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회
138일차 색수병이 본격적으로 잦아들기 시작한 지도 어언 열흘.
레굴루스 성의 여론은 전염병을 억제하고 있음에도 점점 흉해지고 있었다.
"아니, 걸리면 사제님들이 다 섹스로 해결해주시고, 더군다나 섹스로 해결하면 자지도 커지는 데 내가 왜 색수병에 안 걸려야 한단 말입니까?"
"너희들은 몰라! 가슴이 절벽이라고 그 이에게 소박맞은 나의 가슴을! 너희가 뭘 안다는 거야! 안 돼! 나한테서 거유를 빼앗아 가지마!!"
후작성은 바야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사제들은 나름 열심히 돌아다니며 색수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고, 색수병에 걸리지 않도록 방역을 철저히 하여 색수병을 점점 종식시켰다. 발병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전염병은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거 어차피 모두가 좋은 건데 그냥 다같이 단체로 감염되면 안 되나?"
"오늘부터 내일까지, 후작성 내 전 영지민들이 참여하는 색수의 날로 지정해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나만 색수병에 걸리지 않고 그대로여야 하는가. 내 옆집 남편은 색수병에 무려 두 번이나 걸려서 부부 금슬이 좋아졌다는데 왜 우리집 남편은 그대로인가. 영지민들의 불만이 잠재되어있는 가운데, 여론을 악화시키는 또다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색수병을 퍼뜨리는 장본인은 서큐버스들이래."
"뭐? 그게 진짜인가? 요즘 선녀님 꿈을 꾼다는 게 다 서큐버스들이 저지른 짓이었어?"
"그래. 크흐흐, 성녀가 아니고 선녀님. 색수병에 걸린 이들 대부분 선녀님을 꿈에서 뵈었잖아? 순서가 어떻든 간에, 선녀님 꿈을 꾸게 만드는 자들이 후작성에 잠입한 서큐버스라고 하더라. 지난 번에 색수병 걸려서 사제님들이랑 하다가 들은 얘기야."
"...그래서 색수병이 잦아드는 건가. 씁. 아쉽군. 서큐버스들에게 당한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크흠."
아무리 색수병이 자신들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고는 한들, 마족과 연결되어 좋을 것은 없다. 당장 고트다이할 후작만 하더라도 흑마법에 심취하여 성 아래에 괴물을 키우다가 영지민들을 죽게 만들지 않았던가.
"고트다이할 후작, 아직 안 죽었지? 늙은 이가 정정하구만. 쯧."
"며느님인 엘렉트라 님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신다고 하는군."
"안다이할 그 새끼는 분명 도망친 게 분명해. 쯧쯧, 엘렉트라 님께서는 이런 곳에 오셔가지고 고생만 하는군."
"그래도 이므신할 님께서 계시지 않나. ...아 참, 요 며칠 전에 들은 얘기인데 말이야...."
속닥속닥.
"뭐? 미친 소리 하지마.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나도 지금 자네에게만 얘기하는 거야. 얼마나 어이가 없나? 전염병 확산을 방지한다면서 서큐버스들을 다 잡아들이면서...."
높으신 분들은 집집마다 서큐버스 한 명씩 잡아서 가둬놓고 있다니 말이야.
소문은 역병처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문이라는 건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퍼뜨리는 유언비어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진실이 소문이라는 이름으로 퍼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귀족 나으리들이 자기들만 자지랑 가슴 크게 만들려고, 서큐버스들 붙잡아서 안 죽이고 가둬두는 거래. 그래서 추기경을 근신시킨 거고."
밑바닥에 도는 여론은 암암리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제들과 성기사단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이들을 다스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진실이었기에.
* * *
<후작성 레굴루스 성, 이므신할 개인실.>
"저기...."
"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나?"
"아뇨, 그건 아닌데."
햣샨은 자신의 눈앞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들에 떨떠름했다. 던전 내에서 먹는 음식들도 물론 맛있기는 하지만, 매일같이 정상적이면서도 고급진 음식을 먹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속이 니글거렸다.
'마액 먹고 싶다.'
서큐버스에게 있어서 주식은 인간들의 음식이 아니라 정기다. 그리고 군단에서 보급받는 마액은 서큐버스들에게 별미 중의 별미이며, 서큐버스들이 군단에 충성하는 가장 큰 계기인 음식이었다. 그런 마액을 먹지 못한지도 꽤 지났으니, 햣샨으로서는 음식이 물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남자의 정기를 먹고 싶은 건가?"
"윽."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햣샨은 비참함을 느꼈다. 햣샨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은 이므신할은 햣샨을 마치 애완동물 다루듯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당장이라도 날아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꼬리를 잡고 있는 이므신할의 손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거라면 안 된다. 너는 발각되어서는 안 돼. 나니까 너를 이렇게 예의를 갖추고 대하고 있는 거지, 다른 이들의 경우를 얘기해줄까?"
"돼, 됐어요."
목에 성검으로 목줄을 만들어놓고 그게 할 소리인가? 햣샨은 뒤틀린 속내를 와인과 함께 안으로 쓸어넘겼다. 텁텁한 듯 하면서도 깔끔한 포도향 보다는 엘프들의 우유가 훨씬 더 맛있었다.
"당신도 그렇지만 인간들이란 역겨워요. 특히...당신을 비롯한 귀족-윗대가리들."
"무엇이?"
"겉으로는 서큐버스들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다들 서큐버스들 잡아서 가둬둔 거."
"흐흐흐, 부정할 수는 없지."
이므신할은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윙크했다. 햣샨은 얼굴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소꿉놀이가 끝나고 바로 성검에 고문당할 게 뻔했다.
"귀족의 영지는 어떻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나?"
"그걸 저한테 왜 물어요?"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설명하고자 하는 거지. 단적으로 말해서 그대가 말한 윗대가리들,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후작. 기사. 준 작위를 가진 이들. 그들을 인간들은 귀족이라 부르고, 귀족이 있기에 영지민들이 있을 수 있는 거지."
"하고 싶은 말만 하세요."
햣샨은 심통맞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목젖까지 튀어나왔지만, 목에 걸린 성검의 밧줄에 불만은 다시 속으로 되돌아갔다.
"결론부터 얘기하라? 색수병의 부작용도, 서큐버스들이 꾸게 하는 성녀의 꿈도 모두 귀족들이 누려야 할 특권이라는 얘기지. 지금의 상황을 봐봐. 일반 대중에게 퍼져있었을 때는 겉잡을 수 없었잖아? 하지만 이제 서서히 색수병은 잦아들어가기 시작했어. 이른바, 관리가 가능해진 거지."
"높으신 분들은 관리가 가능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렇지 않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않아? 나도 빨리 여기 상황이 정리되어야 다시 전선으로 갈 수 있거든."
이므신할은 목줄을 해제했다. 그녀의 손에서 은빛으로 반짝인 성검은 다시 원래의 모습, 대검으로 변해 벽에 걸렸다.
"언제까지고 여기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야. 안그래도 아리에스...아니야. 너한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짝.
이므신할이 손뼉을 쳤다. 햣샨은 와인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털레털레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후작님."
"후작 아니라니까. 잘 먹었어. 매번 고마워."
사용인들은 식기와 음식들을 거둬들이고 방을 떠났다. 이므신할은 사용인들이 식기를 정리하자마자 곧장 문을 걸어잠그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럼 지금부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볼까, 우리?"
"그, 그만하세요...! 꿈은 색수병을 걸리게 하는 매개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잖아요!"
햣샨은 실토하고 말았다. 대중은 서큐버스가 색수병을 뿌리는 전염병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큐버스들의 딥 페이크는 색수병을 심화시킬 뿐 발병시키지는 않았다.
"알아. 너희들이 가슴 속에 넣고다니던 그 이상한 약물. 그게 색수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걸."
"그것도 다 빼앗아 갔으면서! 그럼 이제 그만 죽여달라고요!!"
"그럴 수 없지. 네가 나쁜거야. 내게 그런 꿈을 꾸게 만들어서 나를 음란한 몸으로 만들려고 했잖아."
햣샨은 반박하지 못했다. 딥페이크의 효과는 너무 뛰어나, 이므신할로 하여금 서큐버스의 꿈에 미쳐버리게 만들었으니.
"오늘은 어떤 꿈을 준비했니? 어제 꿨던 꿈은 엄청 좋았어. 성녀가 늑대 자지 아래에 깔려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니 말이야."
"이...개변태...!"
"개변태라니. 그게 뭐 어때서."
이므신할은 신성력으로 반짝이는 손으로 햣샨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꿈이잖아. 꿈인데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야?"
햣샨은 진심으로 울고싶어졌다.
* * *
"업로드 끝났습니다. <처녀_서큐버스가_동정자지로_.avi>는 이제 모든 서큐버스들에게 전해질 겁니다."
"잘했다, 샤이탄."
처녀도 동정도 아니지만, 꿈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 처녀 서큐버스의 얼굴과 모습은 당연히 성녀가 될 것이며, 서큐버스 성녀는 남자를 유혹하지만 사실은 처녀로서 많은 이들의 자지를 달래 줄 것이다.
"이걸로 놈들이 서큐버스들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뤄주겠지?"
"예. 당장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놈들이 서큐버스들에게 해코지 할 수 없도록, 저희는 최대한 많은 음몽을 전해주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서큐버스 리리즈가 붙잡힌 것이 계기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부터 그랬던 걸까.
정기 연락을 위해 소집한 서큐버스들 중 6할이 라스베가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모처럼 휴가를 주려고 했더니,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사로잡힘.
서큐버스들이 도망을 친다거나 할 일은 없으니, 사실상 인간들의 손에 붙잡힌 것이라고 봐야했다. 지난 며칠간 공중, 지하를 통한 정찰 끝에 우리는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러운 인간 놈들. 그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귀족 놈들. 감히 서큐버스의 음몽을 독점하려 하다니...!"
우리들이 준비하는 성녀의 딥 페이크 영상은 수많은 대중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꿈을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성창녀 소리를 듣게 하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너무 효과가 강했습니다. 고작 [음란한_드라고니안_메이드]같은 서적이 전부인 세상에서, 주인님께서는 야동을 뿌리신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젠장...! 이 세계의 포르노 문화에 실망했다...! 고작 이 정도의 수위도 서로 공유하지 못하다니!"
기껏해야 조선시대 춘화 정도가 전부인 세계에 적나라한 포르노를, 그것도 가상현실 체험에 준하는 야동을 뿌려댔으니 사회적 충격은 클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좋은 건 서로 나눠먹어야 하는 법이거늘...!"
"그래서 저희도 두셋이 주인님의 자지를 같이 빨고는 하죠."
"그래, 그렇다! 그런 의지야! 그런 생각을 가지란 말이다, 더러운 인간 놈들...!"
좋은 건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건전한 문화가 있어야 세상이 발전하거늘.
"특권 계층이 서큐버스의 음몽을 독점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되었다. 그건 널리 사랑을 퍼뜨리라는 여신의 뜻에도 반하는 행위지. 샤이탄, 제 1차 레굴루스 함락 작전을 결행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부대에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군단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제단. 그리고 그들을 이끌 우두머리이자 나의 충실한 종복.
"가라, 라임! 인류에게 진정한 사랑을 널리 퍼뜨려다오!"
"라스."
선봉.
퍼트릴 라임.
후작성의 여기사로 분장한 라임은 곳곳에서 사로잡은 라스의 교도들과 함께 후작성을 향해 떠났다.
* * *
<그 날 저녁.>
후작령의 중심, 레굴루스 성이 언제까지 도시를 폐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추기경이라는 중요한 존재가 있고, 고트다이할 후작은 흑마법에 심취하여 큰 논란이 일었고, 성검의 용사가 후작 대리로 나타난 도시에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 리가 없다.
더군다나 그 도시에서 자지와 가슴이 커지는 전염병이 돌고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후작령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는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고, 굳게 닫혀있던 성문은 어쩔 수 없이 열렸다.
"정지. 신분을 밝혀라."
성문 앞에 경비로 선 성기사들은 들어오는 이들을 철저히 수색했다. 몸의 가장 은밀한 곳 마저도 건드릴 정도로 철저한 심문에 수치심을 느끼거나 화를 내며 돌아간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후작성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반드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정지! ...음?"
성기사, 바이스 엑슈얼은 눈앞에 당도한 하얀 로브의 일행에 의아함을 느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이들의 로브는 분명 여신교단의 순회사제단이 입는 로브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형제님. 그런데 순회사제단이 여기에는 어쩐 일로...."
"여신님의 뜻을 전파하러 왔음."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이의 말이 다소 짧다. 바이스는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엄청 피곤해보이는 사제들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멀리서 오느라 지쳤을 게 분명했다.
"형제님들. 안의 상황은 이러이러 하기에, 몸수색이 필수인 점을 양해바랍니다."
"그건 안 됨. 내 몸은 나의 주인님 말고는 만질 수 없음."
"...물론 여신님께 귀의한 신실한 분들인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륵. 사제단의 대표는 로브를 살짝 들어올렸다. 바이스만 볼 수 있는 얼굴로, 여인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라스를 아심?"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 또한 여신의 뜻이겠지요."
순회사제단은 큰 무리 없이 후작성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