약의 기본 중 기본.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더 진한 미약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더이상 미약을 써봤자 역효과만 날 것이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후작령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간만 흐르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한 때.
<알림> 침입자 발생!
"주인님, 지하 2층에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마르코시아스? 이상하군. 지금 쿠키엘프들이 경계를 서고 있을텐데?"
던전의 알림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침입하여 들어오는 자가 아니라면 샤이탄이 내게 한 번 더 보고할 리가 없다.
"차원의 틈입니다. 시간이 되어 열린 포털로 누군가 방문한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방문이라니, 누군지 볼.... 오호라."
점원으로 나온 그린엘프의 눈에 비친 침입자는, 인간들에 의해 강제로 범해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온몸에는 찐득한 정액이 말라붙어있었고, 나뭇가지와 수풀에 긁힌 상처로 피부가 벌게져있었다.
[도와...주세요...여신님....]
털썩. 여자 모험가는 기절했다. 메어리와 라스마켓의 이들은 급히 여인을 수습했다.
"이곳을 낙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여신께서 만드신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니, 자연히 여신의 도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흐흐흐, 그거 참 안타깝군. 여긴 던전인데 말이야."
인간들에게 강제로 범해진 여자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 것인가.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포로> 레이플 켜르케델, ★★★☆, Lv. 63.
"샤이탄. 꿈속에서 저 년을 낚아라. 여신의 인도인 척, 우리 군단에 들어오라고."
"꿈속에서 영입하는 겁니까?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합성시켜."
인간들에 의해 더러워진 몸뚱이를 새롭게 다시 바꿔주기로 했다. 상처 하나 없이, 여신의 축복을 받은 몸뚱아리로.
"처녀로 다시 태어나거라, 레이플."
여신의 권능을 바라고 온 자에게, 나는 던전의 힘을 이용해 그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이다.
"환생이 신의 권능이라고 한다면, 너는 여신을 잘 찾아왔단다."
여자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마신.
* * *
저벅, 저벅.
레이플은 대로를 걸었다. 아무 목적도 없었고, 의지도 없이, 그저 하염없이 앞으로 걷기만 했다.
"......."
레이플의 좌우로 거대한 회색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마탑처럼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올라가는 건물들의 가운데, 레이플은 자신의 죽었음을 직감했다.
"벌써부터 죽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어...?"
레이플의 옆에는 장신의 남자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레이플의 팔짱을 잡아끌었다. 남자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음에도, 레이플은 멍하니 남자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들어갔다.
"단 거 두 잔이랑 케이크 하나."
"예."
가판대 안에서 컵을 닦고 있던 흑발의 여인은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레이플은 남자가 이끄는대로 테이블에 앉아 멀뚱멀뚱 눈만 깜빡였다.
"레이플 켜르케델. 나이 23세. 모험가 출신이고...실력은 대략 은테급?"
"어, 어떻게 그걸 아세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하지만 나이 앞에 향년이라는 단어를 붙여야겠군. 너, 죽었어."
"......."
레이플은 고개를 떨궜다. 남자는 여자가 가져온 컵에 담긴 음료를 홀짝이며, 레이플의 앞에 무언가 유리처럼 넓은 걸 내밀었다.
"골절, 멍, 자상. 전신에 난 상처들은 그냥 사소하다고 해도 과언일 정도로, 네 사인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심각하군. 자궁이 파열되어 죽었다."
"예?"
"강간당하면서 입은 상처가 너무 커. 자궁이 파열되었고, 하혈이 너무 심했다. 네 사인은 <과다출혈>이다."
"......흐, 흐끅, 흐으으...."
레이플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 저, 너무 억울해요,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미안한데 우는 건 나중에 해주지 않을래? 너 말고도 지금 뒤에 밀려있는 사람들이 많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안타까운건 알겠는데, 나도 이게 일하는 거라서 말이지. 아 씨, 갑자기 왜 거기서 그런 일이 생겨가지고. 하여튼 성녀 그 년이 문제야. 쯧. ...아, 이건 말 실수. 못 들은 걸로 해."
남자는 손으로 입 앞을 흔들며 윙크했다. 레이플은 남자가 한 말을 속으로 곱씹으며,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러면 레이플 켜르케델 양, 이제 아가씨한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남자는 평평한 물건을 두드리며, 레이플의 앞에 놓았다. 마도구처럼 생긴 사각형 물건의 안에는 뼈가 앙상하게 마른 시체가 하나 놓여있었다.
"하나는 이대로 깔끔하게 죽음을 택하는 것. 모든 기억을 잃고 다시 살아나는 거지."
"그, 그냥 죽으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또 다른 선택지를 주는 거 아냐. 잘봐봐."
남자는 마도구의 위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종족의 여인들이 정면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가득했다.
"이대로 기억을 가지고 원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이 있어. 대신 인간으로는 부활하지 못해.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지."
"뭔데요?"
"던전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야."
"......."
레이플은 뒤가 얼얼했다. 모험가로서 지금까지 죽여온 수많은 던전의 마물들이 이런 식으로 태어나는 건가 하는 충격에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남자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도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물건을 팔듯 하나하나 소개했다.
"...하피 에일로도 나쁘지는 않아. 일단 몸이 크기도 하고, 날개도 강철처럼 단단하지. 아니면 드라이어드는 어때? 하반신에서 나무뿌리를 뽑아내서 적을 붙잡을 수도 있고."
"......꼭 여자로 환생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가 여자로 환생하지, 남자로 환생하려고? 그건 안 돼. 그건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남자의 표정은 단호했다. 레이플은 허탈감에 실소를 했다가, 조용히 두 명의 여인을 골랐다.
"서큐버스랑 그린엘프?"
"...서큐버스는 말이에요, 섹스로 남자의 정기를 뽑아내서 죽일 수 있는 거 맞죠?"
"그렇지."
"...그럼 이 그린엘프라는 건 뭐예요? 처음 보는데."
엘프가 엘프지 그린엘프라는 건 또 무엇인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여인들의 목록 중에 까마귀 머리도 이상하기는 했지만, 슬라임까지 있는 것에 레이플은 다소 어이가 없기는 했다.
그나마 선택한다면 엘프. 하지만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엘프가 '그린'이라는 것에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그린엘프는 그린엘프야. 자기야, 보여줄래?"
"예."
남자에게 자기라고 불린 여인은 케이크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인의 몸이 자신이 마도구로 본 그린엘프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게 변했다. 머리칼은 흑발에 여전히 보라색이었지만.
"이런 모습이야. 어때?"
"...서큐버스는요?"
"서큐버스? 풉, 그래. 서큐버스로도 보여줘봐."
딱. 그린엘프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서큐버스로 변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레이플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린엘프로 할게요."
"좋은 선택이야. 그럼 마지막으로 여기에 사인을 해."
나 OOO은 OOOOO 던전의 하수인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거기 OOO에다가 이름을 쓰면 끝나. 어때, 간단하지?"
레이플은 남자가 건넨 펜을 집어들었다. 한참동안 이름을 쓰는 칸에 펜촉을 두고 고민하던 레이플은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던전의 그린엘프로 태어나면 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있어요?"
"어떤 던전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인간을 죽이는 것에 집중하는 던전도 있고,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던전도 있어. 아, 인간을 강간하는 걸 즐기는 던전도 있단다."
"......어느 던전이든 좋아요. 저는...."
레이플은 흰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저를 범한 자들에게 꼭 복수할 거예요."
"크흐흐."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종이를 받아들며 입을 가렸다.
"그래, 복수 꼭 해. 아참.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환생은 시켜주지, 그 뒤에 상황은 어떻게 될 지 모르거든?"
"네?"
"일단 환생하고 나서 뒤의 상황은 우리 책임 아니라는 말씀~"
"뭐, 뭐예요?!"
"사인 받았다. 처리해."
짝!
서큐버스 여인이 손뼉을 침과 동시에,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 * *
"......어?"
레이플은 눈을 떴다. 동굴 속 침대에 누워 잠에서 깨어난 레이플은 몽롱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정신이 드나요?"
"당신은...."
"키메리에스라고 불러주세요."
검은 갑옷의 여인은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플의 앞에 그릇을 내어놓았다. 뜨겁고 걸쭉한 스프는 허기진 레이플의 입맛을 돋구어, 금방 그릇에 담긴 스푼을 잡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그런데 여기는...?"
"던전이에요. 차원의 틈과 연결되어있는 던전이죠."
"풉!!"
레이플은 막 입에 넣었던 스프를 뿜었다. 갑옷 전체에 스프가 튄 키메리에스는 다소 불쾌해 보일 법도 했으나, 자신의 갑옷을 스스로의 손으로 닦아 입술에 쪽 빨아먹었다.
"아깝게.... 진정해요. 여기는 평범한 마왕군의 던전과는 다르니까."
"그, 그게 무슨...?!"
"차원의 틈에 있던 분들이 당신을 여기로 보냈어요."
"아...."
레이플은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모험가 길드에서 윤간을 당하고, 급히 교회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도 구원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최후의 힘을 짜내어, 목숨을 걸고 성을 빠져나와 차원의 틈으로 향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던전이다?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레이플은 자신도 모르게 스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툭, 퐁당.
스푼은 가슴에 부딪혀 다시 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레이플은 이상한 감각에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어...어?"
"후후, 이걸 볼래요?"
키메리에스는 거울을 꺼내들어 레이플의 얼굴을 비췄다. 자신의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좌우로 뻗은 뾰족한 귀나 색이 밝은 연녹색의 머리칼은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흡사, 엘프와도 같은 외모.
"워낙 상처가 깊어서 상처를 치료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린엘프로 다시 태어나게 해드렸답니다."
"다시...태어나요?"
"예. 환생이죠. 그 분께서 당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겁니다. 하아, 부럽네요. 그 분에게 처녀를 바칠 수 있게 되다니."
"무슨 소리야!!"
레이플은 스푼을 내동댕이치며 성을 냈다.
"처녀고 나발이고, 이게 도대체...!"
"저는 간살당해 죽었다가 부활한 듀라한이었답니다?"
들썩. 키메리에스는 자신의 머리를 잡고 위아래로 들었다 내렸다. 사람의 목이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것에 레이플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복수밖에 모르던 제게 그 분은 진실을 가르쳐주셨어요. 비록 제가 강간당해서 죽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섹스가 아니라고. 사랑이 넘치는 성교라는 것이 있다고. 덕분에...저는 듀라한이지만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후후."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이플은 눈앞의 여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던전의 주민으로서 다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해야해요. 그분의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그러려고 다시 태어나려고 한 게 아니야! 비켜!"
레이플은 급히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손목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소용 없어요. 이미 저항할 것 같아서 묶어뒀으니까. 후후, 인간들은 초야권이라고 하죠? 처녀를 자기 주인에게 바치는 거."
"그런 거, 없어!!"
"걱정마시길. 아, 마침 들어오시네요."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거구의 오크는 탄탄한 근육과 불룩한 배 아래, 척보기에도 커보이는 자지를 덜렁거리며 들어왔다.
"이 년이 이번에 새로 '소환'된 녀석이냐?"
"네. 어머, 혹시 싸고 오셨어요? 청소해드릴게요."
키메리에스는 자신의 머리를 뽑아 오크의 자지에 끼워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입안을 드나드는 자지는 금방 말끔해졌다.
"시, 싫...!"
"아픈 건 없다. 걱정마라. 내가 따먹은 여자만 세 자리가 넘는다."
오크는 레이플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냅다 스타킹을 찢어버렸다. 언제 입고있었는지도 모르는 스타킹 사이로 레이플의 비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 환생보지 개꿀."
"아, 아아악!!"
찌직.
"야, 너 내 덕분에 다시 태어난 거야."
오크는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레이플의 커다래진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러면 깽값 정도는 받아가야하지 않겠어?"
레이플은 또다시 처녀를 잃었다. 레이플은 고통 속에서-
"...어?"
"후후, 말씀드렸잖아요. 주인님 덕분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아프지 않다. 아프기는 커녕, 마음이 안정되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기만 한다.
스륵, 스륵.
"흐흐, 역시 엘프가 맛있다니까."
거친 말투, 흉악한 얼굴, 그리고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거근과는 다른 상냥한 애무에, 레이플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흐끅."
짐승과도 같은 인간들로부터 입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손길에, 레이플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