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52화 (551/800)

552회

138일차"모르는 천장이다."

라그비아는 처음보는 곳에서 눈을 떴다. 푹신한 침대는 자신이 평소에 교회에서 사용하는 침대보다 훨씬 훌륭했고, 방은 햇빛이 잘 들어 아늑했다.

"여긴 도대체...?"

"어머, 정신이 들었니?"

바로 옆에는 성녀가 앞치마를 두른 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그비아는 이제 성녀의 미소를 보고 꿈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밥 차려놨단다, 어서 나와서 밥 먹으렴."

그 싸가지 없는 성녀가 저렇게 웃으며 식사 준비를 했을 리가 없으니 이것은 꿈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꿈이며, 라그비아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왜, 왜 그러니?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크흑. 흐읍."

다시는 꾸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꿈. 라그비아는 다시금 자신을 찾아온 '그녀'를 위해, 꿈에 빠져들기로 마음먹었다. 벽에 걸린 평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검은 실크 잠옷을 입은 소년 시절의 모습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잠옷, 생전 처음 보는 가구. 하나같이 화려하고 세련되어보이는 가구였으나, 성녀는 마치 익숙하기라도 한듯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오늘 주일교회 가기로 한 날이잖니. 어서 얼굴 씻고 부엌으로 오렴."

성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나갔다. 라그비아는 미로를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홀린듯이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방문 바로 오른쪽에 문의 문고리를 잡고 열어젖혔다.

'여기는....'

대리석 타일이 깔린 새로운 공간.

라그비아는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향긋한7 라벤다 향이 물씬 코를 간질였고, 라그비아는 슬리퍼를 신고 세면대 앞에 서서 전면 거울을 바라봤다.

'도대체가.'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의 화장실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현실에는 손으로 들어올리면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는 수도꼭지 따위는 없고, 앉아서 용변을 보면 냄새도 금방 사라지는 양변기같은 것도 없다.

'꿈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군.'

꿈이니까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그비아는 하나의 가능성을 간절히 바라며, 얼굴을 찬물로 씻어 여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제발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기를.

"어머, 빨리도 씻었네. 어서 먹으렴."

부엌의 식탁에 마주앉은 성녀는 그릇에 정갈하게 음식을 담아놓고 라그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챙겨주듯, 새색시가 남편을 위해 아침을 차려주듯 다소곳한 자세로 라그비아를 맞이했다.

"잘먹겠습니다."

라그비아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따뜻하게 구워진 토스트와 계란, 그리고 크림치즈와 베이컨의 맛과 향이 라그비아의 혀속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해, 도저히 깨고 싶지 않았다.

"디저트도 있단다. 천천히 먹으렴."

성녀는 또다른 음식을 들고와 라그비아의 앞에 놓았다. 탱글탱글한 푸딩 젤리와 따뜻한 우유에 라그비아는 눈물이 핑 돌았다. 대사제로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텁텁한 빵과 물으로 삼시세끼를 먹으며 기도를 올렸던 그에게는 정말 꿈과도 같은 별미였다.

"잘 먹었습니다. 그...."

"어머, 너."

성녀는 얼굴을 붉히며 라그비아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라그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커진 자신의 분신에 얼굴이 붉어졌다. 언제부터 커졌는지도 모를, 다른 곳은 소년이지만 그곳만큼은 청년의 혈기를 가득 담고 있는 모습에 라그비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후후, 하고 싶구나?"

"아니, 그, 저...."

"그럼 잠깐만 기다려볼래?"

성녀는 라그비아에게 양해를 구한 뒤, 부엌 한 켠에 딸린 펜트리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사락사락 거리는 소리에 라그비아는 따뜻한 우유를 괜히 삼켜야만 했다. 안그러면 침넘어가는 소리가 성녀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얼굴부터 밖으로 내민 성녀는 부끄러운 건지 쭈뼛거리며 문 밖으로 나왔다.

"어, 어때?"

"...여신이시여."

라그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여신을 찾았다. 성녀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앞치마만 입고 있었다. 전면부를 사각형으로 가리는 앞치마의 옆으로 드러난 성녀의 잘록한 허리가 라그비아의 하반신을 더욱 부풀게 만들었다.

"그, 설거지 좀 하고 있을게."

성녀는 라그비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그릇을 집어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라그비아는 물이 나오는 저 곳이 왜 싱크대라고 부르는 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걸 자각하기에는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여신이다...."

언젠가, 라그비아는 불경한 이들이 여신을 조각해놓은 것이라고 만든 조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놈들은 몹시 불경하게도 여신의 몸을 상상하여 알몸으로 조각을 해놓았고, 라그비아 본인이 직접 바닥에 집어던져 부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이교도들도 이런 꿈을 꿨던 걸까. 허리에 걸린 앞치마의 끈 이외에는 그 무엇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에 라그비아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너,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렴."

고작 알몸에 앞치마 하나만 둘렀을 뿐인데, 알몸보다도 더 남자를 혹하게 만들었다. 라그비아의 하반신은 불끈 달아올랐고, 더이상 주체할 방법이 없었다.

‘참아라, 라그비아! 너는 대사제다!’

그 누구보다 금욕적인 삶을 살아와 대사제로 존경받는 남자가, 고작 꿈속에서의 유혹을 참지 못해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없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사락.

성녀는 뒷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머리밴드를 묶었다. 말총처럼 흔들리는 성녀의 머리칼 아래, 그 누구의 손길도 닿은 적 없는 뽀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으아아!”

라그비아는 괴성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것이 여신의 시련이든 악마의 유혹이든, 라그비아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얘, 얘?!”

라그비아는 성녀의 뒤를 덮쳤다. 하반신을 엉덩이에 붙이고, 한쪽 손으로 아랫배를 잡아당기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거칠게 잡아뜯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앞치마의 위를 움켜쥐었다.

“...후후, 기운넘치는구나.”

성녀는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 라그비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라그비아는 그게 성녀의 거절인 줄 알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성녀가 이끄는 손의 방향에 다시 심장이 널을 뛰듯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진정하렴. 여기에 넣어야 하지 않겠니…?”

성녀는 라그비아의 손을 앞치마 안쪽, 자신의 옆가슴으로 밀어넣었다. 덕분에 라그비아는 성녀의 가슴을 직접 움켜쥘 수 있었다.

말캉. 이 얼마나 상냥한 여인이란 말인가. 라그비아는 성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마치 자신의 키에 맞추기라도 한 것 처럼, 성녀를 뒤에서 끌어안는 자세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사락.

성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라그비아의 바지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라그비아의 자지가 성녀의 엉덩이 위에 턱 내려앉았고, 성녀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선반에 엎드렸다.

“해도 된단다….”

“아아, 아아아!!”

라그비아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까치발을 살짝 들어올리며 벌어진 성녀의 아래를 보며, 라그비아는 자지를 잡고 성녀를 향해 찔렀-

띵동- 띵동-

[라그비아 대사제님!! 서큐버스입니다! 서큐버스들이 도망쳤습니다!!]

현관벨이 울림과 동시에, 라그비아는 꿈에서 깨어났다.

* * *

댕댕댕댕댕댕댕.

경종이 울리며 사방에 소란이 들끓기 시작했다. 복도에 기도하고 있던 사제들은 모두 입에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었고, 서큐버스들은 구속구를 풀어내어 슬라미아들의 품에 안겼다.

“붙잡혀서 미안해.”

“아니야. 너희 잘못 아닌 걸. 빨리 도망치자.”

슬라미아들은 서큐버스를 자신의 가슴과 몸에 붙이며 끌어안았다.

이미 오랜 기간동안 인간의 정기를 머금지 못한 서큐버스들은 가슴이 줄어들 정도로 초췌해져 있었고, 슬라미아들의 가슴에 저장된 군단의 마액을 입으로 빨며 정기를 회복했다.

“...첫번째 작전, 서큐버스 구출 완료.”

슬라미아들이 하나 둘 땅굴로 내려가는 걸 확인한 라임은 한쪽발로 사제 하나를 집어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감옥 안에는 한 명의 서큐버스가 막 꿈속에서 쫓겨난 반동으로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너는 괜찮아?”

“괜찮아요, 대장. 저 때문에 다들 잡혔던 거니까.”

라그비아 대사제를 노리는 바람에 인간들에게 잡혔던 서큐버스, 리리즈는 스스로 교회의 서큐버스 감옥에 남기로 결정했다.

“제가 남아있으면 분명 저를 추궁할 거예요. 후후, 걱정마세요. 고문에는 익숙하니까.”

“신성력으로 하는 고문인데….”

“걱정마세요. 홀리 오크들한테 기구로 하루동안 단련되었으니까요. 얼마든지 들어오라고 하세요. 후후….”

리리즈는 애써 강한 척을 했으나, 축 늘어진 꼬리가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기절한 인간 사제 하나를 완전히 잡아먹은 라임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라스토피아에서 만나길 빔.”

“군단을 위하여.”

서로를 향해 기도하기도 잠시. 리리즈는 고개를 떨구고 기절했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라임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여기서 들킬 수는 없지."

방금 잡아먹은 인간 여사제로 변한 라임은 턱 관절을 두 어번 두드리고는 슬라미아들이 빠져나온 구덩이를 덮었다.

"이제…."

라임은 자신이 집어삼킨 사제가 가진 신성력을 피부 밖에 흩뿌렸다. 전신이 절정에 지져지는 것 만큼 짜릿했지만, 라임은 사제와 함께 통째로 삼켰던 로브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증거인멸."

화륵.

지하 감옥 안을 밝히던 횃불을 로브 위에 집어던졌다. 사제였던 것은 금방 불꽃에 타들어가 재가 되었고, 라임은 스리슬쩍 주변을 살피고 천장에 손을 뻗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잠옷 차림의 라그비아 대사제를 비롯한 사제들이 지하 감옥으로 달려왔다. 정수리까지 붉어질 정도로 잔뜩 화가난 대사제는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훑었다.

"......저, 저 자는?!"

"대사제님?! 서큐버스들이 한 명 빼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감옥안에 갇혀있어야 할 서큐버스들이 모두 사라졌다. 복도에는 그들을 감시하고 지켰어야 할 사제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

서큐버스가 수감된 철문 앞에는 사제복 하나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피로 쓴 듯한 문자가 바닥에 남겨져 있었다.

여신의 뜻을 곡해하는 자들에게 천벌을.

“도,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라그비아 대사제를 비롯한 사제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누구도, 천장에 딱 달라붙어 환풍구 속으로 사라지는 점액 덩어리를 보지 못했다.

***

"현대 신혼부부 플레이는 역시 알몸 앞치마를 빼놓을 수 없지."

나는 알몸 앞치마로 나와 마주한 사이단의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그녀의 안에 나의 분신을 집어넣었다. 방금까지 현대식 브런치로 밥을 먹고, 후식으로 먹는 사이단은 밥보다 더 맛있었다.

“흐흥, 간지럽습니다.”

“간지럼 태우는 거 맞는데?”

나는 사이단의 가슴을 뒤에서 붙잡아 당기며 목덜미에 입술을 맞췄다. 날개와 꼬리가 없는 인간 상태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를 아무 문제없이 백허그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흐흐, 사이단. 역시 너는 천재다. 현대를 배경으로 꿈을 꾸게 만들어 더욱 꼴리게 만들다니.”

“역발상이죠. 현대 지구를 사셨던 주인님께서 엘프랑 섹스하는 꿈을 꾸면, 얼마나 자지가 벌떡 서겠습니까?”

자고로 가장 하고 싶은 섹스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섹스라고, 나와 사이단은 서큐버스들에게 보급할 꿈으로 새로운 컨셉을 잡았다.

이른바, 이세계 섹스.

“맘껏 현대 치트를 쳐보자고, 선녀님.”

“어머, 지금은 저 사이단인데요?”

사이단은 흑발의 머리칼을 가리키며 보지를 조였다. 자신이 서큐버스들에게 보여주는 딥페이크의 성녀가 아닌, 사이단 본인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 같았다.

“흐흐, 알았다, 알았어. 모처럼 단 둘이니 어떻게 불러주면 좋겠느냐?”

“주인님 자지 전용 육변기, 줄여서 ‘자기’는 어떻습니까?”

“......그런 자기라면 어쩔 수 없지.”

사이단 스스로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란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 나는 사이단이 원하는 호칭대로 불러주기로 했다.

“그럼 자기야, 이제 어떤 컨셉으로 이 세계의 인간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을까?”

“시작이 알몸 에이프런으로 부엌 뒤치기니까…. 흠,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생각하시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오크에 의한 집단 강간같은 건 제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지만, 현대의 감성은 아무래도 주인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몸 에이프런으로 꼴리게 만든 녀석이 할 말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흐흐, 좋아. 현대 컨셉으로 딥 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내는 거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나에게, 그리고 샤이탄에게 있어 현대의 도시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딥 페이크를 통해 보는 꿈의 세계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우며 흥미로운 곳이 될 게 분명하다.

비록 첫 시작은 신혼집에서 알몸 에이프런으로 부엌에서 성교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차근차근 딥 페이크의 본래 목적에 맞게 현대식으로 성녀를 탕녀로 만드는 작업을 거칠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바라는 꿈의 세계가, 이곳 비르고 남작령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라스피카, 라스베가스의 사이를 잇는 드넓은 땅.

지금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지만, 언젠가는 라스토피아의 수도이자 현대식 도시로 거듭나게 될 성스러운 땅.

엘프의 숲.

“아아, 이것은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수를 중심으로 펼쳐질 거대한 살색 콘크리트의 숲을 보는 순간, 모두가 이곳이 꿈속에서 봐왔던 라스토피아임을 깨닫게 되리라.

"웰컴 투 라스토피아. 쾌락과 사랑이 넘치는 프리섹스의 성지에 어서오시길."

우리는 딥 페이크, 꿈을 통해 이세계의 환상이라는 역병을 퍼뜨렸다.

"흔히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하지. 꿈속에서 보던 기회의 땅으로 오너라, 억압에 고통받는 인류들이여."

자유에 대한 갈망.

그것이, 색수병이라고 불리우는 역병의 실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