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17화 (516/800)

517회

127일차

추기경과 합의 하에 후작성에 미약 테러를 일으킨 이후.

나는 추기경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게 되었지만, 추기경과의 밀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하피들을 이용해 슬라임 점액을 분사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기 전 슬라임들을 통해 땅에 미약 묻은 은화를 뿌렸다.

비록 마지막 단계, 속옷에 미약을 묻혀 입으면 즉시 발정나게 만드는 작전은 계속 사용하지 못했다.

같은 물건을 파는 상단이 후작성에 고작 일주일만에, 그것도 전염병이 돈다고 들은 곳을 방문할 리 없다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우리는 비오는 날에만 테러를 일삼았다.

"하지만 그래서야 효과가 약하지."

비오는 날에만 광역 분사를 하면 당연히 미약의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미약이라고 한들 사람들에게는 내성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고, 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성녀가 다녀간 이후 사람들의 발정이 조금은 진정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전보다 더 큰 발정을 일으키려면 뭔가 다른 방법이, 이전보다도 더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

"그러므로 이번에는 너희들이 활약할 차례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지금까지 던전 내에서 크게 일을 하지 않았던 이들, 서큐버스.

하도 할 일이 없다고 빈둥거려서 다크엘프와 드워프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하는 투표권을 두고 정기를 뽑아내는 일을 시키기는 했지만, 역시 서큐버스들의 근본은 '몽마'답게 꿈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최고였다.

"후작성의 유일한 문제는 성검의 용사다. 이므신할 레오라는 여자는 어째서인지 나의 형제와 함께 떠나지 않았다. 즉, 이건 성검의 용사를 따먹으라는 여신의 계시지."

성검의 용사가 혼자서 후작성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후작성에는 추기경과 성기사단이라는 내부의 적이 있다.

"흐흐흐. 그러니까 후작성의 방위 시스템은 이므신할 레오만 어떻게 조지면 서큐버스 너희들이 하늘로, 땅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기사단은 서큐버스들을 모른 척 할 것이다.

"그럼 성검의 용사 말고는 걱정할 건 없어요? 성기사단은 우리 편 같은 거니까?"

"아니. 후작성에도 교회가 있다. 거기에 있는 사제 놈들이 변수기는 하지."

걱정되는 바가 있다면 후작성의 교회에 있다는 대사제와 일부 사제들이 되겠지만, 서큐버스들은 오히려 꺅꺅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으흐흐, 여신에게 기도하는 동정 사제를...히히힛!"

"섹스는 해봤어도 분명 오랜 기간동안 쌓아뒀겠죠? 발기했어도 '여신이시여...'하면서 빼지도 않고 가라앉을 때까지 기도했겠죠? 아하항, 정기가 얼마나 쌓여있을까...!"

"역시 서큐버스다. 사제를 섹스 타락 시키는 건 몽마의 역할이지."

나의 서큐버스들은 사제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제들을 잡아먹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확실히 기네비어의 경우를 생각하면, 성행위를 하지 않는 사제들에게 쌓여있는 정기는 평범한 남자의 몇 배는 더 많았다.

그냥 성인 남자가 하급 마석이고, 동정 남자가 중급 마석이라면, 동정 사제 남자는 상급 마석이다.

"히힛, 군단장님.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작령 공략할 때처럼 어디 거점 구해서 남자들 덮치면 좋을까요?"

"아니. 그 때는 남작이 우리의 속내를 모르고 건물을 내어줬지. 그에이의 도움이 있었기도 했지만, 지금의 레오 후작은 외부인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성문이 닫힌지 꽤 되었은데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내부의 주민들도 불편하지만 딱히 나갈 생각이 없어보이기는 했다.

'병이라도 걸리면 자지 1cm, 가슴 1cm 자라는데 누가 나가고 싶어하겠어.'

색(色)을 밝히는 짐승(獸)이 되는 병이라고 하여, 나는 추기경에게 미약 테러로 인한 발정 증상을 색수병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색수병에 걸리면 하루동안 발정난 짐승이 되지만, 성기사단에서 다 빼주지. ...바이스 그 놈에게 걸린 놈들은 조금 안타깝지만, 주민들 나름 복불복 아니겠느냐. 흐흐흐."

추기경도 추기경 나름, 안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해정사라고 하는 짓을.

* * *

<그 시각, 후작성 교회 별실.>

끼이익.

나무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여인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로브로 전신을 가린 여인은 나무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예하. 죄송합니다...."

"...사흘 전에 오셨던 분이군요. 괜찮습니다. 색수병은 누구에게나 걸리는 병입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참회실 너머의 추기경은 인자한 목소리로 여인을 달랬다. 여인은 흐느끼듯 달뜬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저, 저기...."

"안심하십시오. 여신교단은 병을 신성력으로 정화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저희 성기사단에서도 형제자매님들께 선택의 기회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아아...!"

끼이익.

작은 문이 열리자 여인의 앞에는 두 개의 포션이 놓였다. 하나는 붉은 점액이 끈적거리는 포션이었고, 하나는 푸른 액체가 찰랑거리는 포션이었다.

"파란색 포션...성수를 마시면 당신은 금방 병이 치료될 겁니다. 색수병의 증상을 억눌러, 금방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예. 부작용 또한 없을 겁니다. ...어쩌면 자매님께서 일부러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 부작용이 말이죠."

"읏."

여인의 붉어진 얼굴이 더욱 발갛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떨군 아래에는 깎아지른 절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신교단의 교리, 색을 탐하지 말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부작용을 얻기 위해 스스로 색수병에 걸렸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추기경은 모두 다 이해한다는 목소리로 여인을 위로했다.

"자매님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그것은 교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가진 원초적인 본능. 이 또한 여신께서 내린 시련이겠지요. 이번 시련을 겪고 나면 자매님은 자매님 속의 짐승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련이 너무나도 힘들겠지만...."

"하겠습니다."

여인은 붉은 약을 집어들었다. 붉은 약은 색수병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물건이 아니라, 오히려 색수병의 증상-발정을 더욱 자극하는 '미약'이었다.

"예하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제 아는 이웃이 그러더군요. 크나큰 시련에는 그만큼 크나큰 영광이 있으리라고. 이것이 여신님께서 제게 주신 시련이라면, 저는 직접 그 시련을 마주하겠습니다."

"...부디 자매님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꿀꺽. 여인은 붉은 약을 바로 한 입에 털어넣었다. 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여인의 아랫배가 꾹꾹 울리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자매님."

성기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여인을 안아들었다. 여인은 탄탄한 근육질의 성기사가 자신을 안아든 것에 얌전히 안겨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근육 빵빵 성기사님이랑 섹스!"

"이토록 증상이 심각할 줄이야...!"

이미 마음을 놓아서 그런 걸까. 여인의 풀린 눈에 성기사는 곧장 여인을 안고 달려 '참회실'로 향했다.

맨땅에 펼쳐진 작은 텐트 하나. 안에는 남녀 둘이 들어갈 수 있는 간이 침대가 놓여있는 걸로 끝이었으나, 색수병을 해결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장소였다. 색수병에 걸린 이들도 성기사와 함께 텐트 안에 들어가면 고분고분해졌다.

"으어어어! 수녀님, 죄송합니다!!!"

"으끄윽, 괘, 괜찮아요...! 이 또한 여신님께서 제게 주신 시련, 아아앙?!"

옆 텐트에서 질퍽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작 천 두 겹으로 모든 걸 막기에는 울려퍼지는 진동이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밖에서는 약한 실루엣만 보일 뿐, 텐트안은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매님, 부디 제가 자매님의 증상을 완화하는데 나서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아, 하아, 하아."

성기사는 여인을 침대에 눕혀, 제복을 벗어 정갈하게 놓았다. 서로 원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두 남녀는 한 침대 위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부디 죄많은 저희를 잠시 못 본 척 해주시옵소서."

"여신이시여, 당신의 시련을 이겨내어 내일은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와락!

성기사와 여인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았다. 처음 보는 사이였으나 설육을 섞고 애무하는 것이 짐승들의 교미보다도 더 야만적이었다.

"으아악!! 싫어어어어! 왜 나만 남자가 들어오는 거냐고오오!"

"우후후, 형제님. 가만히 계십시오. 이 또한 여신님의 시련입니다...?"

탁탁탁탁.

앞 텐트에서 남자의 격한 절규와 함께 물빼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눈앞의 성기사가 안도의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성기사 님. 저 할 말 있어요."

"무엇입니까?"

"저 그제 생리 끝났어요."

"......!!"

퍽, 퍽퍽, 퍽퍽.

하늘에는 은빛의 달이 걸려있었고, 달빛은 텐트 위에 쳐진 천막 위를 쓰다듬으며 주변만 밝힐 뿐이었다.

* * *

<그 시각, 후작성 집무실.>

쾅!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없있지만, 당사자인 이므신할 레오 후작 대리는 진심으로 짜증을 내비쳤다.

"색수병 환자가 계속 늘어난다니! 그게 말이나 돼?!"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 더 말이 안 되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후작께서는 빈곤한 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추기경은 후작을 위아래로 훑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진 자들은 탐욕스럽죠. 100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200, 300까지 늘리고 싶어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자들이, 부족한 자들이 그들보다 탐욕스럽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없기에, 부족하기에 더더욱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죠."

"최소한 절제는 해야할 거 아니야!"

"인간의 욕망을 막을 수 있습니까? 후작 대리 님, 신앙으로도 막지 못하는 것이 욕망입니다."

"추기경이 할 소리야, 그게?!"

"추기경 이전에 여신의 뜻을 따르는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일 뿐이지요."

추기경의 웃음에 이므신할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성검의 용사인 자신조차 색수병에 걸릴 정도였 건만-다행히 성검의 힘으로 발정을 억눌렀다-, 추기경은 신성력도 없는데 색수병에 전혀 영향이 없는 듯 보였다.

"너...역시 네가 흑막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인간이 욕망이 없을 수가 있어? 네가 성검의 용사도 아닌데."

사명감에 치우친 성검의 용사마저도 개인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신성력도 없는 추기경이 색수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다면 단 하나.

"제가 색수병을 퍼뜨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후후, 다릅니다. 저는 색수병에 걸릴 수 없는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쾅! 이므신할이 빛처럼 뛰어나가 추기경의 멱살을 붙잡았다.

"당장 말해! 무슨 방법으로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몰래 약물을 먹는 거지?!"

"......입니다."

추기경의 낮은 목소리에 이므신할은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멱살을 바로 풀어, 뒷걸음질치며 눈알이 사방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어, 어음, 그,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이 또한 여신께서 제게 주신 시련. 저는 하나를 잃은 대신 그분의 뜻을 이 마음속에 품었습니다."

"......."

어째서인지 추기경의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 그냥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면서 비친 불빛이었다.

"이므신할 후작 대리 각하. 큰일났습니다."

"또 뭐? 발병자들은 모두 성기사단에서 한 발 빼주고 있잖아?"

"그, 그게...."

기사는 말을 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색수병 확진자들 사이에 낭설이 돌고 있습니다. 그...꿈에 누군가가 나온다는."

* * *

"......."

꿈속이다. 라그비아 대사제는 자신이 꿈속에서 깨어났다는 것에 안도했다.

"여신이시여."

그 누구도 없는 교회의 기도실. 꿈속에조차 견실한 사제인 그는 성수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꿈이군."

세례를 위해 떠놓은 성수에는 젊었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벗겨진 머리도 예전처럼 풍성했고, 피부도 윤기가 흘렀다. 무엇보다도 아랫도리가 뻐근한 것이 젊었을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꿈이...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과거에 대한 회상이 깊어질 뿐. 라그비아 대사제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여신께 기도를 올리고 잠을...허어억?!"

"라그비아 대사제님."

눈앞에는 검은 머리의 미녀, 성녀가 자신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그비아의 정면에 선 성녀는 슬그머니 사제복을 좌우로 벌렸다.

"여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라그비아 대사제님의...그...."

성녀는 속옷만 입은 채, 라그비아를 향해 요염히 웃었다. 고혹적인 미소는 서큐버스처럼 음탕해보였으나, 너무나도 어울리는 색스러운 짓는 미소에 라그비아는 그만 홀려버리고 말았다.

"대사제님의 훈육봉으로...제게 성수로 세례를 해주세요."

...

...

...

대사제는 몽정했다.

* * *

"아아, 이것은 딥-페이크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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